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결국 다 괜찮아질 겁니다 - 삶의 벼랑 끝에서 침묵을 택한 어느 은둔자의 이야기
피코 아이어 지음, 최지숙 옮김 / 서사원 / 2026년 7월
평점 :

✅️ 본 포스팅은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매일 숨 가쁘게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잠시 멈춰 서서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본 적이 언제였나요? 개인적으론 10~30대초까지 치열하게 살다가 몸과 마음이 지쳐 공황장애와 마주할 때였습니다.
10대엔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는, 예상치 못한 시련, 의도치 않게 짊어져야하는 가족에 대한 책임감, 가족과 지인들의 투병, 그리고 조직과 사회가 준 예기치 못한 배신감과 상실감까지. 세상의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지고, 우리는 그 속에서 문득 멈춰 서서 길을 잃곤 합니다.
오늘 여러분과 나누고 싶은 책은 바로 그런 순간, 우리에게 쉬어갈 수 있는 의자를 조용히 내어주는 따뜻한 신작 《결국 다 괜찮아질 겁니다》입니다. 세계적인 사상가이자 현대판 데이비드 소로우라고 불리는 저자 피코 아이어는 벼랑 끝에 선 현대인들에게 대책 없는 낙관이 아닌, 묵직한 이성과 따뜻한 감성이 어우러진 깊은 인문학적 위로를 건넵니다.
책 소개

《결국 다 괜찮아질 겁니다》는 심리치유 에세이지자 인문 에세이입니다. 이 책은 단순한 말장난이나 뻔한 힐링을 노래하지 않습니다.
저자는 산불로 집을 잃고 전 재산을 상실했을 때,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외로움이 사묻힌 어머니를 걱정해야 할때, 딸이 암판정을 받을 때와 같이 가혹한 현실과 마주해야만 했습니다. 상실과 불안이 휘몰아치던 순간, 그는 캘리포이나 빅서에 위치한 베니딕도회 뉴 카말돌리 수도원에서 찾아가 침묵 속에서 사유의 시간을 보냅니다. 세상의 소란으로부터 멀어지면서 삶을 살아가는 진리를 깨닫는 여정을 기록했습니다.
전작 《여행하지 않을 자유》에서 '멈춤'의 가치를 논했던 그는, 이번 신작을 통해 한 단계 더 깊은 내면의 치유 단계로 우리를 안내합니다. 인생의 가장 보편적이면서도 아픈 질문인 '어떻게 상실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을 수 있는가'에 대한 명밀한 해답이 이 책에 담겨 있습니다.
저자에 대하여

세계적인 저널리스트이자 사상가인 그는 1957년 영국 옥스퍼드에서 태어났습니다. 이튼 칼리지와 옥스퍼드대 수석 졸업이라는 화려한 학업 과정을 거쳐 하버드대에서 석사 및 인문학 명예박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그는 글을 통해 세상과 깊이 호흡하는 전업 작가입니다. 글로벌리즘과 쿠바 혁명부터 달라이 라마와 이슬람 신비주의까지, 그가 탐구한 다채로운 주제의 책들은 23개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에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글로벌 매체인 〈타임〉, 〈뉴욕 타임스〉, 〈파이낸셜 타임스〉를 포함한 250여 개 미디어에 매년 100여 편의 칼럼을 발표해 왔으며, 그의 통찰이 담긴 네 차례의 TED 강연은 1,000만 뷰를 돌파하며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국내 독자에게 친숙한 《여행하지 않을 자유》 외에도 《Video Night in Kathmandu》, 《Lady and the Monk》 등의 명작을 남겼습니다. 현재는 캘리포니아 빅서의 베네딕도회 수도원과 일본의 한적한 교외를 거처 삼아, 소음에서 벗어난 침묵의 삶 속에서 지혜를 길어 올리고 있습니다.
핵심 메시지
피코 아이어가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수도원을 오가며 침묵 속에서 길어 올린 핵심 사유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지적이고 명밀한 분석과 부드러운 위로가 공존하는 대목입니다.
01. 비었는 때 비로소 채워지는 이치
내면의 소란함을 덜어낸 상태가 이토록 풍요롭게 느껴지다니 참으로 묘한 일이었다.이곳으로 차를 몰고 오며 머릿 속으로 되풀이하던 자문자답도, 다음 주까지 맞추야 할 마감 기한도, 일본에 있는 연인에 대한 걱정도 모두 사라졌다. 전부 다, 깨끗이. 이것은 단순한 기분이 아니라 분명한 앎이었다. 비어 있을 때, 비로소 나는 주변의 모든 것들로 채워질 수 있었다. p. 28
저자가 말한 “비어 있을 때, 비로소 주변의 모든 것들로 채워질 수 있었다”는 깨달음은 현대인의 삶과도 깊이 닿아 있습니다. 우리는 물질적 풍요 속에 살고 있음에도 마음은 늘 허기져 있고, 그 공허함을 메우기 위해 더 많은 자극과 활동을 찾아 헤매곤 해요. 그러나 공허함은 결핍이 아니라 쉼이 필요하다는 신호, 그리고 마음이 숨을 쉬기 위해 열어둔 작은 틈일지도 모릅니다.
외부에서 밀려오는 자극이 많아질수록 마음의 여유는 줄어들고 시야는 좁아져요. 특히 상실과 시련을 겪을 때 마음은 불안과 두려움으로 가득 차 더 옹졸해지기 쉽습니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억지로 채우는 일이 아니라 고요한 침묵 속으로 자신을 이끌어 들이는 일입니다. 침묵은 우리를 자신에게로 데려다 놓고, 그동안 외면해온 내면의 상태와 마주하게 해줘요.
자신과 마주하기 위해서는 먼저 긴장으로 굳어 있는 몸을 이완해야 합니다. 몸이 풀리는 순간 마음도 비워질 준비를 하게 되죠. 저자 역시 집이 불타는 상실과 절망 속에서 수도원을 찾았고, 그곳에서 어둠 속에 반짝이는 별들과 마주하며 자신을 비워내는 시간을 보냈어요. 그는 아무것도 채워지지 않은 소박한 공간에 깃든 정적 속에 앉아 있었고, 그 순간 모든 것이 멈춘 듯한 고요를 온몸으로 느꼈다고 표현합니다.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조차 그 정적 속에서 더 생생하게 다가왔고, 내면의 소란이 덜어진 상태가 오히려 풍요롭게 느껴지는 묘한 경험을 하게 되었어요.
“바다는 메워도 사람 욕심은 채울 수 없다”는 말처럼, 마음의 영역은 채우려 애쓴다고 채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비워낼 때 비로소 채워질 공간이 생기고, 그 공간에 자연의 경이로움, 고요, 치유, 그리고 다시 살아갈 힘이 들어와요. 앞서 소개된 문구가 말하는 것도 바로 그 이치입니다. 소란과 상처로 가득 찬 마음을 비워낼 때, 우리는 다시 풍요로워지고 치유의 길로 나아갈 수 있어요.
02. 피정이란 도피가 아닌 방향의 전환이자 마음을 가다듬는 일
고통을 치유할 방도를 찾기 위해 50년을 명상해 왔다 해도, 환자를 고치는 의사가 정작 자신의 마음을 어디에 두었는지 잊어서는 안 될 일이다.
피정이란, 도피라기보다 방향의 전환이자 마음을 가다듬는 일에 가까움을 나는 점차 깨닫는다. 세상을 자세히 그리고 그 모든 면을 입체적으로 들여다볼 때만이 우리는 비로소 세상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때때로 나는 지나치게 긍정적인 면만 보려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수도원을 나설 때마다 의식적으로라도 세상의 상처받은 곳이나 절망적인 현장으로 발길을 옮기려 노력한다. 텔레비전에서 동물이 죽는 장면을 볼 때면 괴롭다고 말했던 달라이 라마의 음성이 들리는 듯하다. 하지만 어차피 일어날 죽음이라면, 차라리 그 장면을 지켜봄으로써 무언가를 배울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말과 함께. p. 83
피정이라는 단어는 어딘가 피난과 닮은 울림을 가집니다.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을 숨기는 행위처럼 들리기 때문이예요. 하지만 피정의 본래 의미는 훨씬 더 섬세합니다. 피정은 “중요한 결정이나 삶의 쇄신을 위해 조용한 곳으로 물러나 기도와 묵상에 집중하는 수련”입니다. 즉, 세상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다시 세우기 위해 잠시 방향을 틀어 고요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일에 가깝습니다.
저자는 삶의 기반을 송두리째 흔드는 상실을 겪습니다. 사랑하는 아버지를 잃고, 딸의 병마와 마주하며, 감당하기 어려운 절망 속에서 그는 수도원으로 향합니다. 피정은 그에게 생존을 위한 피신이자, 동시에 자신을 다시 붙잡기 위한 마지막 시도이기도 합니다. 수도원에서의 시간은 은둔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세상과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더 깊이 바라보게 되는 과정이었습니다. 자연의 미세한 움직임, 고요 속에서 들리는 작은 소리들, 그동안 소란에 가려져 있던 세계의 경이로움이 그의 마음을 다시 열어젖힙니다. 그는 피정 속에서 오히려 세상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현실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상처와 절망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용기로 이어집니다. 지나치게 긍정만을 보려는 자신의 습관을 경계하며, 그는 의식적으로 세상의 아픈 곳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달라이 라마가 말했듯, 고통스러운 장면이라도 외면하지 않고 마주할 때 우리는 그 안에서 배움을 얻습니다. 결국 피정은 상실로 상처받은 마음을 가다듬고, 자신을 살피며, 다시 세상을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는 시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현실을 견디게 하는 힘이 됩니다.
03. 고요한 침묵이 주는 지혜
방 안 홀로 있는 시간, 나는 곁에 있을 때보다 내가 아끼는 이들과 더 가까이 있음을 느낀다. 고요는 내가 그들을 사랑하는 이유를 가장 명민한 방식으로 일깨워준다. 고요 속에 있으면 이 곳의 이름 모를 낯선 이들이 마치 뿌리가 맞닿은 친구처럼 느껴진다. 길에서 마주쳐도 우리는 거의 말을 나누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나누는 것은 말하지 않는 그 모든 것 속에 훨씬 더 많이 담겨 있다. p. 29-30
침묵의 의미가 전해지는 대목. 혼자 있는 방 안에서, 저자는 역설적으로 사랑하는 사람들과 더 가까워지는 순간과 마주합니다. 말이 없기에 오히려 관계의 본질이 선명해지고, 침묵 속에서 서로가 나누는 미세한 감정의 결이 더 크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꼭대기에 있는 수도원에 도착해 차에서 내리자 고요가 나를 감싸안았다. 벤치에 앉아 바다를 내려다보았다. 자동차 소음 너무로 파도가 한숨 쉬듯 밀려왔다 물러가는 규칙적인 소리가 들려왔다. 길 아래쪽에서는 성찬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나는 두 시간 동안 그 자리에 머물렀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그러고 나서 다시 굽이치는 산길을 세 시간 반 동안 달려 내려왔다. 이제 현실을 정면으로 마주할 준비가 되어 있다. p. 76
길을 따라 도로의 야간 반사 장치들이 고양이 눈처럼 깜빡거린다. 어둠 속에서 운전자들을 안내하는 표지 기둥일 것이다. 나는 가장 먼 곳에 있는 벤치까지 걸어가 가늘게 이어진 고속도로의 불빛 그물망 위로 별드이 비처럼 쏟아지는 장관을 바라보았다. 어디선가 코요테의 구슬픈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 순간 깨달았다. 내가 이곳에 온 유일한 이유는, 결국 나 자신을 내려놓기 위해서였다는 것을. p. 151-152
수도원에 도착했을 때, 고요는 마치 오래 기다렸다는 듯 저자를 감싸안습니다. 파도는 한숨처럼 밀려왔다가 물러가고, 종소리는 산 아래에서 은은하게 울립니다. 그는 두 시간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앉아 있을 뿐이지만, 그 시간은 자기 자신을 다시 정렬하는 의식처럼 작동합니다. 또한 산길을 내려오는 동안, 그는 현실을 마주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느낍니다. 고요 속에서 자신을 비워냈기에 다시 채울 수 있는 상태가 된 것이죠. 밤이 내려앉은 길에서, 고속도로의 불빛은 고양이 눈처럼 반짝이고, 별들은 그 위로 비처럼 쏟아집니다. 멀리서 코요테의 울음이 들려오는 순간, 그는 깨닫습니다. 수도원에 온 이유는 결국 ‘자신을 내려놓기 위해서’였다는 것을 말이죠.
침묵은 단순한 정적이 아니라 자신을 비우고 자신을 바로 세우는 시간을 선사합니다. 직면하기 힘든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조용히 설득하기도 하죠. 침묵은 말이 없을 때 관계는 더 깊어지고 선명해지며 자연의 흐름 속에서 자신을 비로소 내려놓게 하죠. 침묵은 우리가 힘을 빼고 유유자적 삶의 물류를 탈 수 있는 지혜를 선사합니다.
인상깊었던 점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 엄마는 깊은 상실감 속에서 침묵을 선택했습니다. 20대의 나는 성공에 대한 집착 끝에 번아웃과 공황장애를 마주하며 결국 침묵 속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어요. 엄마도 나도, 불행을 안겨준 세상과 사회에 대한 배신감과 환멸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삶이 너무 불공평하게 느껴졌고, 그 불행이 너무 커서 더 살아낼 자신조차 없었습니다.
그런데 침묵은 예상 밖의 선물을 건넸습니다. 세상과 사회로부터 상처받아 뾰족하게 날선 마음을 서서히 진정시키고, 긴장으로 굳어 있던 몸을 이완시켜주었어요. 마음이 가라앉고 몸이 풀리자, 엄마도 나도 각자 처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용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면, 그 현실을 지혜롭게 견뎌낼 힘이 우리 안에 있다는 사실을 침묵 덕분에 비로소 인지하게 되었어요.
시간이 약이라는 말처럼, 결국 모든 것이 조금씩 괜찮아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나는 침묵이 외로움의 극치도 아니고, 자신을 고립시키는 암흑의 시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좌절과 상실감에 매몰되어 불행만 바라보느라 자연스럽고 순리에 맞게 누리지 못했던 것들을, 침묵은 다시 보게 만듭니다. 불행의 그림자를 걷어내고 더 넓은 시야로 세상을 바라보라고 일러주었습니다.
경이로운 자연을 마주하며, 삶 속에서 누릴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 그리고 내가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 깨닫게 하는 힘. 침묵은 그 조용한 방식으로 우리를 다시 삶으로 이끌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