인간에게 어쩌면 이 세상은 잠시 머물다 가는 장소일지도 모른다. 어디서 왔는지는 모르지만, 어디론가 가야만 하는 존재. 꿈과도 같은 현실들을 수없이 마주 대하면서, 그렇게 마음 속에 있는 모든 감정들이 메말라가는 것을 느끼면서, 그게 어쩌면 삶이고 인생인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모든 이들이 냉정함의 노예가 되어 세상이 바라는 대로만 살지는 않는 것이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라면 다행일지도. 처음 그 이름을 들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나를 울리다 못해 가슴을 후비 파고 들어오는 이가 있으니, 그 이름이 바로 헤르만 헤세. <수레바퀴 아래서>, <싯다르타>, <유리알 유희> 등. 수없이 많은 작품을 통해 많은 이들의 메마른 가슴 속에 물줄기를 심어주었던 그였다.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 중 한 명으로 선정될 정도로, 우리에게도 익숙한 인물,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를 이야기 할 때 빠질 수 없는 것은 다름 아닌 <데미안>이 아닐까 싶다. 변화라곤 전혀 느껴지지 않는 하루하루의 일상에 지쳐가던 그 순간마다 껍질을 깨고 나오기 위해 자신만의 외로운 투쟁을 벌이는 새와 내 자신을 동일시하면서 살아온 지난 날이었기에, 아프락사스 라는 존재에 대한 이해치 못할 동경에 사로잡혀 지냈던 지난 날이었기에. 그래서 어쩌면 나는 헤르만 헤세 라는 이름을 영원히 지난 과거 속에 묻어버리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읽었던 책들을 지금 와서 다시 읽으면서 새로운 감정을 느끼게 되지만, 유독 그의 책은 다시 섣불리 집어들지 못하는 것을 보면, 어린 시절 나를 이끌어준 그 이름을 영원히 과거에 묻어두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그가 적어나간 시. 실로 오랜만에 그의 이름과 함께 했다.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향수, 세상 그 어느 곳에도 속할 수 없는 자의 비애, 그것은 서글픔이었다. 젊은 시절 지녔던 막연한 꿈, 세상에 대한 동경이 모두 무너져버린 나이. 잃어버린 젊음에 대한, 사랑에 대한 추억들. 그렇게 가슴 속 어딘가에 잘 보이지 않게 고이 접어 간직하던 것들을 헤세는 자신의 글을 통해 바스러질까 조심스레 펼쳐 보이고 있었다. 오랜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가능한 여유로움. 하지만 이미 말라버렸을지라도 누구나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눈물 자국. 그 크던 아름다움에도 불구하고 결국 자신을 배반한 것은 세상임을, 모든 것은 변화하고, 그렇게 빛 바랜 꿈만이 남아있음을 고백하는 노인에게 남은 것은 쓸쓸함의 정서였다. 하지만 어두움의 정서들은 헤세의 다듬이질 속에서 지독한 밝음으로 변화를 겪었으니, 이별의 아픔을 진실로 아는 이는 슬픈 발라드에 눈물 흘리지 않는다 했던 그 말이 사실일지도 모르겠다. 그 어떤 애처로움도 찾아볼 수 없는, 아니, 오히려 몽환적이기도 낭만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시구 하나하나. 헤세의 글은 그랬다. 그러면서도 억지로 꾸며대지 않은 것 같은, 온갖 수식어로 장식을 해댄 듯 하지만 결코 그 장식들이 거추장스럽게 느껴지진 않는, 이런 것을 두고 내공이라 말하는 것일지도.

이렇듯 헤세의 시 속에는 이미 세상을 떠나버린 지난 날의 인연들. 눈을 감으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깨끗하게 전개되는 추억들이 묻어나고 있었다. 현실이 아님을 알면서도 현실이라 착각해버리고 싶을 정도로, 펜대를 놀려가며 적어나갔을 그 글귀 속에는 인간 세상에 대한 무한한 사랑이 숨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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