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는 여름 스토리콜렉터 43
넬레 노이하우스 지음, 전은경 옮김 / 북로드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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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6년 크리스마스 아침, 네브라스카의 외딴 농장에서 끔찍한 살인 사건이 벌어진다. 다섯명 사망, 두명 중상. 사망자 중 한 명은 사건을 벌인 범인으로, 이 농장을 운영하는 그랜트 가의 막내아들이기도 하다. 가족에게, 그리고 가족처럼 지내던 일꾼들에게 총을 난사한 후 오랜 기간 농장을 위해 일해온 다른 일꾼의 총에 맞아 사망한, 18세의 에스라 그랜트. 대체 그에게는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그런데 사건의 중심에 서는 것은 죽은 에스라가 아닌, 살아남은 그의 양동생 셰리든이다. 17세의 셰리든 그랜트는 사건이 일어나기 전날 밤 아무도 모르게 집에서 달아난다. 그 전날 그녀는 여태껏 모두가 쉬쉬하던 가족의 비밀을 폭로했다. 자신의 출생의 비밀에 대해, 자신을 끔찍히도 구박하고 학대하던 양어머니 레이첼의 숨겨진 악행에 대해 낱낱이 털어놨다. 달아나는 건 오직 자신을 위해서였다. 그 다음날 그렇게 끔찍한 일이 일어날 거라는 걸, 그녀는 미처 알지 못했다.

   그런데 그 미처 알지 못했던 일이, 셰리든에게서 가장 좋아하던 오빠를 앗아간 끔찍한 사건이 되려 그녀를 바닥을 알 수 없는 나락으로 잡아끈다. 양어머니 레이첼은 전국구 방송에 등장하여 이 모든 건 양오빠들과 양아버지를 포함한 모든 남자에게 꼬리를 치며 가정을 파탄낸 은혜를 모르는 양딸 때문이라고 호소한다. 끔찍한 사건의 충격 속에, 대중은 아들들을 잃은 어머니의 눈물어린 외침에 설득당한다. 아무 죄도 짓지 않은 셰리든은 범인과 같은 취급을 받으며, 폭력과 모욕 속에 농장으로 돌아온다. 그녀 앞에 놓인 세상은, 살아있는 지옥에 불과하다.

   그렇게 셰리든의 비극이 시작된다. 사건은 셰리든의 편이 되어준 오빠와 새언니, 능력 있는 형사 조던, 늘 그랜트 가의 비극을 똑똑히 지켜보던 메리제인 워커와 존 화이트호스, 그리고 셰리든에게 죄가 없음을 아는 페어필드 마을 사람들의 도움으로 차츰 해결의 기미를 보인다. 셰리든의 주변에는, 그녀를 사랑하고 지지하며 아껴주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지 않다. 자극적인 언론 보도에 이미 마음을 빼앗긴 미국 전역의 사람들에게 셰리든은 여전히 배은망덕한 창녀에 불과하다. 그 사실이 그녀를 절망하게 한다. 고작 열일곱에 셰리든은 더 이상 앞이 보이지 않는다. 뉴욕에 가서 유명한 가수가 되기를 꿈꿨었는데, 이제는 농장을 벗어나는 일 자체가 두렵게 된 것이다.

   그래서 셰리든은 다시 도망친다. 외모를 바꾸고 죽은 엄마의 이름을 빌려쓰며, 새 인생을 살고자 한다. 그러나 고등학교를 마치지 못한 어린 여자애에게 주어지는 일은 뻔하다. 몸을 갉아먹는 막노동, 자존심을 팔아야 하는 서비스업. 사랑을 속삭이며 비싼 패물을 바치던 남자는 알고 보니 그녀를 고위층에 매춘부로 팔고자 하는 포주로 드러난다. 그렇게 페어필드를 떠난 후에도 셰리든은 자꾸만 넘어지고 부딪힌다. 마지막으로 정착한 메사추세츠 주 록브리지에서 폴 서튼을 만나 드디어 행복을 찾은 듯하지만, 어쩐지 그 결말이 석연치가 않게 느껴지는 것은 독자들이 지금껏 셰리든의 불행을 뒤쫓아 왔기 때문이다. 그렇게 쉽게 행복해질 수 있을까. 이번에는 셰리든이 제대로 된 남자를 고른걸까. 자꾸만 의심이 고개를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끝나지 않는 여름'은 '여름을 삼킨 소녀'의 후속편이다. 네브레스카의 소녀 셰리든이 주인공인 두 권의 소설은, 산산이 부서지면서야 성장할 수 있는 아픈 사춘기의 모습을 그린다. 그렇기에 때로는 공감이 가지 않아 어렵게 느껴지기도 하는 책이다. 셰리든은 미숙하고, 성급하고, 다혈질이면서도 쉽게 상처받고, 애정에 목말라 누군가의 사람을 갈구한다. 그런 그녀의 선택은 때로는 바보같고, 그래서 한번씩 끝을 알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눈앞에 셰리든이 서 있다면 어깨를 흔들며 제발 정신을 차리라고 소리를 질러주고 싶을 정도로, 이 소녀의 삶은 엉망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성장이 있다. 소녀는 자랄 것이다. 여름은 끝나지 않았지만, 마침내 가을이 오면 거기에 서 있는 건 달라진 모습의 누군가일 테니까.


넬레 여사의 판타지 월드


   넬레 노이하우스의 인기를 견인했던 타우누스 시리즈에 대해, 독일어 원본을 읽었던 아빠는 웃으면서 말했다. 이 작가의 소설에 등장하는 형사들은, 남녀를 불문하고 모두 멋지고 예쁜데다 능력 좋고 성격까지 쿨하다고. 이 정도면 스릴러가 아니라 판타지지, 하는 설명이 뒤따랐다. 정말로 그랬다. 넬레 여사에게는 특유의 판타지 월드가 존재했다. 로망이 실현되는 공간, 이 세상에 있을 것이라 믿어지지 않는 사람들이 실재하며 사건을 해결하는 곳. 어쩌면 사람들은 거기에 매료되는지도 모른다.

   셰리든은 분명 로망의 집합체라 볼 수 있는 인물은 아니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 셰리든의 외로운 모험 외의 이야기를 담당하는 인물들은 멋지다. 조던 블라이스톤은 외모에 대한 묘사부터 전작의 멋진 형사들과 같은 라인을 이룬다. 게다가 비극적인 출생의 비밀과 동성애적 요소까지 합쳐지니, 정말 작가가 꿈꾸던 대로 빚어놓은 인물 같다는 생각이 안 들 수가 없다. 조던이 자꾸만 이끌리고 마는 니컬러스 화이트호스는 누가 봐도 매력적인 남자다. 게다가 전세계를 떠돌며 극한 직업을 전전하는 자유로운 영혼이자, 말 한마디 한마디에서 쿨함을 숨길 수 없다. 니컬러스의 어머니이자 아메리카 원주민인 메리제인은 또 어떤가. (아마도 작가 자신을 포함하는) 많은 유럽인이 상상하듯, 그녀에게는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신비한 능력이 있다. 미래를 예견하는 힘,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아채는 통찰. 어쩌면 이 소설 전체에서 가장 멋진 인물은 메리제인일지도 모른다.

   그 판타지는 푹 빠져들면 너무나 매혹적이다. 실제로 셰리든의 고행길에서 잔뜩 고구마를 먹다 보면 주변 인물들의 눈부심이 한번씩 사이다가 되어주는 듯하다. 그런데 어떤 순간에는 그 모든 게 불편해지기도 한다. 정형화된 판타지는 때로는 편견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소위 '꼰대' 같은 마음으로 보면 한번씩 덜걱거리는 요소가 있는 소설이지만, 그래도 흡입력 하나만큼은 부인할 수가 없다. 어찌되었든 빠져들면 헤어나올 수 없는 게 '넬레 월드'의 전매특허 아닌가. 그래서 투덜대면서도 책을 덮지 못하고 끝까지 읽어버리고 말았다.


그들의 명대사를 만나보자

 

   "이해합니다, 그랜트 양. 이런 일을 마주하고도 부서지지 않는 게 운명이 인간에게 요구하는 것 중에 가장 어려운 일이겠지요."

   - 조던, p. 69


   "내가 여기 있으면 좋겠어?

   "그래."

   니컬러스가 대답했다.

   "그래, 당신이 머문다면 기쁘겠다."

   - 니컬러스, p. 372


   "당신 정체가 뭐야, 구루?"

   그는 뒤엉킨 생각과 감정을 통제할 수 없어서 농담처러 물었다.

   "형이상학적 관점에서는 '오래된 영혼'이지." 니컬러스가 대꾸했다. "하지만 이번 삶에서는 카우보이야. 이제 상당히 만족하는 삶을 사는 카우보이."

   "아, 그래? 왜 그렇지?"

   "드디어 도착했으니까."

   "어디에 도착했는데? 여기?" 혼란스러워진 조던이 물었다.

   "그래, 바로 지금, 바로 여기에."

   니컬러스는 재킷 주머니에서 손을 빼 조던의 어깨에 얹었다.

   "당신에게 도착했어. 아주 좋은 느낌이야."

   - 조던 & 니컬러스, p. 505



* 북로드 2016 스토리콜렉터스 활동으로 책을 제공받아 쓴 서평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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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격전이의 살인 스토리콜렉터 42
니시자와 야스히코 지음, 이하윤 옮김 / 북로드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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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캘리포니아 S시의 새로 지은 쇼핑몰, 영화관 옆 구석진 자리에 위치한 햄버거 가게가 영 수상쩍다. 메뉴도 한 개 뿐인데다 탄산음료도 팔지 않고, 혼자 가게를 보는 흑인 점원은 어딘가 불퉁한 기색이다. 가장 큰 문제는 가게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는 이상한 물체다. 물체라고 부르기도 애매한, 거대한 차통의 형상을 한 그것은 핵전쟁을 대비한 벙커 같기도 하고, 군사시설의 일부 같기도 하다. 수상쩍은 가게를 그냥 지나쳤으면 좋으련만, 우유부단한 성격의 일본인 에리오를 비롯한 사람들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갑자기 가게로 모여든다. 내내 한 명 이상의 손님이 동시에 있었던 적이 없는 이 가게에. 외모도, 국적도, 인종도, 성격도 가지각색인 손님들의 첫만남은 결코 원만하지 않다. 거친 말이 오가고 폭력을 휘두르기 직전까지 치닫기도 한다. 통하지 않는 언어의 힘을 빌려 서로에 대한 원색적인 편견을 드러내고, 초면에 그닥 싫을 이유도 없는 상대에 대해 적의를 불태운다. 그렇게 도무지 어울리지 않으면서도 한 공간에 머무르게 된 7명에게,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사건이 예기치 못하게 찾아온다. 바로 대규모의 지진이다.

   지진 이후 깨어난 그들의 삶은 완전히 달라져 있다. 은유적인 표현이 아닌, 말 그대로 다른 사람으로 깨어났기 때문이다. CIA 요원들과 아크로이드 박사에 의해 그들은 자신들이 '매스커레이드'라는 현상에 휘말렸음을 알게 된다. 그들이 지진을 피하기 위해 뛰어든 가게 한 구석의 수상한 벙커는 사실 인간의 힘으로 제어할 수 없는 인격 전이 현상을 일으키는 장치이고, 그 장치에 의해 그들은 평생 인격이 뒤바뀌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는 것을 말이다. '매스커레이드'가 얼마의 주기로 언제 일어날지는 누구도 알 수 없으며, 순서만이 정해져 있다는 설명은 지진 그 자체보다 더 암담하다. 무엇보다 이런 현상이 존재한다는 것이 알려지면 안 되기 때문에 그들은 공식적으로 사망한 것으로 처리될 예정이며 다시는 과거의 삶으로 돌아가지 못한다는 것에 대해 그들은 절망한다. 이런 새로운 삶은, 누구도 원하지 않았던 것이다.

   '매스커레이드'. 함께 '체임버'에 들어간 사람들이 '스플릿 스크린'에 의해 인격이 나뉘고 나면, 일정한 순서로 계속해서 인격이 바뀌게 되는 현상이다. A에서 B로, B에서 C로, 순차적으로 인격이 이동하지만 이동하는 횟수와 주기는 인간의 힘을 벗어난다. 이 현상은 평생 지속되며, 만약 누군가 사망할 경우 그 육체와 함께 소멸되는 것은 그 순간 육체에 들어있던 인격이다. 즉, A의 몸과 B의 인격이 함께 죽는 일이 가능한 것이다. 상상도 하지 못했던 상황에 놓인 사람들은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지, 앞으로의 삶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야할지 우왕좌왕하며 대립각을 세우기 바쁘다. 그리고 그 와중에 살인이 일어난다. '매스커레이드'가 빠르게 반복되는 가운데, 누가 누군지도 확신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하나둘씩 사람들은 죽어갈 뿐이다.


그 세계는 안전하다

 

   '인격전이의 살인'이라는 제목을 읽고 책 뒷면의 간단한 시놉시스를 훑었을 때 당장 나부터 이게 뭐지, 하는 생각을 했다. 인격이 자유롭게 뒤바뀌고, 그렇게 인격이 바뀌는 사람들 사이에서 살인이 벌어진다니. 이런 이야기를 어떻게 이끌어가려는 걸까, 싶은 불안감도 있었다. 그런데 니시자와 야스히코는 그 어려운 걸 해내는 작가였다. 소설은 SF 미스터리라는 장르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놀라우리만치 생생한 현실감을 제공했고, 덕분에 흠뻑 몰입하여 소설을 즐길 수 있었다.

   '아무리 비과학적인 현상이 일어나도 처음에 그 조건이 명확하게 독자 앞에 제시되어 있으면 그 범위에서 수수께끼는 풀리고, 독자는 공정한 정보에 기인하여 문제를 생각할 수 있다'고 해설에서 모리 히로시는 말한다. 그 말 그대로다. 형이상학적인 인격을 자유롭게 전이할 수 있는 장치는 아마 실존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작품 전반에 거쳐 작가가 극중 인물의 목소리를 빌려 조목조목 설명하는 작품 속 세계는 흠 잡을 곳 없이 탄탄하고, 그래서 그 세계관을 흡수한 순간 이 소설은 반박할 수 없는 설득력을 지니게 된다. 말이 안 되지만, 그 말이 안 되는 세계 내에서는 모든 게 딱딱 들어맞기 때문이다. 그것이 '인격 전이의 살인'이 지닌 진정한 힘이자, 이 책을 놓을 수 없게 만드는 흡인력의 원동력이다.

   책 속에 친절하게 제시된 그림들을 지도 삼아 이야기를 따라가며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이 미스터리의 진실을 찾기 위해 필사적으로 추리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 어떤 추리소설보다도 더 생생하게, 여기에는 어떤 논리적인 설명이 존재할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나는 그게 참 놀라웠다.


미스터리 모아 로맨스

 

   눈 깜짝할 새에 습격당한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남는 건 오로지 에리오와 애쉬블론드의 미녀 재클린 뿐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CIA는 새로운 조건을 제시한다. 두 사람이 서로 가까운 곳에서 생활하며, 어느 순간 인격이 바뀌어도 들키지 않을 만큼 서로의 직업이나 언어, 생활습관 등에 대해 완벽히 익히면 원래의 삶으로 돌아가도 좋다는 것이다. 그렇게 둘은 일본으로 돌아와, 늘 그렇듯 티격태격하면서도 누구보다 깊은 비밀을 공유하는 사이로 지내게 된다. 그리고 한참이 지나서야, 안타깝게 숨을 거둔 한 때의 동료들의 자취를 더듬다 알게 된다. 이 사건의 진범이 누구였는지를.

   미스터리답게 이 소설의 결말은 반전이다. 꼭 진범을 찾는다는 의미에서뿐만 아니라, '체임버'의 목적에 대해 아크로이드 박사와 진저가 오래 전 깨달은 사실을 공유하는 시점에서도 그렇다. 여전히 니시자와가 구축한 세계 내에서 삐걱대는 일 없이 완벽하게 들어맞는 톱니바퀴 같은 결말이면서도, 어떤 의미에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개인적으로는 해당 인물이 범인이라는 사실에 완벽히 수긍하면서도 범행동기에 대해서는 찜찜함이 남았다. 정말 그런 이유만으로, 누군가는 살인을 결심하게 되는 걸까.

   역자는 후기에서 자신에게 '인격전이의 살인'은 에리오와 재클린의 로맨스였다고 말한다. 책을 덮은 이후에 내가 느낀 기분도 그랬다. 정말로 상대방이 되어 살아보는 경험을 한 연인은, 서로를 얼마나 잘 알게 되는 걸까. 모르긴 몰라도 둘은 행복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비극적으로 숨을 거두어야 했던 다른 사람들의 몫까지, 더 열심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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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오르는 아시아에서 더럽게 부자...]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떠오르는 아시아에서 더럽게 부자 되는 법
모신 하미드 지음, 안종설 옮김 / 문학수첩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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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자기계발서다. 소설 속에는 책을 읽는 사람이 알아채고, 흡수하고, 그를 통해 자기 자신의 인생을 변화시킬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 그건 말 그대로의 자기계발이다. 결국 자기가 아닌 타인에게서 답을 구하게 하는 흔해빠진 '자기계발서'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신흥 아시아 국가에서 더럽게 부자 되는 법. 이 책은 그 방법에 대해 말한다. 그런데 그 방법이라는 게, 사실 개인이 바꿀 수 있는 선택지만을 아우르지는 않는다. 개인의 힘으로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일들도 있다. 가령 이 책에서 더럽게 부자가 되는 첫번째 방법은 도시로의 이주인데, 그건 주인공의 의지에 의한 것이 아니다. E형 간염을 앓았다는 것, 그 와중에도 괜찮겠냐는 아버지의 물음에 괜찮다고 답한 것. 그가 한 것은 이것뿐이다. 도시 한복판에 그를 내려준 것은 운명일 따름이다.
   교육의 기회도 그렇다. 작가는 짐짓 진지하게 셋째로 태어나는 게 중요하다 말한다. 주인공의 형은 바로 일자리를 구했고, 누나는 먼 친척의 두번째로 시집을 가야 한다. 오직 막내만이 온전히 학교를 누린다. 그저 셋째라는 이유만으로. 우리가 태어나는 순서를 우리 손으로 정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렇다면 이 자기계발서가 가르치고자 하는 원칙은 인생은 운명의 장난이니 그저 흐름에 몸을 맡기자는 걸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는 주인공의 삶이 주어진 운명과 너무 다르지 않은가.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나서 도와준다던 '연금술사' 속 이야기처럼, 이 책도 결국 성공의 열쇠는 간절함과 노력에 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사는 이 곳은 신흥 아시아 국가라고 하기엔 너무 익숙한 모습이 되었지만, 여전히 이 시대의 사람들도 고민하고 절망하며 살아간다. 미치도록 힘든 순간, 이 책을 읽어보는 게 어떨까? 그 속에서 답을 발견할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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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내성적인]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지극히 내성적인
최정화 지음 / 창비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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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읽으며 내내 불편했다. 왜 불편한지도 모르면서 계속 그랬다. 읽기에 부담 없는 분량의 단편들인데도 한 장씩 페이지를 넘기는 게 어려워 자꾸만 망설였다. 이 얘기를 더는 알고 싶지 않다는 기분이 들었다. 제발 이 말은 하지 말았으면, 하는 말을 인물들은 여지없이 뱉어놓았고 이야기는 저것만은 아니었으면, 하는 결말으로 치달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덮지는 못했다. 불편해 자꾸 몸을 뒤척이면서도 끝끝내 다 읽어냈다.

   무엇이 그리도 불편했을까? 각 단편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어딘가 결함이 있다. 문학에 있어 주인공의 결핍은 드물지 않은 요소다.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애쓰는 주인공의 모습이 때로는 플롯을 훌륭하게 완성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작품 속 인물들은 다르다. 그들의 결함은 도무지 극복될 수 없는 종류의 것들이다. 그것들은 때로는 그들 자신을, 그리고 그들 주변의 사람들을 좀먹고 이야기를 접하는 독자에게마저 편치 않은 기운을 내뿜는다. 무엇보다 '지극히 내성적인'의 인물들은 그것을 극복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 이야기의 플롯 속에 그들의 결함은 오롯이 존재할 뿐, 어떤 방향성도 띄지 않는다. 그 결함은 때로는 신경증적 강박으로 나타나고, 이따금씩 망상의 모습을 하며, 가끔은 정신병적 경계까지 침범하는 듯하다. 그런데도 작중 인물들은 태연하다. 다른 소설 속 인물들이 작가가 부여한 '정상적인' 인격의 틀 안에서 태연하듯이, 그들도 그렇게 살아간다.

   책을 덮으며 생각해본다. 정말 불편한 게 무엇이었을까. 이 소설이 가져오는 느낌을 단순히 나와 다른 사람에 대한 편견이라던가 사회적 규범을 비껴간 인물에 대한 소외로 환원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이건 꽤나 정당한 기분이기 때문이다. '지극히 내성적인'의 인물 중 한 명이 내 가족, 내 친구라고 상상해보라. 지나친 결벽과 한번 눈에 들어온 대상에 대한 끝없는 집착, 상대에 대한 망상과 거기서 기원한 원망, 진짜라고 믿게 된 거짓말, 자기 세계에 대한 과도한 몰입과 현실감각의 상실. 모두 작중 인물들에게 조금씩 나누어준 일면들이다. 그런 인물의 곁에서 행복하기란 쉽지 않다. '오가닉 코튼 베이브'의 남편이 식탁 앞에 앉을 때마다 느꼈을 숨이 막히는 기분을, 한 손에는 종이칼을, 한 손에는 책을 들고 나타난 과거의 집주인을 마주한 '지극히 내성적인 살인의 경우' 속 여류작가의 당혹감을 독자는 누구보다도 깊게 공감할 수 있다. 똑같지는 않아도 비슷한 성향의 인물을 우리도 주변에서 만난 적이 있고, 그 경험은 무척이나 불편했기 때문에. 그제서야 생각한다. 이 이야기들이 불편했던 건, 이 불편함이 실재하는 것이어서인지도 모르겠다고.

   작가의 말에서 최정화는 자신의 소설을 읽은 후 무언가 하나라도 변화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앞서 걸어가는 사람의 걸음걸이라도 달라 보였으면 좋겠다고. 책을 덮은 후 내일 집을 나서 지하철을 타고 맞은편에 앉은 사람과 눈이 마주치면, 길을 걷는 사람들을 보면, 무심코 스쳐간 사람의 작은 중얼거림을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들까를 상상해 보았다. 흥겨운 멜로디임에도 우연히 들은 모르는 누군가의 휘파람 소리가 소름끼쳤다던 작가처럼, 나도 그런 느낌을 받게 될 것만 같았다. 


누가 누구에게 완벽한가의 문제

 

   한편 정반대의 해석도 가능하다. '지극히 내성적인'의 인물들은 분명 범상치 않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그럴 수밖에 없는 제각각의 이유가 있다. '구두'의 주인공은 실제 꺼림칙하게 여기던 가사도우미가 신발을 바꿔 신고 간 것을 발견한다. 실수라고 치부할 수도 있지만 그 일을 기분 나쁘게 여긴다 해서 지나치게 예민한 거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틀니'의 아내나 '홍로'의 가짜 아내 모두 그렇게 행동하게 된 이유가 있고, 그 이유는 오랜 시간 지속된 불합리한 관계에서 기인한다. 그들의 속에 있는 어긋난 톱니는 어쩌면 아주 사소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사소함을 수면 밖으로 끄집어낸 건 그들을 둘러싼 사람들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이 이야기 속 누구도 결코 완벽하게 떳떳하지 못하다.

   그 사실 또한 불편하다. 소설 속 인물들처럼 완벽하지 못하고 때로는 모나게, 때로는 못나게 구는 나도 누군가에게서 저런 면모를 끄집어낼지도 모른다는 생각. 어쩌면 나를 힘들게 하는 누군가에게 나도 불편한 사람일지 모른다는 생각. 그러다가 또 마음을 고쳐 먹는다. 어차피 함께 살아가는 건 불편할 수밖에 없는 일이라고, 우리는 모두 서로의 불편함을 껴안아주며 함께 살아가고 있을 뿐이라고 그렇게 안도한다.


지극히 내성적인 그들

 

   감자를 포대에 담아주며 승재 어머니가 했던 말이 생각났습니다. 감자 썩는 건 순식간이니까 보관 잘해. 하나가 썩으면 그 옆 감자가 썩고 또 그 옆의 감자가 따라 썩는 식으로, 그렇게 감자 한포대가 모조리 썩어들어가는 게 한순간이라니까. 그러니 썩은 놈을 발견하면 얼른 골라내야 한다는 말이었지요. 그러니까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처음에는 겨우 단 한알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순식간에 전체가 끔찍한 냄새를 풍기게 된다는 거지요.

   장난이라고도 할 수 있는 그 마음이 단 한알의 썩은 감자처럼 순식간에 퍼지고 말아, 나는 선생님에게 그런 말들을 내뱉어버리고 말았던 겁니다.

- p. 146


   벼랑 앞에 서 있는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성실하게 생활을 꾸려가고 순간의 쾌락 대신 인내를 추구한 이들조차 이토록 고단하고 외로운 미래를 맞아야 한다는 것은 잔인한 일이었다.

- p. 189


   원래 나는 아내가 임신했을 때조차도 안방에서 담배를 뻑뻑 피우던 사람이었다. 순간 전처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전처에게 프러포즈를 했던 순간도 떠올랐다. 그때는 그 여자만 내 곁에 있으면 세상이 다 내 것이 될 줄 알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서로의 얼굴을 보고 있는 것이 끔찍해졌다. 해서는 안될 말들이 오갔고 천적을 잡아먹으려는 짐승처럼 으르렁거리기도 했다. 내게 악다구니를 퍼붓던 전처의 얼굴이 떠오르자, 어이없게도 그 얼굴이 너무 어리다는 생각이 들었다.

- p. 201


   이런 문제에는 강했다. 계산할 것도 없이 바로 답이 나왔다. 특히 지문의 내용에 진심으로 공감할 경우 오차는 제로에 가까웠다. 다른 친구들이 지문의 내용을 수식으로 바꾸어 방정식을 풀고 있을 때, 연필이 싫다고 외친 한 친구는 대체 연필로 인한 어떤 상처를 받았기에 선물을 거절했을까 안타까워하면서 그를 위해 무얼 선물하면 좋았을지를 고민했다.

   '샤프일까?'

- p. 244


   이사하기 전날 나는 아주 가느다랗게 숨 쉬고 있었다. 여기서 딱 일인분의 고통만 더 공감한다고 해도 그대로 그만 죽어버리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쇠약해져 있었다.

- p. 246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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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1기 - 당신의 노후를 바꾸는 기적
김경록 지음 / 더난출판사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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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의 시간은 빠르게 간다. 예전에는 그게 한국인의 '빨리 빨리' 근성을 지칭하는 표현이었는데, 이제는 그야말로 빠른 속도로 늙어가는 우리 사회를 의미하는 말이 된 것 같다.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빨리 고령사회와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되는 나라, 그럼에도 인구의 초고속 노화에 아무런 대비가 되어 있지 않은 나라,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은 그런 곳이다.

   당연히 여기저기에서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 65세의 정년을 미처 채우지도 못한 채 평생 몸 바쳐 일한 회사를 나서야 하는 가장들이 많은 이 나라에서, 고령화는 곧 실업과 파산, 불행과 절망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정년을 꼬박 채우고 명예롭게 퇴직한다 해도 평균수명이 85세를 넘어 95세로 향해가는 지금에는 여전히 30년의 시간이 남아있다. 살아온 인생의 절반에 해당하는 시간을, 새로운 계획으로 채우며 살아야 하는 것이다.

   저자는 이 시간에 대한 해답으로 '1인 1기'를 제안한다. 노후를 설계하는 데에 가장 중요한 것은 기술, 좀 더 정확하게는 전문적인 기술이라는 것이다. 초저금리 시대에 쌓아둔 자산은 큰 의미를 발휘하지 못하고, 평생 회사생활을 한 후 은퇴한 사람들은 창업의 꿈에 부풀었다가 사기를 당하기 십상이다. 엉성한 판단은 실패로 이어지고, 인생의 황혼기에는 한 번의 실패가 돌이킬 수 없게 되기도 한다. 그럴 때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줄 수 있는 것이 개인이 지니고 있는 인적자산, 그 중에서도 직업으로 쓸 수 있을 만한 전문적인 기술이라는 것이 저자의 의견이다. 굳이 판검사나 의사가 아니어도 좋다. 아주 작은 기술이라도 고도로 산업화된 사회에서는 오히려 인간적이기 때문에 환영받을 수 있고, 그렇기에 기회로 이어질 수 있다. 실제 저자가 소개하는 사례 속에서 성공적인 노후를 보내는 사람들은 가구를 만들기도 하고, 도예를 배우기도 하며, 기사 자격증을 따기도 한다. 누군가에게는 그 모든 과정이 '너무 늦은' 과정으로 비춰질 지도 모르지만, 인생을 30년이나 더 살아야 하는 상황에서 '너무 늦었다'고 말하는 건 사실 말이 되지 않는다. 시간은 많고, 중요한 것은 그 시간을 얼마나 잘 쓸 수 있는가, 그것 뿐이다.

   제목을 처음 읽었을 때에는 이게 뭔가 싶었는데 읽다 보니 자연스레 설득되는 기분이 드는 책이다. 분명 저자의 조언은 일리가 있다. 실제 환갑을 바라보는 부모님은 종종 당신들의 직업에 대해 잘 선택했다는 평가를 하신다. 정년에 구애받지 않고 평생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정말 나이가 들어 눈이 보이지 않고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게 되고 인지능력을 상실하지 않는 한 아빠는 번역을 계속할 것이고 엄마는 여전히 상담을 할 것이다. 그것은 큰 경쟁력이 된다. 두 사람은 나이가 가져오는 불안에서 어느 정도는 자유롭다. 당장 내년이, 혹은 내후년이 된다고 해서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사라질 거라는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아직 갈 길이 많이 남은 삶에 더없이 고마운 '빽'이 되는 일이기도 하다. 더불어 내가 지금까지의 과정을 통해 쌓아온 능력이 앞으로의 과정에 힘을 실어준다는 건, 아주 뿌듯한 성취감을 가져오기도 한다. 책을 덮으며, 어쩌면 정말로 해답은 '1인 1기' 뿐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타고난 이야기꾼은 다르다

 

   자기계발서도, 경제 관련 서적도 크게 즐기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책장이 술술 넘어가는 느낌이었다. 책의 초반에는 중요한 개념을 소개할 때마다 친숙한 영화들이 등장한다. '마션'이나 '인터스텔라'처럼 대중적으로 인기를 끈 작품을 간단히 요약하고, 새로운 경제개념을 이에 빗대어 설명하는 저자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별 어려움 없이 저자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흡수하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중반을 넘어서면서부터는 다채로운 에시가 등장한다. 실제 '1인 1기'를 실행하며 성공적인 노후를 보내고 있는 사례들은 하나하나 소설에 등장할 것처럼 입체적이고 흥미진진하다. 이렇게 늙고 싶다, 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사례들도 많다. 그런 이야기들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레 저자의 의견에 설득되고 만다. 정말 제대로 된 기술 하나 있으면 행복한 노후를 보내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아직 노후계획이 현실적으로 와닿지 않는 나이인 나도 이 정도인데, 실제 앞으로의 인생 계획이 막막한 퇴직 직전의 누군가에게 이 책은 어떻게 다가올까. 아마 소중한 이정표를 만난 기분이 들지 않을까.


1인 1기를 향하여

 

   앞으로 30년 동안 60세 이상 인구가 1,400만 명 이상 증가한다. 1,400만 명이면 부산 인구의 4배이고, 춘천 인구의 50배이며, 나주 인구의 160배다. 달리 말하면 30년 동안 총인구는 늘어나지 않는 가운데, 60세 인구만 모여 사는 부산만 한 도시가 4개 생겨나거나 춘천만 한 도시가 50개 생겨난다는 뜻이다. 나주만 한 도시는 160개가 생긴다.

- p. 25


   30대 중반에 노후에 빵집을 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빵집 이름까지 지어두었다. 닥터 김즈 베이커리, 간단히 말해 김박사 빵집이다. 이 이름을 붙이기 위해서라도 박사 학위를 반드시 따야겠다고 생각했을 정도다. 그때 나의 비전은 이랬다. 동네 사람들이 아침이면 줄을 서 내가 만든 빵을 사고 또 그 빵을 맛있게 먹고 나도 사람들에게 가끔 공짜로 빵을 주면서 행복을 느끼겠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빵집에 와서 이런저런 얘기도 하고 가고, 새벽마다 밀가루를 반죽하다 보면 아마 팔뚝이 뽀빠이처럼 될 거라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나는 아무거나 잘 먹다 보니 맛있는 것을 만들 줄 모른다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그리고 빵 하나 만드는 데도 외워야 할 게 너무 많았다. 무엇 하나 쉬운 게 없다.

- p. 226


* 더난프렌즈 활동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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