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의 최전선 - ‘왜’라고 묻고 ‘느낌’이 쓰게 하라
은유 지음 / 메멘토 / 2015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글쓰기에 관심을 가진 건 채 3년도 되지 않습니다. 글을 읽고 쓰는 것 자체에 흥미가 없던 사람이었어요. 영화를 본 후 소감 및 감상평을 적을 때도 무슨말을 적어야 할지 몰라서 딱 5줄만 썼던 적도 있습니다. 나의 생각을 정리해서 글로 옮겨 적는다는 건 그만큼 나에게 어려웠습니다. 솔직히, 맞춤법도 맞는지 틀렸는지 몰라서 맞춤법이 애매하면 사전을 검색해서 맞춤법을 확인합니다. 특정 매체를 경험하고 내 생각 그대로 옮겨 적는다는 건 여전히 어렵기만 합니다. 잘 쓰고 싶다는 갈증은 있는데 어떻게 잘 써야하는지 몰라서 나의 생각과 글은 물과 기름처럼 따로 노는 것 같습니다. 글쓰는 방법과 방향성을 알고 싶어서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의 글을 많이 읽어봅니다. 감탄이 저절로 나옵니다. 글에 대한 분석력은 없어도, 눈이 글따라 아무런 걸림없이 수수술 굴러가고 무슨 말인지 나도 모르게 알아보고 고개를 끄덕일 때, 무한대로 퍼져있던 나의 생각들이 정리되는 글을 읽을 때, 어떻게 이런 글을 쓸 수 있지? 라며 감탄을 쏟아냅니다. 요즘 핫한 은유작가의 글을 읽으면 감탄하며 읽게 됩니다. 그녀가 어떻게 와닿는 글들을 썼는지 궁금해서 글쓰기의 최전선을 읽어봤습니다. 



■ 글쓰기의 최전선 내용


이 책은 저자가 <글쓰기의 최전선>이라는 강좌명의 글쓰기 수업을 통해서 저자 자신이 글쓰기에 관해 학인들에게 노하우를 나눠(?) 준 지난 4년간의 경험을 담았습니다. 여기서 노하우란 목적성이 있는 글을 잘 쓰는 방법이 아닌 학인들 스스로 생각하고 자신만의 글을 쓸 수 있는 자기주도적인 방법이라 감히 언급해봅니다. 즉, 자신과 자신이 속한 삶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p.31)을 던지고, 자신만의 생각과 욕망을 직면하여 글로 풀어내면서 스스로를 알아가는 글쓰기 노하우를 담고 있습니다. 이 책은 글을 잘 써야 한다는 기준과 목적성을 두지 않고, 자신의 생각과 마음에 기준을 두고 글을 쓸 수 있도록 이끌어 줍니다. 이 책은 자신의 목소리를 내며 삶을 용기있에 말할 수 있는 글쓰기(1부 삶의 옹호자로서의 글쓰기), 각자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 시를 낭독하여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적어가는 글쓰기(2부 감응하는 신체 만들기), 상식과 금기에 도전하여 분석하고 자신의 관점을 들여다보고 질문하는 글쓰기(3부 사유연마하기), 삶에 근거한 살아있는 정직한 글쓰기(4부 추상에서 구체로), 나의 언어로 타인의 삶을 번역하는 글쓰기(5부 르포와 인터뷰 기사쓰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 느낀점 


우연한 기회로 어느 신문에 실린 은유작가의 칼럼을 읽었습니다. 특정 사회문제와 인식을 두고 글을 쓰는데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중립적이고 설득력있는 글을 보고 놀랬습니다. 잘 모르는 이슈도 바로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그녀의 글솜씨를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어요. 어렵지 않는 표현들도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게 아주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글이라고 해야할까요? 뭐라 표현을 잘 못하겠어요. 거기에 깔끔하게 맞아 떨어지는 글의 전개. 딱딱하지 않게 느껴지는 것이 신기방기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그녀의 글쓰기엔 어떤 철학이 담겨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은유작가는  글과 책을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이미 유명하더라고요. 나만 몰랐던 거예요. 암튼, 그래서 그녀가 쓴 책 중에 글쓰기와 관련한 "글쓰기의 최전선"이라는 책을 우연한 기회에 접할 수 있었습니다. 글쓰기에 관한 그녀만의 철학은, 글쓰기는 나를 시작으로 써내려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나만이 쓸수 있는 나만의 글쓰기에 중점을 두고 글을 써내려가는데, 이는 글을 쓰고 싶은 사람 누구에게나 적용될 수 있는 철학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누구인지 파악하고, 내가 왜 살고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 질문을 던지면서 내 존재와 본질, 가치를 찾아나서는데서 시작하는 글쓰기란, 참 매력적이더라구요. 그녀가 책에도 언급했지만, 기자가 되기 위한 글쓰기, 소설가가 되기 위한 글쓰기가 아닌 자신에 대해, 삶에 대해, 세상에 대해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면서 글을 쓰고, 알을 깨듯 단단하게 굳혀있던 자신을 틀을 깨고 세상과 마주하고 친해질 수 있는 글쓰기 강의를 직접 듣는 듯 해서, 참 흥미롭고 재미있었습니다. 가장 어려워 하는 시를 음미하며 시를 통해 나를 보고 나의 감정을 관찰하고, 타인에게 접근하여 인터뷰를 하고 나만의 언어로 타인의 삶을 써내려가는 글쓰기 등, 다양한 방식으로 글을 쓰는 방법과 방향성을 제시해줍니다. 잘보이기 위한 글이 아닌 소신있고, 용기 있으며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글. 그런 글들을 써내려 갈 수 있도록 은유는 알려줍니다. 진짜 나를 찾아갈 수 있는 방법을 글쓰기로 배울 수 있다는 것이 참 신기하게 느껴졌습니다.


■ 좋은글귀


p. 9 삶이 굳고 말이 엉킬 때마다 글을 썼다. 막힌 삶을 글로 뚫으려고 애썼다. 스피노자의 말대로 외적 원인에 휘말리고 동요할 때, 글을 쓰고 있으면 물살이 잔잔해졌고 사고가 말랑해졌다. 글을 쓴다고 문제가 해결되거나 불행한 상황이 뚝딱 바뀌는 것은 아니었지만 한 줄 한 줄 풀어내면서 내 생각의 꼬이는 부분이 어디인지, 불행하다면 왜 불행한지, 적어도 그 이유는 파악할 수 있었다.


p. 21 좋은 글은 울림을 갖는다. 한 편의 글이 메아리처럼 또 다른 글을 불러온다. 글을 매개로 남의 의견을 듣고 삶을 관찰하다보면 세상에는 나와 무관한 일이 별로 없음을 알게 된다. '인간의 삶이란 어떤 것인가'에 대한 균형 감각이 발달한다. 이는 삶에 이롭다. 

p. 22 "우리가 충분히 배우고 우리의 눈과 귀를 충분히 연 경우 언제든 우리의 영혼은 더욱 유연하고 우아하게 된다."/작가는 세상 모든 것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라고 수전 손택은 말했다. 나는 이 말을 이렇게 해석한다. 원래부터 작가라서 지식인의 본분으로 세상에 관심을 갖는 게 아니라 세상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작가라는 뜻으로. 그래서 작가가 되기는 쉬워도 작가로 살기는 어렵다.


p. 58 내가 쓴 글이 곧 나다. 부족해(보여)도 지금 자기 모습이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드러내고 인정한다는 점에서, 실패하면서 조금씩 나아진다는 점에서 나는 글쓰기가 좋다. 쓰면서 실망하고 그래도 다시 쓰는 그 부단한 과정은 사는 것과 꼭 닮았다.


p. 82 좋은 글을 쓰는 사람은 '거의 다' 좋은 책을 읽었다. 읽기와 쓰기는 다른 행위지만 내용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읽기가 밑거름이 되어 쓰기가 잎을 틔운다. 책을 읽어야 세상을 보는 관점이 넓어지고 사람을 이해하는 눈을 키운다. 세상은 어떤 것이구나 통찰을 얻는다. 모국어의 선용과 조탁, 표현력을 배운다. 좋은 문체에 대한 감을 잡는 것인데, 총체적으로 글을 보는 '안목'이 생기는 것이다.


p. 124 글쓰기는 이미 정해진 상식, 이미 드러난 세계의 받아쓰기가 아니라 자기의 입장에서 구성한 상식, 내가 본 것에 대한 기록이다. 그래야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글,그사람만 쓸 수 있는 고유한 글이 나온다. 


p. 131 자기 색깔을 보여주는 것은 창작자의 임무이다. 창작 분야 종사자 중 '대체 가능한 존재'는 살아남지 못한다. 내가 아니어도 남이 할 수 있으면 그건 누구나 할 수 잇다는 뜻이다. 내가 쓰는 글은 나만 쓸 수 있어야 한다. 

p. 138 가슴에 물음표가 많은 사람이 좋은 글을 쓸 가능성이 많다. 작은 자극에도 촉발을 받고 영감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물음표가 어느 순간 느낌표로 변하고 다른 삶의 국면을 통과하면 그 느낌표는 또 다시 물음표가 된다. 내가 이렇게 믿었는데 그게 전부가 아닌가 보다, 하는 생각이 찾아드는 것이다. 그 물음표와 느낌표의 반복과 순환이 자기만의 사유를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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