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가 스토리콜렉터 40
미쓰다 신조 지음, 현정수 옮김 / 북로드 / 2016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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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완독한 다른 리뷰어 분들이 한번 시작하면 놓지 못하고 끝까지 보게 되는 책이라 하여 과연, 하는 마음으로 벼르고 있었다. 그렇게 밤 10시쯤 책을 붙들었고, 새벽 1시까지 꼬박 읽어 한 권을 끝냈다. 뒷 이야기가 궁금해서 쉽게 놓을 수 없는 책이었다. 분명 책을 집어들 때에는 난 귀신은 안 무서워하니까 괜찮을 거라며 호기롭게 큰 소리를 쳤는데, 결국은 혼자 자기가 무서워서 멀쩡히 제 집에서 자던 강아지를 데려다가 끌어안고 잤다. 금방이라도 누가 방문을 열고 들어와 처음 뵙겠습니다, 히히노입니다, 하고 인사할 것 같아 소름이 끼쳤다.

   이야기 자체는 무척 가볍다는 느낌을 받았다. 소설보다는, 꼭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무서운 이야기 같은 느낌. 작년 여름쯤에 네이트 판에 올라온 실화라며 떠도는 글을 읽은 적이 있었는데, 그 글과도 느낌이 비슷했다. 그 글은 뱀장수가 살던 집에 이사 온 가족이 뱀신에 시달리는 내용이어서, 묘하게 책의 띠지에 있는 '뱀신의 저주가 도사린 흉가'라는 소개와 일치했다. 일본에도 뱀장수가 있나, 하고 장난스레 생각했을 정도였다. 큼지막한 폰트에, 깔끔하게 맺고 끊는 편집에, 극적 효과를 더하는 세밀한 묘사까지 어우러져 페이지가 술술 넘어갔다. 그러면서도 이야기의 몰입도는 굉장했다. 이 이야기의 끝은 어디일지, 이 집에 일어나는 일들이 과연 어떻게 설명될 것인지, 진실은 어떻게 밝혀지고 이 가족은 살아남을 수 있을지, 전부 다 궁금해서 자꾸만 뒷장을 들춰보고 싶은 마음을 억눌러야 했다.

   아무 사전 정보 없이 책을 읽은 독자에게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뱀장수 이야기의 임팩트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나에게는 결말이 엄청난 반전이었다. 그래서 잠들기가 무서웠는지도 모른다. 솔직히 뱀신이 자신을 죽인 사람에 앙심을 품고 찾아와 가족이 잠든 머리맡에서 계속 뛰어다니고 빈 방으로 아이들을 유인한다는 이야기는 별로 무섭지가 않았다. 그냥 죽어서도 원한 깊은 동물이 짠하기도 하고, 결국 모든 건 사람의 잘못이다 싶기도 하고, 그러다 어느새 환경보전과 세계평화에 대해 생각하다 잠들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 책의 결말은 바로 그 사람에 관한 것이었다. 정확히 어떤 경위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게 정말 무분별한 개발에 의해 파괴된 영산에 깃든 뱀신의 저주인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무언가 알 수 없는 광기가 존재했다. 그건 정말 무서웠다. 특히 내게 가장 가깝던 사람이 전혀 모르는 모습으로 변한다는 것, 지키고자 했던 바로 그 사람들으로부터 도망쳐야 한다는 것, 결국은 누구도 구할 수 없다는 것이 끔찍하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반전의 반전, 이라고도 할 수 있는 마지막 페이지에서 동생에게 이야기를 들었을 때 쇼타의 기분이 어땠을까, 를 생각하면 소름이 돋아 자꾸만 추웠다.

   호러 미스터리는 굳이 따지자면 내 취향이 아니다. 애거서 크리스티나 아서 코난 도일 같은 정통 추리소설이나 심리 스릴러를 좋아하는 편이지, 귀신 이야기는 굳이 찾아 읽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책을 앉은 자리에서 다 읽어낸 것은, 그만큼 미쓰다 신조가 훌륭한 스토리텔러이기 때문일 것이다. 분명 책을 덮고 곰곰히 생각해 보면 허점이 많을 법한 이야기인데도, 읽을 당시에는 그 세계에 푹 빠져 내가 마치 안라 시의 시골마을 산기슭에 살게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그러나 그 곳에 남아있는 가족이 걱정되어 늘 발걸음을 돌리고야 마는 쇼타의 마음에도 잔뜩 감정이입하게 되었다. 아마 책의 배경과 같은 여름에 이 책을 읽었다면 무더위도 잊었을 것이다. 여름 납량특집에 제격인, 웰메이드 호러 미스터리였다.


쇼타는 겨우 열 살이다

 

   개인적으로 느낀 이 책의 가장 큰 강점은 이야기의 화자가 열 살 소년이라는 점이다. 어릴 때부터 알 수 없는 감이 발달해서 위험한 일이나 끔찍한 범죄가 일어날 장소에서 미리 어떤 느낌을 받았던 것 외에는 여느 아이들과 똑같은 초등학교 4학년. 새로 이사 간 집의 이상한 점을 가장 먼저 발견하고, 기이한 일들을 목격하고, 관련된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 어린아이이기 때문에 이 책은 긴장감을 더한다. 아이는 힘이 없다. 신체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그렇다. 그래서 쇼타는 이상한 느낌을 받으면서도 가족에게 함부로 말을 꺼내지 못한다. 어린 아들이 악몽을 꾸었나보다고, 괜한 떼를 쓴다고 부모님이 웃어넘길까 두렵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집에 얽힌 비밀을 파헤치는 쇼타가 여러 난관에 부딪히는 것도 어린아이이기 때문인 탓이 크다. 열 살 어린애는 정식으로 자료를 요청하기도 어렵고, 주변 사람들과 안면을 터 정보를 얻을 능력도 부족하다.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센 할멈의 집에 끌려가 어두운 저택에서 생명의 위협을 받는 것도, 어찌 보면 쇼타가 어린아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화자의 나이는 이야기에 긴장감을 더하고, 독자를 끊임없이 몰입하여 쇼타를 응원하게끔 만든다. 그리고 어쩌면, 책을 읽으며 서서히 쇼타와 같은 어린애의 눈높이에서 사건을 바라보게 된 독자들에게 결말은 더욱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한편으로는 어린 나이가 이 소설의 한계점이 되기도 한다. 이야기의 주인공인 쇼타와 쇼타가 이 끔찍한 사건을 헤쳐나가는 데에 가장 든든한 조력자가 되어주는 친구 코헤이는 모두 열 살인데, 특전사 뺨치게 일을 잘한다. 아무리 코헤이가 한눈에 인정할 정도로 머리가 좋다지만, 낯선 마을에 고립되어 한 눈에 보기에도 저주 받은 것 같은 집의 비밀을 풀어가는 쇼타의 사고는 지나치게 고차원적이다. 목숨을 걸고 저택에 잠입하여 쇼타가 잃어버린 이케우치 토코의 일기를 찾아온 코헤이를 보노라면 이 아이를 훈련시켜 FBI에라도 보내야겠다 싶은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야기를 읽다보면 나도 모르게 쇼타와 코헤이가 내 나이쯤 되었겠거니 생각하다가, 한 순간 아, 얘네 초등학생이지, 하고 퍼뜩 생각이 나곤 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나는 뭐했나 떠올려 보아도 이 정도의 문제해결능력은 없었지 싶었다.

   일장일단이 있겠지만 초등학생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는 점에서 '흉가'는 미쓰다 월드 내에서도, 그리고 호러 미스터리라는 장르 내에서도 특별한 위치를 갖는다. 어린아이가 귀신을 목격하는 역할로 자주 등장하기도 하고, 가끔은 귀신이 어린아이의 형태를 하기도 하지만, 이처럼 이야기의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자주적 역할을 맡은 적은 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내내 주인공의 나이를 자꾸 되새겨본다면 좀 더 색다른 재미를 얻을 수 있지 않나 싶다.


이 책의 관전포인트

 

   흔해빠진 귀신 들린 집 이야기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실제 이 책에는 형태가 명확한 귀신은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쇼타가 목격하는 검은 형체들과 모모미가 밤마다 만나는 친구들이 있기는 하지만, 책 말미에 밝혀지는 그들의 정체는 요괴나 유령과는 거리가 멀다. 이 책을 무섭게 만드는 건, 귀신보다 더 무서운 사람들이다. 센 할멈, 파충류 같은 눈을 한 코즈키 키미, 히히노와 히미코의 정체, 그리고 하네타란 이름의 양. 그러니 평소 귀신 이야기에는 끄덕없다고 자신하던 사람도 혼자 있는 늦은 밤 이 책을 읽지는 말기를. 밤잠을 설치기 십상이다.

   가볍고 빠르게 읽히는 책이니 크게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다. 다만 한번 시작하면 멈추기 어려우니 서너시간은 여유를 두고 읽기를 권한다. 잠깐 짬을 내서 읽으려면 자꾸 뒷이야기가 궁금해서 하는 일에 집중이 되지 않을 것이다.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책을 펼쳤다면 내리는 정거장이나 역을 놓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이 책을 선물할 계획이라면 선물 받을 사람의 성향을 잘 파악해야 할 것 같다. 자칫하다가는 누군가에게 최악의 악몽을 선물하게 될지도 모르니까. 그러나 호러 미스터리를 즐기는, 특히 '미쓰다 마니아'라면 이 책의 존재가 정말로 반가울 것이다. 여러모로 매력이 넘치는 작품이니, 꼭 한 번 쇼타와 코헤이의 기묘한 이야기를 따라가 보라고 권하고 싶다.




* 북로드 2016 스토리콜렉터스 활동으로 책을 제공받아 쓴 서평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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