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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아로 산다는 것 - 워킹푸어의 시대, 우리가 짓고 싶은 세계
박노자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11월
평점 :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태생으로 본명은 '블라디미르 티포노프', 2001년 귀화하여 '박노자'라는 이름의 한국인이 된 저자. 스승인 미하일 박 교수의 성을 따르고, 러시아의 아들이라는 뜻의 '노자'를 이름으로 삼았다. 러시아에서 조선사를 전공하고 고대 가야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다소 독특한 경력을 자랑하는 저자는, 현재 노르웨이 오슬로 대학교에서 한국학과 동아시아학을 가르치고 있다. 이번 책 [미아로 산다는 것]에서는 우리 사회의 불합리성과 불평등을 폭로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제시한다.
제목이 의미하는 바가 의미심장해서 평소에는 마지막으로 읽는 서문-미아의 단상-을 먼저 읽어보았다. 자신의 삶을 정리할 수 있는 단어는 '미아'가 아닌가 생각한다는데, 자신이 한때 태생적으로 흡수한 문화를 자신의 자녀나 제자들에게 전해줄 수 없을 것만 같기 때문이라고 한다. 자녀와는 언어적 기반이 다르고, 제자들을 비롯한 대다수 사람들은 자신이 감동적으로 읽었던 책을 읽지 않기 때문이라고. 어쩐지 쓸쓸함이 배어나오는 부분이었는데, 여기에서 지그문드 바흐만의 '액체 근대'라는 말을 사용한다. 후기 자본주의의 핵심적인 특징으로 모든 것이 흐르는 물처럼 너무나 빨리 바뀌어 장기적인 관계 맺기가 불가능한 상황을 일컫는 것으로, 삶에서 안정되고 보장된 것이 전무하다는 점에서 마르크스가 말한 무산자에 많이 근접해 있는 것으로 본다. 예전과 같은 평생 직장이라는 말은 이제 찾아볼 수 없고, 장시간의 노동으로 연애 같은 장기적 관계를 유지할 에너지도 없는 데다가, 늘 주거지 걱정에 온 신경을 써야 하는 사람들. 이런 상황에서 단단하게 발딛고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1장 <편안함의 대가>에서는 권력과 중독, 덕후와 술, 탈남이라는 선택에 대해 다룬다. 불교에서는 인간을 썩게 하는 3대 요인을 삼독이라고 하는데 탐욕과 분노, 그리고 어리석음을 일컫는다. 그런데 이 삼독을 키우는 것이 바로 권력으로 어쩌면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어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급과 계급 사이에서 발생하는 불합리함, 여성과 남성 사이에서 일어나는 갈등 모두 권력의 다른 모습으로 일어나는 현상이 아닐까. 2장 <남아있는 상처>에서는 이제는 놀라운 일이 아닌, 그저 일상으로 여겨지게 된 우리 사회 곳곳의 불편한 부분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학벌 위주 사회, 사회적 열공 강박증, 반여성적 환경에서도 출산율이 0이 아니라고 되려 놀라야 하는 현실, 가족이라는 개념이 허망하게 들리고 섹스를 하고 싶을 정도의 에너지도 모두 고갈된 사회, 남성 우월주의 사고로 인한 여성에 대한 멸시와 분노 등은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불편하고 가슴을 답답하게 만든다.
이 답답함은 결국 3장 <한국, 급의 사회>로까지 이어진다. 지방의 식민화, 엄청난 젠더 불평등, 외국인 차별, 인격 모독에 대해 담담하게 기술해나가며, 4장 <과거의 유령들>과 5장 <전쟁이자 어머니인 세계>에서는 일제 청산이 완벽히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까지 이어지는 불합리한 역사에 대해, 북한과의 관계 등에 대해 다루었다.
모두 한 번씩은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들이지만 그 대안이라고 제시한 것들은 사실 빈약하고 진부한 느낌도 들어 한 편의 가벼운 에세이를 읽고 있다는 인상을 떨칠 수 없기도 하다. 글 전체가 산만하기도 하고 사회비평이라기보다 그동안 자신이 살면서 느낀 점을, 문제의 바깥에서 거리감있게 다루고 있는 듯한 기분. 어쩌면 이것도 내 안에서 그를 '차별'하기 때문인 것일까. 귀화했다고는 하지만 역시 같은 '민족'으로 그를 받아들이기에는 한계가 있기에, 그의 글을 읽으면서 완전히 동조할 수만은 없는 나를 발견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