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화 - 1940, 세 소녀 이야기
권비영 지음 / 북폴리오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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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때는 역사소설을 좋아하지 않았다. 역사도 좋아하고 소설도 좋아하는데, 이상하게 과거의 인물을 되살려 살을 붙이고 숨을 불어넣은 작품들에는 손이 잘 가지 않았다. 같은 맥락으로 사극 드라마도 잘 보지 않는 편이었다. 권비영의 전작인 '덕혜옹주'도 궁금해서 몇 번이나 들추다가도 결국 읽지 못했다.

   그런데 요즘은 그럴 수가 없게 되었다. 자꾸 읽어야 하는, 보아야 하는 것들이 늘었다. 그 이야기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누군가는 그것을 픽션이라고 불렀지만, 그 속에는 분명 실재했던 상처가 녹아 있었다. 아프게 스러졌던 삶을 불러내 한 번 더 이야기를 털어놓으라고, 이제는 억울하다고 소리쳐도 된다고 힘을 실어주는 작가들이 어느 때보다 고마운 시대가 되었다.

   '위안부' 문제가 가장 큰 주목을 받게 된 해는 올해가 아닌가 싶다. 우습게도 정부 덕분이다. 비록 원하는 방향은 아니었을지라도 정부가 이 문제에 보여준 태도는 분노와 실망의 형태로 사회적 관심을 불러 일으키는 데에 성공했다. 어찌보면 참 수완 좋은 정부라고, 자조적으로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관련된 작품들도 작년과 올해에 걸쳐 세상 빛을 보게 된 경우가 많다. '몽화'도 그 중 하나다. 작가가 가슴에 품고 있되 차마 내놓을 수 없었던 이야기 중 하나였다는 '몽화'는, 1940년부터 해방 때까지 서로 다른 삶을 살아간 세 친구의 이야기를 그린다.

   세 사람은 출신 성분도, 성격도, 그리고 맞닥뜨릴 미래도 각기 다르다. 아버지가 일본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정인은 대궐 같은 집에 살며 양갈래 머리를 땋고 학교에 다닌다. 조선에 대한 수탈과 핍박이 극에 달하는 해방 직전에도 프랑스에 유학하며 온실 속 화초처럼 몽마르뜨르와 센 강을 예찬한다. 그런 정인의 모습은, 다른 두 친구에게 때로는 환멸에 가까운 감정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순진무구하다. 무풍지대의 공주 같은 정인이는, 그러나 끔찍한 짓을 하는 아버지를 미워하면서도 차마 버리지 못한 채 깊은 늪 같은 우울 속에 허덕인다. 안전한 곳에서 좋은 음식을 먹으며 지내는 와중에도, 그녀의 마음은 늘 외롭고 삶은 텅 빈 것처럼 공허하다.

   은화는 동네에서 가장 큰 기생집인 화월각에 산다. 기생집의 주인인 태선 어미에게, 그녀의 첫사랑이자 첫 남편인 박장수가 친구의 딸이라며 거두어 주기를 부탁했기 때문이다. 독립군으로 활동하다 일본군의 총탄에 죽어간 아버지의 피가 흐르는 걸까? 어릴 때부터 은화는 여자여도 나라를 위해 할 일이 분명히 있을 거라고 다짐하는 어른스럽고 차분한 아이다. 그러나 기생집에 사는 이상, 불안한 미래는 늘 그녀의 발목을 잡는다. 태선 어미의 뜻과 달리 열일곱이 되면 너도 돈 많은 영감에게 머리를 올리게 될 거라는 주변 기생들의 조롱은 늘 은화를 괴롭힌다. 기생이 되고 싶지 않아서 화월각을 뛰쳐나왔지만, 그런 은화를 기다리는 것은 더욱 모진 운명이다. 세 친구 중 유일하게 '위안부'로서의 삶을 감내해야 하는 것이 바로 꽃 같이 예쁘고 고운 은화이기 때문이다.

   영실은 친구 정인과 은화가 모두 부럽다. 둘 다 학교에 다닐 수 있는 아이들이기 때문이다. 학교 선생님이 꿈인 영실은 집안 형편 때문에 중학교도 마치지 못했다. 아버지는 일본인 순사를 두드려 팬 후 만주로 도망치듯 떠났고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를 찾기 위해 영실만 이모에게 맡기고 사라졌다. 가난해도, 나라를 잃었어도, 배우지 못했어도 올바르지 못한 일은 하지 말고 자신에게 떳떳이 살아야 한다고 배운 영실은 그럼에도 세 소녀 중 가장 용감하게 자신의 삶을 헤쳐간다. 억척스럽게 국밥집을 하다 결국은 일본 상인의 첩이 된 이모의 곁에서부터 그 남자의 도움을 받아 건너오게 된 일본에서 일하기까지, 영실의 삶은 늘 고단하지만 은화처럼 절망적이지도, 정인이처럼 허무하지도 않다. 그래서일까, 영실은 늘 새로운 목표를 찾아 스스로를 다잡는다. 누구보다 삶에 대한 의지를 놓지 않고 살아간다.

   너무도 다른 세 소녀의 삶, 그리고 그들과 때로는 얽혀들고 때로는 견딜 수 없을 만큼 멀어지는 주변 사람들. 일제강점기 말의 조선에서, 혹은 일본에서 누구도 자신의 미래를 예측하지 못한 채 불안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들 중에는 나라를 팔아 제 뱃속을 채우는 이들도 있고, 불의에 눈 감고 생존에 집중하는 이들도 있으며, 목숨을 바쳐서라도 신의를 지키겠다고 용감하게 나서는 이들도 있다. 그들 중에는 몸이 짓밟히는 이도 있고, 마음에 상처를 입는 이들도 있으며, 삶의 이유를 잃는 이들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 시대를 사는 모두가 한 자락씩 같은 아픔을 공유한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정인이를 두고 은화와 영실이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안락한 삶이라고 이야기할지도 모른다. 칠복이를 아들 대신 강제징용에 보내고 자기 자식들은 몰래 빼돌려 프랑스에 보낸 정인이의 친일파 아버지를 생각하면, 정인이가 겪는 그깟 우울증 쯤은 당연히 받아야 할 벌이라고 여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매일자살 충동에 시달리며 꿈도, 희망도 놓은 채 그저 새장 속의 작은 새, 텅 빈 인형처럼 하루하루를 버티는 정인이에게도 분명 어떤 상처는 존재한다는 것이다. 은화와 영실이에게는 결코 와닿지 않을 정도의 상처일지라도.

   '몽화'의 이야기는 '위안부'를 다룬 이전 작품들과는 사뭇 다르다. 그저 정신대에 끌려갔던 여성들에게만 집중하기보다는, 그 당시 십대 후반의 소녀들에게 주어졌던 다양한 삶의 방식과 각기의 방식에 스며 있던 아픔에 주목했다는 것이 더 맞다. 책을 덮으며 다시 한 번 그 시대를 생각했다. 그 시대를 버텨내어 지금까지 살아 온 분들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이야기의 끝까지 가닿을 곳을 찾지 못한 영실이, 은화, 정인이처럼 그 분들도 해방 후 당연히 돌아올 줄 알았던 정당한 마무리를 여태 기다리고 계신다는 데에 생각이 미치자 다시금 화가 났다. 아직도 현재진행형인 역사. 그래서 어쩌면 지금 읽히고 있는 소설은 역사소설이라고 부를 수 없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스쳤다.


1940, 세 소녀 이야기

 

   길들여진다는 것은 무뎌진다는 것이다. 무뎌진다는 것은 천천히 스러져 간다는 것이다. 무엇엔가 저항할 힘조차 사라진, 슬픈 야합. 길들여진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 p. 276


   길을 모르면서도 가야 한다. 그것이 선문처럼 머리에 남았다. 인생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르면서 왜 이렇게 허덕거리며 가야 하는지. 

- p. 304


   잠시 깃들기로 한 집은 언제라도 비워줄 수 있다. 내 집이 아니므로. 쓸쓸한 영혼이 깃든 몸뚱어리도 언제든 포기할 수 있다. 조물주로부터 잠시 얻어 온 껍데기이므로.

   언제라도 죽을 수 있다. 그러므로 살아야 한다.

- p. 345


   가는 길도 다르고 사는 방법이 달라서 그럴 뿐, 삶은 공평하고 무심하다. 그걸 인정하고 나니 오히려 혼곤한 삶에 애정이 생겼다.

   지금은 세상이 어지러운 시기, 잘 견디어 내야 한다. 광풍이 불 때는 몸을 낮추고 바람이 지나가기를 기다려야 한다. 그것이 삶의 지혜다.

- p. 379 


   오늘은 파도가 잔잔하다. 온 세상을 삼킬 듯이 배를 덮치던 그런 바다는 아니었다.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바다는 고요하고 평온했다. 그러나 영실은 그 바다의 고요를 믿지 않는다. 언제 또 분노한 파도가 세상을 향해 밀려올지 모르므로.


   암흑 같은 세월이,

   힘들고,

   더디게,

   흐르고 있었다.

- p. 380



북폴리오 2016 서포터즈 활동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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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에 겐자부로 - 사육 외 22편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21
오에 겐자부로 지음, 박승애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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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책 제목을 접했을 때 주인공 이름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일본 소설에는 가끔 주인공의 이름을 제목으로 내세우는 경우가 있으니까. 책을 받아 보고서야 이 책이 오에 겐자부로라는 일본 작가의 단편집임을 알았다. 그때서야 내 무지가 새삼 부끄러워졌다. 일본인으로서는 '설국'의 저자 가와바타 야스나리에 이어 두번째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세계적으로 이름 있는 작가인데 내게는 너무도 생소한 이름이었다. 그래도 일본 소설을 꽤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내 독서력은 여전히 한참 부족한 모양이었다.

작품을 읽고 나서야 작가에 대한 정보를 찾아봤다. 괜한 편견을 갖기 싫어서였다. 작품을 보며 아마 2차 세계대전을 직접 겪은 사람이겠구나 짐작했었는데, 찾아보니 역시 1935년생이었다. 어린시절 형들이 전쟁터에 불려가는 걸, 일본 본토가 점차 피폐해져가는 걸, 어느 날인가 두 곳이나 원자폭탄이 떨어져 수없이 많은 민간인이 죽어가는 걸 지켜보며 자랐을 것이었다. 아주 어린시절이라 세세한 기억은 나지 않는다 해도 그 충격은 분명 그의 남은 삶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고, 그의 작품세계를 형성하는 데에도 큰 기여를 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오에 겐자부로의 작품세계에서 보다 큰 축을 담당하는 건 전후 일본의 사회상인 듯 했다. 패전국이 된 일본을 지배하는 절망, 경제적 어려움과 불안한 미래를 앞에 두고 흔들리는 청춘, 분노와 증오, 그 속에서 피어나는 새로운 전쟁에 대한 열망, 일본 사회 내에서 자행되었던 약자에 대한 폭력. 그의 작품은 그런 어두운 그늘을 하나씩 그러모아 묶어낸 느낌을 준다. 그래서 어느 하나 티없이 밝은 작품이 없지만, 그만큼 보다 깊은 울림을 가진다.

그에게 아쿠타가와상 최연소 수상의 영예를 안겼던 '사육'은 긴 여운을 남기는 단편이었다. 어린 시절 가난한 산골 마을에서 자라며 종전을 맞이했던 그의 개인적 경험을 기초로 하되 그 나이 또래의 어린아이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들을 담아낸 작품이었다. 지하실에서 '기르던' 포로와 자신의 왼손을 한꺼번에 잃은 후 '나는 더 이상 아이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화자를 통해 작가는 어쩌면 전쟁이 일본에 남긴 돌이킬 수 없는 무언가를 말하려 했던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죽은 사람을 보는 것에 익숙해지는 어린아이란 얼마나 슬픈 것인지, '사육'의 마지막 작면에서 잠깐 눈물이 날 것 같은 마음을 다잡으며 문득 생각했다.

오에 겐자부로는 작품보다도 사회활동으로 한국에 잘 알려진 작가이기도 하다. 실제 작가는 종전 이후의 일본에서 꾸준히 군국주의, 우경화, 핵무기 등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냈다. 1970년대에는 김지하 시인의 구명을 위해 단식투쟁을 하고, 한일관계가 악화일로를 걸을 때 고이즈미가 물러나야 한다고 목소리를 냈으며, 최근에는 독도 분쟁에 대해 독도는 일본 침략의 증거라고 비판하기도 하는 등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실제 그를 일본 정부의 잘못된 역사관과 외교정책에 대해 자성의 목소리를 내는 대표적인 일본 지식인으로 여기는 사람들도 많다. 그의 작품들이 대부분 일본인이 겪은 전쟁의 상처를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침략에 대한 미화나 철저한 자기중심성으로 여겨지지 않는 이유는, 그가 이토록 모든 폭력에 반대하며 폭력에 희생된 사람들에 대해 똑같은 눈높이로 성찰하기 때문일 것이다.

단편집을 읽으며 처음 알게 된 사실은, 그의 큰아들이 지적 장애를 갖고 태어났다는 것이었다. 실제 그 영향으로 오에 겐자부로는 아들과 자신의 모습을 투영한 작품을 연달아 집필하기도 한다. 아들의 장애를 부끄럽게 여겨 숨기려 하거나 그에 대해 이유없는 죄책감을 느끼며 실의에 빠져있기보다는 아들의 삶을 인정하고, 이해하고, 도우려 노력하는 아버지로서의 그의 모습이 작가로서의 그의 모습과 전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 오에 겐자부로의 큰아들 오에 히카리는 장애인 작곡가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데, 그의 삶을 이끌어준 것은 늘 지극정성을 다한 아버지였다고 한다. 아마 아들 역시 아버지의 인생에 이름처럼 늘 빛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올해 여든한살이 된 작가는 아직 생존해 있다. 언젠가 꼭 오에 겐자부로를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무라카미 하루키에 이어 두번째로 작가와의 만남을 버킷 리스트에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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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터 캐리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36
시어도어 드라이저 지음, 송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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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카고의 애칭은 윈디 시티, 바람의 도시다. 그래서일까. 희망적인 미래에 대한 막연하고도 확신에 찬 꿈을 안고 시카고로 온 캐리를 맞이하는 것은 바람이다. 때로는 잔인할 정도로 차갑게, 때로는 허황된 꿈의 한 자락을 놓치 않도록 따스하게 불어오는, 그녀를 어디로 데려다 줄 지 알 수 없는 바람. 그 속에서 캐리는 정처없이 흔들리다, 자신이 결코 상상하지 못했던 방향의 미래를 맞닥뜨린다.

 책을 읽는 현대의 독자라면 캐리를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녀의 허영에 질릴지도 모르고, 그저 멍청하고 예쁜 트로피 와이프처럼 비춰지는 그녀의 모습이 안타까울 수도 있다. 기억해야 할 것은 이 소설의 배경이 1889년의 미국이고, 캐리가 그 중에서도 가난한 집에 태어나 농촌에서 자란 처녀라는 사실이다. 그녀에게는 집안의 든든한 지원도, 인생의 방향에 대해 조언할 수 있을 만큼 사회 경험이 많은 부모도, 교육의 기회도 없다. 심지어 근무 경험도 없어 대도시 시카고에서 얻을 수 있는 일자리가 신발공장에서 신발끈 구멍을 뚫는 여공으로 일하는 것밖에 없을 정도이다. 더구나 대도시에서 들뜬 그녀에게 그녀를 맡아준 언니와 형부가 보내는 시선은 냉대에 가깝다. 극장에 가자는 그녀의 제안은 철없는 생각으로 치부되고, 형부는 돈을 벌어보기도 전에 놀 생각부터 하는 처제가 미래에 짐이 되지는 않을까 걱정한다. 그 모든 상황 속에서 드루에가 캐리에게 손을 내민다. 소녀 시절부터 꿈꾸던 좋은 옷을 사서 입히고 언니네 집에서 한번도 먹어볼 수 없었던 맛있는 음식을 대접한다.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한다는 사실에 상심한 그녀에게 살 곳을 구해주겠다고 따뜻한 말을 건넨다. 그 순간 캐리가 갈 수 있는 다른 길은 없다. 오직 드루에만의 그녀의 길일 뿐이다.

 물론 캐리는 그런 드루에를 금방 꿰뚫어본다. 그녀에게 새로 접근하는 허스트우드가 더 나은 남자라는 사실도 바로 알아챈다. 그것이 캐리가 타고난 가장 뛰어난 능력이다. 깊은 감성과 거기에 기반한 타인에 대한 예리한 통찰. 많이 배우지도, 많이 경험하지도 못한 어린 그녀는 그 감에 의지해 삶을 헤쳐간다. 물론 그녀가 고른 길이 늘 옳지는 않다. 그래서 가족들이 애정을 듬뿍 담아 '시스터 캐리'라 부르던 젊은 처녀의 미래는 결코 순수하고 아름답게만 흘러가지는 않는다. 그렇다 해도, 그것이 캐리의 인생이다. 19세기의 시카고에서, 그녀에게 주어진 것이 그런 것밖에 없을 뿐이다.

 시어도어 드라이저의 이 소설은 출간 당시 인간의 욕망을 너무 적나라하게 묘사했다는 이유로 보수적이던 미국 사회에 큰 충격을 안기고 또한 많은 비난에 직면했다고 한다. 그가 소설 속에 구축한 욕망의 세계는 현재까지도 유효하다. 여전히 우리는 돈과 명예와 여자가 있는 세계, 탐욕이 모든 결정을 내리는 세계에 조금씩은 발을 딛고 살아간다. 우리 사회에도 '시스터 캐리'는 여전히 존재한다. 비록 교육의 기회가 확대되었다 해도, 사회적 지지기반이 마련되었다 해도, 법적 보호장치가 존재한다 해도 마찬가지다. 누군가는 여전히 살기 위해 이해할 수 없는 선택을 하고, 욕망에 몸을 맡기고, 또 그 선택에 의지하여 정점에 오른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삶의 이면에는 여전히 고뇌와 갈등이 숨죽이고 기다리고 있고 때때로 삶은 그 어떤 죽음보다도 추악하다. 그래도 우리는 살아간다. 과거의 그들이 그랬듯.

인간은 바람 속의 나뭇잎처럼 한때는 자기 의지에 따라, 한때는 본능에 따라 행동하는 식으로 열정의 숨길에 따라 그때그때 움직인다. 자유의지에 따라 실수를 저질렀다가 본능으로 회복하기도 하고 본능으로 인해 쓰러졌다가 자유의지로 일어나기도 하는, 예츨할 수 없을 만큼 변동이 심한 존재이다. 어쨌든 진화는 계속되며 이상은 결코 꺼지지 않는 불빛이라는 사실로 그나마 위안을 삼는다. 인간은 이처럼 영원히 선과 악 사이에서 헤매지는 않을 것이다. 자유의지와 본능 간의 다툼이 조정되고, 완전한 깨달음이 자유의지에 본능을 온전히 대체할 힘을 부여하게 되면 비로소 인간은 더이상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그때는 이성의 지침이 진실이라는 머나먼 극점을 확실하고 변함없이 가리킬 것이다.

- p. 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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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가 스토리콜렉터 40
미쓰다 신조 지음, 현정수 옮김 / 북로드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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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완독한 다른 리뷰어 분들이 한번 시작하면 놓지 못하고 끝까지 보게 되는 책이라 하여 과연, 하는 마음으로 벼르고 있었다. 그렇게 밤 10시쯤 책을 붙들었고, 새벽 1시까지 꼬박 읽어 한 권을 끝냈다. 뒷 이야기가 궁금해서 쉽게 놓을 수 없는 책이었다. 분명 책을 집어들 때에는 난 귀신은 안 무서워하니까 괜찮을 거라며 호기롭게 큰 소리를 쳤는데, 결국은 혼자 자기가 무서워서 멀쩡히 제 집에서 자던 강아지를 데려다가 끌어안고 잤다. 금방이라도 누가 방문을 열고 들어와 처음 뵙겠습니다, 히히노입니다, 하고 인사할 것 같아 소름이 끼쳤다.

   이야기 자체는 무척 가볍다는 느낌을 받았다. 소설보다는, 꼭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무서운 이야기 같은 느낌. 작년 여름쯤에 네이트 판에 올라온 실화라며 떠도는 글을 읽은 적이 있었는데, 그 글과도 느낌이 비슷했다. 그 글은 뱀장수가 살던 집에 이사 온 가족이 뱀신에 시달리는 내용이어서, 묘하게 책의 띠지에 있는 '뱀신의 저주가 도사린 흉가'라는 소개와 일치했다. 일본에도 뱀장수가 있나, 하고 장난스레 생각했을 정도였다. 큼지막한 폰트에, 깔끔하게 맺고 끊는 편집에, 극적 효과를 더하는 세밀한 묘사까지 어우러져 페이지가 술술 넘어갔다. 그러면서도 이야기의 몰입도는 굉장했다. 이 이야기의 끝은 어디일지, 이 집에 일어나는 일들이 과연 어떻게 설명될 것인지, 진실은 어떻게 밝혀지고 이 가족은 살아남을 수 있을지, 전부 다 궁금해서 자꾸만 뒷장을 들춰보고 싶은 마음을 억눌러야 했다.

   아무 사전 정보 없이 책을 읽은 독자에게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뱀장수 이야기의 임팩트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나에게는 결말이 엄청난 반전이었다. 그래서 잠들기가 무서웠는지도 모른다. 솔직히 뱀신이 자신을 죽인 사람에 앙심을 품고 찾아와 가족이 잠든 머리맡에서 계속 뛰어다니고 빈 방으로 아이들을 유인한다는 이야기는 별로 무섭지가 않았다. 그냥 죽어서도 원한 깊은 동물이 짠하기도 하고, 결국 모든 건 사람의 잘못이다 싶기도 하고, 그러다 어느새 환경보전과 세계평화에 대해 생각하다 잠들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 책의 결말은 바로 그 사람에 관한 것이었다. 정확히 어떤 경위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게 정말 무분별한 개발에 의해 파괴된 영산에 깃든 뱀신의 저주인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무언가 알 수 없는 광기가 존재했다. 그건 정말 무서웠다. 특히 내게 가장 가깝던 사람이 전혀 모르는 모습으로 변한다는 것, 지키고자 했던 바로 그 사람들으로부터 도망쳐야 한다는 것, 결국은 누구도 구할 수 없다는 것이 끔찍하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반전의 반전, 이라고도 할 수 있는 마지막 페이지에서 동생에게 이야기를 들었을 때 쇼타의 기분이 어땠을까, 를 생각하면 소름이 돋아 자꾸만 추웠다.

   호러 미스터리는 굳이 따지자면 내 취향이 아니다. 애거서 크리스티나 아서 코난 도일 같은 정통 추리소설이나 심리 스릴러를 좋아하는 편이지, 귀신 이야기는 굳이 찾아 읽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책을 앉은 자리에서 다 읽어낸 것은, 그만큼 미쓰다 신조가 훌륭한 스토리텔러이기 때문일 것이다. 분명 책을 덮고 곰곰히 생각해 보면 허점이 많을 법한 이야기인데도, 읽을 당시에는 그 세계에 푹 빠져 내가 마치 안라 시의 시골마을 산기슭에 살게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그러나 그 곳에 남아있는 가족이 걱정되어 늘 발걸음을 돌리고야 마는 쇼타의 마음에도 잔뜩 감정이입하게 되었다. 아마 책의 배경과 같은 여름에 이 책을 읽었다면 무더위도 잊었을 것이다. 여름 납량특집에 제격인, 웰메이드 호러 미스터리였다.


쇼타는 겨우 열 살이다

 

   개인적으로 느낀 이 책의 가장 큰 강점은 이야기의 화자가 열 살 소년이라는 점이다. 어릴 때부터 알 수 없는 감이 발달해서 위험한 일이나 끔찍한 범죄가 일어날 장소에서 미리 어떤 느낌을 받았던 것 외에는 여느 아이들과 똑같은 초등학교 4학년. 새로 이사 간 집의 이상한 점을 가장 먼저 발견하고, 기이한 일들을 목격하고, 관련된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 어린아이이기 때문에 이 책은 긴장감을 더한다. 아이는 힘이 없다. 신체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그렇다. 그래서 쇼타는 이상한 느낌을 받으면서도 가족에게 함부로 말을 꺼내지 못한다. 어린 아들이 악몽을 꾸었나보다고, 괜한 떼를 쓴다고 부모님이 웃어넘길까 두렵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집에 얽힌 비밀을 파헤치는 쇼타가 여러 난관에 부딪히는 것도 어린아이이기 때문인 탓이 크다. 열 살 어린애는 정식으로 자료를 요청하기도 어렵고, 주변 사람들과 안면을 터 정보를 얻을 능력도 부족하다.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센 할멈의 집에 끌려가 어두운 저택에서 생명의 위협을 받는 것도, 어찌 보면 쇼타가 어린아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화자의 나이는 이야기에 긴장감을 더하고, 독자를 끊임없이 몰입하여 쇼타를 응원하게끔 만든다. 그리고 어쩌면, 책을 읽으며 서서히 쇼타와 같은 어린애의 눈높이에서 사건을 바라보게 된 독자들에게 결말은 더욱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한편으로는 어린 나이가 이 소설의 한계점이 되기도 한다. 이야기의 주인공인 쇼타와 쇼타가 이 끔찍한 사건을 헤쳐나가는 데에 가장 든든한 조력자가 되어주는 친구 코헤이는 모두 열 살인데, 특전사 뺨치게 일을 잘한다. 아무리 코헤이가 한눈에 인정할 정도로 머리가 좋다지만, 낯선 마을에 고립되어 한 눈에 보기에도 저주 받은 것 같은 집의 비밀을 풀어가는 쇼타의 사고는 지나치게 고차원적이다. 목숨을 걸고 저택에 잠입하여 쇼타가 잃어버린 이케우치 토코의 일기를 찾아온 코헤이를 보노라면 이 아이를 훈련시켜 FBI에라도 보내야겠다 싶은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야기를 읽다보면 나도 모르게 쇼타와 코헤이가 내 나이쯤 되었겠거니 생각하다가, 한 순간 아, 얘네 초등학생이지, 하고 퍼뜩 생각이 나곤 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나는 뭐했나 떠올려 보아도 이 정도의 문제해결능력은 없었지 싶었다.

   일장일단이 있겠지만 초등학생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는 점에서 '흉가'는 미쓰다 월드 내에서도, 그리고 호러 미스터리라는 장르 내에서도 특별한 위치를 갖는다. 어린아이가 귀신을 목격하는 역할로 자주 등장하기도 하고, 가끔은 귀신이 어린아이의 형태를 하기도 하지만, 이처럼 이야기의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자주적 역할을 맡은 적은 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내내 주인공의 나이를 자꾸 되새겨본다면 좀 더 색다른 재미를 얻을 수 있지 않나 싶다.


이 책의 관전포인트

 

   흔해빠진 귀신 들린 집 이야기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실제 이 책에는 형태가 명확한 귀신은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쇼타가 목격하는 검은 형체들과 모모미가 밤마다 만나는 친구들이 있기는 하지만, 책 말미에 밝혀지는 그들의 정체는 요괴나 유령과는 거리가 멀다. 이 책을 무섭게 만드는 건, 귀신보다 더 무서운 사람들이다. 센 할멈, 파충류 같은 눈을 한 코즈키 키미, 히히노와 히미코의 정체, 그리고 하네타란 이름의 양. 그러니 평소 귀신 이야기에는 끄덕없다고 자신하던 사람도 혼자 있는 늦은 밤 이 책을 읽지는 말기를. 밤잠을 설치기 십상이다.

   가볍고 빠르게 읽히는 책이니 크게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다. 다만 한번 시작하면 멈추기 어려우니 서너시간은 여유를 두고 읽기를 권한다. 잠깐 짬을 내서 읽으려면 자꾸 뒷이야기가 궁금해서 하는 일에 집중이 되지 않을 것이다.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책을 펼쳤다면 내리는 정거장이나 역을 놓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이 책을 선물할 계획이라면 선물 받을 사람의 성향을 잘 파악해야 할 것 같다. 자칫하다가는 누군가에게 최악의 악몽을 선물하게 될지도 모르니까. 그러나 호러 미스터리를 즐기는, 특히 '미쓰다 마니아'라면 이 책의 존재가 정말로 반가울 것이다. 여러모로 매력이 넘치는 작품이니, 꼭 한 번 쇼타와 코헤이의 기묘한 이야기를 따라가 보라고 권하고 싶다.




* 북로드 2016 스토리콜렉터스 활동으로 책을 제공받아 쓴 서평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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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고양이 - 텍스타일 디자이너의 코스튬 컬러링북
박환철 지음 / 북폴리오 / 2016년 3월
평점 :
품절


   컬러링북이 처음 유행하기 시작한 건 작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어린시절 누구나 한번쯤 해봤을 법한 색칠공부의 업그레이드 버전으로, 복잡하고 정교한 그림을 하얗게 비워둔 책들이 우후죽순 나타나 서점가를 장식했다. 단순히 공간을 채워넣는 데에서 나아가 음영을 넣고, 무늬를 만들고, 때로는 원 그림을 수정하는 아티스트들이 등장하며 컬러링북은 하나의 장르가 되어갔다. 꽃이나 동물 등 하나의 주제를 지정하여 관련된 일러스트를 담은 것부터 컬러링'북'이라는 걸 살려 실제 책의 삽화를 색칠하도록 한 것까지, 컬러링북도 점차 다양해졌다. 종류가 많아진 만큼 신선함은 반감되었다. 허니버터칩이 대박을 친 후 연달아 등장한 온갖 종류의 허니버터맛 과자들이 식상해졌듯, 순하리 유자맛 이후 시장을 뒤덮은 과일소주들이 더 이상 새롭지 않게 되었듯 컬러링북도 그저 그런 한때의 유행으로 저무는 듯했다.

   이런 시점에 어찌 보면 후발주자로 등장한 '이상한 나라의 고양이'는 고양이들이 무지개가 뜬 맨홀뚜껑을 통해 세계여행을 하게 된다는 기본적인 줄거리를 바탕으로 한다. 그래서 첫 몇 페이지는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그림은 삽화처럼 한 구석을 차지할 뿐이다. 그러다 고양이들이 본격적인 여행을 시작하며 화려한 일러스트들이 지면 전체를 차지하기 시작한다. 그것만으로는 새로울 게 그닥 없다. 고양이는 컬러링북의 단골소재이고, 온갖 나라의 풍경을 담는 것 역시 정석적인 시도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 책을 돋보이게 하는 건 작가 박환철이 텍스타일 디자이너라는 점이다. 텍스타일 디자이너, 즉 패턴을 짜는 일의 전문가인 것이다. 그래서 이 컬러링북의 중심이 되는 건 여행을 떠나는 고양이도, 그 고양이들이 맞닥뜨린 세계 각국도 아닌 패턴 그 자체다. 작가가 철저히 고증하여 재현한 각국의 전통의상의 화려한 무늬, 그 배경이 되는 세계 명소의 정교한 벽화. 패턴이란 반복성을 가진다. 하지만 그 패턴을 색칠하는 일은 결코 지루하지 않다. 그래서 '이상한 나라의 고양이'는 무척 특별한 컬러링북이 된다.

   컬러링북을 칠하기에 앞서 가급적이면 실제에 가깝게 색을 입히고 싶은 욕심이 들었다. 그래서 책 마지막 장에 작가가 친절하게 실어둔 출처들을 되짚어가며 구글 이미지에서 실제 전통의상과 배경이 되는 장소를 검색했다. 평소 그저 참 화려하네, 하고 넘긴 플라멩코복의 무늬를 유심히 뜯어보고 알함브라 궁전의 타일들을 하나하나 찾아보다 보니 새삼 내가 여행을 떠난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이 책과 함께 스페인에, 프랑스에, 가나에, 그린란드에, 인도에 다녀왔다. 그리고 마지막에 한국으로 돌아와 간만에 한국의 전통의상인 한복을 마주했다. 어느 것 하나 아쉽지 않은 화려한 그림들이 재미를 더했다.

   이 책의 마지막 매력포인트는 마지막에 마련된 스티커 페이지. 컬러링북을 하나씩 채워가는 내내 고양이들의 사랑스러움에  빠져 있었는데 마지막 스티커 페이지가 정점을 찍었다. 하나씩 칠해서 다이어리에, 편지지에, 일상적인 소품에 붙이는 재미가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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