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후의 삶
박진성 지음 / B612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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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오면서 멈춰진 시간 속에서 살아본 적 있나요? 저는 사춘기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시간이 멈췄고, 학교생활과 사회생활을 하면서 인간관계에 얽혀 갈등을 겪을 때 시간이 멈췄고, 잘 다니던 직장생활을 때려치우면서 시간이 멈췄습니다. 환경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멈춰버린 듯한 시간 속에 머물면 살아서 숨쉬는 것 빼곤, 온몸이 어딘가에 꽁꽁 묵여있는 느낌이 감돕니다. 그럴땐 의지대로 아무것도 되지 않는 듯 해서, 나를 시간 속에 가둔 뭔가를 하염없이 원망하기도 합니다. 원망하다가 안되면 날 원망도 해보고, 날 원망하다 지치면 비로소 주변을 둘러보기도 합니다. 멈춰버린 시간은 그 속에 갖혀있는 나를 이해하고, 주변을 이해하는 순간  시간을 물흘러가듯 흘러가고 있고, 나도 그에 따라 흘러가고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주변엔 나 말고도 그런 사람들이 참 많다는 것을 알게되고, 난 그저 시간 속에 갇혔을 뿐, 다른 이는 멈춰진 시간 속에 갖혀진 건 물론, 죽다 살아난 사람도 있습니다. 멈춘 시간 속에 갇혀봤거나 죽음과도 같은 삶을 살고 있는 분들이 읽으면 좋은 산문집이 있습니다. 산문집의 제목은 이후의 삶입니다.


■ 이후의 삶 내용 ::


산문집의 저자, 박진성은 시인이라고 합니다. 이 책을 접하면서 그를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사실 문학분야(시,수필,문학 등)엔 잼뱅;; 영문학을 전공했음에도, 그 문학들이 인생이 무슨 특약처방을 내려주겠냐며 멀리했고 방법론적인 자기계발서만 읽었거든요. 암튼, 삶의 쓴맛을 알고, 그 쓴맛을 이해하는덴 문학만한 장르가 없더라구요. 그래서 수필부터 조금씩 접하는 찰나에 만나게된 시인입니다. 그런데, 미투운동이 문학계에 휘몰아치면서 그도 성범죄라는 낙인에 찍혔습니다. 2016년 10월 20일부터 거의 2년에 가까운 시간, 그는 그 시간 동안 죽은거나 다름없었습니다. 죽음과도 같은 시간을 견뎠고, 그 시간을 힘겹게 힘겹게 견뎌서 다행히도 무협의로 판결 났습니다. 이 산문집에는 자신에게만 몰입할 수 밖에 없었던 멈춰버린 시간 속에서 겪은 심정들을 담고 있으며, 미투운동 및 그와 관려한 마녀사냥식의 언론플레이의 문제점 등을 간접적으로 들여다 볼 수 있습니다. 산문집의 초반엔 회색빛이였다가 서서히 밝은 녹색 빛으로 바뀌어가는 것을 체감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저자의 상황을 알고 읽으니, 더욱더 그런 것 같습니다. 참 아이러니 한 것은, 분노가 많고 억울할 법한데, 그의 한 글귀 한 글귀, 한 문장 한문장엔 차분함이 묻어납니다. 분노가 달아오르지 않고, 묵직하고 차분합니다. 늘 뜨는 감정은 가라앉고, 차가운 이성과 따뜻한 감성이 공존합니다. 불행과 행복이 공존하는 세상을, 자체적으로 바라보는 힘도 생기게 합니다.



■ 느낀점 ::


미투운동이 일렁일 때, 사실 통쾌했습니다. 약자의 입장에서 당하고도 아무말 하지 못하고 죄인처럼 살아가는 여성들을 볼때면 너무나 가슴이 아프고 화가 치밀었기 때문입니다. 여성이라는 존재는 예나 지금이나 약자이며, 남성의 성적 노리개에 불과하다는 피해의식이 심하게 자리잡혀 있던 것도 한 몫했습니다. 각계각층에서 마구마구 터저나올 때, 충격과 시원함이 동시에 공존했고, 약자라는 피해의식이 사라지는 듯 해서 좋았습니다. 하지만, 부작용이 나오더군요. 무조건 '가해자는 남자'라는 편중된 사고가 생기더군요. 그래서 미투운동이 커지는 만큼, 흐름을 타서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유포된 소식들은 진짜로 둔갑해서 대중들의 시선을 자극합니다. 또 거기에 분노하고, 이유와 내막을 알지 않고, '뻔하다'는 섣부른 판단을 내려 무고한 사람을 범죄자로 만들어 손발을 꽁꽁 묶어 버립니다. 매도나 다름없지요. 사회적 약자라는 피해의식과 열등감은 온전한 사람도 범죄자로 만들 수 있다는 아찔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진위여부를 파악하고 비판하는 태도를 지녀야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비난이 아닌 비판을요. 예전에, 저도 따지고 보면 쌍방의 오해문제였는데, 아니나 다를까 목소리 큰 쪽에서 무조건적으로 몰아붙이니, 대부분 그 사람의 말을 듣고, 저는 바로 죄인이 되어버렸습니다. 그 당시엔 제가 비난의 대상이니, '무조건 사과해야 하는가?'라는 의문에 빠졌습니다. 빨리 사과하고 끝내라는 말만 계속 들었습니다. 사과를 하기 이전에 상황을 설명하는데, 그건 '비겁한 변명'에 불과했으며 저는 고집만 내세우는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참 억울하더군요. 다른 사람들을 붙들고 이야기한들 귀찮은 이야기로 취급 당했습니다. 방법이라고 한다면 그냥 버티는 일 밖에 없었습니다. 버텨봐야, 사건의 전말이 드러나더라구요. 박시인의 버팀에 관한 산문집을 읽곤 맘 한켠에 자리잡고 있던 지난 억울함이 씻겨졌습니다. 나만의 고통이 가장 큰 고통인 줄 알았는데, 이 세상을 살아가는 누구라면, 나 말고도 억울한 일을 당하고 사는 사람들이 많구나..라는 생각도 들고, 자신이 옳다면 끝까지 버텨서 자신을 지켜내면서 결백함을 증명해야 한다는 것도 배우게 됩니다. 무엇보다, 내 자신도 마녀사냥을 당해봤는데, 피해보상하듯 똑같이 누군가를 매도하는 것이 아닌, 한발짝 물러나서 합리적인 비판 혹은 비평의 태도를 가져야 하는 중요성도 깨닫게 됩니다. 


■ 좋은글귀 ::


p. 43 먼 곳까지 왔다. 다시 돌아가는 것이 하나의 선택지고 더 멀리 가는 것이 또 하나의 선택지다. 다시 돌아가지도 못하고 더 멀리 가지도 못하고 우물쭈물 서성거리는 어떤 시간과 공간이 있다. 돌아갈 곳도 없고 더 멀리 갈 곳도 없이 스스로에게 꼼짝없이 잡혀 있는 사람들이 있다. 

p. 46 "밤은 참 많기도 하더라"고 쓴 사람은 작가 이상이다. 시간만큼 기이한 물질이 또 있을까. 어떤 밤은 정말 많다. 몇 겹으로 겹쳐진 밤이다. 어떤 밤은 참 많고, 또 어떤 밤은 너무 적다. 과잉이거나 결핍인 시간의 균형점을 찾아가는 행위가 독서인 것 같다. 시간이 홀연 사라지고 책과 나만 남았을 때의 경이는 인간이 부여받은 축복 중 하나인 것 같다. 참 많기도 한 밤들은 책 속으로 녹아서 얌전해진다. 오늘밤은 그렇게 통과하고 있다. 

p. 60 절망하지 않는 가장 현명한 방법은 어쩌면 희망하지 않는 것인지 모른다. 더 절망할 힘도 없고 희망을 희망할 힘은 더더욱 없다. 놓으려고, 다 놓아버리려고, 홀가분해지려고 노력하고 있다. 

p. 87 기쁜 날을 정해 놓고 기뻐할 수는 있지만 슬픔은 느닷없이 찾아온다. 어쩌면 슬픔 자체의 속성은 '느닷없음'에 있는지도 모른다. 

p. 88 나무는 절대로 다른 나무의 초록을 방해하거나 괴롭히지 않는다. 나무의 오롯이 자신의 리듬과 자신에게 주어진 물과 바람과 햇빛, 그리고 어둠으로 계절들을 지날 뿐 다른 나무를 탓하지 않는다. 

p. 102 시의 '자기 치유적 효능'은 하고 싶은 말을 다 쏟아내는 데서 오는 게 아니라 하지 말아야 할 말과 해서는 안 되는 말, 말할 수 없는 것들을 말하지 못하는 '어쩔수 없음'을 배우는 데서 오는 것 같다. 잘 말하기 위해서는 잘 침묵해야 하니까.

p. 119 희망과 행복, 이런 낱말들이 신기루라면 그 반대의 절망과 불행 역시 신기루일 것이다. 우리의 시야는 대체로 환시고 착시고 약시여서 한쪽만 실재라고 믿는다. 희망과 행복, 이런 낱말들이 거짓이고 허구라면 절망과 불행 역시 거짓이고 허구일 것이다.

p. 205 그 '사라짐'과 '지나감' 없이는 삶 자체가 불가능하다. 당신도 언젠가 살기 위해서 누군가를 용서한 적이 있을 것이다. 누군가도 살기 위해서 당신을 용서한 적 있을 것이다. 그런 보이지 않는 마음들을 헤아려 보면서 작은 공원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지나갔고, 지나가고 있고, 지나갈 것이다. 







■ 본 포스팅은 서평단 참여로 제공된 도서를 직접 읽고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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