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해록 한길그레이트북스 62
최부 지음, 서인범.주성지 옮김, 조영록 해제 / 한길사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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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백년전에 쓰여진 고서인데도 불구하고 마치 원피스를 보는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 글을 쓴 최부라는 인물이 루피처럼 대책없고 엉뚱하고 긍정적이며 낙천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루피와는 정반대적인 성격의 인물이라고 하면 딱일테니깐. 그런데 왜 그런 느낌이 들었을까? 신나고 모험이 가득한 만화와는 달리 바다를 너무나 무서워하고 두려워해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야 한다 기도를 드려야 한다를 두고 최부와 부하들이 티격태격거리고  그런 모습이 오히려 더 재미나게 느껴졌기때문이다. 둘의 같은점이라고 하면 바다를 배경으로 한 모험이야기 이기 때문에 비슷한 느낌을 가졌는지도 모른다.  그건 그렇고 이들이 왜 바다에서 길을 잃고 방황하게 되었을까? 이유는 이렇다.제주도에서 관직생활을 하던 최부가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해듣고는 급히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던것이 바다에서 길을 잃고 헤매게 되었던 것이다. 그럼 그들이 맞이한 고난속으로 들어가 볼까?

최부 일행은 바다에서 길을 잃었는데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폭풍우까지 만나게 되어 배가 부서지고 물이 들어와서 배는 가라앉으려고 하고 부하들을 독려하여 연신 물을 퍼댄다. 드디어 날씨가 맑아지자 돛대도 고치는 등 배를 수리한다.  그런데 부하들이 이 모든 재앙을 최부의 탓으로 돌려버린다. 고지식한 유교학자인 최부는 부처님께 기도를 한다던지 그런 따위의 일은 미신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떠나기전에 제사도 안지내고 그랬기 때문이다. 그러자 최부왈 "나는 기도도 안하고 제사도 지내지 않았지만 자네들은 다 하지 않았는가? 그러니 이것을 내탓으로만 돌릴수는 없지 않느냐"며 변명한다. 부하들로 인해 마음이 많이 상한 그는 이렇게 죽게 되었다는 둥 아주 심각하게 하늘을 보며 통곡한다. 그는 아주 심각했을지 모르겠지만 보는 나로 하여금 그런 모습이 어찌나 재미난지..  며칠이 지나자 물이 부족하여 끔찍한 갈증에 시달리고 비가 내리길 빌고 마른옷에 빗물을 받아 짜서 물을 담아 한숟갈씩 나눠 먹는 장면등을 아주 자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한가지 재미난 것은 바다색을 아주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는 점이다. 백해를 지나니 조금은 푸른 바다가 나온다는둥 붉은 빛이 라는둥 자세히 조목조목 쓰고있다. 이런점을 보면 최부라는 인물이 그 고된 상황에서도 기록하기를 멈추지 않았다는데 있어서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떠돌다가 육지 가까이 다다르게 되는데 해적을 두번이나 만나서 가진것을 다 빼앗기고 다치기까지 한다. 우여곡절 끝에 상륙하게 되었는데 아직도 그들의 고난은 끝이 아니었다. 왜구로 오인받아 쫓겨나고 수모를 당하기도 한다. 조선의 관인임을 인정받아 조선으로 향할수 있게 된다. 안심을 해서 그런지 최부는 기진맥진하여 쓰러지기도 한다. 그후부터 여유를 되찾고는 명나라 사람들에게  수차 만드는 법을 물어 배우기도 한다.

역경을 딛고 나서 조선으로 향하는 길 (강남을 지나 강북을 지나 산해관을 지나 요동으로 들어서게 되는 )과정은 바다에서 겪었던 이야기와는 달리 재미가 없었다. 명나라의 여러 지명을 하나하나 기술하여 그곳에서 부터 어느곳까지 지나왔다는 것을 자세히 기술하고는 그냥 하루를 마무리 짓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사실을 기록하는데 중점을 둬서 그런것인지도 모른다.  길을 가다가 7일 차이로 조선의 사신과 엇갈리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무척 통탄해 하기도 한다. 그리고 북경에 이르러서 황제로 부터 상까지 하사 받기도 한다. 여기서도 최부의 고지식한 면이 드러나는데 자신은 상을 당한 사람이라 황제앞이라고 하더라도 상복을 벗지않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장면이 있는데 유학의 본고장인 명나라 사람들보다 더 유학자다운 면모를 보이는게 아닌가 싶었다.  요동지역에 이르러서 옛고구려 영토인 이 지역에서 아직도 고구려 유민들이 예전의 풍습을 그대로 유지한채 살아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고려인 승려에게 듣는다. 조선땅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나 중화인으로 여겨 다시 명나라로 보낼것을 두려워하는 승려에게 그의 마음을 이해는 못해주고 불교를 숭상하는 승려가 왜 돌아오려고 하느냐고 꾸짖기만 한다. 이런 꽉막힌 유학자 같으니라구!

조선으로 돌아가는 길에 날씨에 대한 언급이 많이 보였는데 큰비를 만나기도 하고 흙비가 내리기도 하고 홍매를 뒤집어 쓰기도 하고 일식까지도 마주하게 되는 묘한 경험을 했다고 적혀있었다. 6월이 되자 천하의 풍속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화려하고 벽돌집이 많은 강남에는 화려하게 치장한 사람들이 많고 강북에는 무식하고 덜 발전되었다는 둥 강남에 더 후한 점수를 준다. 그리고 강남과 강북의 같은점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데 귀신을 받들고 도교와 불교를 숭상하며 모두 장사를 업으로 삼고 작은 이익에 집착한다고 평한다. 그리고 상중이라 감히 보고 즐길수가 없어서 뛰어난 경치도 기록하지 못하고 대충 기록함을 아쉬워하며 글을 마친다.

미암일기로 유명한 유희춘의 발문이 있어서 반가웠고 유희춘의 외조부가 최부이기에 표해록을 다시 찍어냈으나 많이 유통되지 못했다고 한다. 그리고 몇번 다시 발행이 되었으나 이 작품이 우리나라에 그다지 많이 회자되지 못했음을 안타까워한  동국대 학생들과 교수진이 힘을 합쳐 엄청난 주석을 달아 책으로 발행했다. 그들의 노고가 여기저기에 스며있음을 보는 이로 하여금 느끼게 한다. 책이 하나 탄생하기 까지 이렇게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새삼 다시 한번 느끼게 하였다. 고전의 즐거움이 묻어나는 기행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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