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다예요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고종석 옮김 / 문학동네 / 199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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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의 작가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책이다.

영화로 <연인>을 만나보았을 뿐, 그녀의 책은 이번이 처음이다.


얀에게.

그냥.

하늘은 텅 비어 있다.

내가 이 남자를 사랑하는 것은 여러 해째다.

내가 아직 이름 짓지 않은 어떤 남자.

내가 사랑하는 어떤 남자.

나를 떠날 어떤 남자.

그 나머지는, 내 앞뒤의 일이든, 내 전후의 일이든, 나와 무관하다.

나는 널 사랑해.(21쪽)

이 책은 뒤라스가 그녀의 연인 얀에게 바치는 연서(戀書)이자, 죽음을 앞두고 삶을 돌아보며 쓴 유서(遺書)인 듯 하다.

책 곳곳에서 느껴지는 사랑을 향한 열정은 이 책을 쓸 당시의 그녀의 나이마저 잊게 만든다.(이 책은 그녀가 여든한 살 때 씌여진 것이라 한다.) 사랑은 젊은이들만의 전유물이 아님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이 책을 한 번 읽고 나서(이 책은 보름 정도의 시간을 두고 두 번 읽었다.) 마침 문학 라디오에 나온 한 작가를 통해 뒤라스를 다시 만나볼 수 있었다. 그 작가는 뒤라스를 사랑해서 프랑스까지 날아갔고, 뒤라스에 몰두해서 뒤라스만 읽었다 했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 중에 뒤라스의 연인 얀에 관한 이야기도 잠깐 나왔다. 뒤라스가 '나를 떠날 어떤 남자'라고 했던 그 남자, 얀은 뒤라스가 세상을 떠난 후 그녀를 추억하는 글들을 쓰고 있다고 했다. 처음에 책을 읽을 때는 뒤라스만 보였다. 한 남자를 향한 뒤라스의 열렬한 사랑만 보였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듣고서 나중에 이 책을 다시 읽어보니, 이제는 얀이 느껴졌다. 짧은 편지를 써서 뒤라스를 짜증나게 만들었던 얀이지만, 이 글들의 뒤에 숨어 있는 얀의 뒤라스를 향한 사랑이 느껴졌다. 뒤라스의 죽음 이후, 그녀를 잊지 못하고 계속해서 그녀를 추억하는 글을 쓰고 있는 얀의 마음을 떠올려서인지 글들이 하나하나 더욱 깊게 가슴을 울린다.


죽을 때까지 난 당신을 사랑할 거예요.

너무 일찍 죽지 않도록 힘써볼게요.

내가 해야 할 건 그것뿐이에요.(42쪽)

 

뒤라스는 여든둘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얀을 사랑했을 것이다.(일 년 새에 사랑이 식지 않았다면.) 너무 일찍 죽지 않도록 힘써보겠다는 약속이 어느정도 지켜진 것 같다. 생애 마지막에 '해야 할' 일을 멋지게 해내고 떠난 그녀, 그리고 그녀의 사랑, 무척 아름답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사랑과 삶을 엿볼 수 있는 이 책을 만나볼 수 있어 좋았다.


너처럼 될 수 없다는 것, 그게 내가 아쉬워하는 그 무엇이지.(77쪽)

 

삶을 부드럽게 하기 위해서?

아무도 그걸 모르지. 살려고 애써야 해.
죽음 속으로 뛰어들어선 안 돼.

이게 다야.

이게 내가 해야 할 모든 말이야.(70쪽)

이게 다예요. 이 한 마디가 주는 깊은 울림이 좋다. 그래요, 이게 다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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