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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부대 - 2015년 제3회 제주 4.3 평화문학상 수상작
장강명 지음 / 은행나무 / 2015년 11월
평점 :
작년 연말에는 이 책이 가장 핫했던 걸로 기억한다. 장강명의 작품 중 '가장 빠르고 가장 독'하다던 소설. 2012년 대선 국정원 개입 사건에 충격을 받은 작가가, 그 이후에도 계속해서 비슷한 일을 하는 댓글부대가 존재한다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에서 착안했다는 이야기는 정말로 빨랐고 그보다 더 독했다.
팀-알렙의 구성원은 지방대를 나와 제대로 된 취업자리를 얻지 못한, 하루의 대부분을 온라인 게임을 하거나 일베 게시물을 훑어보며 낄낄거리는 데에 쓰는 남자 셋이다. 그들은 뛰어난 학벌을 갖추지도 못했고, 어디에 크게 내세울 만한 스펙을 쌓지도 않았으며, 다소 번지르르하게 생긴 삼궁을 제외하면 외모가 뛰어나지도 않고, 더구나 세상 사람들이 하나같이 고개를 내젓는 일베 유저들이다. 그러니까, 그들은 어떤 의미에서는 그닥 잘난 인간들이 아니다. 그러나 팀-알렙은 국정원인지, 대기업인지, 정부기관인지 종잡을 수 없는 미지의 권력과 손을 잡고 억대 보수를 받으며 인터넷을 뒤에서 움직이는 검은 손 역할을 한다. 그것을 가능하게 한 건 오로지 그들의 상상력, 그리고 인터넷 커뮤니티와 그 유저들의 심리에 대한 그들의 경험과 지식이다. 그 경험을 배양토로 삼아 그들은 최고의 댓글부대가 된다.
'댓글부대'는 팀-알렙이 합포회라 불리는 조직의 의뢰를 받아 인터넷 커뮤니티의 판도를 바꾸고 여론을 조작하며 네티즌 전체를 움직이는 과정을 치밀하게 추적한다. 작가가 책 말미에서 모든 인물과 단체는 허구이며 사건들 역시 픽션에 불과하다 언급하지만 이야기 곳곳에 익숙한 커뮤니티의 이름이나 실제 있었던 사건들이 등장하여 실제감을 더한다. 무엇보다 이건 정말 가능할 법한 이야기다. 누군가 저런 방식으로 접근한다면, 충분히 한 커뮤니티를 몰락시킬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저런 전략을 쓰면 동영상 하나로 저런 행위를 유행시킬 수도 있겠다 싶고, 실제 돈과 권력을 쥔 인물들이 이렇게 젊은 애들 몇몇 고용하여 여론을 움직이지 말라는 법이 있나 싶어진다. 그게 '댓글부대'의 힘이다. 작가가 아무리 이건 소설일 뿐이라고, 픽션이라고 말해도 독자 스스로 '이거 진짜같은데?'라고 되묻게 하는 것. 그리고 '댓글부대'를 진짜처럼 만드는 건 다름 아닌 우리 사회의 모습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그들과 똑 닮아있는 우리 주변의 얼굴들, 소설을 움직이는 사건들과 맥을 나란히 하는 우리 사회의 사건들. 우리가 겪은 어두움. 우리가 견딘 분노의 시간들.
빠르고 독하게 썼다는 작가의 말처럼 '댓글부대'는 빠르게 읽힌다. 문체를 다듬고 단어를 고심해서 골라가며 썼다기 보다는 떠오르는대로, 최대한 빠르게 마무리 짓는 걸 목표로 그저 적어내려갔다는 느낌이 더 크다. 우리가 인터넷에 글을 쓸 때 보통 그러하듯. 인터넷 커뮤니티를 묘사하는 문장들에는 이모티콘도 등장하고, 비속어도 난무한다. 정갈하게 다듬어지기보다는 거칠게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듯하다. 그래서 더 와닿는다. 이런 이야기를, 아주 깔끔하고 세련되게 했다면 아마 어딘지 모르게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 같다. 이거 뭔가 어색하고 부자연스럽다는 느낌을 지우지 못했을 것 같다.
'댓글부대'는 편한 책이 아니다. 읽고 나서 마음이 따뜻해지지도, 속이 시원해지지도 않는다. 읽다 보면 계속 찝찝하고 때로는 역겹고 자주 화가 난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누구도 처벌을 받지 않는다. 잔챙이들은 남몰래 죽임을 당하고 바다에 버려지고, 조금 더 큰 앞잡이들은 겨우 목숨을 부지하며 눈치를 보지만, 정작 실세는 흔들림이 없다. 그들은 아랫사람 손에 피를 묻히게 하고는 본인들은 최고급 양주를 마시고 손녀뻘 되는 여자애 몸을 주무르며 편안하게 살아간다. 아마 실제로도 그럴 것이다.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힘의 대부분은 그런 사람들에게서 나올거다. 죽어도 무너지지 않는 사람들. 두려울 게 없는 사람들. 그래서 남들의 두려움을 이용할 수 있는 사람들. 책을 덮고 나서 내내 그들이 떠올라 잠을 이루지 못했다. 댓글부대가 활동하는 전쟁 같은 사회에서, 나는 또 그렇게 작고 약했다.
인터넷을 소설로 배웠다
개인적으로는 '댓글부대'를 읽으며 내가 몰랐던 일들이 참 많았다는 걸 재확인했다. 그러니까 일종의 역사공부를 한 기분이었달까. 인터넷판 역사공부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내 시간이 소중하고, 어느 선 이상으로 타인이 침범하는 걸 싫어하고, 인간관계에 쏟을 에너지를 최소의 사람들에게 최대로 나누어주는 타입이어서 실존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작은 모임을 선호했다. 그러다 보니 인터넷 커뮤니티 같은 데에는 아예 관심조차 갖지 않았다. 내 주변 친구들 챙기기도 버거운데 어떻게 얼굴도 모르고 어디 사는지도 모르는 랜선 너머의 누군가와까지 잘 지낸단 말인가. 오유도, 일베도 내게는 뉴스를 통해서나 접하는 이름들이었다. 그보다 소규모의 카페들에 대해서는 아예 무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댓글부대'는 (비록 모티프만 따오고 새로운 이름을 붙이기는 했어도) 그런 작은 커뮤니티의 생리를 아주 세세하게 다뤘다. 뿐만 아니라 그런 특성을 지닌 커뮤니티의 개개인이 어떤 심리를 지니는지, 그런 상황에서 작은 불씨를 던지면 어떤 갈등으로 번지는지, 그런 갈등이 어떻게 해결되고 또 어떻게 커뮤니티의 붕괴로 이어지는지를 무척 설득력 있게 묘사했다. 그래서 삼국시대 한 왕조의 몰락을 그리는 역사책을 읽듯 '댓글부대'에서 팀-알렙이 펼치는 공작들을 읽어나갈 수 있었다. 진심으로 신기해하면서 말이다.
또다른 한편으로는 앞으로 인터넷에서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이 책이 떠오를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 이 댓글을 쓰는 사람은 누구일까, 무슨 목적일까, 이 사람의 뒤에도 누군가가 있을까, 그 사람의 목적은 무엇일까. 그런 생각들을 하며 인터넷 뉴스의 댓글을, 어느 커뮤니티 이용자들의 시덥잖은 우스갯소리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인터넷 상의 공격들을 바라보게 될 것 같다. 또다른 댓글부대의 존재를 상상하면서.
인상깊은 구절들
괴벨스가 이런 말을 했어.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반드시 국민들에게 낙관적 전망을 심어줘야 한다고. 우리는 전쟁 중이었어. 그 지긋지긋한 가난과 싸우고 있었어.
일자무식의 농촌 출신 병사들이라도 말이야, 저기가 고지라고, 저기만 넘으면 된다고, 저걸 넘으면 넌 위대한 전사가 되는 거라고 북돋워주면 다 그걸 넘어. 자기들끼리 군가를 부르고 '조금만 참자, 버티자'고 외치면서. 그런 때 사람들은 애를 낳아. 여자들은 짧은 치마를 입고 남자들을 유혹해. 자기 미래를 낙관하니까. 하루에 열두 시간을 일하고 돌아와도 몇 년 뒤에 보답이 더 크게 돌아올 걸 확신하면 피로가 금방 가시지. 그런 흥분이 경제도 움직이는 거야.
그런데 멍청한 놈들이 그런 열광을 불러일으킬 생각은 않고 요즘 젊은이들은 패기가 없다느니, 뭘 포기한 세대라느니 하면서 오히려 기를 꺾어놔. 아주 악질적인 사고밥ㅇ식이야. 조금만 부추겨주면 에베레스트도 오를 수 있는 애들한테 '동네 뒷산 오르는 주제에 무슨 엄살이냐'라고 비아냥거리고, '힘드니까 등산이다'라며 멸시하고. 자기들 인생 하나 성공하지 못한 종자들이, 자라나는 애들 미래를 발목 잡고 있어. 다 붙잡아서 감옥에 처넣어야 해.
- pp. 147-148
"뭘 해도 상황이 더 나아질 것 같지 않다는 생각만큼 사람 정신을 좀먹는 것도 없어. 사람들도 그걸 알아. 어떻게든 그런 의심을 떨쳐버리려 필사적으로 애쓰지. 아주 발악들을 해. 취미에 몰두해서 걱정을 떨쳐버리려 하기도 하고, 계산기를 다시 두드려보면 혹시 없던 희망이 생기지 않을까 해서 몇 번씩이나 두드려보고, 하나님 아버지를 찾고, 술을 퍼마시고. 하지만 그런다고 뭐가 달라지겠나?
끝내는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다 화를 내게 돼. 자기가 잘못한 게 없잖아. 그런 때 화가 안 나면 제대로 된 인간이 아니야. 사람들은 분노하고, 희생양을 찾기 시작해. 지금 내가 돈을 얼마나 버는지, 무상복지가 얼마나 이뤄지는지 같은 건 상관없어. 중요한 건 미래고 희망이야.
- p. 149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