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사랑한 소년 스토리콜렉터 60
안드레아스 그루버 지음, 송경은 옮김 / 북로드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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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른, 레겐스부르크, 뮌헨, 로테르담, 프랑크푸르트, 비스바덴. 독일 전역의 도시들, 그리고 스위스, 덴마크, 네덜란드까지 인접한 국가들 곳곳에서 잔혹한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처음에는 연관성이 보이지 않았던 와중에 시신의 몸에서 공통적인 흔적이 발견되며 점차 하나의 연쇄살인사건으로 초점이 맞춰진다. 그리고 그 사건은 자연스레 과거의 누군가를 떠올리게 한다. 지금은 독일 최북단의 감옥에 있을, 절대 살인을 저지를 수 없는 누군가를.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서사와 함께 마르틴 S. 슈나이더와 자비네 네메즈가 범인을 추적하며 독일 전역을 누비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슈나이더가 5년 전 체포하는 데에 성공했던 희대의 연쇄살인범 피터 판 론의 살인 방식과 너무나 유사한 사건. 그런데 피트 판 론은 오스테버잔트의 감옥에 갇혀 밖에 나올 수 없는 상태다. 흔적도 알 수 없는 범인을 쫓으며 슈나이더는 점차 자비네에게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자신의 과거를 조금씩 털어놓는다.

   한편으로는 피터 판 론을 담당하는 젊은 심리상담사 한나가 오스테버잔트에서 벌어지는 숨겨진 부조리를 밝혀내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녀는 피터 판 론을 이해하기 위해, 그가 살인을 저지른 이유를 알기 위해 때로는 무리한 방식을 선택한다. 어째서 그토록 살인자를 이해하고 싶은 걸까, 하는 의문을 남기며.

   살인은 잔인하고 현장은 끔찍한 안드레아스 그루버 특유의 소설이지만, 전작들에 비해 슈나이더의 인간적인 면모가 부각되는 세번째 시리즈이다. 무엇보다 슈나이더의 제자였던 자비네가 어떤 면에서는 슈나이더보다도 뛰어난 감각을 보이며 감정에 빠져 허우적대는 그를 끌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돋보인다. 인격장애에 가까운 괴팍함을 보이던 천재 프로파일러가 간직한 과거의 아픔, 무엇보다 그와 피터 판 론의 관계가 밝혀지며 사실상 살인의 비밀이 밝혀지는 것 이상의 반전을 선사하기도 한다.

   처음 읽을 땐 긴장감에 숨을 멈추고 다시 읽을 땐 가슴 저려 숨이 막힌다, 는 카피를 내세웠던 책이다. 다시 읽어도 사건은 잔혹하기만 했고 그 모든 일을 저지른 범인이 결코 용납되지는 않았다. 어떤 깊은 트라우마도 타인에 대한 폭력을 정당화할 수는 없는 것이니까. 그러나 마지막 결말에 이르러 슈나이더가 한 선택은 카피처럼 마음이 아팠다. 책 세 권만에 처음으로 슈나이더가 한 사람의 인간으로 다가왔던 순간이기도 했다.

'천재 프로파일러 슈나이더' 시리즈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야 할 책. 무엇보다 자비네가 슈나이더의 파트너로 우뚝 서는 과정이 흥미롭다. 슈나이더도 한 인간이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 그래서 조금은 찡했던 마지막 장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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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몬드 (양장) - 제10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손원평 지음 / 창비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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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미소'라는 게 있다. 갓난아기들이 본능적으로 사람을 보면 방긋방긋 웃는 바로 그 모습을 일컫는 표현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사회적'이라는 표현과 달리 다분히 본능적인 행동이다. 누군가는 진화심리학의 이론을 빌어 나약한 작은 인간이 보다 힘 센 큰 인간의 환심을 사기 위해 취하는 자기보호의 일종이라고도 설명하는 그것. 그걸 못하는 아이들이 있다. 본능적으로, 그렇게 웃지 못하는 아이들.

'아몬드'는 그 극단에 선 아이의 이야기다. 감정을 관장하는 뇌의 편도체가 제대로 발달하지 않아 감정을 느끼지도,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지도 못하는 아이. 그깟 감정 좀 못 느끼는 게 대수냐고 여길 수도 있겠지만 필연적으로 무리를 지어 사회를 구성하고 살아가는 인간에게 감정의 부재는 치명적이다. 아이는 따돌려지고 힐난의 대상이 된다. 감정을 모르는 대신 가족이 상처를 입는다.

역설적으로 '아몬드'는 감정이 없는 주인공을 통해 감정의 중요성을 상기시킨다. 때로는 감정을 느끼는 자들의 시선이 더욱 폭력적임을 보여주며 한번쯤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다름'을 지닌 채 살아가는 이들을 응원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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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 함무라비
문유석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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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리 위에 잠자는 시민이 되지 말라고요!"


   책을 덮은 순간 머릿속을 울리던 건 박차오름 판사가 불의의 순간마다 외치던 그 한마디였다. 지하철에서 성추행을 당하고도 소리를 지르지 못하던 여학생에게, 에쿠스가 새치기를 하는 걸 보고도 침묵하던 톨게이트의 운전자들에게 던져진 결연한 외침은 그렇게 돌고 돌아 나에게 머물렀다. 차마 잠들지도 못했던, 불편한 몸을 뒤척이며 두 눈만 질끈 감았던 나에게.


   전문직이 주인공인 서사는 꾸준한 인기를 자랑한다. 유독 많은 이야기의 중심에서 의사를, 혹은 검사나 변호사를 만날 수 있다. 그것은 특정한 직업이 필연적으로 끌어오는 환상이 주인공에게 특별한 매력을 더해주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많은 사람들이 쉽게 엿볼 수 없는 '전문직의 세계'를 궁금해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법정활극은 그 자체로 매력적인 소재가 된다. 증인을 날카롭게 몰아세우는 검사, 최후변론을 하는 변호사, 법봉을 땅땅 내려치는 판사. 복잡하고 억울하고 서글프고 그래서 해결되었을 때 더욱 감동적인 사건들. 더구나 현직 판사가 들려주는 법정 이야기라면 그 매력은 배가 된다. 현실적이고 생생한 묘사가 곁들여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미스 함무라비'는 디테일을 논하지 않고도 그 자체로 읽고 싶어지는 소설이 된다.


   그런데 무언가 특별한 점이 있다. 대개 법정을 다룬 작품에서 중심에 서는 것은 변호사와 검사인데, '미스 함무라비'의 주인공은 44부의 판사 3인방이다. 대다수의 법정 드라마에서 변호사와 검사의 치열한 대결을 지켜보는 관찰자로, 혹은 서사를 이끄는 갈등을 해결하는 열쇠를 쥔 권력으로 묘사되던 판사가 스포트라이트 아래에 선 셈이다. 작가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판사의 정적인 업무를 설명하며 '판사가 주인공인 드라마나 영화가 세계적으로 극히 드문 것도 이해가 간다'고 이야기하지만 여태껏 알려지지 않았던 판사들의 이야기는 신선하고 유쾌하다. 선고를 내리기 위해 법정에 나서는 그 한 순간을 위한, 무대 뒤편의 고군분투가 비로소 빛을 보는 것이다. 챕터마다 약방의 감초처럼 따라붙는 '판사의 일'에 대한 친절한 설명이 거기에 깊이를 더한다. 그리고 이렇듯 새로운 시각에서 본 법정활극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피고와 원고가 각각의 입장을 가지고 시시비비를 가리는 재판은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하다. 수년간 법정을 다룬 드라마와 소설을 접해 온 경험은 태어나서 한번도 소송에 휘말리지 않은 다수의 사람들에게도 재판정을 친숙한 곳으로 각인시킨다. 그리고 그와 함께 너무도 당연하게 자리잡은 프레임이 있다. 바로 모든 사건에 있어 누군가는 옳고 누군가는 그르며, 누군가는 선한 반면 누군가는 악하고, 그래서 정의는 승리하고 불의는 처단된다는 이분법적 관점이다. '변호인'이나 '소수의견' 같은 작품을 통해 우리는 부조리한 권력에 맞서 당연한 권리를 지키려는 고통스럽고도 숭고한 노력을 지켜본다. 억울한 피해자의 입장에 선 변호사가 드디어 원하는 판결을 이끌어냈을 때 함께 안도하고 기뻐하며 눈물을 훔쳐낸다. 때로는 강건한 검사가 거대한 범죄를 해결하기 위해 타협을 거부하고 소신을 지키며 싸워나가는 모습을 조마조마하게 응원하기도 한다. 그렇게 우리는 늘 한쪽이 승리하는 재판에 길들여진다.


   '미스 함무라비'에는 다양한 사건이 등장한다. 고깃집에서 실수로 떨어진 불판에서 비롯된 손해배상 사건부터 성추행 사건, 전관예우와 '잊혀질 권리'에 이르기까지 스펙트럼이 무척이나 넓다. 사건이 각양각색인 만큼 각 사건의 등장인물들 역시 전형적이지 않다. 그리고 우리는 변호사도, 검사도 아닌 양측이 늘 호소하는 대상이던 '존경하는 재판장님'의 눈으로 사건을 바라볼 기회를 얻는다. 처음으로 옳고 그름이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피고와 원고를 저울질한다. 그리고 마침내 깨닫는다. 세상에 절대적인 선과 절대적인 악이 깔끔하게 나누어지는 경우는 결코 흔치 않다는 것을. 손님에게 불판을 떨어뜨렸지만 얼굴에 스치지도 않았다며 고소는 공갈에 다름없다고 버티는 종업원 아주머니도, 아들 쪽으로 불판이 떨어지는 일이 있은 지 3개월이나 지나서야 고소를 결심한 어머니도 제각각 그럴 수밖에 없었던 사연이 있다. 인턴사원을 성추행한 대기업 부장은 뻔뻔한 가해자이지만, 그의 아내가 변호사에게 남편의 사건을 빌미로 똑같이 성추행 당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순간 또다른 피해자로 전락한다. 그래서 판결로 때로는 누군가의 밥줄을 끊을 수도 있는 판사는 조심스러워진다. 하나의 결론에 이르기 위해 수없이 많은 기록을 읽으며 메모를 남기고 판례를 뒤적인다. 매 순간 다른 얼굴을 하고 고개를 드는 수많은 진실 속에서 가장 올바른 답을 찾아내기 위해서.


   그래서 책을 덮고 나면 궁금해진다. 권리 위에 잠자는 시민이 되지 않아야 하는데, 불의에 맞서고 필요할 때 건강한 목소리를 낼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더불어 살아가는 누군가를 위해 용기를 낼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게 생각보다 쉽지가 않기 때문이다. 단순히 '노오력'이 필요해서가 아니다. 무엇이 올바른 정의인지, 어떤 상황에서 어떤 목소리를 내야 하는지 판단하는 것 자체가 지금껏 생각했던 것만큼 쉽지 않아서다. '미스 함무라비'를 처음 읽기 시작할 때는 어떤 순간에도 굽히지 않고 소신을 관철하고자 하는 박차오름 판사가 무조건 옳은 것처럼 느껴진다. '법원조직법이나 법관윤리강령에 치마 길이 규정이 있'는지 당차게 되묻는 그녀를 자꾸만 응원해주고만 싶다. 그러나 소설을 읽어갈수록 때로는 박차오름을 야단치기 바쁜 한세상 부장판사가 옳을 때도 있음을, 때로는 버티는 것보다 굽히는 데에 더 큰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렇게 자꾸만 스스로에게 정답 없는 물음을 던지며, 물끄러미 다 읽은 책의 표지만 굽어본다.


   그러니까 더 열심히 고민하자. 하나의 사건을 판결하기 위해 때로는 캐비닛 몇 개 분량의 기록을 읽는 판사들처럼, 더 나은 답을 찾기 위해 귀를 조금 더 열자.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않은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자. 박차오름처럼, 임바른처럼, 한세상처럼, 내가 있는 곳에서 최선을 다하자. 그 모든 고민의 끝에 다다른 곳이 완벽한 정의는 아니라 해도, 적어도 우리는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서로를 위로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렇지만 역시, 답답하고 서글픈 날에는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큰 소리로 외치는 '미스 함무라비'를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권리 위에 잠자는 시민이 되지 말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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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글리 러브
콜린 후버 지음, 심연희 옮김 / 북폴리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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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과 <그레이> 사이, 바라던 딱 그 로맨스! 라고 해서, 노트북은 봤지만 그레이 시리즈는 한번도 읽지 않은 나는 애매했다. 적당히 야하다는 건가? 그런 생각을 가지고 책을 펼쳤다. 그리고 다 읽을 때쯤, 이게 중간이면 그레이는 얼마나 야한걸까, 하는 생각을 아득히 했다.


플롯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간호사인 테이트는 새 직장과 학교를 찾아 이사하면서 친오빠의 집에 얹혀살게 된다. 오빠 코빈은 비행기 조종사로, 오빠의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같은 조종사들이다. 짐을 가지고 낑낑대며 오빠의 아파트에 도착한 밤, 테이트는 아파트 문 앞에 술에 떡이 되어 널부러진 한 남자를 맞닥뜨린다. 알고 보니 오빠의 친구였던 그 남자의 이름은 마일스인데, 키도 크고 잘생기고 눈은 투명하리만치 파랗고 금발에 몸이 좋고 동료 조종사들 중 가장 먼저 기장이 될 만큼 실력이 있는 데다 덤으로 비밀스러운 트라우마까지 있다! 당연히 테이트는 점점 마일스에게 빠져들고, 마일스도 뭔가 테이트에게 끌리는 것 같은데 태도가 영 애매하다. 그러던 중 마일스는 테이트에게 육체적인 관계를 제안하며 두가지 조건을 내건다.


첫째, 과거를 묻지 말 것.

둘째, 미래를 기대하지 말 것.


여기까지 읽고 대체 이런 책을 왜 읽었어? 라고 묻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나도 이 부분을 읽을 때는 그런 생각을 했다. 사실 지금도 내가 뭘 읽었는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500 페이지에 달하는 책을 내려놓지도 못하고 반나절만에 다 읽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그 사실은 중요하다. 콜린 후버는 노벨문학상을 탈 작가는 아닐지도 모르지만, 이 작가의 문체와 표현력을 놓고 '마약작가'라는 애칭을 붙이는 것에 대해서는 반박의 여지가 없다.


소설은 테이트와 마일스가 만나는 현재, 그리고 6년 전 마일스의 과거를 오가며 이야기를 전개한다. 이야기 자체는 여자의 어딘가 일그러진 로망을 한 데 모은 느낌인데, 마일스의 존재부터가 그렇다. 내가 10대 후반이었으면 이 소설의 마일스를 동경의 마음으로만 바라볼 수 있었을까? 잘 모르겠다. 아무튼 지금의 나이에 이 소설을 읽으며 드는 생각은 결국 마일스는 예쁜 쓰레기라는 거였다. 외모에 대한 묘사만 읽어도 이 남자가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잘났다는 걸 나도 알겠는데, 사람이 아무리 잘났어도 (그리고 아무리 아픈 과거가 있어도) 다른 사람의 마음을 죄책감도 없이 아프게 해서는 안되는 거니까. 헌신적으로 사랑하는 테이트를 응원하면서도 어쩐지 아깝다는 마음이 자꾸만 고개를 들었다.



"그러면 여자랑 키스한 적은 얼마나 됐죠?"

"여덟 시간 됐죠."

그는 주저 없이 대답했다. 눈을 들어 그를 보자, 그는 씩 웃었다. 내가 뭘 묻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조용히 말했다.

"똑같아요, 6년 됐죠."


플롯 자체는 마일스의 행동을 정당화하지 못하지만, 마일스가 상처를 극복하는 과정 자체는 많은 것을 시사한다. 특히 테이트를 잃을 위기에 놓인 그가 같은 상처를 공유하고 있는 레이철을 6년만에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은 소설 전체에 걸쳐 가장 중요한 지점으로 느껴졌다. 상처를 딛고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대목이었는데, '고통은 언제나 거기에 있다'는 레이철의 담담한 위로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우리가 살면서 겪는 아픈 사건들에 대한 기억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고통은 늘 그 자리에 있다. 다만 기쁜 일이 하나둘씩 늘어가면, 하루를 통째로 차지하던 고통이 점점 이따금씩 찾아오는 고통으로, 아주 잘 지내다가 한번씩만 고개를 드는 고통으로 될 뿐이다. 그러니 고통이 사라질까봐, 혹은 영영 사라지지 않을까봐 두려워할 이유는 없다. 그것은 늘 그 자리에 있다. 남은 자리에 무엇을 채우는지, 우리가 결정할 뿐이다.


결국 마일스에 대한 사랑으로 미련한 관계에 스스로를 던지긴 해도 테이트는 참 매력적이었다. 강단 있고 멋있으면서도 또 한번씩 여리고 사랑스러운 모습들이 진솔하게 다가오는 인물이었다.


남자는 검고 진한 눈썹을 치켜떴다. 눈썹이 잘생겼네. 그게 잘생긴 얼굴에 달려 있고. 잘생긴 얼굴은 또 잘생긴 머리에 달려 있고, 머리는 또 잘생긴 몸에 달려 있군. 결혼한 몸에 말이지.

망할 놈.


치근덕대는 유부남 딜런에 대한 속시원한 평가라거나, 그밖에 마일스에게 건네는 솔직한 고백들, 그리고 툭하면 과보호를 하는 오빠 코빈에 대한 밉지 않은 원망까지. 테이트는 참 예뻤다.


"과거를 마주 본다는 게 생각만 해도 얼마나 무서울지 안다. 모든 사람이 다 무서워하는 거지. 하지만 때로는 우리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자신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맞서야 하는 거다."


이 책에서 또다른 매력포인트를 담당하는 인물은 기장님이다. 등장인물들이 사는 건물의 관리인으로 일하다가 은퇴한 후에는 엘리베이터 잡아주는 일을 하고 있는 노인인데, 팔순의 나이에도 여전한 유머감각과 따뜻한 시선으로 곧 테이트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되어준다. 테이트가 나타나기 훨씬 전부터 마일스의 상처를 지켜봤던 그가 중요한 순간에 던지는 이 한마디의 조언이 두 사람의 관계를, 그리고 마일스의 인생을 바꿔놓는다.


<그레이>를 안 읽었으니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최근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섹시한 로맨스'에 '어글리 러브'도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물론 내가 직접 겪고 싶은 로맨스는 아니지만, 지켜보는 입장에서는(옳고 그름에 대한 생각을 조금만 걷어내고 나면) 흥미진진하게 즐길 수 있는 특급 사랑 이야기다. 어찌되었든 마일스는 글로만 읽어도 참 잘생겼고, 테이트는 멋지다.  그리고 콜린 후버의 글은 잘 읽힌다. 너무 잘 읽혀서 문제다. 영화를 찍으면 마일스 역에 누구를 캐스팅할까, 그런 생각으로 며칠을 행복하게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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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필요한 시간 - 나를 다시 살게 하는 사랑 인문학
사이토 다카시 지음, 이자영 옮김 / 와이즈베리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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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어렵다면, 당신의 마음을 환하게 비춰줄 구세주 같은 책!" 그게 카피였다. 샛노란 예쁜 표지까지 겹쳐져, 연애에 관한 조언이 가득한 달달한 책이 아닐까 하는 선입견이 앞섰다. 그럼에도 '사랑인문학'이라는 단어가 눈길을 끌었다. 인문학이라니, 그렇다면 언제 밀고 언제 당겨야 하는지 콕 집어서 알려주는 연애입문서와는 다르지 않을까. 그런 기대감을 안고 책을 펼쳤다.


책은 사랑이라는 큰 범주 안에서 소소한 주제들에 대한, 어찌 보면 무작위적인 이야기들로 이루어져 있다. 하나 하나의 글들은 서로 관련이 있는 것 같으면서도 다른 사랑을 이야기하고, 그러다 보니 술술 넘어가는 페이지를 훑다 보면 어느 순간 이야기가 언제 이렇게 진행되었나 싶어 당황스럽기도 하다. 인기가 없는 남자에 관한 얘기를 하다가 아가페적인 사랑 이야기가 나오기도 하고, 사랑의 기원을 좇아 소크라테스와 에도 시대를 논하다가도 현대의 연애 풍습을 꼬집어 말하기도 한다. 책 소개에 나온 그대로 '그래도 사랑'이기는 한데 조금쯤 정신이 없는 건 아쉬움으로 남는다.


저자는 스스로를 '옛날 사람'으로 규정하는데 그래서인지 여러 에세이의 근간에 '사랑의 종착점은 결혼'이라는 전제가 깔려있다는 것도 하나의 아쉬움으로 남는다. 물론 결혼도 사랑의 성숙한 형태가 될 수 있고, 사랑 이야기를 쓰면서 결혼이라는 주제를 무조건 배제할 수는 없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많은 일본 젊은이들이 결혼할 상대를 찾는 것에 대해 주저하는 현실 앞에서 그 이유를 파고드는 것도 충분히 의미있는 작업이다. 그러나 글을 읽다 어느 순간 결혼을 선택하지 않는 사랑은 잘못된 것이라는 뉘앙스가 느껴질 때면 불편한 건 어쩔 수가 없다.


"'운명이기 때문에 헤어질 수 없다'는 결속감이 생겼을 때 자기중심적 욕구에서 멀어질 수 있다. 운명은 일종의 체념을 낳는다. 다른 사람이 이 사람보다 나을지도 모른다는 선택지를 없애면 마음이 오히려 편해진다."


위와 같은 조언들이 장난스러웠으면 재미있었을텐데, 진지하게 느껴져서 조금은 무서웠다. 운명이니까 헤어질 수 없다니, 그건 얼마나 폭력적인 사고인가. '다른 사람이 이 사람보다 나을지도 모른다는 선택지를 없애면' 성립하는 사랑은 대체 어떤 사랑이란 말인가.


그러나 앞서 말했듯 이 책에 실린 글들은 그야말로 총천연색이어서 한 꼭지가 불편하다가도 다른 부분에 가서는 금새 흥미로워지고 편안해진다. 가령 작가는 결혼에 대해서는 꽤나 보수적인 입장을 보이는 반면 동성애에 대해서는 놀랄 만큼 개방적인 자세를 보인다. 역사적으로 동성애는 자연스럽게 수용되었으며 일본에서는 메이지 시대에 생산성이 강조되면서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동성애를 금기시했다는 깔끔한 설명은 동성애를 감정적으로 다루지 않겠다는 저자의 입장을 담백하게 보여준다. 그러다 보니 잠깐 불편했던 마음도 이내 안정을 찾는다.


위트 있는 부분들도 있다. 이를테면 '잡담력'을 길러야 한다는 조언이나, 스스로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편애 지도'를 작성하게 하는 과제가 그렇다. '잡담력'은 사랑을 남녀관계를 좀 더 쉽게 풀어나가기 위한 충고이기도 하지만, 또한 고령화가 진행되는 사회 구조 속에서 고독을 타파하기 위한 대안으로 제시되기도 한다. '편애 지도'는 타인과의 사랑이 아닌 스스로를 사랑하기 위한 하나의 방식으로 주어진다. 내가 사랑하는 것들, 좋아하는 것들을 꼽아보다 보면 스스로를 좀 더 잘 이해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책은 사랑이라는 테마의 뷔페 같다는 인상을 준다. 어떤 음식은 입에 맞는 반면, 어떤 건 영 별로일 수도 있다. 다양한 음식이 있으니 그 모두에 하나의 통일성을 기대할 수도 없다. 그래도 골라먹는 재미가 있고, 그 중 어떤 것은 너무 맛있어서 계속 생각나기도 한다. '사랑이 필요한 시간'은 사랑에 관한 정답을 던져주지 않는다. 아주 많은 시선을 알려줄 뿐이다. 그 속에서 내 마음에 꼭 맞는 단 하나의 시선을 찾아내는 것은 독자의 몫인지도 모른다.


"두 사람이 마주보고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러니 당신도 나를 사랑해주세요'라는 식의 사랑은 때로 사람을 지치게 한다. 하지만 '우리 둘 다 이것을 좋아하니 이것에 대해 이야기합시다'라는 식의 사랑은 싫증도 나지 않고 재미있다."


내가 찾아낸 단 하나의 시선이다. 이런 사랑이라면 언제든지 환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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