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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에 겐자부로 - 사육 외 22편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21
오에 겐자부로 지음, 박승애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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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책 제목을 접했을 때 주인공 이름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일본 소설에는 가끔 주인공의 이름을 제목으로 내세우는 경우가 있으니까. 책을 받아 보고서야 이 책이 오에 겐자부로라는 일본 작가의 단편집임을 알았다. 그때서야 내 무지가 새삼 부끄러워졌다. 일본인으로서는 '설국'의 저자 가와바타 야스나리에 이어 두번째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세계적으로 이름 있는 작가인데 내게는 너무도 생소한 이름이었다. 그래도 일본 소설을 꽤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내 독서력은 여전히 한참 부족한 모양이었다.

작품을 읽고 나서야 작가에 대한 정보를 찾아봤다. 괜한 편견을 갖기 싫어서였다. 작품을 보며 아마 2차 세계대전을 직접 겪은 사람이겠구나 짐작했었는데, 찾아보니 역시 1935년생이었다. 어린시절 형들이 전쟁터에 불려가는 걸, 일본 본토가 점차 피폐해져가는 걸, 어느 날인가 두 곳이나 원자폭탄이 떨어져 수없이 많은 민간인이 죽어가는 걸 지켜보며 자랐을 것이었다. 아주 어린시절이라 세세한 기억은 나지 않는다 해도 그 충격은 분명 그의 남은 삶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고, 그의 작품세계를 형성하는 데에도 큰 기여를 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오에 겐자부로의 작품세계에서 보다 큰 축을 담당하는 건 전후 일본의 사회상인 듯 했다. 패전국이 된 일본을 지배하는 절망, 경제적 어려움과 불안한 미래를 앞에 두고 흔들리는 청춘, 분노와 증오, 그 속에서 피어나는 새로운 전쟁에 대한 열망, 일본 사회 내에서 자행되었던 약자에 대한 폭력. 그의 작품은 그런 어두운 그늘을 하나씩 그러모아 묶어낸 느낌을 준다. 그래서 어느 하나 티없이 밝은 작품이 없지만, 그만큼 보다 깊은 울림을 가진다.

그에게 아쿠타가와상 최연소 수상의 영예를 안겼던 '사육'은 긴 여운을 남기는 단편이었다. 어린 시절 가난한 산골 마을에서 자라며 종전을 맞이했던 그의 개인적 경험을 기초로 하되 그 나이 또래의 어린아이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들을 담아낸 작품이었다. 지하실에서 '기르던' 포로와 자신의 왼손을 한꺼번에 잃은 후 '나는 더 이상 아이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화자를 통해 작가는 어쩌면 전쟁이 일본에 남긴 돌이킬 수 없는 무언가를 말하려 했던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죽은 사람을 보는 것에 익숙해지는 어린아이란 얼마나 슬픈 것인지, '사육'의 마지막 작면에서 잠깐 눈물이 날 것 같은 마음을 다잡으며 문득 생각했다.

오에 겐자부로는 작품보다도 사회활동으로 한국에 잘 알려진 작가이기도 하다. 실제 작가는 종전 이후의 일본에서 꾸준히 군국주의, 우경화, 핵무기 등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냈다. 1970년대에는 김지하 시인의 구명을 위해 단식투쟁을 하고, 한일관계가 악화일로를 걸을 때 고이즈미가 물러나야 한다고 목소리를 냈으며, 최근에는 독도 분쟁에 대해 독도는 일본 침략의 증거라고 비판하기도 하는 등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실제 그를 일본 정부의 잘못된 역사관과 외교정책에 대해 자성의 목소리를 내는 대표적인 일본 지식인으로 여기는 사람들도 많다. 그의 작품들이 대부분 일본인이 겪은 전쟁의 상처를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침략에 대한 미화나 철저한 자기중심성으로 여겨지지 않는 이유는, 그가 이토록 모든 폭력에 반대하며 폭력에 희생된 사람들에 대해 똑같은 눈높이로 성찰하기 때문일 것이다.

단편집을 읽으며 처음 알게 된 사실은, 그의 큰아들이 지적 장애를 갖고 태어났다는 것이었다. 실제 그 영향으로 오에 겐자부로는 아들과 자신의 모습을 투영한 작품을 연달아 집필하기도 한다. 아들의 장애를 부끄럽게 여겨 숨기려 하거나 그에 대해 이유없는 죄책감을 느끼며 실의에 빠져있기보다는 아들의 삶을 인정하고, 이해하고, 도우려 노력하는 아버지로서의 그의 모습이 작가로서의 그의 모습과 전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 오에 겐자부로의 큰아들 오에 히카리는 장애인 작곡가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데, 그의 삶을 이끌어준 것은 늘 지극정성을 다한 아버지였다고 한다. 아마 아들 역시 아버지의 인생에 이름처럼 늘 빛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올해 여든한살이 된 작가는 아직 생존해 있다. 언젠가 꼭 오에 겐자부로를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무라카미 하루키에 이어 두번째로 작가와의 만남을 버킷 리스트에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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