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왕자>로 본 번역의 세계
이정서 지음 / 새움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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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를 참 좋아합니다. 그래서 영어와 많이 친해지고 싶어서 번역에 관심을 가졌고, 번역을 하면서 영어를 한국어로, 한국어를 영어로 옮기면서 수정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을 참 재미있어 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어느 날, 번역서 즉 번역된 여러 책들을 읽을 때 그 말들이 눈과 머리에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걸 확인했습니다. 처음엔 독서력과 이해도의 문제라고 단정지었지만 나중엔 번역에도 오역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오역이 존재하는 이유는 번역의 세계에선 각 나라의 문화에 맞도록 번역하기 위해 원문의 내용을 생략하거나 원문을 벗어난 해석을 덧붙인 지나친 친절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알게된 이후부턴 번역이 그저 재미있는 분야가 아닌, 책임감이 따르는 분야로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번역에 관하여 <어린 왕자>로 본 번역의 세계를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번역은 원래 작가 문자에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감동을 줍니(p. 6)다"라는 서문의 글귀가 와닿았습니다.


■ 어린 왕자 내용 


어린 시절 화가가 되고 싶었던 "나"는 어른들이 그림보다는 지리, 역사, 수학, 문법 등 스펙을 쌓는 쪽으로 권했고, 그로 인해 "나"는 화가가 되는 꿈을 포기하게 됩니다. 다른 직업을 선택해야 해서 비행기 조종사를 선택해야만 했습니다. 어느 날, "나"는 비행을 하다가 사하라 사막에 불시착하게 되고, 특이한 복장을 한 사내아이를 만나게 됩니다. 그 사내아이는 B612 소행성에서 온 어린 왕자였습니다. 어린 왕자는 "나"에게 그의 소행성에서 뿌리를 내린 도도한 장미 꽃을 떠나 다른 행성을 여행하며 지구별에 닿은 이야기를 해줍니다. 어린 왕자는 첫 번째 별에서 세상 모든 것을 자신의 신하로 보는 왕, 두번째 별에서 교만한 사람, 세번째 별에서 술주정뱅이, 네번째 별에는서 숫자를 세고 있는 사업가, 다섯번째 별에서 가로등지기, 여섯번째 별에서 탐험가의 이야기를 기다리는 지리학자를 만나는데, 어린 왕자 입장에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존재들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지리학자가 알려 준 일곱번째 별 지구에 다다릅니다. 어린 왕자는 지구별에서 그의 소행성에만 존재하는 줄만 알았던 장미꽃이 정원에 오천송이가 있다는 것을 눈으로 보고 깜짝 놀랍니다. 그리고 어린 왕자가 이 사실을 두고 그의 장미꽃이 자존심 상할 것을 걱정하고, 그렇게 자존심 강한 장미도 흔한 존재이며, 자신 또한 그렇게 좋은 왕자가 아니라는 걸 깨닫고 몹시 슬퍼합니다. 그리고 이후에 지혜로운 사막 여우를 만나서 가까이에 있는 유일한 존재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곤 그의 행성으로 돌아갈 결심을 합니다.



■ 어린 왕자로 본 번역의 세계 구성 


<어린 왕자>로 본 번역의 세계는 프랑스어 원문을 기반으로 한국어로 번역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저자는 직역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원문과 번역문을 1:1로 대응하여 직역은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해보고 싶었다(p. 7)고 언급합니다. 거기에 원작자가 쓴 주어, 서술어, 대명사, 쉽표, 마침표, 접속사 등 작가의 서술 구조와 다르게 역자의 임의로 더하거나 빼고, 의역한 곳이 단 한 군데도 없다는 것을 알아볼 수 있고, 직역된 문장들이 얼마나 감동적인지(p. 7)도 알아볼 수 있음을 언급합니다.


이 책을 쓴 저자의 목적성에 부합되도록, 이 책은 <어린 왕자> 프랑스 원문 내용과 저자가 번역한 번역문장, 그리고 기존에 번역된 <어린 왕자> 의 일부 문장들을 비교하면서 오역을 지적하고 이를 보완하는 내용을 담은 Note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 느낀 점


권장 고전 중에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를 빼놓을 순 없죠. <어린 왕자>의 전반적인 줄거리는 잘 모르고 어린 왕자와 사막 여우가 주고 받은 "길들여진다는 것"이 소중함을 일깨워 준다는 구절이라는 건, 귀동냥으로 알곤 있었습니다. <어린 왕자> 자체적인 줄거리가 궁금했었는데 나의 관심분야인 번역과 연관지어 오랜 고전을 접할 수 있어서 유용했습니다. 아쉬운 점이라고 한다면, 프랑스어 기본을 잘 모르다보니 객관성을 유지하면서 저자가 주장하는 번역을 이해하는 건 쉽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물론, 영어 번역본의 내용을 비교할 땐 조금 보이긴 했고요. 반대로 좋은 점이 있다면, '직역'에 대한 관점이 달라졌다는 점입니다. 예전에 이웃블로그를 통해서 번역에도 오역이 있을 수 있다는 걸 인지한 적 있습니다. 그 또한 원문에 충실할 것을 지향하는 쪽이었고, 원문을 벗어난 지나친 친절로 만들어진 문장 혹은 한국정서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생략된 문장 등을 일일이 지적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역자들의 공공의 적이 되어서 늘 비난을 받는 듯 했습니다. 이 책의 저자 또한 번역의 세계에선 분명히 뜨거운 감자로 많이 달궈지고 있을 것이라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기존에 번역된 문장만 봤을 땐,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정확하게 파악하긴 힘들어요. 어느정도 문장들을 오고가며 비교하면서 오역을 파악 해야하는데, 그 또한 쉬운 작업은 아니더라구요. 다만, 원문에 충실한 번역도 의미가 통할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어서, 굳이 역자 임의로 과잉 친절로 해석을 더하거나 있어야 할 문장을 빼는, 편집의 기술을 발휘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이런 번역을 추구하려면 아주 고독한 싸움에 돌입해야겠지요. 번역의 세계는 여전히 뜨겁습니다. 무엇이 옳고 그런지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 탁상공론은 현재 진행 중입니다. 번역에 관심이 많다보니, 번역에 관해서 참 많은 말을 늘어 놓았네요.


암튼, <어린 왕자>로 본 번역의 세계를 통해 <어린 왕자> 원문의 저자 생텍쥐 페리가 어른이 된 "나"의 시선에선 이야기를 진행하고, "어린 왕자"의 어린 시선에서 이야기를 진행하는 것을 구분지을 수 있었어요. 무엇보다 기존에 번역된 <어린 왕자>는 어른의 시선이 개입된 어른의 언어로 번역되었다고 짐작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원문에 충실한 <어린 왕자>를 읽어보는 것이 참 흥미로워요. <어린 왕자> 이야기는 마음에 큰 여운을 남겨주기도 합니다. 솔직히 <어린 왕자>에서 이야기하는 바가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이 조금은 어렵게 느껴졌습니다. 은유와 비유로 세상 어른들의 모순을 그리고, 나 자신도 그렇게 대단한 존재가 아니며 무엇보다 소중한 것은 가장 가까이에 있다는 교훈을 담고 있는데, 이를 이해하고 글로 풀어내기가 솔직히 쉽진 않았네요. 그래서 여러번 읽고 또 읽다보니, <어린 왕자> 이야기가 마음에 깊이 세겨지는 듯 합니다. 적어도 "어린 왕자가 여행했던 행성의 어른들처럼, 그런 모순적인 어른은 되지 말고, 세상에 찌든 어른의 시선으로만 세상을 바라보진 말자.."라는 다짐을 하게 됩니다.


■ 어린 왕자 속 좋은 글귀


p. 69 내 친구가 그의 양과 함께 떠난 지도 벌써 6년이 흘렀네요. 내가 이것을 여기에 묘사하려 애쓰는 것은 그것을 잊지 않기 위해서예요. 친구를 잊는다는 것은 슬픈 일이죠. 모든 사람들이 친구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랍니다. 그리고 나 또한 계산하는 것 말고는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어른처럼 되어 버린 것인지도 모르죠.


p. 109 "만약 누군가 수백만 개의 별들 가운데 유일하게 존재하는 꽃 한송이를 사랑한다면, 그는 그것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할 거야. 그는 저신에게 말할 것야. '내 꽃이 저기 어딘가에 있어…'그런데 만약 양이 그 꽃을 먹어 버린다면, 마치 그에게, 한순간에 모든 별들이 존재하지 않게 되는 거야! 그것이 중요하지 않다고!"


p. 159 "너는 그러면 네 자신을 재판하거라." 왕이 대답했다. "그것이 무엇보다가장 힘든 일이다. 남을 재판하는 것보다 자신을 재판하는 일은 정말 힘든 일이다. 만약 네가 너 자신을 올바로 재판하는 데 성공한다면, 너는 참으로 현명한 사람이다."


p. 239 "물론이야" 여우가 말했다."너는 아직 내게 수많은 작은 사내아이들처럼 한 작은 사내아이에 불과해. 그리고 나는 네가 필요하지 않아. 너 또한 내가 필요하지 않고. 나는 네게 수많은 여우들처럼 한 마리 여우에 지나지 않는 거야. 하지만, 만약 네가 나를 길들이면, 우리는 서로서로 필요하게 되는 거지. 너는 내게 세상에서 유일한 존재가 되는 거야. 나는 네게 세상에서 유일한 존재가 되는 거고 ……."


p. 297 "사람들은 더 이상 뭔가를 알기 위해 시간을 쓰지 않아. 그들은 가게에서 전부 만들어진 것들을 사지. 하지만 친구들을 파는 곳이 없는 것처럼, 사람들은 더 이상 친구를 가질 수 없어. 만약 네가 친구를 원한다면, 나를 길들이렴!"


p. 305 "안녕"여우가 말했다."내 비밀은 말이야. 그건 매우 단순한 거야. 우리는 단지 마음으로만 볼 수 있는 거야. 절대로 필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아."


p. 341 "그래." 나는 어린 왕자에게 말했다. "집이건, 별이건, 사막이건 그들을 아름답게 하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지!"


p. 343 그의 반쯤 열린 입술이 살짝 미소 지을 때까지 나는 여전히 생각했다. '이 잠든 어린 왕자가 이렇듯 강하게 나를 감동시키는 것은 한 송이 꽃에 대한 그의 변함없는 사랑 때문일 거야. 등불의 불꽃처럼 그를 빛나게 하는 것도 한 송이 장미의 형상 때문일 거야, 심지어 그가 잠들었을 때조차…….' 그리고 나는 그것이 여전히 더 부서지기 쉬울 것라고 짐작했다. 등불은 잘 지켜야만 한다. 한 번의 바람에도 꺼질 테니…….


p. 377 "그 꽃처럼 말이야. 당신이 내게 마시게 해준 물은 음악 같았어. 그 도르래와 밧줄 때문이지… 기억하지… 그게 얼마나 좋았는지"


■ 번역의 세계 속 유용한 글귀


p. 95 번역이 잘못되면 사실은 원래의 교훈이나 감동은 사라지고 없는 것입니다. 그 흔적만 남게 되는 것일 뿐.


p. 126-127 '모든 어른들은 처음에는 아이였습니다.' 생텍쥐페리가 이 책 서두에 한 말입니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우리는 나이가 들면서 이 같은 사실을 까마득히 잊고 살아갑니다. 문득문득 '나이가 중요한 게 아닌데…' 자책하면서 말입니다. (중략) 어느 날 '어린 왕자' 앞에 화사한 모습으로 나타난 꽃은 사실 처음에는 어린 왕자의 '아이'나 다름없는 존재였습니다. 씨앗이 움틀 때부터 어린 왕자가 가꾸어 온 것이니까요. 우리에게 어린 왕자가 '꼬마'이고 '아이'이듯 꽃은 어린 왕자에게 처음에는 '아이'였던 것입니다. 그 아이는 처음에 자기만의 언어로 세상과 대화하려 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그러하고, 우리가 아이였을 때 그러했듯이.


p. 162 번역은 원래 한 언어를 다른 언어로 바꾸는 것이기에 기본적으로 '의역'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번역은 그 '의역'의 범위를 확대해서 이상할 정도로 '해석'에 집착합니다. 한마디로 있는 그대로 옮기면 단정하고 의미 깊은 문장을 역자 임의로 해석해 어설픈 문장으로 만드는 데 익숙해 있는 것입니다.


p. 238 문학은 보통 인문서와 다릅니다. 한 단어가 여러 의미로 해석될 수 있지만, 실상은 앞뒤 문맥을 살피면 그 단어가 어떤 의미로 쓰였는지를 거의 정확히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틀리는지 맞는지를 검증하는 것도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이 정말 작가가 의도한 정확한 의미인지를 파악하는 일은 그 앞에서부터 정확히 직역이 되었다는 전제하에서만 가능한 일입니다.


p. 332 제대로 된 번역은 반드시 직역이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모든 번역은 기본적으로 '의역'입니다. 한 언어의 의미를 타 언어의 의미로 옮기는 일이니 말입니다. 그조차 부정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주장하는 직역의 의미는 곧, 작가의 문체를 '최대한' 살려서 그 뜻을 '가능한' 정확히 새기자는 데 있습니다.


p. 332-333 기본적으로 작가 자신의 의도를 전달할 목적으로, 가장 잘 읽히게 만든 문장이 원래 원문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작가도 자신의 문장이 오해받거나 어렵게 읽히는 걸 원치 않을 것입니다. (중략) 그런데 그렇게 긴 시간 고뇌하고 다듬어 만든 '좋은 문장'을 역자들이 번역이라고 해서 마음대로, 대명사를 바꾸고, 쉼표를 없애고, 행갈이를 하고 어투를 바꾼다면, 그것이 원문보다 더 잘된 문장이라고 볼 수 있는 근거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p. 344 혹자는 번역에 있어서의 문장구조의 일대일 대응은 불가능하다며, 번역 현장에서 그것은 탁상공론에 불가하다고까지 주장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절대 그렇지 않는 것입니다. 오히려 어떤 문장이 직역으로 안 되겠다고 느껴 임의로 의역을 하는 순간 그건 곧 '오역'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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