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도 웃던 날들 - 차가운 세상에서 뜨겁게 웃을 수 있었던
정창주 지음 / 부크럼 / 2019년 2월
평점 :
품절


 

 

남편과 나는 평소에 우리의 삶을 두고 진지하게 고민하다가 그런 대화가 너무나 진부하면 힘을 빼고 싶어서 아무 생각없이 앉아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보든지 아니면, B급 병맛 영화(지극히 남편 취향)을 보는데요. 개인적으론 앞뒤가 맞지 않으면 딴지를 걸고 싶어하는 성향인데, 남편따라 B급 병맛을 보고나면 딱딱 맞아 떨어져야 한다는 강박증이 사라지기도 하더라고요. 그래서, 이번엔 기분 전환을 위해서 B급 병맛의 풀내가 풀풀 풍기는 정창주의 분노도 웃던 날들이라는 대조적인 단어로 조합을 이룬 에세이 한편 읽어봤습니다.

 

 

■ 분노도 웃던 날들 내용 및 구성

 

이 책은 저자의 대학 1학년 1학기 2007년 과거 시점과, 2019년 현재의 시점을 교차하면서 지극히 저자의 관점을 적어내려간 좌충우돌 B급 병맛 에세이입니다. 2007년 과거 시점엔 수능이 끝나고 민증이 나온, 드디어 대학을 입학하면서 성인이 된 저자는 원대한 꿈보단, 여느 남자 성인들이 생각하는 아주 응큼한 발상과 허세를 표출하는 자유로움을 만끽하는 지극히 원초직인 꿈과 환상에 젖어 있습니다. 반대로 2019년 현재 시점에선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뛰어든 저자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생각보다 역겨운 사회생활에 찌들어 있고, 자기다움을 갈망하며 자가다움을 추구하는 저자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책의 중간중간에는 저자가 그린 듯한, 수준급의 만화가 그러져 있고, 그림에 맞는 B급의 주옥같은 글귀도 적혀있습니다.

 

 

 

■ 느낀 점

 

이 에세이의 전반적인 느낌은 제목에서 보여지는대로 B급 병맛입니다. 저자가 그렇게 자처하고 쓴 에세이예요. 가식이라곤 1%로도 섞지 않는, 그래서 표현의 위험수위가 높은 편입니다. 여자들이 보면 여성협오 발언을 한다는 느낌이 들정도로 눈살을 찌푸리게 만듭니다. 그런데, 전적으로 전형적인 남자사람의 뇌구조를 들여다본다는 생각도 들어요. 엑스레이나 MRI로 속을 훤히 들여다보는 그런 느낌이요. 수능의 굴레를 벗어나 성인이 되면 허용되는 모든 것(?)을 즐기고 싶어서 아주 환장(?)하고 허세가 덕지덕지 흘러넘칩니다. 글의 전개가 지나치게 사실적이여서, 야한 영화 한편 들여다 보는 기분도 들고, 진실을 너무 적나라게 들여다 보는 기분이 들어서, 중립적인 사고로 읽는데 힘이 들긴 했습니다. 앞서 언급했지만, 저자가 아예 작정하고 솔직하게 쓴 에세이라, 독자들보고 사전에 감수하라는 듯, 서문에 글을 적어두긴 했지만 그래도 그의 글을 적응하는 건 모험과도 같았어요. 하지만 전체적인 맥락으로 보면 읽기 힘들지만, 부분 부분 저자가 고뇌하는 글을 보면 와닿는 글귀가 많아서, 아래와 같이 정리했습니다. 저자는 자유분방한 인물(?)입니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과 맞지 않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어느정도 타협을 하며 살아가고 자기 성찰을 합니다. 저자만의 생각의 깊이를 이해하는데 시간이 좀 걸리긴 했으나, 자기다움을 절대 포기하지 않는, 그의 태도를 봤을 때, 어느정도 공감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나도 세상에 대한 불만이 많고, 가끔 불쑥 불쑥 튀어나오는 어른들과 사회에 대한 반항심도 있으며 대신 이들과 적절하게 타협을 해야한다는 것정도는 아는데, 잘 안되서 마음으로 육두문자를 품을 때가 있거든요. 표현의 차이는 있을 뿐, 나와 비슷한 생각이 담겨있기도 합니다.

 

 

■ 이 책을 추천드리고 싶은 분들

 

자기다움을 추구하고 싶은데, 막상 표출하는데 힘이 들고 대리만족을 느끼고 싶은, 지극히 B급 병맛을 좋아하는 분들에게"만" 추천드립니다.

 

 

■ 책 속 글귀

 

p. 25 (중략) 미안하지만, 난 여느 에세이 작가들처럼 당신에게 어떤 그럴싸한 위로나 공감의 말 따위 또한 해주지 않을 생각이다. 그런 짓도 그럴 만한 깜이 되는 놈이나 하는 거다. 이건 그냥 어떤 망나니가 간신히 어른이 된 이야기다. 말하자면, 당신은 절대로 피해 가야 할 인생 중 하나라는 것이다. 무서워 죽겠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도망가라.

 

p. 36 쥐뿔도 없는 주제에 꿈이 크다고? 괜찮다. 꿈은 분수에 넘치게 크게 가져도 좋다. 설혹 산산히 부서지더라도 그 조각만큼은 클 테니까.

 

p. 91-92 얼핏 보면 사람들이 다 다른 모습인듯하면서도, 자세히 보면 또 그게 아니라는 것이다. 대부분이 다 똑같다. 입고 다니는 옷, 헤어스타일, 향수 냄새, 심지어 애인의 생김새나 갓난 아기들 모습까지 매우 비슷하다. 그런 모습을 보면, 난 사람들이 너무 자기 자신을 모르고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저 인터넷이나 미디어에서 핫하고 유행한다는 흐름에 편승하여 자신의 모습을 틀에 맞추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래서 진짜 자기 모습이 없다.

 

p. 92-93 정서나 마음 씀씀이까지 유행을 따라간다. 어떤 드라마에서 머리를 쇠망치로 서너 대 맞은 것같이 엉뚱한 말만 골라하는 사차원 캐릭터가 유행하면, 그해 유독 정신을 어디에다 두고 온 것 같은 사람들이 많아진다. (중략) 의식적으로라도 남과 달리 사는 연습을 하는 게 좋지 않을까라고 생각해본다. 남들 하는 대로 하고 살 거면 뭐 하러 살지? 라는 생각도 든다. 괜히 난 하고 싶지 않고 따라 하고 싶지 않은데, 상대방과 주파수를 맞추겠다고 내 모습까지 바꿔버리면 결국에 내가 가지고 있는 고유한 모습 자체가 아예 사라져 버리진 않을까?

 

p. 110 아직은 돌아오는 월요일 출근길이 어색하다. 그래, 결국 이렇게 평범하게 나이 들어가는 건가. 이런 생각은 나를 굴종하게 만드는 것 같다. 평범하게 살고 싶지 않다. 평범하게 사느니 차라리 죽고 말지라는 주의다. 내가 어차피 너처럼 살고, 또 다른 너처럼 살다 갈 거 같으면 어차피 난 없어도 되지 않아? 어차피 너나 나처럼 살다 갈 사람들은 지금도, 앞으로도 발에 채고도 남을 테니까.

 

p. 128 시간에겐 자비란 없다. 일절 봐주는 것도 없다. 그래서 아무리 노력해도 이 시간이란 놈을 거스를 수 없게 되어, 그럴싸한 준비없이 속수무책으로 죽음과 가까워지게 되는 것이다. 나이가 드니 이렇게 하나둘씩 몸에 하자가 오는 게 직접적으로 느껴진다. 매스컴에 나와서 자신의 성공담을 청춘들과 공유하는 나이 지긋이 먹은 갑부들이 항상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 젊음은 돈이랑 못 바꿔요. 어릴 때만 해도 이 말, 희대의 개소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꽤 공감이 가는 말이기도 하다.

 

p. 146 우리는 보통 어릴 때부터 사회 속의 사람은 홀로 살아갈 수 없다고 어른들에게 배워온다. 그렇기 때문에 혼자 산다는 건, 즉, 제대로 살고 있지 못함을 은연중에 내비치는 자전적 고백 같은 걸로 인식되곤 한다.

 

p. 148 어쨌든 내가 생각하는 사랑의 가장 큰 단점은 사랑을 하는 동안 시야폭이 무척이나 좁아진다는 것이다. 내 모든 일상의 타임테이블을 상대방의 것에 안배하고 맞춰야 하다보니 볼수 있고 경험할 수 있는 환경조차도 무척이나 제한된다. (중략) 내가 말하는 건 관념이다. 혼자 있을 땐 줄곤 잘했던 비판적이고 합리적인 생각, 즐거운 상상, 나에 대한 고민 같은 걸 할 시간이 없어진다.

 

p. 173 어렸을 때부터 줄곧 일관되게 생각해오기도 했지만, 나이가 많다고 무조건 어른 대접을 받는다는 건 말이 안된다고 생각한다. 때론 나도 나이에 맞지 않는 짓거리를 한다면 응당 아랫사람에게라도 조인트를 까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두 번 다시 불썽사나운 실수나 행동을 하지 않는다.

 

p. 200 어른이란 것들은 앞으로 살아가며 얻을 수 있는 것들에 대한 기대보다 잃게 될 것들에 대한 불안으로 오늘 하루를 낭비하는 순 구제불능 머저리들밖에 없다. 그래서 난 어른이 되는 게 싫다. 어느 외국 영화의 주인공처럼, 낡은 배낭 하나와 제일 멋들어진 페도라 하나 걸치고 기차 짐칸에 몸을 싣던 돼지 똥내 나는 헛간에서 잠을 자더라도 늘 가슴 뛰고 예측할 수 없는 내일을 만드는 바람 같은 청년의 모습으로 살고 싶다.

 

p. 202 하지만 지금도 아예 자유롭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현재의 나에 대한 예의가 아닐 것이다. 지금도 나름의 자유를 느끼며 살고 있다. 우선, 남은 여가 시간엔 오로지 내가 하고 싶은 활동에 집중하며 산다. 평일 퇴근 뒤에는 맛있는 요리를 해먹고, 이렇게 글을 쓰고, 돌아오는 매주 미술학원에 가서 그림을 그리고, 책을 보고, 괜찮은 옷이 눈에 띄면 한두 장 사기도 하고, 정말 재미있는 영화가 개봉하면 보기도 하고, 사람 구경도 하고, 좋은 전시회가 생기면 그걸 보러 가기도 한다. 감자기 이런 생각도 해본다. 대학시절의 내가 지금의 나를 만나면 과연 뭐라고 말할까? (중략) 적어도 최악으로 크진 않았네. 애썼다. 그럼 지금의 나는 역시 당했다는 듯이 무척이나 유쾌한 목소리로 웃을 것이다.

 

 

■본 포스팅은 서평단 참여로 제공된 도서를 직접 읽고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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