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련이란 무엇인가?

상승이다. 자기부인이다. 이전의 자아에 대한 부인이다. 이전 자아의 모습이 불완전하다는 것에 대한 인정과 더 깊은 하나님과의 관계, 하나님과 일치된 영혼의 교제를 향한 갈망의 실현이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구원의 불완전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완전하시나, 나는 불완전하다는 인정이다. 하나님의 영은 내속에서 완전하게 역사하시나 나는 그 영의 요구에 따르기를 싫어하고, 오래 담겨 있던 내 영혼의 찌든 때가 거룩한 영의 요구, 하나님앞에 선 인간으로서 본연의 모습으로의 회귀가 부자연스럽고 어려울 때가 많이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인생은 지속적인 하나님을 닮아감으로, 하나님의 태초에 우리에게 허락하시고, 부여해 주셨던 그 존재로의 회귀이다. 회복이다. 이것을 신학용어로는 성화라고도 하지만, 하나님이 이끌어가시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나 자신의 능동적인 동참과 내 인격에의 적극적인 반응, 자발적인 순종, 자기를 깨고, 현재의 껍질을 벗고 날마다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불가능한 과정이기도 하다. 곧 육체의 연습도 며칠을 운동을 하다가 안하면 다시 군살이 끼기 시작하고, 과거의 게으름의 생활이 다시 반복되려 하듯, 내 영혼에 지속적인 자각과 훈련은 필수적이다.

   경건의 훈련이란 무엇인가?

육체의 연습도 유익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관계속에 살아가는 모든 크리스챤에게 있어서 범사에 유익된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문제를 해결하고, 그분의 성품으로 닮아감으로 나의 선택과 그분의 선택이 일치되는 자리에까지 가는 것이다. 그것은 곧 다른 어떤것에 의존함으로 나의 인생을 의탁하고, 또 실망해서 되돌아오는 불완전한 쳇바퀴의 반복이 아닌 완전한 존재를 만나 그분께 의탁하고, 그분과 동행하는 삶의 시작이며 하나님만이 나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고, 그분과의 관계 속에서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는 자리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에 대한 자각이다. 그것을 ‘하나님 앞에 홀로 섬’이라고 말한다. 이 홀로선 자아는 성령에 의해 지배받게 되며 그리하여 결국엔 하나님의 역사 속에, 그 나라와 계획과 경륜 속에 자신의 삶을 동참시키고, 일치시키는 역사 속에 깨어남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 사람은 다시 다른 사람과의 관계속으로 나와 내 인생에 찾아온 모든 손님과의 따뜻이 맞이함, 봉사의 자리, 그들 각자가 하나님앞에 홀로서도록 도와주는 자리에 까지가 먼저 선 사람의 사명이요 역할이다. 이 전 과정들이 훈련이다. 즉 상승이요, 상승이란 곧 이전의 나에 대한 부인과 내 것을 내려놓는 아픔을 경험해야 한다. 아쉬움, 미련, 그리고 자기 살을 떼어놓아야 하는 듯한 아픔을 경험하게 된다. 롯의 처를 생각해 보라. 멸망받고있는 소돔성에 대해 화려한 과거에 대한 미련을 벗어버리지 못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어김으로 소금기둥이 되지 않았던가? 아무리 작더라도 이전의 나에 대한 부인, 나의 환경, 나의 Background, 나의 편의와 안락에 대한 죽음이 우선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상승은 없다. 하나님은 편안한 가운데서 하나님앞으로의 상승을 허락지 않으셨다. 사실 그것은 하나님의 잘못이 아닌 우리의 죄성 때문에 생겨난 결과이며 그것을 아시는 하나님의 섭리와 사랑으로서 하나님과 더 깊은 관계로의 이끄심에는 고난이 따르는 것이다. 물질의 축복이나, 나의 성공 그 자체가 하나님과 나의 관계를 성공적으로 이끌수 없다. 오히려 그렇게 된 결과에 대한 나의 무익함과 나약함에 대한 고백과 하나님앞에서의 자기부인이 없이는 자기의 의와 잘남이 더 드러내 보이려는 내 영혼의 죄성을 모두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사다리를 탐에 있어서도 다음 윗 사다리로 발을 내 딪는 그 순간은 이전 사다리에서 발을 내 딪고 공(空)의 상태에 먼저 이르는 것 같이(떠있는 공(空)의 상태는 두려움이다) 더 윗단계로의 상승은 공의 두려움의 상태, 이전의 아랫사다리로의 부인이 앞서지 않는 한 나의 존재로서의 상승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더욱 상승을 위한 자리와 훈련은 요구된다. 


  군대는 무엇을 하는 곳인가?

군대는 싸움위해 훈련하고,준비하고, 또한 전쟁시에 직접 싸우는 곳이다. 한국의 군대는 육체의 연습이 가장 우선시 되지만 영혼의 군대는 경건의 훈련이 중요하다. Q.T 한다고 모든 훈련을 마쳤다고 생각하지 말라. 싸움은 총만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니다. 영적 전쟁은 훨씬 더 심각하다. Q.T만을 해서 싸워 이길 세상이 아니다. 이 시대의 싸움, 이 시대 속에 하나님의 때, 시간, 나라를 구출해내는 가장 큰 싸움(엡5:15, 골4:5)은 사람의 사고,생각,습관을 지배해서 행동을 하게끔하는 세계관, 사상이요, 그것(관점)을 갖게하는 본질과 원칙의 문제이다. 현 시대는 진리의 상대화, 절대적 가치기준의 부재의 시대이다(휴머니즘의 특징). 이것을 어거지로 ‘예수 믿어, 진리라니까, 이게 진짜야’의 무대포의 전도가 효과를 볼 때가 있었다. 그때는 전쟁후 영혼의 갈급함속에 있을 때 가능했으나 지금, 모든 것이 부족함이 없는 것 같은 이 때엔 그들의 생각속에, 문화, 지식, 가치관속에 들어가 진정한 부족에 대해 드러내어 줌으로, 그리고 그 부족함앞에 자신의 한계를 발견하고 완전한 존재에로, 자신을 택하시고, 부르신 그분께로의 회귀함에 대한 강권과 설득이 요구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더 큰 싸움을 해야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영혼의 군대는 어떻게 훈련받는 곳인가?

먼저 떠남이다. 군대입대하는 모든 사람은 머리를 자르고 부모,친구,형제들과 작별을 하고 입대를 한다. 즉 군사로 모집된 자는 자기 생활에 얽메이지 않는다(딤후2:4). 26개월, 적어도 6개월, 1년은 떠나보자. 자기 생활에 얽메였던 모든 인간관계, 세상의 이해관계, 물질적 유혹들을 벗어버리고 떠나자. 인생자체가 나그네로서의 떠남의 과정이지만 한 순간에 모든 것이 인식되고 성숙되는 것이 아니다. 과정과 단계가 있는 것이다. 어학연수나, 새로운 직장, 외국에서의 생활기회, 군생활, 새로운 학교로 입학.. 이 모든 것들이 지금의 환경과 현재로서의 탈출의 중요한 계기이다. 상승의 기회로 삼자. 본인도 군대에서 26개월간, 미국에서 1년간 영혼의 군대에 입대한 적이 있다. 과거의 나에서 떠나 있었던 것이다. 그 기간 나는  많은 훈련들을, 연단들을, 하나님께서 나를 깨뜨리심을, 내 스스로 나를 깨뜨릴 수 없는 아쉬움과 두려움 속에 있을 때에 친히 나의 연약한 부분, 깨져야할 부분을 드러내 주셨다. 그 드러난 현실과 연약함 앞에 나는 온몸으로 반응하고 신음했다. 나의 한계를 절실히 절감했다 그리고 몸부림 쳤다. 주님 도와주세요. 당시에는 아픔이 있더라도 곧 나는 영혼의 깊은 평안함과 여유, 성숙해짐을 경험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때 이후로 나는 계속 영혼의 군대속에 제대하지 않고 입대한 채로 존재해 있다.    


  나는 어떻게 영혼의 군대생활을 하는 중인가?

더 큰 싸움을 위한 장교훈련을 받고 있는 중이다. 시키는 것 만하고, 눈치만 힐끔힐끔 보면서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것은 이등병 때의 얘기이다. 열외 받으면 좋아하고, 내가 안 다치거나, 내가 걸리지 않으면 기뻐하는 것은 사병 때의 일이다. 이제는 지도자 훈련과정에 있다. 여러분도 자원해서 입대할 생각은 없는 가? 영혼의 군대에 장교훈련 말이다. 가장 큰 훈련은 성경과 언어의 훈련이다. 다분히 감정적인 우리세대의, 우리나라의 신앙은 생각의 게으름과 기복주의적 신앙에 젖어있는 듯 하다. 우리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젖어 들어있다. 70-80년전 안창호선생이 우리 민족의 순진무구, 무지몽매한 민중에게 자각을 외치고 의식과 교육을 외쳤던 선포가 우리의 귓가에 들리는 듯 하며 그런 지도자가 요구되는 시대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 우리의 주변에 지도자가 없다고 원망하지 말고 네가 그 지도자가 되라 ’ 진정한 지도자는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지도자요,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분별해서 그 뜻에 따라 백성을 인도해 주는 사람이다. 그는 자신이 가야할 목적과 죽을 곳을 알며 또한 앞서서 먼저 가 보고 다시 돌아와서 그 길을 인도하여 가는 사람이다. 우선되는 본질을 자각하자.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자. 말씀의 본질이 무엇인지 부단히 묻자. 하나님의 특별계시된 말씀, 그의 영이 없는 사람은 깨닫지도 못하는 이 말씀을 은혜로 우리는 받았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의 원리는 먼저 받은 자를 통해서 증언될 때에 흘러가는 것이다. 우리는 증인으로 증언자로 설 수 없는 가? 설 수 있다한들 지금 우리는 무엇을 증언할 수 있단 말인가? 교역자만 증언한다고 하면 지금 이 시대 속에서 능력있게 곳곳에 시대의 사상과 세상의 이해관계 속에서, 타락한 문화 속에서, 가치 기준이 전혀 없는 사람들 가운데 어떻게 변혁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말인가? 본질로서의 회복을 외칠 수 있다는 말인가? 본질에 서자. 성경을 보자 깊이 보자, 더 깊이 파자. 한글성경만으로 안된다. 영어성경을 보자. 원어성경을 보자. 성경을 한번 봐서는 안된다. 내 죄성의 깊이만큼, 반복되는 죄의 횟수만큼, 아니 그것을 이기려면 그보다 더 성경을 보자. 그리고 내 것으로 나오자. 내 인격과 내 책임과 내 고백과 내 확신을 가지고 말하자. 그 때에 비로소 하나님은 나의 고백과 증언 속에 말 뿐 아니라 삶 속에 나타나고, 묻어나오는 메시지 속에 기름 부으셔서 역사하신다. 삶의 소명과 목적의식을 분명히 하자. 내가 가야할 길을 발견케 해 달라고 부르짖자(하나님을 모르면, 그분의 나라와 역사를 모른다면 사실 나의 좌표를 찍기도 어렵다. 내 인생의 하나님의 거대한 역사 속에 동참되는 것이다. 그 역사를 모르는 데 무엇에 내가 요구되고 동참할 것을 어찌 안단 말인가?). 그리고 확연히 드러나진 않더라도 그것이 옳은 길이고, 진리의 길이고 내가 가야할 길이라면 앞서서 가자. 다른 연약한 우리의 동료들, 지체들을 이끌어주자.


  지금부터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함께 싸우는 동역자 들과의 관계도 중요하다. 나와 관계한 모든 사람들은 내 영혼의 손님이자 내게 맡겨주신 하나님의 선물이다. 부모,부부,자녀,친구,스승,제자,이웃... 이들 앞에 나 자신은 그렇게 못하면서 내 기준과 기대를 내세우지 말자. 그들 각자가 하나님 앞에 홀로서서 하나님과 더불어 문제를 해결하는 자리에 까지 가도록 돕는 자로서 존재하자. 내가 그에게 모든 것을 가르칠 수 있고, 변화시킬 수 있다는 교만함은 버리자. 기대와 기준에 못 미쳤다는 말 속에 나오는 상처에 대한 얘기도 이제는 줄이자. 그리고 각자의 부족함을 나의 연약함과 연약했던 때를 기억하며 오히려 이해하고, 인내와 지혜로 세워주자. 그리고 하나님을 만날 수 있고, 하나님의 뜻을 경험할 수 있게 다만 드러내어 주고, 인도하여만 주자. 오직 하나님만이 그 영혼을 변화시키실 수 있다. 우리도 누구의 강압과 권유의 의한 결심보다는 내 스스로 자각하여 깨달은 결심이 더 오래가지 않은가? 엊그제 온 중연,유란,선미,창환...이런 지체들에게 우리는 마땅히 우리의 공동체 안에, 내 영혼 안에 들어온 손님으로 맞아들이고 그들을 앞서서 섬겨야 될 것이다. 그들에 대해 나의 요구수준을 내 세우며 기대를 주입하는 것이 아닌 친구로 동역자로, 영혼의 방에 온 어린 손님으로 인식하고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우리가 함께 각자의 부르심을, 그리고 그 각자가 모인 공동체의 부르심을 묵상하여 보고, 함께 기도하며 우리의 우선되는 것, 그리고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한다면 그 또한 목적, 부르심을 점검해 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확인되고 나의 부르심으로 받아들여졌다면 앞서서 이끌고 섬겨야 할 것이다.


  글을 맺으면서

7가지 습관을 강의하면서 그 구성자체가 참 우리의 신앙의 훈련과 많이 일치한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하나님 앞에 홀로서서 내 삶의 주체성과 주도성을 회복함과 부르심과 사명을 기억하는 것, 그리고 그 우선순위에 따라 내 삶을 Lead하고 Manage해 나가는 것의 중요성은 얼마나 큰 가? 그리고 나의 승리에 이어서 나만의 유익이 아닌 상호유익을 추구하고, 그의 입장에서 이해한 다음 이해시키는 관점,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함께 합하여, 나와 나의 동역자 들이 합하여 하나님의 비전을 이뤄가는 것(시너지 창출). 이것은 얼마나 값진 것인가? 그리고 7번째 습관으로 지속적인 내 영육간의 쇄신, 영혼의 군대 속에서의 지속적인 훈련. 이것을 우리의 크리스챤의 삶 가운데 정확한 세계관으로 일치시킨다면 참 괜찮은 영혼의 군대속의 훈련과정이 될 듯 싶다. 틀과 과정은 어느 정도 보이는 데 이제 발걸음을 내 딛는 것만 남았다. 시작이 반이다. 발걸음을 내딪는 것만으로 하나님의 역사는 시작되고, 역사하고 계시다. 우리의 가치가 상향조정되고, 그 가치와 약속과 비전 앞에 나의 내딪는 발걸음과 몸부림이 시작된다면 영혼의 군대에서의 훈련은 내 삶 속에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다만 먼저 자신의 이전 것을 떠나서 더 강한 훈련과 강한 무기를 준비하는 것만이, 더 큰 싸움, 더 깊고, 더 근본적이고, 더 powerful하고, 더 위험하고 외로운 싸움 앞에서 우리의 육체와 영혼의 게으름과 유혹을 깨뜨리고 준비하고 상승해 나가는 것만이, 내 영혼의 전쟁터에서 그리고 하나님 나라와 역사 속에 살아가는 나로서 승리하며 나를 향한 그분의 뜻을 이루는 삶일 것이다. 이 영혼의 군대에 입대하여 더 큰 싸움을 위한 준비와 훈련을 갖지 않으려는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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