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페미니스트
서한영교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페미니즘", 양성평등을 주장하고 여성의 주체성과 권리를 확장하고 강화해야 한다는 사회운동을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페미니즘의 개념이 다소 변질된 듯 하여, 사실 페미니즘 자체에 무관심한 편이였고 더 깊이있게 알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임신을 하고, 새 생명을 내 품에서 품으면서 겪어야 하는 제약 사항(?)들이 있어서 페미니즘에 저절로 관심이 쏠리더라고요. 페미니즘을 잘 이해하고 싶었습니다. 양성평등이 아닌 여성우월로 변질되어 혐오의 대상이 되는 것도 싫었으니까요. 내가 페미니즘을 이해하기 위해 처음 접한 책은 서한영교의 두 번째 페미니스트입니다.


두 번째 페미니스트 내용 및 구성

서한영교는 시인입니다. 그리고 남성 페미니스트구요. 책을 읽기 전엔 몰랐는데, 책을 읽으면서 남성 페미니스트가 있다는 걸 처음 알았습니다. 그 주변에서 어떤 특정한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진, 그도 다른 평범한 남성들처럼 여자가 하는 일, 남자가 하는 일이 구분되는 그저 평범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학 소년이었던 그가 열 아홉살이 되던 해, 유명 시인이 이제 막 등단한 여성 시인을 성희롱하고 구타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이후로, 유명 시인의 악행에 대한 폭로가 이어졌지만 한국 문단에선 오히려 그 시인을 두둔하는 일을 목격하고, 한국 문단엔 불합리한 남성 우월주위가 판을 친다는 사실을 불편해합니다. 그 사건을 계기로 그는 그 주변의 여성들과 멋지게 살아가기 위해, 많은 어려움에 부딪히면서 여성을 이해하는 페미니스트가 되고, 여성들의 삶에 뛰어 들어봅니다. 이 책은 프롤로그를 포함하여, 1)감히, 우리라고 말하기 위해 2)집사람 3)아버지 4)순간일지 영원일지 5)남성 아내 6)바다를 건너려는 나비들처럼, 총 6부와 에필로그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느낀 점 

이 책을 통해서 육아공부를 제대로 했습니다. 서한영교와 그의 아내와 육아를 분담하면서 경험했던 사소하면서 굵직굵직한 이야기들이 담겨져 있습니다. 구체적이고 사실적이면서도 참 재미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시작장애인 아내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그는 그녀를 애인이라고 사랑스럽게 부릅니다. 그리고 애인과 살아가는 삶, 그 자체를 받아들이고 어려움도 유쾌하게 받아들이는 그들의 모습도 참 사랑스러워보였습니다. 편견없이 살아가려는 그의 결심에, 보통인 사람들은 오히려 편견의 잣대를 갖다대고 그들을 동정하거나 걱정합니다. 그들 입장에선 그들을 위한 것이라 하지만, 그건 그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월감을 과시할 뿐입니다. 이 책을 읽기 전엔, 여성에게만 치우친 여성의 불리한 환경과 시선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진 않을까, 하는 염려가 있었지만, 그렇지 않아서 안심했습니다. 남성과 여성이 삶이 구분될 수 밖에 없었던, 사회분위기도 한 몫한다는 것도 들여다 볼 수 있고요. 대신 가부장적인 남성 중심 사회로 굳혀진 인식과 관념을 바로 잡으려는 본보기를 보여줍니다. 덤으로 , 그가 페미니스트의 삶을 선택하고부터, 남성들 사이에서 적응하는 여러가지 어려움도 있었지만, 서한영교 시인 특유의 고집이 있고 소신이 있어서, 그는 주변을 서서히 설득시키는 힘도 덤으로 있는 듯 했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존재는 살아있는 그 자체라도 소중하고 가치있다"는 신념을 너무나 좋아합니다. 그의 글을 따라 가며 모든 존재들이 평등합니다. 굴곡없이 조화롭게 순환하는 자연의 모습이 그대로 투영되는 것 같아서, 그의 글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남자라고 해서 파랑색 옷을 입어야 하고, 여자라고 해서 핑크색 옷을 입어야 한다는 편견이 없어서 좋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경계가 없어서 좋았으며, 노력만 한다면 함께 공존하며 살아갈 수 있는 삶에 대한 희망도 엿보입니다. 무조건 성공적인 삶에 치우치지 않고, 실패를 하더라도, 어려움과 마주해도 살아가려는 의지가 아름다워 보일 수 있다는 것도 참 좋았습니다. 특히 시인 서한영교의 문체가 신기했어요. 비판의 글도 딱딱하지 않고 부드러웠거든요. 냉소적이고 직설적인 표현을 하는 나에겐 없는, 부드러운 표현이라 배우고 싶더라고요.


책 전반에 에세이 형태입니다. 페미니즘과 관련한 여러가지 에피소드들이 담겨진 중간중간에 아주 생소하지만 알고픈 철학, 문학, 사회, 경제와 관련한 글들의 한 구절 한 구절이 인용되어 있습니다. 적재적소에 인용 문장들을 담아 글의 흐름을 풍성하게 그만의 필력이 참 부럽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여전히 부딪히고 대두되는 양성평등문제, 장애인/비장인애인에 대한 편견, 부모로서 성장과정, 경제적인 한계, 육아와 양육을 위한 최저생계비마련 등과 관련한 사실적인 이야기들을 언급하며 이들에 대한 대안책도 제시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회경제 체제 속에서 양성평등에 관한 문제를 비롯한 여러가지 문제들을 떠안고 아둥바둥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도, 체감하게 하는 에세이입니다. 물론 읽다보면, 에세이 형태인 사회, 경제, 철학 그리고 문학을 담은 (개인적인 판다에 의하면) 인문서이기도 합니다. 


여자라고 해서 무조건 억압된 인생을 살았으니, 측은하게 봐달라는 내용의 글이 아닙니다. 양성 평등에서 시작되어야 하는 것을, 남성중심으로 인식, 관념, 이념, 체제 그리고 권리 등이 너무 불합리하게 치우쳐 있는 것을 바로잡으려는 것 뿐입니다. 고생스럽고 힙겨운 삶을 사는 건, 세상에 존재하는 남녀노소 누구할 것 없이 힘들고 고된 건 똑같은데, 왜 양성 중 다른 한 성에만 기준을 잡아서 한쪽은 억압되어야 하고 박탈되어야 하는지 이해가 안되는 건 사실이거든요. 한쪽의 성이 존중받는 만큼, 또 다른 한 쪽도 존중받아 마땅하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야 고생배틀 덜 하고, 서로 응원하며 조화롭게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을 추천드리고 싶은 분들

남녀의 가치를 운운하며 불합리하게 돌아가는 세상을 보고, 우리는 어떤 시선을 가지고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하는지에 대해 늘 궁금증을 갖고 있는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우리의 편견없는 시선과 태도에 따라, 우리가 발을 딛고 살아가는 그 삶이 원활하게 돌아갈 것이라는 희망도 걸어봅니다.


책 속 글귀

p. 17-18 불공평한 세상이 불편해졌다. 세상은 그대로인데, 나만 불쑥 바뀐 것처럼. 너무나 확실했던 남성의 세계는 점점 내게 불확실해졌고, 아무렇지도 않게 여성을 비하하는 남성들의 언어에 자주 불끈거렸다. 불화를 겪은 적 없던 젠더-세계에서 나는 점점 불온해져갔다.


p. 24 사무엘 베케트의 격언 "실패하라, 더 낫게 실패하라."가 떠오르며, 남성 페미니스트로서의 나는 어쩌면 평생 끊임없이 더 낫게 실패하기 위한 과정에 있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성 페미니스트로서의 운명이란 끊임없이 실패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것도 "평생 거듭"해야만 하는 실패 속에 있어야 할 운명인지도 모른다.


p. 42 사랑을 포기할 이유는 앞으로도 끊임없이 생길 것이다. 사랑 앞에서 절망하게 되는 날도 마찬가지로 끊임없을 것이다. 끝도 없는 불안과 좌절 앞에 마주해야 할 것이다. 이 고통의 과정을 얼마나 잘 겪어내느냐에 따라서 사랑의 품위가 만들어질 것이다.


p. 59 나에게 임신, 출산, 육아는 그야말로 미지였다. 미지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라곤 책을 뒤적거리면서 만난 입체감 없는 2차원의 세계뿐이었다. 미지의 세계를 향한 탐험을 준비하다 보니 눈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임산부, 신생아에게 눈길이 자주 머물렀다.

p. 66 이사를 하면서 우리는 다짐했다. 집을 근거로 해서 삶을 꾸려 나가겠다. 집을 소외시키지 않겠다. 남성-공적 영역/여성-사적 영역으로 성 역할을 분배하는 공간 배치를 거부하겠다. 집을 우리 삶의 장소로서 가꾸겠다. 그러면서 우리는 서로에게 '집사람'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p. 86 OECD 국가 중 연평균 노동시간 1위. 그러나 가사 분담률은 꼴지. OECD 삶의 질 평가에서도 하위권. 그 평가 항목 중 '삶과 일의 균형'은 거의 꼴지. 우리 시대의 아버지들은 격렬한 노동에 시달린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본격적으로 돈벌이에 나선다. 최악을 경신해가는 실업률과 점점 둘레를 넓히고 있는 위험 사회는 아버지들을 더욱 아등바등하게 만든다.


p. 87 아버지만 가장이 되어버린다. "외롭고 높고 쓸쓸"(백석)하기까지 한 아버지들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무게를 혼자 진다. 그게 문제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는 것. 그 짐을 마당히 가장이 지어야 할 세상의 무게라 여기고 그걸 미덕으로 삼으며 살고 있다.


p. 92-93 아이를 기다리면서 만나게 되는 언어들이 있다. 자궁, 유모차, 산모 수첩 등등. 기존 젠더 관성이 내포되어 있는 이런 낱말들을 고쳐 불러본다. 아들이 자라는 집이라는 뜻의 자궁이 아니라 세포가 자라는 집이라는 의미의 포궁으로. 유모차가 아니라 유아차로. 산모 수첩이 아니라 아기 수첩으로. 영 어색하다. 50번은 반복해야 한다. "언어로부터 벗어날 가능성은 언어 안에만" 있다는 이성복 시인의 말을 믿어본다.


p. 131-132 살림에는 가사노동뿐 아니라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정서노동이 있다. 정서노동은 집사람들의 감정을 돌보는 일, 아이의 훈육과 교육도 포함된다. 집안의 정서적 교류를 가능하게 하는 노동이다.(중략)이 정서노동은 내가 어려워하는 부분 중 하나다. 우리 집은 어머니가 거의 모든 정서노동을 담당하는 집사람 노동자셨는데, 친척들의 안부를 묻고, 기념일들을 챙기고, 선물을 준비하고, 가족 행사를 준비하고 등등, 어머니가 모든 것을 하시고 아버지가 한 말씀씩 덧붙이는 식이었다.


p. 168 일반적으로 장애인을 바라보는 주된 관점 중 하나는 '딱한 사정이 있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다. 이는 비장애인의 우월함을 전제하고 있다. 단지 장애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쉽게 약자가 된다. (중략) 또 복지의 관점에서 장애인을 수혜의 대상으로 묶어버린다. (중략)이렇게 만들어진 가치는 정상/비정상으로 나누어 장애를 치명적인 결핍의 조건으로 여기게 하여 장애를 인간의 다양한 조건들 중 하나일 뿐이라는 인식에 가닿지 못하게 한다.

p. 303 내가 내 삶을 배반하지 말아야겠다. 카뮈는 "자유롭지 못한 어떤 세계를 상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단지 당신이 실존한다는 그 사실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반항의 행위가 되도록 절대적으로 자유로워지는 것"이라고 했다. 내가 실존한다는 사실 그 자체로 이 지긋지긋한 가부장(남성, 국가, 자본) 세계에서 하나의 반항 행위가 되는 '시민과 시인으로서의 시시한 일상'을 떠올려본다.



본 포스팅은 서평단 참여로 제공된 도서를 직접 읽고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