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여기에 없었다
안드레아 바츠 지음, 이나경 옮김 / 모모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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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라는 로망이 주는 공포]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경험들로 채워진 시간 속에서 즐거웠어야 할 여행. 친구 크리스틴과 찾은 캄보디아에서 자신에게 성폭행을 시도하려던 남자를 만난 그 밤, 에밀리의 인생은 달라졌다! 우발적으로 남자를 죽인 크리스틴을 도와 시체를 처리하고 집으로 돌아오지만 그 날의 일은 에밀리를 놓아주지 않고 그녀의 삶을 뒤흔든다. 크리스틴과 칠레 여행을 나서기 위해서도 큰 용기가 필요했다. 하지만 데이트를 즐기고 싶어하는 크리스틴을 위해 시간을 마련해준 에밀리가 맞닥뜨린 것은 울고 있는 크리스틴과 머리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남자. 어떻게 또다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정신을 놓을 틈도 없이 자신을 도와달라는 크리스틴을 따라 남자의 시체를 유기하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온다. 크리스틴 역시 과거의 자신과 마찬가지로 괴로워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어쩐 일인지 크리스틴은 아무렇지도 않아 보인다. 심지어 에밀리를 심리적으로 압박해오는 듯한 크리스틴. 대체 에밀리를 향한 크리스틴의 감정의 정체는 무엇일까.

 

여행지에서의 시간은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때로는 그 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통해 추억이 더 애틋해지기도 한다. 특히 여행지에서의 로맨스란, 어쩌면 수많은 사람들의 로망이 아닐까. 일상이 주는 단조로움에서 벗어나 새로운 나를 발견하고, 새로운 누군가를 만나는 일. 상상만으로도 행복한 여행이 공포로 변할 수도 있다는 것을 상상해보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에밀리에게 일어난 일은 모두 우연으로 보이지만은 않는다. 캄보디아에서 일어난 일은 어쩔 수 없었다고 하지만 칠레의 일도 그런 것이었을까. 세계여행을 제안한 크리스틴에게 새로운 남자친구가 생겼고 이제 나이도 있는만큼 가정을 꾸리고 싶다는 희망을 털어놓는 에밀리. 그리고 마치 그것을 방해하려는 것처럼 벌어진 사고. 크리스틴이 점점 무섭게 여겨지는 이유는 이어지는 그녀의 거짓말 때문이기도 하다.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내 목이 조여지는 것만 같다. 이제는 분명해지는 크리스틴의 집착, 숨기고 있던 그녀의 과거. 벗어나려고 몸부림칠수록 깊은 늪처럼 에밀리를 끌어당기는 크리스틴의 위협은 아무리 봐도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여기에 칠레에서 살해된 남성의 시체가 발견되면서 그의 가족들이 전세계적으로 범인 색출에 협조해줄 것을 요청하고, 크리스틴의 인상착의를 알게 된 경찰의 수사망까지 좁혀오면서 그녀들의 세계는 무너지기 시작한다. 과연 에밀리가 크리스틴에게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는 것일까.

 

막혔던 숨통이 잠깐 트이는 것 같았던 작품은 마지막 부분 다시 턱 하니 숨을 몰아쉬게 했다. 나만의 착각인 걸까, 에밀리가 크리스틴의 영향을 받은 것처럼 보이는 것은. 자신의 남자친구를 '댄'이라 칭하고 자신은 '니콜'이라 소개하는 에밀리를 보면서 새로운 사건이 시작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이 소설을 읽고 나니 미래에 내 아이들이 나나 옆지기 없이 여행을 떠난다고 할 때 과연 아무 걱정 없이 보내줄 수 있을지 벌써부터 겁이 난다. 사람이 어디서 어떻게 될 지 알 수 없지만 끊임없이 자식 걱정을 하는 것이 부모의 운명인 걸까. 전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었던 여행이라는 소재가 이렇게 무섭게 쓰일 수도 있다는 것에더 공포를 느낀다.

 

** 출판사 <모모> 로부터 지원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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