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빈칸 - 당신의 생활 속에 반짝이는 크리에이티브 조각들
최장순 지음 / 더퀘스트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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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문명의 풍요로움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 뭔가 꽉꽉 채워진 일상을 살아가다보니, 스스로 생각하고 사유하는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빈틈만 있으면 먹거리와 물건들로 공허함을 매꾸려고 애를 쓰지요. 그래서 우리는 늘 분주합니다. 우리의 존재가치가 무엇인지 생각할 시간도,우리가 왜 지금을 살아가는지 생각할 겨를조차 없이 분주합니다. 이런 분주함에서 벗어나려며나 잠시 멈추고 주변을 둘러봐야 합니다. 둘러보면 우리 주변엔 《일상의 빈칸》이 존재합니다.



● 일상의 빈칸 내용


이 책은, 예전에 재미있게 읽은 <기획자의 습관>을 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최장순의 신간입니다. <기획자의 습관>을 읽을 때도, 평범해 보이는 일상 속에서 아이디어를 얻고 기획하는, 뭔가 다채롭고 의미있게 일상을 살아가는 재미를 느끼게 했습니다. 이번의 신간 《일상의 빈칸》에서도 일상을 다각도로 바라볼 수 있는 관점을 제시합니다. 이 책은 크게 '거리의 빈칸','장소의 빈칸','사물의 빈칸','언어의 빈칸','시대의 빈칸' 총5 챕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거리, 장소, 사물 그리고 언어와 시대의 의미를, 우리가 생각치도 못하는 관점으로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갑니다.



●느낀점


물질문명의 풍요를 제공하는 삶은 인간에게 편리함을 제공해주었습니다. 인간이 가진 모든 감각을 굳이 활용하지 않아도 될만큼 편리한. 편리한 삶은 입체적인 반면 인간의 감각은 퇴화되고 단면적으로만 세상을 바라봅니다. 마치 세상에 무감각한 것처럼 말이죠. 하지만 일상은 그렇게 단면적이지 않습니다. 우리가 감각에 둔감해졌을 뿐, 일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존재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존재의 이유를 인지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잠시 멈춰서, 일상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됩니다. 시간도 가져봅니다. 생각하는 시간을요. 그러면 당연하게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당연한 것이 아님을 알게됩니다.


길을 걸어가다 마주하는 가게 간판들, 길바닥에 떨어진 명함과 전단지들, 사람들의 옷차람으로 확인되는 패션 트렌드, 우리집에 있는 서랍장과 책상 그리고 책들, 이들을 둘러보면 시대상도 보이고 사람의 무의식적 심리가 반영된 것임을 알게됩니다. 그렇게 우리는 일상의 빈칸을 찾으며 사유하는 습관을 가지고, 평범한 일상을 특별하게 보는 힘이 길러질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사물, 주변 그리고 세상을 단면적으로만 보고, 시야와 의식을 확장하거나 면밀하게 들여다보는 걸 번거로워합니다. 그저 좋고 나쁜 것이라는 이분법적, 흑백논리로면 바라보는데서, 조화롭고 다채롭게 일상을 바라보는 노력이 점점더 희미해져가는 것도 사실입니다.


일상을 단면적으로만 바라보면, 쳇바퀴 돌아가듯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지루함과 씨름하고 무기력과 친숙해집니다. 그러나, 일상에서 빈칸을 찾아보면 여유가 생기고, 여유를 통해서 새로움의 가능성을 발견하면, 우리의 일상은 똑같이 흘러가는 것이 아님을 알게됩니다. 그리고 또 알게 됩니다. 일상은 원래 다채롭게, 다양하게, 흥미롭게 흘러간다는 것을요.


《일상의 빈칸》에서는 우리가 알법한 브랜드와 독특한 가게 간판들을 보여주면서 평범한 일상이 절대로 평범하지 않고, 흥미와 호기심을 자극한다는 걸 보여줍니다. 그래서 평범한 우리의 일상이 독특한 발상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줍니다. 조금만 걸음을 멈추고 가만히 일상을 들여다보면, 우리의 일생은 새로운 재미와 혜안을 담고 있다는 걸, 《일상의 빈칸》이 알게해줍니다.


● 마음에 와닿는 글귀


p. 17 일상은 비일상이 되고, 비일상은 새로운 일상이 된다. 그렇게 일상은 새로운 일상의 가능성을 빈칸에 담아둔다.


p. 39 간판은 사람을 닮았다. 우리는 간판을 닮았다. 간판은 거리의 얼굴이다. 우리의 얼굴은 거리의 얼굴을 닮아간다. 우리 주변에는 상품이 편리하지 않으면 절대로 구매하지 않는 실용주의 의자도 있고, 체리피커에 비견될 만큼 깐깐하게 가격을 따지고, 저품질에 대해 클레임을 거는 비평가도 있다. 언제나 현실과 거리가 먼 새로운 이상을 꿈꾸는 이상주의자가 있는가 하면, 유머, 디자인, 놀이의 가치를 절대시하는 쾌락주의자도 존재한다.


p.57 어떤 일이 일어나는 곳을 '장소'라 한다. 일반적으로 어떤 장소에만 있어야 할 사물이 있고, 어떤 일은 늘 어떤 장소에만 일어나야 한다. (중략) '장소'는 모든 사물과 행위를 규정짓기에 어떤 의미에서 파시즘에 가깝다. "이 장소에서는 이것만 해!"라고 명령하고 있으니까. (중략)장소에서의 행동 규범을 깨고 나오면, 쓸데없지만 소소한 자유가 생긴다. 장소는 일종의 '문법'이다. 그 문법 체계 안에서 어떤 일들이 왜 벌어지는지, 어떻게 문법은 파괴되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 또한 소소한 재미가 있다.

p.59 모든 사람, 장소, 사물은 '관찰'과 '읽기'의 대상이다. 일종의 '텍스트'다. 지하철에는 사람도, 사물도, 장소도 있다. 그래서 지하철은 그 모든게 섞인 '복합 텍스트'다. 우리는 매일 복합 텍스트로서 지하철을 이용하고, 스스로 텍스트의 소재가 된다.


p. 93 사물의 세계는 빈칸을 허용하지 않는 듯하다. 원래 거기 있었던 것처럼 특정 장소를 차지하고 있는 사물은 '자연스럽게' 존재한다.

p. 93-94 세계는 사물들의 빽빽한 집합이 아니다. 세계는 언제나 빈칸을 허용한다. 사물의 틈새에는 언제나 흥미진진한 낯선 의미의 여행이 펼쳐진다. 낯선 의미는 산 정상에 올라 이렇게 외친다. "사물과, 이 세계를 당연시 여기지 말라. 나, 사물은 천 겹의 주름으로 세계를 버텨왔다. 그 주름의 깊이를 알지 못한 채 함부로 단언하지 말라. 단언컨대, 단언하는 자들은 이 세계의 깊이에 다가서지 못할 것이다."

p. 98 사전적 정의로 '창조(創造)'는 '전에 없던 것을 처음으로 만든다'는 의미다. '없던 것을 처음 만듦'. 이는 세상의 모든 기획자를 '무(無)'에서 '유(有)'를 만드는 신적 존재로 보는 관점이다. 그래서 대개는 '창의성'을 '타고나는 무언가','기질'의 문제로 간주하곤 한다. 그러나 크리에이티브는 이러한 '창조'가 아니다. 대부분의 크리에이티브 '무(無)'에서 '유(有)'를 만드는 작업이 아니라 'A라는 유(有)'에서 'B라는 유(有)'를 만드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유(有)', 다시 말해 어떠한 '있음'이 다른 '있음'으로 되는 상태, 바로 이 '되기(becoming)'의 과정을 크리에이티브에 비유할 수 있다.

p. 103-104 당신은 지금 어떤 영토에 머물러 있는가? 그 영토는 어떻게 배치돼 있는가? 그리고 그 영토의 코드는 만족스러운가? 아니면 당신은 새로운 코드를 기획하고 있는가? 크리에이티브 기획은 탈영토화, 탈코드화의 작업이다. 일상을 같은 방식으로만 살도록 종용하는 중력을 거스르는 행위다. 같은 규칙만을 강요하는 동일성의 세계에서 벗어나보자. 간단한 '배치' 행위만으로도 일상에 차이를 만들 수 있다.

p. 129 (중략) 단답식 언어에만 길들여지면 언어 이면의 진짜 복잡한 세계에 다가가기 어렵다. 세계는 핵심 키워드 몇 개로 설명되는 그런 효율성의 집합이 아니다. 사태를 보다 풍성히 들여다 볼 수 있도록 안내하는 다양한 에두러 말하기가 필요하다. 간결한 요약과 단답형 말하기는 가능성의 빈칸을 차단한다. 이런 언어는 자신의 '단답'에 포함되지 않는 수많은 가능성의 흔적을 배제한다. 요약되지 않은 건 무의미로 치부하게 된다. 둔감한 언어다. 둔감하다는 건, 세계의 어떤 일에도 감탄하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모든 걸 무의미로 간주하는 상태다.

p. 130 언어는 키워드의 결합 그 이상이다. 사람의 말과 그뿐 아니라 음악, 건축, 패션, 표정, 회화 등 다양한 기호체계를 통해 에둘러 말해야 하는 의미의 연쇄체다. 세계에 둔감하지 않으려면 모든 언어에 애정을 두어야 한다. 신속한 언어부터 느릿느릿한 언어에 이르기까지. 그래야 그 빈칸을 제대로 응시할 수 있다.

p. 134-135 공동체가 지켜아 할 언어의 문법, 모두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언어의 문법을 '랑그(langue)'라고 한다. 그 랑그를 기반으로 각자의 역량에 따라 수행되는 실제 언어행위를 '파롤(parole)'이라 한다. 랑그가 이상적 언어 체계라면, 파롤은 사람의 수만큼 다채로운 현실적 언어행위다. 랑그가 공적인 언어라면 파롤은 사적인 언어다.

p. 163 어쩌면 시대정신은 그리 거창한 게 아닐지 모른다. 시대정신은 낡아빠진 인테리어에서 발견할지도 모르고, 밤새 켜져 있는 간판에서 읽어낼지도 모른다. 또 브랜드의 색상에서 시대 정신을 찾아볼 수도 있다. 아티스트의 그림에서, 브랜드의 캠페인에서, 과거 그대로 멈춰버린 철물점에서도 시대의 흔적을, 시대정신을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시대를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시대정신을 확인하고 싶은 호기심 많은 한 시민으로서, 오늘도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그 빈캄에 남겨진 작은 정신의 조각들을 살펴본다.

p. 166 '힙'한 것은 무엇일까. '옛 것'이어서 힙했던 것이 아니라, 어린 세대들을 생전 처음 보는 것이기 때문에 '힙'했던것은 아닐까. '힙(HIP)'의 역사를 찾다가 '가장 최신의 것'이라는 의미를 발견했다. 힙하다는 건, 옛날 것을 가져오는 그 행위가 아니라, 새로운 것을 가져오는 모든 행위를 말한다.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과거'는 언제나 '새로운 것'일 테니까.

p. 192 욕망은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형태를 달리할 뿐이다. 한때 장식 냉장고가 유행이었던 것도, 자개장을 통해 드러내려 했던 미학적 욕망 때문 아니었을까. (중략) 보이지 않는다고 사라진 것이 아니다. 욕망은 언제나 여러 형태로 그 존재를 드러낸다. 다양한 욕망이 공존하는 이 시대, 그 욕망의 균형점을 찾기 위해선 욕망이 드러나는 수많은 형태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p. 198-199 우리에겐 의미의 다양성과 깊이가 필요하다. 더 많은 상상의 여지가 필요하다. 그래서 의미의 빈칸이 필요하다. (중) 일상을 꽉 채워진 단단한 의미체계로 보지 말자. 새로운 시선고 관점에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 빈칸으로 바라보자. 나는 이 책을 통해 일상의 빈칸을 채우는 몇 가지 이야기들을 보여줬을 뿐이다. 각자의 방식대로 새롭게 채워보자.



>> 본 포스팅은 서평단 참여로 제공된 도서를 읽고 주관적인 관점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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