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아버지의 부엌 - 노년의 아버지 홀로서기 투쟁기
사하시 게이죠 지음, 엄은옥 옮김 / 지향 / 2007년 2월
평점 :
품절
82세 할아버지 홀로서기를 선언하다!
모든것을 할머니가 해주고 보살펴주고 챙겨줬었는데 자신의 분신과도 같았던 이 마누라가 병으로 저세상으로 가버리자 이 할아버지 천덕꾸러기가 되어 버렸다.
혼자서는 밥도 못차려 먹고, 옷이 어디에 있는지, 빨래는 어떻게 하는건지, 장을 볼줄도 모르고 청소도 못하고 한마디로 말하자면 생존에 필요한 것이라고는 먹을줄 밖에 모르는 이가 바로 이 할아버지였던 것이다.
자식이 많아도 다 자기 삶을 사느라 혼자된 아버지를 모시기도 어렵게 되었고, 추억이 가득한 이 집을 떠나려 하지 않겠다는 아버지를 또 어찌하겠는가! 혼자 살수 있는 자립법을 가르쳐주고 도와줄수 밖에 없게 된것이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은 풍지박산난 사업으로 어딘가로 숨어 버려 찾을수도 없고 찾는다해도 아버지를 모실 형편이 못되었던 것이다. 이에 딸들은 아버지 갱생 프로젝트에 돌입하게 된다. 특히 글을 쓰고 강연을 하러 다니느라 바쁘게 사는 셋째딸이지만 혼자라서 아버지를 가장 자주 찾아뵐수 있었기에 그녀가 총대를 메고 아버지를 열심히 가르치기 시작하게 된다.
밥하나 청소하나 할줄 모르는 아버지를 닦달하고 가르치고 일일이 잔소리 해가며 혼자서도 잘사는 법을 가르치게 된것이다. 그러니 얼마나 힘이 들었겠는가! 딸도 힘들지만 아버지는 또 오죽 힘이 들었겠는가! 이 할아버지는 이렇게 잔소리 해대고 자신을 곤욕스럽게 하는 딸에게 한마디 한다.
"너는 꼭 엄마를 닮았구나. 앙알앙알 잔소리 하지 말아줘. 개가 실수해서 주인한테 야단맞는것 같아. 나는 개가 아니란다. 인간이야, 남자야, 어른이란 말이다!"
평생에 안해보던 일을 해내야했고, 혼자 부지런을 떨어가며 밥도 지어 먹어야하고, 장도 봐야하고, 청소도 해야하는 그 일상이 어찌 곤혹스럽지 않았겠는가! 딸에게 이런소리 저런소리 듣는것도 싫고, 자존심 상해서 화를 내는 할아버지를 보노라니 내 가슴이 아려왔다.
이렇듯 아버지는 외로움과 고독함과 그리고 혼자 사는법을 배우느라 힘이들고, 딸들은 그런 아버지 때문에 걱정이 태산이다. 이 딸 저 딸이 번갈아가며 찾아오고 전화가 안되면 무슨 일이라도 생겼는지 걱정을 해댄다. 가까이 사는 이웃 사촌들에게 아버지를 보살펴 달라고 부탁에 부탁을 한다. 불이 안켜져 있거든 들여다 봐달라고, 도와달라고 딸은 거듭 부탁을 한다.
그 노력이 헛되지 않았는지 아버지 또한 이웃들과 함께 사는법을 배우고 익혀나간다.
그러나 외로움은 그리움은 참을수가 없는지라 자주오는 셋째딸에게 귀여운 편지를 남기기도 한다.
"회사 일이 있을때 가끔 들러주세요. 기다리고 있습니다. "
-늙은 아비로부터-
아버지는 딸이 보고파지면 편지를 쓴다. 일명 상처난 사과의 독백으로... 그리고 딸은 아버지가 써놓은 이 편지와도 같은 일기를 읽는다. 어떻게 사셨는지 어디가 불편하지 건강하신지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신지 읽고 또 쓴다. 딸들이 돌아갈 무렵이 되면 조금만 더 있어달라고 눈물 짓는 아버지, 홀로된 아버지를 두고 떠나야 하는 딸까지 독백은 참 아프도록 사실적이기만 하다.
서로를 모르고 몇십년을 살다가 어머니의 빈자리로 인해 아버지의 홀로서기를 돕다보니 아버지와 엄청나게 다투고 싸우고, 그러다 보니 정이 들고 눈물짓는다. 아버지가 쓰는 일기장을 들추어보며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게된 셋째딸 그녀는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여 아버지의 홀로서기를 책으로 쓰게 된게 바로 이 책이다. 일본에서 이 책이 나온지는 벌써 십년이 넘었다고 하는데 지금의 한국의 현실에어찌나 잘맞는지 모르겠다.
이 책을 읽다보니 70이 넘고 80이 넘어도 홀로서기는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균수명은 나날이 높아만가는 이 현실에 알맞는 자립법이 아닐까하고 말이다. 우리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생각도 나서 낯설지가 않았다. 함께 살아갈수 없는 부모와 자식들을 탓할 수만도 없고 스스로 건강하게 노년을 살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자립법을 익힌다는 것은 타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할아버지의 독백이 마음을 짠하게 만들어서 가슴이 아팠다. 우리 아버지도 더 늙으시기 전에 간단한 자립법을 가르쳐 드려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책을 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