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이 새겨진 소녀 스토리콜렉터 44
안드레아스 그루버 지음, 송경은 옮김 / 북로드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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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아이가 달린다. 가시덤불에 걸려 살갗이 찢어지면 비명을 지르면서도, 맨발이 아파 힘겨워하면서도 쉼없이 달린다. 멀리 집 한 채가, 그 집을 막 떠나려는 차 한 대가 보인다. 저 차를 잡아야 한다. 그래야 살 수 있다. 여자아이는 있는 힘껏 소리를 지른다. 차가 그냥 떠나는 것 같다. 다리에 힘이 풀린다. 그러나 아이가 바닥에 널부러지는 순간, 속도를 올리던 차가 멈춰서고 노부인이 내려서 뛰어온다. 아이를 안아들고 황급히 남편을 부른다. 그리고 아이의 등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아이의 등에는 지옥이 새겨져 있다. 지옥이라고밖에 부를 수 없는, 그런 고통을 동반했을 문신들이다.


또다른 이야기가 시작된다


또다른 곳에서는 한 여자가 비를 쫄딱 맞은 채 차를 운전한다. 오늘은 영 일진이 좋지 않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마음 한구석에는 기쁨이 깃들어 있다. 내내 일하고 싶던 곳에서 드디어 기회를 얻었다. 그 곳에는 여전히 식지 않은 감정이 남아있는 옛 애인이 있다. 그녀가 향하는 곳에는 어떠한 가능성, 어떠한 희망이 있는 것만 같다. 드디어 도착한 새 직장은 생각만큼 친절하지 않다. 그러나 그 사실은 그녀에게 그닥 중요하지 않다. 그녀의 마음을 무너뜨린 건 다름아닌 옛 애인의 입원 소식이다. 모두가 쉬쉬하는, 자세히 말해줄 수 없다고만 얼버무리는 어떠한 이유로 중태에 빠졌다는 그 남자의 이야기가 그녀를 더 이상 웃을 수 없게 한다.


결국 그것은 같은 이야기


넬레 노이하우스를 필두로 한국에 연이어 소개된 독일 크리미(범죄물)의 특징은, 서로 전혀 다른 곳에서 전개되는 것 같던 이야기들이 결국 어느 지점에서 서로 맞물려 하나가 된다는 데에 있다. 납치되었다가 1년만에 의문의 문신과 함께 다시 나타난 클라라, 연방범죄수사국에서 호흡을 맞추게 된 마르틴 슈나이더와 자비네 네메즈, 자비네의 옛 애인인 에릭, 그리고 클라라를 면담하게 된 검사 멜라니 디츠. 소설 초반 다양한 인물의 등장이 혼란스러울 수 있지만 점차 이야기가 전개되다 보면 그들이 각자 가고자 하는 길이 서로 교차하고 엉키며 하나의 진실로 향해가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게 독일 크리미의 매력이다. 엉망이 된 실타래처럼 보이던 어느 순간 뜻밖의 진실이 튀어나오는 것. 그렇게 끝을 알고 나면 모든 것들이 제자리를 찾아 하나의 이야기를 이루는 것. 어느 날 숲속에서 나타난, 말을 하지 못하는 의문의 소녀를 통해 안드레아스 그루버는 또다시 한국의 독자들을 이야기 속으로 깊숙이 끌어당긴다.


진실은 어디에


등에 단테의 신곡 중 지옥편을 묘사한 문신을 새긴 채 나타난 클라라. 그 이후 클라라가 발견된 빈 외곽의 숲에서 연이어 발견되는 등의 피부가 벗겨진 채 살해된 소녀들의 주검. 한편 뮌헨에서 독일 전역에 걸쳐 발생한 살인사건들이 동일범에 의한 연쇄살인임을 직감하고 수사를 시작하는 슈나이더와 자비네. 사건의 행적은 또다른 사건으로 이어지고, 그렇게 모든 것이 연결되었을 때 23명의 피해자가 관련된 어마어마한 사건이 실체를 드러낸다. 그 너머의 진실을 보는 것은, 이제 책을 읽는 독자의 몫이다.



창고 화재로 '지옥이 새겨진 소녀' 1쇄본이 대부분 불에 타서 사라졌다고 한다. 아픔을 겪은 책인 만큼 결과는 더 좋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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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하이든
사샤 아랑고 지음, 김진아 옮김 / 북폴리오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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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가 있다. 그의 책은 전세계의 언어로 번역되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읽힌다. 가히 천재적인 소설가라 할 만하다. 그 남자에게는 어떤 매력이 있다. 잘생긴 외모에 달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을 어떤 의미있는 존재로 여기게 하는 분위기. 한때 그는 그 매력으로 여자들을 등쳐 먹으며 하루하루를 근근히 이어갔다. 그 매력으로 처음 마르타를 만나는 행운을 누렸고, 어찌 보면 그 덕분에 여기까지 왔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도 자수성가한 인생이다.
한 여자가 있다. 진짜 천재는 이쪽이다. 그녀가 매일 밤 타자기로 찍어내는 이야기 속에는 사람을 매혹하는 무언가가 있다. 그녀의 삶에는 존재하지 않는 매력이 그 안에 있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그 매력을 세상과 공유할 마음이 전혀 없다. 그녀에게 글은 흘러나오는 것이다. 흘러나올 수밖에 없기 때문에 매일 밤 타자기 앞에 앉아 종이에 옮겨야만 하는 것이다. 그렇게 옮겨진 글은 그녀에게 어떠한 가치도 지니지 않는다. 지하실에서 천천히 썩어갈 뿐이다.
그 남자와 그 여자, 헨리와 마르타가 만났다. 두 사람의 이해관계는 깔끔하게 맞아 떨어졌다. 아내의 글을 가로채 자기가 쓴 것처럼 출판하는 남편이라니, 세상에 둘도 없는 개자식 같지만 사실상 그건 마르타가 원한 일이기도 하다. 마르타의 글로 헨리가 유명작가가 되어 돈방석에 앉는 건, 적어도 둘 사이에서는 반칙이 아니다. 둘은 잘 맞는 팀에 불과하니까.
하지만 헨리가 그렇게 손에 얻은 돈과 명예로 다른 여자를 만나고 다니는 건, 심지어 그렇게 만난 여자가 헨리의 아이를 임신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 거기서 모든 문제가 시작된다. 헨리가 보낸 마르타의 소설을 처음 발견한 사람, 이후 헨리의 충실한 편집자가 되어준 사람, 때로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마르타보다 더 헨리의 아내같이 보이던 사람, 베티가 임신했다. 자신의 삶의 근간을 흔드는 그 사건 앞에서, 헨리는 별안간 살인충동을 느낀다.


선택이 사람을 말한다


헨리는 원래부터 그닥 고상한 인간은 아니었지만, 밑바닥 인생 중에서는 잔챙이에 속했다. 여자와 원나잇을 즐기고 자잘한 금품을 털어 달아나는 게 고작이었던, 남에게 피해를 주긴 해도 그 정도가 몇 마디 욕을 해주고 나면 될 정도에 그쳤던. 그러나 평생 다시 없을 행운으로 손에 넣은 화려한 삶을 잃게 되는 위기의 순간에서, 헨리의 내면에 잠들어 있던 무언가가 표면으로 떠오른다. 밑바닥보다 더 깊은 무언가. 보통의 사람들은 평생 들여다보지 않고 살아가는, 아주 깊고 어두운 것. 그렇게 헨리는 베티를 없애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헨리의 인생에 행운이란 마르타와의 만남이 전부였는지도 모른다. 절벽에서 베티의 차를 자신의 차로 밀어 떨어뜨린 후 집에 돌아온 헨리는 얼마 후 초인종을 누르는 손님의 모습에 기겁한다. 거기에 바로 베티가 서 있다. 그리고 베티가 전하는 진실은 헨리를 얼어붙게 만든다. 모든 사실을 알게 된 마르타가 베티를 찾아갔다는 것. 베티의 차를 몰고 절벽으로 갔다는 것. 그렇다면 지금 차와 함께 영영 돌아오지 못하게 된 건 베티가 아닌 마르타다. 그리고 그것은, 헨리에게 더 이상의 소설이 없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제 헨리는 생각해야 한다. 그의 지금을 만드는 아주 큰 거짓말이 부서져 내리지 않도록, 영리하게 굴어야 한다. 거짓말은 거짓말을 낳고, 진실은 자꾸만 수면 아래에서 찰랑인다. 그리고 헨리는 초조해진다. 초조함은 또다시 헨리의 내면 깊은 곳의 무언가를 건드린다.

헨리 하이든의 가장 큰 장점은 거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결코 스스로를 좋은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 하나의 거짓말이 불러온 파멸, 그 끝에서 그는 과연 어디에 서있을지. 그리고 그 끝에서 우리는 어떤 심연을 들여다보게 될지. 단순한 스릴러를 뛰어넘어 인간의 본성을 자문하게 하는 소설, '미스터 하이든'을 만나볼 시간이다.

썩어가는구나.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안에서부터 밖으로 썩어가고 있어. 그래, 난 썩을 놈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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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낳아도 행복한 프랑스 육아 - 유럽 출산율 1위, 프랑스에서 답을 찾다
안니카 외레스 지음, 남기철 옮김 / 북폴리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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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핏 보면 프랑스 작가가 쓴, 프랑스 육아를 홍보하는 책처럼 보인다. 그러나 저자 안니카 외레스는 사실 독일 출신의 기자다. 동시에 프랑스에서 아이를 낳은 엄마이기도 하다. 이 책은 그녀가 프랑스에서 아이를 낳고 기르며, 또 프랑스 엄마들이 아이를 낳고 기르는 모습을 지켜보며 남기는 기록이다. 자연히 저자가 의도하는 독자는 독일의 엄마들, 혹은 엄마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저자는 엄마보다 여성 그 자신을 더 중요한 존재로 인정하고 모성애를 강요하지 않으며 부모가 행복해야 아이가 행복할 수 있다는 신념 아래 양육을 하는 프랑스의 육아문화에 대해 이야기하며 독일 여성들이 겪는 육아에 대한 강박과 부담을 안타까워한다. 자신에게 큰 힘이 되어주었던 프랑스의 육아에 대한 시선을 그들에게도 알려주고자 한다.

   그런데 책의 내용이 낯설지 않다. 저자가 묘사하는 독일 여성들의 어려움이 고스란히 한국 여성들에게도 해당하기 때문이다. 아이를 낳고 기르다 보면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두려움, 실제로 커리어의 포기로 이어지는 육아. 일과 육아를 병행하며 좋은 엄마가 되지 못한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엄마들. 육아는 여성의 몫이라는 사회적 시선. 그 모든 건 먼나라 이야기가 아닌, 바로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말들이다.

   그래서 이 책은 한국의 엄마들, 혹은 예비엄마들에게도 용기를 실어준다. 지금 하고 있는 고민들에 대해, 애초에 그건 고민이 아니었다고 얘기하면서 말이다. 일과 육아 사이의 저울질, 육아를 하며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수많은 포기들, '좋은 부모'가 되는 것에 대한 고뇌, 그 모든 것이 그저 사회가 오랜 기간에 걸쳐 형성하여 여자들에게 덧씌운 불필요한 것들이라는 것이다. 어머니는 완벽한 존재가 아니다. 아이를 위해 무조건 희생해야 하는 존재도 아니다. 엄마가 되는 것은 여자의 인생 중 (아주 아름다운) 일부분에 불과하고, 그 일부분을 위해 인생 자체가 희생되어서는 안된다. 일하면서, 좋아하는 취미를 지속하면서, 그러면서도 행복하고 따뜻하게 아이를 기를 수도 있는 것이다. 그 사실에 대해 100%의 엄마가 아니라고 자책할 필요는, 정말이지 전혀 없다.

   나는 엄마가 아닌데도 책을 읽으며 소소한 위로를 받았다. 내 또래만 해도 벌써부터 아이를 낳을 수 있을까, 아이에게 잘해줄 수 있을까 고민하기 때문이다. 육아는 리셋버튼이 없는 게임과 같아서 한번의 실수가 아이의 평생을 좌우할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한번씩 끼쳐오고는 했다. 그렇다면, 가장 완벽하게 준비된 타이밍이 올 때까지 아이는 낳아서는 안 되는 게 아닐까. 그 모든 고민들에 대해서 단호하게 아니라고 말해주는 저자가 있어서 이 책은 마음을 조심스레 간질였다. 그렇게 고민하는 게 당신 혼자가 아니라고, 나 역시 그 고민들을 거쳐 지금 여기에 있다고 말하는 그녀가 있어 힘을 얻을 수 있었다.

   지금 아이를 키우는 엄마라면, 혹은 언젠가 아이를 낳을 계획이 있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봤으면 하는 책이다. 더불어 남자들이 읽었을 때 육아에 대한 여자의 고민을 보다 생생히 이해할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에게 이 책이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완벽함에 대한 강박을 버리자

 

   프랑스는 유럽 내에서도 출산율이 높은 나라라고 한다. 실제 저자가 만나는 대부분의 프랑스 친구들도 아이가 둘 이상 있다. 그 중에는 살 집이 정해지지 않았는데도, 당장 직업이 없는데도 아이를 갖고 싶기 때문에 아이를 가졌다는 친구들도 있다. 그런 '무책임함'을 독일인인 저자는 처음에는 신기해하고, 나중에는 부러워한다. 어떤 부모가 될지 고민하기 이전에 부모가 되고 싶으면 되기로 마음먹을 수 있는, 어떤 가치보다 부부 사이에서 아이가 태어나 그 아이를 길러가는 기쁨을 택할 수 있는 프랑스인들의 흔들림 없는 우선순위를.

   사실 책을 읽는 초반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저렇게 살아도 되는건가, 싶을 때도 있었다. 그러다 어느새 나도 한국인의 기준 안에 갇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새 나도 엄마는 당연히 아이를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하고, 아이를 키우는 데에 있어 실수하면 안되고, 출산은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경험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아이가 중요하지 않다는 게 결코 아니다. 프랑스인들은 누구보다 아이들을 사랑하고, 바르게 키우려고 노력한다. 중요한 건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조금 덜 완벽해도 더 행복한 엄마의 아이들이 훨씬 잘 자랄지도 모른다.


프랑스가 전해오는 양육 조언

 

   1. 부모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다

   2. 아기를 갖기에 '완벽한 때'는 없다!

   3. 아이는 부모가 함께 키우는 거야

   4. 항상 훌륭한 엄마일 수는 없어

   5. 완벽한 출산

   6. 아이를 어디에 맡겨야 할까

   7. 셋째 아이는 알아서 클 거야

   8. 아이들에겐 지루한 시간도 필요하다

   9. 행복한 프랑스 워킹맘

   10. 말이 통하는 아이들

   11. 코스 요리를 먹는 프랑스 아이들

   12. 아이들은 아무 데서나 잘 잔다

   13. 막내아이 대하듯이 자신을 돌보기


북폴리오 2016 서포터즈 활동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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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혜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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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날 삶의 한 가운데를 차지한 거대한 구멍 같은 사고. 몸을 움직일 수도, 말을 할 수도, 스스로를 돌볼 수도 없게 된 오기는 그렇게 홀로 남는다. 함께 여행을 떠나자고 했던 아내는 사고로 사망했고, 그에게 남은 가족이라고는 아내의 어머니, 장모 뿐이다. 혼자 대소변을 볼 수도, 자기 몸을 닦을 수도 없는 그를 돌보게 된 것도 장모다. 그리고 장모는 딸이 죽고 없는 집에서 딸의 흔적을 찾아간다. 딸과 사위의 관계를 확인한다. 딸이 품었던 감정을 들여다본다. 그리고 구멍을 파기 시작한다. 딸이 집착했던 정원에, 거대한 구멍을.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었을 때, 그 때 우리의 모습이 어쩌면 우리가 그동안 살아온 삶의 가장 생생한 반증인지도 모른다. 일찍 부모를 여읜, 성공에 목말랐던, 때로는 그를 위해 옳지 못하나 그렇게 비난받지도 않는 길을 택했던, 늘 외로웠고 그 외로움을 제대로 된 관계로 충족시킬 줄 몰랐던 오기는 얼굴이 뭉개지고 사지가 마비된 채 병원 침대에서 눈을 뜬 순간 어쩌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그에게, 사람들은 다르게 대한다. 대학 교수도, 성공한 동료도, 한때의 애인도, 너무 사랑하는 딸의 남편도 아닌 그저 오기라는 인간으로 남은 그 순간, 그래서 오기의 삶은 속절없이 흔들린다. 때로는 입주도우미와 그녀의 아들에게도 무력하게 모욕을 당할 만큼, 그 모욕마저 그리워하게 될 만큼. 오기의 추락은, 자동차가 절벽으로 떨어지던 그 날 이후로 계속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오기는 좋은 인간이 아니다. 그렇다고 끔찍한 악인이라 하기도 어렵다. 오기는 바람을 피운다. 아내를 두고 제이와, 제이를 두고 또다른 여자와 잠자리를 하며 결국에는 모두의 마음을 잃는다. 대학원에서 고만고만하게 공부했던 동료들을 앞서기 위해 오기는 넌지시 누군가의 험담을 흘려본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굳이 할 필요는 없었던 그 말 덕분에 오기는 그 누군가보다 일찍 좋은 자리를 차지한다. 그러나 그런 오기의 행동에는, 어쩐지 경멸과 함께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무언가가 있다. 오기는 나약하다. 한번도 강했던 적이 없다. 그 나약함이 오기를 비겁하게 하고, 비겁함이 오기를 못나게 만든다.

    나약한 오기를 사람들 위에 서게 했던 건 사회적 지위와 경제력이었다. 사고 후 겨우 왼손을 움직이게 된 오기로써는, 그 중 무엇도 남아있지 않다. 언젠가 그 곳으로 돌아갈거라는 희망이 잠시나마 오기를 일으키지만 사위가 자신의 딸에게 어떤 상처를 입혔는지 알게 된 장모는 서서히 그 희망을 끊어나간다. 오기의 대학에 사직서를 대신 내고 오기의 돈을 멋대로 쓴다. 그리고 오기가 한번도 사랑한 적 없던 정원, 아내의 정원에 구멍을 판다. 어두컴컴한 방 침대에 누운 오기가 볼 수 없는 곳에. 사람을 삼킬 만큼 깊고 크게.

   마지막 순간 거대한 구멍의 바닥에 누워 오기는 하늘을 본다. 그런 오기의 얼굴에서 읽히는 건 체념, 그 체념보다 깊은 안심이다. 드디어 모든 게 끝났다. 오기의 나약함은 그의 주변 사람들을 괴롭혔을지 모르지만, 그 시간 내내 가장 두려웠던 건 오기였는지도 모른다. 오기는 가진 게 없었고, 그래서 더 갖기 위해 노력해야 했고, 그렇게 가진 것을 잃을까 전전긍긍했다. 그 모든 시간이 지났다. 더 이상 잃을 게 없는 오기에게 남은 건 그 구멍 뿐이다. 그 시간이, 어쩌면 오기의 인생에 처음 찾아온 평화였는지도 모른다.


나는 내 안의 두려움을 보았다

 

   '홀'은 무척이나 정적인 작품이다. 큰 사고 후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오기에게는, 사실 어떤 다이나믹한 일이 생길 수가 없다. 그런데 입주도우미가 몸을 닦아주는 척 희롱해도 제지할 수 없는, 전화 한 통 마음대로 할 수가 없는, 자신이 걸었던 전화를 조용히 들어 재다이얼 버튼을 누르는 장모를 지켜볼 수밖에 없는 오기에게는 일상적이고 사소한 그 모든 일들이 생활을 뒤흔드는 사건이 되어버린다. 그 모든 순간이 공포를 야기한다.

   그래서 이 책은 어느 순간부터 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섬뜩했다. 침대에 하루종일 누워있는 오기, 그런 오기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 구멍을 파며 그 곳에는 '살아있는 것'이 들어갈 거라고 말하는 장모. 오기가 필사적으로 '장모 이상'이라고 글씨를 써 자신의 위험을 알리려고 한 그 때, 물리치료사가 순진하게도 환자가 장모님이 요즘 건강이 이상하다고 많이 걱정한다며 그 쪽지를 장모에게 전하는 그 순간의 공포. 귀신도, 살인마도 등장하지 않는, 사실 등장하는 인물이라고는 오기와 장모와 그 외의 몇몇 단역 뿐인 이 이야기가 어떤 스릴러보다도 간담을 서늘하게 한다.


인간의 본성에 대한 소설

 

   장모가 오기를 구멍에 빠뜨리는 데에는 아무런 힘도 들지 않았다. 그저 오기가 필사적으로 기어가는 앞을 막아서며, 끝없이 한 쪽으로 가도록 유도하기만 하면 되었다. 장모가 손끝 하나 대지 않았는데도, 오기는 제 힘으로 그 속으로 굴러떨어졌다. 그리고 그 곳에서 나갈 수 없어졌다. 자기보다 덩치가 훨씬 작은 장모가 파놓은 구멍, 자기 집 마당에 있는 구멍, 바로 울타리 하나 너머로 끊임없이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위치의 구멍인데도. 목소리도 낼 수 없고 다리도 쓸 수 없는 오기는 그저 거기에 누워 하늘을 보는 것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때때로 인간은 그토록 나약하다. 평생 나약했던 오기는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 상태에 놓였을 때 비로소 자유로워졌다. 오히려 사고로 즉사한 아내, 그래서 살아남아 이토록 괴로운 상황을 겪지 않아도 되는 아내가 부러웠던 오기. 

   "깊고 어두운 구멍에 누워 있다고 해서 오기가 아내의 슬픔을 알게 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자신이 아내를 조금도 달래지 못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아내가 눈물을 거둔 것은 그저 그럴 때가 되어서였지, 더 이상 슬프지 않아서는 아니었다.

   오기는 비로소 울었다. 아내의 슬픔 때문이 아니었다. 그저 그럴 때가 되어서였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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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디낭 할아버지 너무한 거 아니에요
오렐리 발로뉴 지음, 유정애 옮김 / 북폴리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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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르디낭은 혼자다. 아내 루이즈는 우편배달부와 바람이 나서 떠났고, 딸 마리옹은 지구 반대편 싱가포르에서 일하며 전화도 잘 받지 않는다. 이웃의 노파들은 그를 두려워하는 동시에 미워하고, 특히 그 중 관리인인 쉬아레 부인은 그를 내쫓지 못해 안달이다. 아흔을 목전에 둔 페르디낭의 삶에서 의미 있는 존재는 늘 그의 곁을 지키는 독일 개 데이지 뿐이다. 오직 데이지에게만 마음을 연 채 온 세상 사람들에게 불만을 표출하며 틈만 나면 심술궂게 구는 이웃집 할아버지, 그게 바로 페르디낭이다.

   그런 그의 인생에 연이어 불행이 닥친다. 그가 사랑하던 유일한 존재인 데이지가 어느날 사라지더니 차가운 주검으로 돌아온다. 그로 인해 삶의 의욕을 잃은 페르디낭은 자살을 시도하지만 미수로 끝나고 만다.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은 그 순간, 딸 마리옹은 청천벽력같이 아빠가 아빠 인생을 망가뜨리는 걸 두고 볼 수가 없다며 자신을 돌보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요양원으로 보내드릴거라고 선언한다. 설상가상으로 그가 스스로를 잘 돌보는지 확인하고 딸에게 보고하는 임무를 맡은 건 쉬아레 부인이다. 누구와 같이 사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페르디낭인데, 요양원에 가느니 죽는 게 차라리 낫다. 그렇게 절망과, 분노와, 세상에 대한 증오가 교차하는 순간에 누군가 그의 집 대문을 두드린다.

   윗집에 이사 온 줄리엣은 학교에서 '똑똑이'라며 친구들의 비아냥 섞인 놀림을 받는다. 누구보다 어른스럽고, 용감하며, 깊이 있는 시선을 지닌 이 꼬맹이는 페르디낭의 독설에 꿈쩍도 하지 않는다. 천연덕스럽게 자리를 차지하여 점심을 먹고,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더니, 과일젤리 한 박스를 남긴 채 내일도 밥을 먹으러 오겠다 선언하고 가버린다. 페르디낭은 이 모든 게 못마땅한다. 겨우 저런 버릇없는 꼬마애에게 휘둘리려고 이제껏 살아온 게 아니지 않은가. 그러나 그의 의지와 달리, 줄리엣은 조금씩 페르디낭의 닫힌 마음을 비집고 들어온다. 그리고 줄리엣을 통해, 페르디낭은 이웃과 친구가 되는 법을,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고 도움을 구하는 방법을, 나아가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베푸는 법을 배워나간다.

   페르디낭의 괴팍함은 이 책이 프랑스 소설임을 끝내 숨기지 못하게 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렐리 발로뉴는 페르디낭 할아버지를 통해 모든 게 끝났다고 느껴지는 순간, 더 이상 삶에 어떤 즐거움도 남아있지 않다고 여겨지는 그 순간에도 여전히 희망은 있고 노력만 한다면 변화는 반드시 찾아온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페르디낭은 좋은 남편도, 좋은 아버지도, 좋은 이웃도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부터 그는 좋은 할아버지, 좋은 이웃, 좋은 친구, 그리고 어쩌면 좋은 남자친구가 될 것이다. 여든은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늦은 나이가 아니다. 그렇다면 이 책을 읽고 있는 페르디낭보다 젊은 독자들 역시, 지금 무엇이든 시작해도 좋지 않을까.


이웃에 사는 할아버지 할머니

 

   어릴 때의 나는 연립주택의 모든 집 벨을 눌러보는 아이였다. 그저 이웃에 누가 사는지 궁금해서, 내 이웃에게 인사를 하고 싶어서.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는데 부모님이 계시지 않으면 아무 집이나 초인종을 누르곤 했다. 그 당시 그 연립주택에는 온통 독일 할머니 할아버지들만 살았다. 당시 내 기준으로 할머니 할아버지였지, 지금 생각해보면 그 중 대다수는 지금의 내 부모님 또래였지 싶다. 아무튼 그들은 문을 열어주었고, 현관 앞에 서서 1층 오른쪽 집에 사는 누구예요, 인사하는 나를 다정히 굽어보았고, 집에 들어오게 하여 과자를 내주고 책을 빌려주었다. 나는 4층 오른쪽 집 할머니의 카나리아와 놀았고, 2층 오른쪽 집 노부부와 함께 잼을 만들었으며, 4층 왼쪽 집에서 독일식 커틀렛 요리법을 배웠다. 그 당시에는 그 건물에 사는 모든 사람이 내 가족이었고, 내 보호자였다. 나는 그들의 품에서 내가 모르는 세상을 배웠다. 그리고 그들을 진심으로 사랑했다.

   한국에 돌아오고, 조금씩 철이 들면서 그런 습관은 사라졌다. 나는 이유 없이 남의 집 초인종을 누르는 건 실례라는 것을 배웠다. 나아가 누군지도 모르는 이웃사람의 집에 함부로 들어가는 건 위험한 일이라는 걸 알아갔다. 좀 더 나이를 먹고 보니 이웃의 아이에게 함부로 친절을 베푸는 것도 그 부모에게 불쾌한 일일 수 있다는 것 역시 깨닫게 되었다. 

   이 책의 줄리엣을 보며 어린시절을 떠올렸다. 그 당시 누군가에게는 나도 줄리엣 같은 존재였을까 생각했다. 독일은 한국과 달리 가족의 유대가 강하지 않아서, 자식이 반드시 부모를 부양해야 한다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성인이 된 자식은 부모와 완전히 독립적인 존재가 되어, 크리스마스와 새해에 한번씩 인사만 건네며 살아가기도 한다. 그때 내 이웃들의 대부분도 그랬다. 그래서 그들은, 어느 날 그들 인생 속으로 들어온 나를 스스럼없이 가족으로 받아주고 사랑해주었다. 갑자기 그 때가 무척이나 그리워졌다.


잘 자란 아이는 고집 센 노인도 바꿔놓는다

 

   이 아기는 페르디낭에게 재난 중 가장 큰 재난이다. 브룅 씨는 그 어떤 것보다 더 젖먹이들을 싫어한다. 그에게 젖먹이들은 구속일 뿐 아니라 배은망덕 그 자체다.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고 울며 언제나 무언가를 필요로 한다. 결코 조용히 있을 수가 없다. 그런데 웃을 때는 부모나 마찬가지로 모르는 낯선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잘 웃는다. 배은망덕한 것 같으니! 이분만 아니다. 예쁘다는 둥 천재라는 둥 하겠지만 아이는 침을 흘리고 세 단어도 열거하지 못하고 파킨슨병 환자처럼 걷는 인간 존재다....... 아닌 것은 아닌 것이다. 페르디낭은 가식적일 수가 없다!


- 페르디낭의 성격을 단적으로 나타내주는 대목. 자기 딸 마리옹이 태어났을 때조차 병원으로 보러 가지 않았다던 이 고집쟁이 할아버지 때문에 부인인 루이즈는 얼마나 고생했을지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갓난아기를 '파킨슨병 환자처럼 걷는 인간 존재'라고 표현하는 건 정말로 프랑스 소설밖에 없을 것이다.


   7) 예기치 못한 것에 여지 남겨주기

   좋은 소식들에나 좋지 않은 소식들에나 마찬가지로 여지를 주기. 변화를 받아들이고 더 이상 저항하지 않기.


   8) 묘비명 바꾸기

   모든 걸 심사숙고해볼 때, '마침내 찾은 평온'은 약간 과장인 것 같다. 약간 바꾸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 일련의 사건들을 겪고, 가족과 이웃에게 마음을 열게 된 페르디낭의 변화가 드러나는 다짐들. 습관과 익숙함에 갇혀 무엇에도 마음을 열지 않던 그가 우연이 가져오는 삶의 굴곡을 수용하고, 죽음이 아닌 살아있음의 가치를 직시하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누가 뭐래도 줄리엣 덕분이다. 이웃 모두가 연쇄살인범이라 부르며 두려워하던, 괴팍한 이웃집 할아버지의 문을 두드렸던 용감한 아이가 없었다면 그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북폴리오 2016 서포터즈 활동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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