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문들이 모두 ‘쾅‘ 닫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방주
유키 하루오 지음, 김은모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3년 2월

 

[세상의 열려 있는 문들이 모두 '쾅'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미스터리 장르를 꽤 읽은 덕분에(?) 이제 어지간한 반전에는 그리 놀라지 않는다. 그렇다고 결말을 정확하게 짚어내는 것은 아니나 하도 이런저런 반전에 뒷통수를 맞았기 때문인지 그저 '아, 그렇구나!'하고 살짝 감동하는 정도랄까. 그래서 출판사의 홍보나 띠지에 적힌 문구를 보면서도 크게 감흥이 없었다. 심지어 책을 다 읽고 난 뒤에는 '에이, 그래도 이 정도는 아니지~'하며 손사래를 친 적도 몇 번 있다. 그래서 아무리 애정하는 출판사 <블루홀식스>라도 '극한의 뇌 정지 미친 반전!'이라는 원색적인 문구를 100% 다 믿을 수는 없었던 것이 사실. 그래서. 무릎 끓고 사죄드립니다. 제가 오만했어요.

아무리 호기심이 생겨도 왜 그런 곳에 찾아가는지 모르겠지만(나라면 절대 가지 않을 것이다!!) 대학 등산 동아리 모임이었던 슈이치를 비롯해 유야, 류헤이와 마이, 하나와 사야카에 슈이치의 사촌형 쇼타로까지 함께 한 일행은 유야의 권유로 버려진 지하 건축물에 들어간다. 지하 깊숙이 자리한 곳에 설계된 건축물의 이름은 '방주'. 비밀스러운 조직의 거주지로 짐작되는 그 곳에는 일부 생활용품과 집기, 감시카메라가 구비되어 있는 데다 수많은 방이 갖춰져 있었다. 버섯을 따러 왔다가 길을 잘못 들었다는 수상한 야자키 가족과 슈이치 일행이 지하 건축물을 둘러보던 순간 갑작스러운 지진으로 출입구가 봉쇄되고, 탈출구를 확보하기 위해 각자 흩어져 필요한 물품을 수색하던 중 유야가 살해당한다.

심지어 지하에서 물까지 차오르고 있는 마당에 최후의 순간에는 인원 중 한 명이 희생해야 탈출할 수 있는 극한의 상황. 그런 상황 속에서 누군가가 살해당한다는 것은 크나큰 손실이다. 제비 뽑기에서 당첨될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에. 두려움과 공포 속에서 나머지 사람들은 누군가가 희생해야 한다면 그 누군가는 범인이어야 한다는 생각에 주어진 시간 동안 범인 밝혀내기에 주력하지만, 연이어 사람들이 살해당한다. 범인은 누구인가. 어떻게 다른 이들의 눈을 피해 범행을 저지를 수 있었을까. 아니, 무엇보다 하필 왜 그 곳에서!!

범인의 정체와 동기도 무척 궁금했지만 극한 상황에 놓인 그들을 보면서 사회파 미스터리라고 생각했다. 한 명이 희생해야 모두가 살아남을 수 있는 상황 속에서 사람들은 그 한 명에게 희생을 강요할 수 있는가. 범인을 밝혀낸다고 해도 그가 죽기 싫다는데 억지로 남아 희생하게 하면 다른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로 살인자가 되어버리는 게 아닌가. 죽음을 강요당하는 그는 사람들에게 덜 사랑받았던 사람인가. 얼마나 깊은 원한이면 저런 상황에서 살인을 감행했을까. 이런 저런 고뇌에 빠진 인물을 바라보며 나도 살짝 감성적이 되었는데, 그런 나의 마음을 비웃기라도 하듯 밝혀진 진실 앞에서 그만 얼이 빠지고 말았다. 그야말로 극한의 뇌 정지 상태에 맞닥뜨린 것이다!!

나를 향해 호의적으로 열려 있는 세상의 문이 존재한다면 그 문들이 모두 쾅 닫히는 듯한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그 소리에 이름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절망'. 숨이 막혀오고 가슴이 벌떡벌떡 뛰었다. 남아 있는 것은 그저 암흑같은 세상. 이 작품에 대해 뭐라고 감상을 남길 수 있을까. 그저 읽어보시라는 말 밖에는 남길 말이 없다. 미스터리에 이런 반전이 존재할 수도 있구나, 아직도 깜짝 놀랄한만 결말이 기다리고 있었구나-라는 반가운 마음과 함께 마지막을 떠올리면 숨이 차서 생각하기도 싫은 마음이 공존한다. 그런데 왜 자꾸 결말이 생각나고 책을 다시 뒤적이고 있는 것이냐!! 평소 클로즈드 서클 작품에 그리 흥미가 없었는데, 이번 기회에 그 매력을 아주 제대로 알게 된 것 같은 기분이다. 미스터리를 좋아하시는 분, 지금까지 별로 관심이 없었던 분 모두에게 추천!!

머리 속에 '꼭 읽어보세요'라는 말 밖에 떠오르지 않아서 여기까지 쓰는 데만 이틀이 걸렸는데, 다른 분들도 리뷰를 쉽게 작성하신 것은 아니겠쥬!! 저만 그런 거 아니라고 말씀해주세요!!

** 출판사 <블루홀식스>로부터 지원받은 도서입니다.

서글프고 가슴 아팠던 복수 일기

선생님이 알아서는 안 되는 학교 폭력 일기 ㅣ 쿤룬 삼부곡 2
쿤룬 지음, 강초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3년 1월

 

[서글프고 가슴 아팠던 복수 일기]

겪어보지는 않았지만, 학교 폭력을 당하는 아이들의 현실은 생각보다 무척 참담할 거라고 여겨집니다. 교사는 커녕 부모님에게조차 말 한 마디 꺼내지 못하고 죽음을 택하는 아이들의 기사를 마주할 때면, 또래의 폭력이 얼마나 공포스럽게 생명을 위협하고 자존감을 말살시키는 지 잘 알 수 있어요. 실제로 학교 폭력이 벌어졌을 때 학교나 교육청의 대처를 보면 실망스러운 경우도 대부분입니다. 요 근래 어떤 분의 자제는 가위에 팔이 찔렸는데도 사회 봉사로 그쳤다는 피드를 보고 놀란 적도 있어요.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우리 사회는 너무 '가해자의 인권'에만 신경을 쓰고 '피해자의 인권'은 다소 가볍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은, 저만의 착각일까요.

학교 폭력을 다루는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에 시청자들이 열광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사회가 제대로 처벌하지 못하는 가해자들을 향한 사적 복수가 전달해주는 통쾌함. 가해자들에게 사회가 적법한 처벌을 내려준다면 애초에 개인이 들고 일어날 일도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극중에서도 동은이 연진을 비롯한 무리들의 학교 폭력을 경찰에 신고하자, 연진의 엄마와 연줄이 있는 경찰서장이 앞장서서 사건을 무마시켜 버립니다. 담임 교사는 또 어떻고요. 교사에, 아들까지 교대에 입학해 주위에는 명예로운 집안이라 알려졌을 테지만, 담임 교사가 동은에게 가하는 폭력은 눈살을 찌푸리다 못해 구역질이 나게 할 정도였어요.

<쿤룬 삼부곡> 의 2권에 해당하는 [선생님이 알아서는 안 되는 학교 폭력 일기] 도 학교 폭력에 시달리지만 주위의 그 어떤 어른들로부터 도움을 받지 못한 주인공 장페이야가 그들을 처단하기에 이르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더불어 저는 1권을 읽지 않아 잘 모르지만 아마도 1권에서 다뤄졌을 전 세계적 살인 집단 'JACK'의 조직원만을 골라 살해했던 스녠의 이야기도 조금 등장합니다. 이 조직원으로 보이는 누군가가 벌이는 악행은 필요한 장면이었을까 싶을 정도로 굉장히 잔인해요. 장페이야는 스녠에게 아빠를 잃고 둘째 고모 집에 맡겨진 중학생입니다. 자상하지도 않았고 그저 '아버지'로서의 의무를 다 하는 것으로만 여겨졌던 아버지였으나 그런 보호자를 잃고 둘째 고모 집에 의탁하게 된 장페이야에게 세상은 너무나도 가혹합니다. 끊이지 않는 고모의 신경질과 타박, 끈적끈적하게 다가오는 고모부, 구이메이와 그녀의 일당들에게 당하는 가혹 행위. 페이야에게 위로가 되는 것은 편의점 점원인 촨한 뿐입니다. 하지만 학교 폭력은 도를 넘어 페이야를 괴롭히고, 세상은 그녀에게 선택하라 외칩니다. 이대로 평생 당하고 살 것인지, 아니면 그들에게 복수할 것인지.

'살해당하느니 살해하러 나선다!'라는 문구를 통해, 저는 장페이야의 통쾌한 복수를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더 글로리>를 시청할 때와 마찬가지로 장페이야의 복수 과정은 저를 그저 서글프게 만들었어요. '통쾌한' 복수가 과연 세상에 존재할까요. 통쾌함을 느끼는 것은 동은이도, 장페이야도 아닌 사건을 바라보는 우리, 제3자들 뿐입니다. 우리는 그들의 세상에서 일단 한 발자국 떨어져 있어요. 고통도, 아픔도, 괴로움도 우리 것이 아닌 그녀들의 것이지요. 동은이 복수를 위해 거의 20년 세월을 바쳤듯이, 장페이야는 복수 과정을 통해 온전한 자신을 잃어버립니다. 이제 예전의 그 '장페이야'로는 돌아갈 수 없어요. 이미 사람을 죽였으니까요.

1권을 읽지 않은 탓인지 저에게는 수수께끼 투성이였습니다. 이중인격처럼 보이는 촨한의 정체도, 고통스러워하는 장페이야 앞에 나타나 복수를 종용하는 야오 선생도, 스녠의 존재도요. 서늘하지만 굳은 미소를 짓는 장페이야의 모습이 눈 앞에 떠올라 마음이 시립니다. 그녀가 단 하나의 구원으로 여기는 것은 촨한. 과연 그가 장페이야를 구하고 상처를 보듬어주는 날이 올까요. 마지막에 실린 장페이야의 글자로 적힌 일기가 고통당하는 세상 모든 아이들의 외침 같아 오래 보기가 참 힘이 듭니다. 3권에서 모든 이야기가 잘 마무리 되길 바라며 일단 저는 1권인 [살인마에게 바치는 청소 지침서]를 읽어보겠습니다.

[100자평] 흰옷을 입은 여인

흰옷을 입은 여인
크리스티앙 보뱅 지음, 이창실 옮김 / 1984Books / 2023년 2월

소개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에밀리 디킨슨의 삶이 시처럼, 환상처럼 느껴집니다. 여기에 크리스티앙 보뱅의 시선이 더해진다면 얼마나 더 멋질까요! 이미 세상을 떠난 이들의 글과 삶이 어떤 영감을 줄 지 읽어보고 싶습니다.

[100자평] 수확자 시리즈 세트 - 전3권

수확자 시리즈 세트 - 전3권 - 수확자 / 선더헤드 / 종소리 ㅣ 수확자 시리즈
닐 셔스터먼 지음, 이수현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2월

작가의 전작인 [드라이] 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장르는 SF 지만 죽음과 인간 존재에 대해 철학적인 의문을 던지는 작품일 것 같아 이번 작품도 기대됩니다.

[100자평] 종소리

종소리 ㅣ 수확자 시리즈 3
닐 셔스터먼 지음, 이수현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2월

성서에서 나팔 소리가 울리면 세상이 끝난다고 했는데, 종소리와 함께 마침내 이 유터피아도 멸망하게 되려나요. 마지막 순간 희망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