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한 번의 계절을 지나
아오야마 미나미 지음, 최윤영 옮김 / 모모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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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에 치일 뻔한 고양이를 구해준 이후 '나'에게는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신비한 능력이 생겼다. 첫사랑 미노리와 결혼해서 행복한 날들을 보내고 있던 어느 날, 미노리가 갑작스레 쓰러져 세상을 떠난다. 사랑하는 사람이 없는 세상은 죽음과도 같은 것. 결국 '나'는 미노리의 죽음의 원인을 막기 위해 중학생 시절로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그 날의 사고를 막아 미노리를 구해내기로 하지만 신비한 능력에는 감수해야 하는 대가가 있다. 바로 되돌리려는 시간의 다섯 배에 해당하는 수명을 내놓아야 한다는 것. 중학생 시절은 지금으로부터 11년, 내놓아야 할 수명은 55년. 55년 분의 수명을 단축시키면서까지 사랑을 지키려 한 한 남자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구로타키 유야와 아오야바 미노리의 결혼식이 거행되는 장면으로 시작되는 이야기. 행복하기만 해도 모자를 이 시간에 구로타키 유야의 가슴은 괴로움으로 미어진다. 이 끝에 자리잡은 비극을 '우리만' 알아야 한다는 문구와 뒤에 이어지는 내용으로 볼 때 '나'는 당연히 구로타키 유야일 줄만 알았다. 이 구로타키 유야가 미노리를 되살리기 위해 미래에서 과거로 온 그 남자일 거라고.

 

소소한 추억을 만들며 사랑을 쌓아나가는 커플의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면서도 의아하게 생각한 점이 있었다. 미래에서 미노리를 잃어 55년 분의 수명을 단축시킨 대신 과거로 돌아와 그녀를 구해낸 유야. 그렇다면 그에게 이제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얼마 안 있어 유야는 미노리를 남긴 채 세상을 떠날 것이다. 하지만 정말 사랑하는 상대에게 소중한 사람을 잃는 경험을 겪게 하고 싶었을까. 자신이 없는 세상에 그녀 혼자 남아 행복을 찾을 거라고 생각할 수 있었을까. 유야 자신도 미노리 없는 세상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유야와 미노리의 결혼식 마지막에 이르러 이 의아함과 비밀이 모두 풀린다. 그 때의 심정을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지. 그저 이 차가운 계절을 따스하게 데워줄 감성 미스터리라고 생각했는데, 이 작품은 한 남자가 생명을 걸고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는 가슴 절절한 러브 스토리였다. 그 비밀을 밝히면 스포가 되기 때문에 한 마디도 입을 뗄 수 없지만 애절한 반전 로맨스가 읽고 싶다면 꼭 이 작품을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각 장면이 영상화가 가능하다면 분명 멋진 영화로 탄생할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요즘 영화 <러브레터>가 재개봉했던데, 갑자기 말라있던 감성세포가 퐁퐁 살아나는 느낌. 가슴이 너무 먹먹해서 여전히 코끝이 시큰하다.

 

**출판사 <모모>로부터 지원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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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소녀들의 숲
허주은 지음, 유혜인 옮김 / 미디어창비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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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이라고 하면 훈민정음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면서 그가 다스리던 조선은 어쩐지 평화롭고 백성들이 살기 좋았을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과학과 기술, 문화적인 면에서 찬란한 업적을 자랑하는 그 시대에도 당연히 왜구의 습격을 막아내기 위한 싸움이 있었고 대마도를 정벌하였으며 4군 6진을 개척하기 위한 갈등이 있었다는 것을 떠올리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한 가지 내가 몰랐던 것은 명나라에 금과 은 뿐만 아니라 처녀까지 조공했었다는 것. 고려 시대 원나라에 보내졌던 공녀나 병자호란 후 끌려갔다 돌아왔던 환향녀 뿐만 아니라 세종 때에도 공녀가 존재했었다니, 그것도 태종 때보다 늘어 74명이나 명나라에 보내졌다는 사실에 가슴이 먹먹해져왔다. 기록만으로도 74명이라면 기록되지 않고 끌려간 여인들은 또 얼마나 많았을까.

 

작가 허주은의 손에서 탄생된 [사라진 소녀들의 숲]은 1426년 조선, 제주를 배경으로 열세 명의 소녀가 사라진 사건을 수사하는 민환이의 이야기를 다룬다. 뛰어난 종사관이었던 아버지가 소녀들이 사라지는 사건을 수사하던 도중 실종되자 그 흔적을 따라 제주로 온 소녀 민환이. 신병이 들어 제주의 무당인 노경 심방에게 맡겨진 채 5년 동안 만나지 못했던 동생 매월과의 관계는 냉랭하기 그지없고, 복선이라는 낯선 여인으로부터 전해받은 아버지의 불탄 일지만으로 벌어진 일을 모두 알아내기에 앞길은 너무나 막막하다. 게다가 조선의 여인이라는 신분, 혼인을 하여 아이를 낳고 시부모님을 봉양하는 것이 최대의 미덕이라 일컬어지는 여인의 몸으로 과연 사라진 아버지를 찾아낼 수 있을까. 그럼에도 이 '댕기 머리 탐정'은 진실을 알아내는 길에 들어서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자신은 아버지의 자랑스러운 딸이므로, 아직은 아버지의 죽음을 믿을 수 없으므로.

 

한 페이지, 한 페이지가 마치 살얼음판을 걷는 듯 조심스럽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알고 싶은 마음과 함께 또 알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부딪혀 숨이 턱턱 막혀 온다. 그럼에도 페이지를 넘기는 손은 바삐 움직이고, 결국 진실을 마주했을 때의 기분은 결코 후련하지만은 않았다. 11세~18세의 어린 나이로 명나라에 끌려가야 했던 소녀들, 공녀로 선발되지 않기 위해 얼굴을 숨기고 살아야 했던 여인들, 자식들을 보호하기 위해 짐승이 되기를 마다하지 않았던 부모들. 그들을 그렇게 만든 게 과연 누구인지, 누구를 원망해야 한스러운 삶을 버틸 수 있는 것인지 묻고 싶었다.

 

이상하지예? 어멍 아방은 자식 위한거랜 생각허지만 정작 자식 입장에선 원허지 않는 일을 할 때가 하영(많이) 있주마씀.

p365

 

제주를 배경으로 한만큼 제주도 방언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주석이 달려 있기도 하지만 문장 전체의 맥락으로 볼 때 그리 이해하기 어렵지는 않았고, 오히려 작품의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는 장치가 되었던 듯 하다. 아름다우면서도 비밀을 품고 있는 듯한 숲을 묘사한 부분과 제주가 아니면 만나기 어려웠을 정경들이 마음에 와 박혀서 한바탕 소란스러운 바람에 휩쓸리는 듯 했다.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캐나다에서 자라고 생활해 영어로 글을 쓴 작가. 요즘은 외국에 있는 한국인 작가가 영어로 쓴 책을 번역하는 게 유행인가, 종종 이런 작품을 만나곤 한다. 국내에 있으면 보이지 않는 것들이 그네들의 눈에는 보이기라도 하는 것일까. 어느새 네 번째 작품을 집필 중이고 이 작품은 두 번째 작품이라는데, '댕기 머리 탐정' 민환이의 활약을 계속 보고 싶다. 스릴러와 미스터리의 결합에 자매의 갈등이 풀어져가는 과정이 개연성있게 전개되었던 작품. 사실 읽기 전에는 큰 기대는 하지 않았는데 스토리의 전개와 구성, 인물들의 사연조차도 억지스럽지 않아 무척 만족스럽게 읽었다. 기회가 된다면 허주은 작가의 다른 작품들도 만나보고 싶은 바람이다!

 

** 출판사 <미디어창비>로부터 지원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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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이 슬픔을 안고
문철승 지음 / ㈜소미미디어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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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자주 읽으시나요? 저는 어쩌다 끌릴 때 한 번씩 들여다보기는 하지만 솔직히 시에 손이 자주 가지는 않습니다. 어려워요. 함축적인 의미를 찾아내는 것도 그렇지만 시를 읽다보면 끊임없이 저를 의심하게 됩니다. 작가가 전달하려고 하는 의도가 이게 맞을까, 내가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가. 모든 문학 작품은 읽는 이가 받아들이기 나름이라고 생각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작가의 생각도 궁금한 게 당연하잖아요. 드라마나 영화, 소설에서도 열린 결말을 싫어하는 저란 독자는, 그래서 더 시를 멀리하게 되나봅니다. 소설과는 달리 시에서는 어쩐지 답이 정해져 있지 않다는 느낌을 더 강하게 받거든요. 그래도 예전에는 오기(?)로라도 일부러 시를 찾아 읽기도 했었는데 말이죠.

 

그런 제가 [기쁨이 슬픔을 안고] 를 이 새벽에 읽고 리뷰를 남기게 된 이유는, 머리를 좀 식히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연말이라 업무가 많아서 집에까지 싸들고 와서 자다 일어나 새벽에도 일어나 일하던 중 졸립기도 하고 머리가 복잡해졌습니다. 좀 쉬고 싶은데 누웠다가는 잠들 것이 명확하고, 그렇다고 소설을 읽기에는 내용을 따라가다 머리가 더 복잡해지거나 너무 빠져들어 일을 못하게 될까 싶기도 해서 가볍게 조금만 읽어야지 하는 마음으로 집어들었어요(게다가 표지 색도 핑크핑크!!). 파라락 파라락 넘기던 중에 마음에 드는 제목부터 읽어볼까 싶었는데, 세상에나! 제 눈길을 처음으로 사로잡은 시는 바로 이것입니다.

부서지고 부서지어

기초 되고

 

 

모래

구르고 굴러

다져진다

 

 

인생 속 시멘트

책 되어

눈앞에 있고

 

 

하늘 물과 섞이어

반석 된다

<인생다지기>

 

결국 시도 현재 자신의 마음 상태와 비슷한 내용으로 찾아지는 걸까요. 크리스마스도 다가오고 2023년이 멀지 않은 요즘 마음이 싱숭생숭합니다. 어찌어찌 1년을 보냈는데 나름 최선을 다했다고 해도 과연 잘 살아왔나 싶기도 하고요. 워킹맘으로 바쁘게 보낸 1년 속에서 내가 이룬 건 무엇인가 조금 쓸쓸하기도 합니다. 내년에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첫째를 위해 또 반년 육아휴직을 들어가지만 1년을 오롯이 함께 보내줄 수 없어서 미안한 마음도 커요. 이런저런 복잡스런 마음을 달래주러 이 시가 저에게 왔나 싶어 한참을 가만히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과 관련된 시도 눈에 들어왔어요. 먼저 간 아이를 그린 시를 읽으면서는 낮에 읽은 기사 때문인지 이태원 참사로 자식을 잃은 부모님들의 울부짖음으로 들렸고,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의 마음을 묘사한 시를 읽으면서는 유치원에서 해가 질 때까지 엄마를 기다릴 저희 아이들이 떠올라 마음이 시큰해졌습니다. 으아, 이 새벽에 이렇게 시를 읽다 이리 울 일인가 싶지만 어쩌겠습니까. 예전에도 시를 읽으면서 한바탕 눈물을 흘린 적이 있는 저로서는, 때로 몇 글자의 시가 긴 글보다 더 큰 감동을 안겨줄 수도 있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는 것을요.

 

여전히 저에게 시의 세계는 어렵고 낯섭니다. 그런데 이렇게 한 번씩 가슴을 울리는 시를 만나고 나면 영원히 시를 멀리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떤 시가 누구의 마음을 울릴지 알 수 없지만, 그래서 더 나에게 꼭 맞춤인 듯한 시를 만나고 싶지 않으신가요. 어쩌면 이 시집 안에서 발견할 수 있을지도요. 수줍게 한 번 내밀어봅니다.

 

** 출판사 <소미미디어>를 통해 지원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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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여기에 없었다
안드레아 바츠 지음, 이나경 옮김 / 모모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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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라는 로망이 주는 공포]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경험들로 채워진 시간 속에서 즐거웠어야 할 여행. 친구 크리스틴과 찾은 캄보디아에서 자신에게 성폭행을 시도하려던 남자를 만난 그 밤, 에밀리의 인생은 달라졌다! 우발적으로 남자를 죽인 크리스틴을 도와 시체를 처리하고 집으로 돌아오지만 그 날의 일은 에밀리를 놓아주지 않고 그녀의 삶을 뒤흔든다. 크리스틴과 칠레 여행을 나서기 위해서도 큰 용기가 필요했다. 하지만 데이트를 즐기고 싶어하는 크리스틴을 위해 시간을 마련해준 에밀리가 맞닥뜨린 것은 울고 있는 크리스틴과 머리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남자. 어떻게 또다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정신을 놓을 틈도 없이 자신을 도와달라는 크리스틴을 따라 남자의 시체를 유기하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온다. 크리스틴 역시 과거의 자신과 마찬가지로 괴로워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어쩐 일인지 크리스틴은 아무렇지도 않아 보인다. 심지어 에밀리를 심리적으로 압박해오는 듯한 크리스틴. 대체 에밀리를 향한 크리스틴의 감정의 정체는 무엇일까.

 

여행지에서의 시간은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때로는 그 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통해 추억이 더 애틋해지기도 한다. 특히 여행지에서의 로맨스란, 어쩌면 수많은 사람들의 로망이 아닐까. 일상이 주는 단조로움에서 벗어나 새로운 나를 발견하고, 새로운 누군가를 만나는 일. 상상만으로도 행복한 여행이 공포로 변할 수도 있다는 것을 상상해보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에밀리에게 일어난 일은 모두 우연으로 보이지만은 않는다. 캄보디아에서 일어난 일은 어쩔 수 없었다고 하지만 칠레의 일도 그런 것이었을까. 세계여행을 제안한 크리스틴에게 새로운 남자친구가 생겼고 이제 나이도 있는만큼 가정을 꾸리고 싶다는 희망을 털어놓는 에밀리. 그리고 마치 그것을 방해하려는 것처럼 벌어진 사고. 크리스틴이 점점 무섭게 여겨지는 이유는 이어지는 그녀의 거짓말 때문이기도 하다.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내 목이 조여지는 것만 같다. 이제는 분명해지는 크리스틴의 집착, 숨기고 있던 그녀의 과거. 벗어나려고 몸부림칠수록 깊은 늪처럼 에밀리를 끌어당기는 크리스틴의 위협은 아무리 봐도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여기에 칠레에서 살해된 남성의 시체가 발견되면서 그의 가족들이 전세계적으로 범인 색출에 협조해줄 것을 요청하고, 크리스틴의 인상착의를 알게 된 경찰의 수사망까지 좁혀오면서 그녀들의 세계는 무너지기 시작한다. 과연 에밀리가 크리스틴에게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는 것일까.

 

막혔던 숨통이 잠깐 트이는 것 같았던 작품은 마지막 부분 다시 턱 하니 숨을 몰아쉬게 했다. 나만의 착각인 걸까, 에밀리가 크리스틴의 영향을 받은 것처럼 보이는 것은. 자신의 남자친구를 '댄'이라 칭하고 자신은 '니콜'이라 소개하는 에밀리를 보면서 새로운 사건이 시작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이 소설을 읽고 나니 미래에 내 아이들이 나나 옆지기 없이 여행을 떠난다고 할 때 과연 아무 걱정 없이 보내줄 수 있을지 벌써부터 겁이 난다. 사람이 어디서 어떻게 될 지 알 수 없지만 끊임없이 자식 걱정을 하는 것이 부모의 운명인 걸까. 전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었던 여행이라는 소재가 이렇게 무섭게 쓰일 수도 있다는 것에더 공포를 느낀다.

 

** 출판사 <모모> 로부터 지원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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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 하마 수학 박사의 똑똑한 숫자 쓰기 1 - 0부터 50까지 하마 하마 수학 박사의 똑똑한 숫자 쓰기 1
김리나 지음 / 창비교육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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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게 시작하는 숫자공부]

 

참 이상합니다. 첫째 아이 때는 두 돌 정도 때부터 수학 스티커북을 조금씩 했었는데요, 둘째 아이는 워크북을 함께 하기보다 같이 블럭으로 놀거나 좋아하는 간식으로 개념을 알려주는 시간이 더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첫째는 돌 때부터 가만히 앉아 뽀로로 스티커북 하는 걸 무척 좋아해서 스티커북 한 권 건네주면 두 시간 정도는 혼자 노는 경우가 많았는데, 둘째는 엉덩이가 참 가벼워요. 뭐 하나 시켜보려고 해도 5분 정도 지나면 '엄마, 나 이거 안 하고 저기 가서 놀래!' 하며 자리를 박차고 뛰어가버립니다. 요즘 첫째와 둘째의 워크북 진행 상황에 대해 가만히 생각해보면, 무슨 일이든 아이의 성향을 따라가게 되는 것 같아요.

 

첫째는 따로 가르쳐주지 않아도 스스로 무언가를 배우곤 했어요. 숫자도, 수양 일치도, 알파벳과 한글도 제가 먼저 나서서 '이거 해보자!'라고 하는 경우보다 아이가 먼저 관심을 가져서 제가 알려주는, 그런 과정을 거쳤죠. 그래서 전 아이들이 모두 그런 줄 알았어요! 자신이 살아가는 세상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그러면서 배우고자 하는 의지는 저절로 생겨나는 거라고요. 그런데 둘째를 보고 그런 게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첫째와 둘째의 성향은 극과 극인데요, 그럼에도 저는 좀 지켜보자는 마음이 커요. 억지로 책상 앞에 앉히기에는 어린 나이기도 하니까요.

 

그런데 요즘 둘째가 스스로 책상 앞에 앉는 빈도가 조금 늘었습니다. 유치원에 다녀와 바로 숙제를 하고 매일 해야 하는 워크북을 풀어나가는 형아 옆에서 색칠놀이도 하고 숫자를 쓰기도 하고, 어설프게나마 자기 이름도 써보고 합니다. 하나 둘 셋 넷-은 잘 하지만 하나가 1이라는 걸, 둘이 2라는 걸 잘 모르는 둘째를 위한 방법은 주로 간식을 주기 전 하는 놀이였는데, 어쩐 일인지 요즘은 이 [하마 하마 박사의 똑똑한 숫자 쓰기]를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형아가 쓰던 연필 교정기를 끼운 연필을 야무지게 쥐고 말이죠.

 


 

[하마 하마 박사의 똑똑한 숫자 쓰기]는 수의 개념을 익히기 시작하는 아이들이 접근하기 쉽게 만들어진 교재입니다. 지금 하고 있는 책은 기초적인 선긋기부터 숫자 0부터 50까지 쓰는 구성으로 되어 있는데요, 수 개념 형성과 발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합니다. 둘째가 아무것도 안 하고 마냥 놀기만 해왔던 것은 아니라서요, 기본으로 하고 있는 워크북이 있는데 그 워크북은 주로 스티커 붙이기, 색칠하기로 수 개념을 익힐 수 있게 되어 있는 반면 이 하마하 박사의 책은 쓰기 중심인 것 같아요. 쓰기에 관심을 보이는 아이들이 시작하기에 간단한 워크북인 듯 합니다.

 

아이들이 커갈수록 부모의 조바심도 늘어나죠. 저 또한 항상 마음을 다잡는다고 하지만 어느 순간 불쑥 그런 마음이 드러날 때가 있어요. 아이들이 학습을 어렵고 지겨운 것이 아니라 즐겁고 재미있는 것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다양한 학습 방법과 교구, 워크북들이 많이 출간되면 좋겠습니다.

 

** 네이버 독서카페 '책과 콩나무'를 통해 <창비교육>으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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