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성에서
정용수 지음 / 국학자료원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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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시대때의 작품들을 읽다보면 자주 "이옥"이라는 자를 자주 볼수 있었다. 그런데 그의 작품이 어떠한지는 자세히 알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우연히 이 책을 발견했다. 이옥이라는 자는 다들 아시다시피 소설식 문체를 즐겨쓴 인물이다 . 물론 그 당시는 이옥뿐만이 아니라  백탑파를 중심으로 이 문체가 유행했었다. 예를 들면 박지원이 교두보 역할을 했다고나 할까?

열하일기가 금서로 지정될 정도였으니 정조의 "문체반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문체까지 억압을 받던 시절이었던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인물중에도 이 소품체에 능했던 이덕무도 죽음을 앞두고서까지  정조에게 바칠 일종의 반성문을 다 짓지 못하였다고 그 사실이 송구스럽다고 표할 정도였으니깐 말이다. 물론 박지원같은 인물은 정조가 자신의 잘못을 지어 보내라고 했지만 끝까지 안쓰고 모르는체 하기도 했지만서도.. 그런데 이 문체로 가장 곤욕을 치뤘던 유일한 인물이 바로 이 사람이었다. 소품체를 쓴다고 정조가 귀양살이까지 보냈던 것이다. 그런데 이옥이라는 작자가 재미난 것이 귀양살이를 다니면서까지도 반성은 커녕 소품체로 이 작품을 썼던 것이다! 이 못말릴 괴짜가 여기도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도 참  대단한 고집의 소유자였던 것 같다. 반성만 하는 모습만 보이면 귀양을 피하게 해주겠다고 했는데도 여전히 이것을 고집하고 버리지 않고 꿋꿋이 써간 정신이 어떻게 보면 왕과의 전면전까지 불사했으니깐 말이다. 그리고 끝까지 밀고나간 그 고집이 있었기에 이 글 또한 남아서 후세의 우리에게까지 전해지게 된것일테니 그의 고집이 고맙기까지 하다.

그럼 그 유명한 이옥의 글 속으로 들어가보자. 이 책은 성균관 상재생 이옥이 118일동안 귀양살이 동안 쓰여진 글이다. 삼가에서 영남지방을 둘러 충주 한양까지 1920리를 걸어다니며 조선의 일상을 눈에 가는대로 보이는 대로 깨닫는 대로 쓴 글이다. 이 귀양길에 또 재미난 사실이 숨어있는데 한번의 귀양살이를 끝내고 이제 끝났다고 돌아왔는데 정조가 아직 소품체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고 다시 귀양을 하라는 명을 받고 다시 귀양을 떠나게 되었고 그 후반부가 이 "봉성에서"라는 작품이다. 그가 전라도 지방부터 시작해서 영남지방 충청도 지방 그리고 경기도를 거쳐 한양까지 직접 보고 느낀바를 쓰다보니 각 지방의 차이나 풍속, 그리고 서로 다른 사람들의 모습을 하나하나 쓰고있다.  내가 가장 재밌게 본 부분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잠시 소개해 보자면,

"봉성에 와서 길에서 서로 부르는 소리를 들어보니, 죄다 계심이, 화심이, 연심이, 분심이, 채심이, 금심이,옥심이, 향심이, 이심이, 곱심이였다. 집집마다 심이가 이 정도니 영남 여자들은 거개가 다 심이로 짐작된다" 며 농을 한다.

아무 생각없이 부르는 이름속에서도 이야기를 끄집어 낼정도로 관찰력과 호기심이 왕성했던 인물이었음을 알수가 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웃음이 나는 이야기이다. 전부다 심이 돌림이니 재밌지 않았겠는가? 지금도 웃음이 나는데 그도 얼마나 재미있어 했겠는가? 웃음이 절로나는 일화가 아닐수가 없다.

또한 이런 이야기뿐만 아니라 각 지방의 재미난 이야기나 우리나라의 연중행사들을 소개하기도 하고 술이야기, 기생이야기, 자신의 고달프고 갑갑한 귀양살이를 가볍고도 재미나게 풀어낸다. 당대의 지식인들과는 상당히 다른 양상의 글쓰기를 하고 있다. 뭐라고나 할까? 양반인체 자랑하지도 않고 자연스럽고도 따뜻한 시선이 돋보인다고나 할까? 그의 성격이 아마 이러하지 않았을까 싶다. 유순해 보이는데도 자신의 글에 있어서는 고집을  내세우는 의지도 갖춘 이옥이라는 자가 상당히 흥미롭고 재미났다. 이 한 작품만으로는 목이 탄다. 그의 작품이 이 작품말고도 더 남아있다면 학자여러분들이 열심히 우리글로 옮겨서 전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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