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에 말이지 미래인 청소년 걸작선 6
멕 로소프 지음, 박윤정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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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만약에 말이지…… 끔찍한 운명을 패해 달아날 수 있다면?"

 

어느 날,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동생이 창문 밖으로 떨어질 뻔 한 걸 구하면서 데이비드 케이스는 이전과 다른 삶을 살게 된다.

자칫 잘못했으면 동생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던 상황을 맞닥뜨리고 나서 '운명'이라는 놈의 존재가 갑자기 엄청난 두려움으로 다가온 것이다.

만약에 그때 2초만 늦었더라면, 동생은 죽었을지도 모른다.

'2초. 매일의 평범한 삶과 총체적 파멸 사이에 가로놓인 건 이 2초 뿐이었다.'(10쪽)

2초라는 짧디짧은 시간으로 생사가 갈리는 현장을 겪고 보니, '끔찍한 운명'이 가져다 주는 공포감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며, 그 운명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어졌다. 그래서 데이비드 케이스는 운명이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도록 변장을 한다. 먼저 이름을 바꾼다. 데이비드 케이스는 이제 저스틴 케이스가 된다. Justin Case. Just In Case.

 

  내 소개를 하겠다.

  내 이름은 키스메트Kismet, 터키어다. 페르시아어로는 키스마트qismat, 아라비아어로는 키스마qisma인데, '나누다, 할당하다'라는 뜻의 카사마qasama에서 파생되었으며, '운'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비슷한 말로는 우연, 신의 섭리, 운명이 있다.

  운명.(28쪽)

 

운명. 저스틴이 맞서고자 하는 상대다. 책의 중간중간에 굵은 글씨체로 등장해서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자신을 피해 달아나려는 저스틴을 비웃는다. 아주 잠깐의 등장이지만, 이 '운명'이 내는 목소리는 조금 섬뜩하다. '운명'이라는 게 어떤 실체가 되어 저 높은 곳에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을 것만 같은, 아등바등 살아가고 있는 나를 비웃고 있을 것만 같은 느낌에 불쾌함과 두려움이 함께 치밀어 올랐다.

 

평소에 '운명'이라는 것에 대해 적잖이 생각하고 있는 나이기에 이 책을 읽으며 많은 공감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름을 바꾸고 외향을 바꾼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게 운명일까?(왠지 피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드는데.)

가끔 "운명에 맞서라!"라는 말을 보는데, 운명은 어떻게 해야 맞설 수 있는 것일까?

 

  운명은 그저 원인과 결과가 가득한, 매 순간 하나가 다른 수많은 것들을 건드려, 무수히 많은 행위들을 촉발시키는, 무수한 도미노 현상들로 가득한 운동장일 뿐이야.(296~297쪽)

 

그렇다면 우리 앞에 어떤 그림이 그려질지는 아무것도 정해진 게 없다. 어느 순간에 도미노의 어떤 패가 쓰러질지도 알 수 없다.

괜히 운명을 피해 조심조심 돌아가려다가 휘잉 불어오는 바람에 옷자락이 날려 옆에 있는 패를 쓰러뜨릴지도.

그게, 내가 쓰러뜨리도록 되어 있던 패보다 더 나쁠 수도 있다.(물론 더 좋을 수도 있겠고.)

어차피 복불복인가?

그렇다면, 얼마전 작고하신 장영희 교수님의 말씀대로 운명을 깨우며 쿵쾅쿵쾅 걸으련다.

네놈 따위 겁나지 않는다고, 어디 날 잡으려거든 마음껏 잡아보라고 쿵쾅쿵광!

 

이름을 바꾸고, 외면을 바꾸고, 운명을 피해 달아나는 저스틴과 함께 '도주'하며, 나도 다시 한 번 '운명'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하나의 생명체가 번데기 상태를 벗어날 때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시점이, 충분히 성숙해서 새로운 정체성을 얻은 것도 그렇다고 과거의 모습을 탈피한 것도 아닌 시점이 있다. 날개는 아직 끈적끈적하게 접혀 있으며, 빛깔도 감춰져 있다. 에메랄드색이나 군청색을 띠게 될지, 아니면 진흙빛을 띠게 될지 아직은 알 수 없다.

  나를 미치도록 황홀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이 소리 없는 기나긴 기다림의 순간이다. 아름다움이 만개하기를 기다리는 그 조마조마한 순간.(2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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