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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블러드 온 스노우 (요 네스뵈)

해리 홀레 시리즈로 한국에서도 큰 사랑을 받고 있는 노르웨이 작가 요 네스뵈의 오슬로 1970 시리즈. 언제나 그랬듯 오슬로 뒷골목 곳곳을 세밀하게 묘사하고, 인물의 주관적 시야와 객관적 현실을 교묘하게 넘나들며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작가의 스토리텔링이 돋보인다. 또다른 장점이라면 가방에 넣어 들고 다니기 좋은 얄팍한 두께감. 지금껏 네스뵈의 소설이 궁금했지만 늘 600 페이지는 거뜬히 넘었던 분량이 부담스러웠던 사람이라면 이 기회에 이 노르웨이 작가를 만나봐도 좋겠다. 이미 요 네스뵈 월드에 흠뻑 빠져 있는 사람에게는 다 덮고 아쉬움이 남을 수 있다. 그래도 오슬로 1970 시리즈는 계속될 예정이니 잠깐의 아쉬운 마음은 접어두고 겨울냄새 물씬 나는 이 이야기에 몸을 맡겨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2. 수상한 빵집과 52장의 카드 (요슈타인 가아더)

'소피의 세계'의 작가로 잘 알려진 요슈타인 가아더의 이 작품은 사실 1995년 '카드의 비밀'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적이 있었다고 한다. 절판되어 아쉬움을 남겼던 소설은 새 옷을 입고 다시 독자의 곁으로 돌아왔다. 열두살 소년 한스가 아버지와 함께 노르웨이에서 이집트까지 긴 여행을 떠나며 만난 한 노인으로부터 시작된 이야기는, '소피의 세계'가 그랬듯 일상을 보는 눈에 철학을 더한 깊은 통찰과 뛰어난 상상력을 기반으로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독특한 세계를 창조한다. 늙은 제빵사가 준 빵 안에서 돋보기로만 읽을 수 있는 작은 책이 발견된다는 설정부터 기발하다. 그 책에 써진 내용이, 그리고 그 책을 읽는 한스의 기묘한 여행을 담은 이 책의 내용이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3. 못생긴 여자 (마리아피아 벨라디아노)

레베카의 부모는 다른 어떤 이유도 아닌, 서로의 외모에 이끌려 결혼한다. 그런 부모이니, 자식의 외모에 대한 기대는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태어난 레베카는 부모의 수려한 외모를 전혀 물려받지 못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혐오감을 일으키는 외모를 가지고 있다. 그 단순한 사실은 그녀의 인생을 결정짓고, 그녀에게 부모의 냉대와 이웃의 무시, 주변 사람들의 조롱만을 안겨준다. 남은 평생을 외모라는 틀에 갇혀 살아야 할 것만 같았던 그녀가 우연히 피아노에 대한 재능을 발견하며 작은 변화들은 시작된다. 그 변화를 통해 작가는, 주변의 눈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삶을 오롯이 살아내는 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유명 연예인 부부를 두고 저 사람들이 아기를 낳으면 얼마나 예쁠까, 부터 생각하는 우리의 가벼운 편견부터 돌아보게 된다.



4. 몽화 (권비영)

영실과 은화, 정인은 동갑내기 친구지만 각자 타고난 운명도, 성격도, 삶의 방향도 다르다. 일제강점기 말의 격변하는 시기가 가져다주는 변화 역시, 세 친구의 삶을 서로 다른 곳으로 몰고 간다. 누군가는 친일파인 아버지의 그늘에서 안락한 삶을 영위하는 대신 끊임없는 우울증과 자살충동에 시달리고, 누군가는 위안부로 끌려가 끔찍한 역사를 오롯이 살아내며, 누군가는 유일한 혈육을 구하기 위한 모진 사투를 벌인다. 어린 시절 아지트에서 모이던 세 소녀는 더 이상 함께할 수도, 서로의 마음을 속속들이 알아줄 수도 없는 위치로 흩어지지만 이야기의 마지막에서 하나의 마음만은 공유한다. 아픈 시대를 살아냈다는 고단함, 누군가를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감, 티 없이 행복했던 시절에 대한 그리움, 다가올 미래에 대한 불안감. 권비영의 소설은 그 시절을 살아온 사람들의 그 모든 마음을 대변하는 듯하다.



5.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메트로 (카렌 메랑)

서로를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때로는 팔을 부딪히며 나란히 앉고, 때로는 한 시간이 훌쩍 넘는 긴 시간을 마주보며 달리는 신기한 공간이 지하철이다. 화장품 회사의 헤어제품 브랜드팀장을 맡고 있는 마야에게 그 공간은 끊임없는 관찰과 분석을 통해 새로운 것을 상상해내는 즐거운 놀이터다. 손바닥만 한 스마트폰에 빨려들어갈 듯 집중하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마야의 시선은 언제나 주변 사람들에게로 향한다. 그렇게 어느 날 우연히 시작된 마야와 지하철 노숙인의 우정은 그녀를 상상도 못했던 새로운 감정들로 뒤흔든다. 일상적인 것에서 기발한 것을 발견하는 프랑스적인 상상력이 빛나는 작품. 아마 이 책을 읽고 나면 지하철을 탔을 때 주변을 돌아보는 시선이 조금쯤은 달라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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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극히 내성적인 (최정화)

내성적인 모든 사람을 끌어들이는 제목. 그에 비해 실제 표지의 모티브가 된 단편의 제목은 '지극히 내성적인 살인의 경우'로 모든 내향적 성격의 소유자들에게 공감을 얻을 만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내면에 대한 작가의 치밀한 묘사만큼은 모두에게 만족감을 선사하지 않을까 싶다. 그 외에도 매력적인 단편들로 구성된 이 작품은 아마 긴 단편의 향연에 지친 독자에게 신선한 재미가 되어줄 것 같다. 그러면서 어느 하나 평범하지 않은 단편 속에서 내 마음에 꼭 드는 작품을 발견하는, 그런 즐거움이 더해질지도 모르고. 정이현의 말처럼 '온전해 보이는 세계를 냉정한 시선으로 관찰하여 위태로운 불안의 기미를 예민하게 포착'하는 작품집이라면 기대를 저버리지는 않을 것이다.


2. 가타기리 주류점의 부업일지 (도쿠나가 케이)

시골이라 불러도 좋을 지방 소도시의 작은 주류점의 문에는 '무엇이든 배달합니다' 라고 쓰여진 쪽지가 붙어있다. 무엇이든이라니, 취급하는 주종이 다양하다는 의미인가 싶지만 무뚝뚝한 사장이 배달하는 건 정말로 무엇이든, 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무엇이든 진심이라면 배달해준다고 하는 게 맞겠다. 그렇게 배달된 참마음은 보내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그리고 그 배달을 도맡아 하는 사장도 행복하게 만드는 즐거운 부업이 된다. 이 책을 읽는 독자의 마음에도 따뜻하고 어딘가 시큰한 감동이 한가득 배달될지도 모른다. 그것 역시 가타기리 주류점에서 기꺼이 맡는 부업일 것이다.



3. 음의 방정식 (미야베 미유키)

반가운 인물들이 등장하는 이 작품의 중심이 되는 사건은 미야베 미유키가 지금껏 그려온 것들에 비해서는 평범하게만 느껴진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연쇄 살인마에, 묻지마 독살 같은 게 등장해야만 미미여사에 걸맞는 스릴러라는 인식이 있어서일 수도 있다. 그러나 교내에서 교사와 학생의 갈등으로 시작된 이 사건을 통해, 작가는 때로는 사소하게 어긋난 관계가 피냄새를 물씬 풍기는 사건보다 더 섬뜩할 수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후지노 료코와 스기무로 사부로가 다시 등장해 마주하게 된 이 작품은 그러나 미스테리 그 자체보다도 미야베 미유키의 책을 빠짐없이 읽어온 애독자들을 위한 선물로 마련된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4. 타인들 속에서 (조 월튼)

출판사의 소개만 읽어도 참 독특한 소설이네,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던 조 월튼의 작품. 그에게 휴고상과 네뷸러상, 영국판타지문학상까지 한번에 안겨준 작품이기도 하다. 세상에서 제일 사악한 마녀인 어머니를 저지하려다 쌍둥이 자매를 잃고 아버지를 찾으러 나선 소녀가 아버지의 세쌍둥이 누이인 고모들에게 호시탐탐 노림을 당하고, 끝끝내 자신의 카라스를 만나 어머니와 맞서는 이야기는 어찌 보면 밑도 끝도 없는 판타지처럼 보인다. 하지만 옛 민담과 현실 속 갈등을 교묘히 짜넣는 작가의 구성력은 이 작품을 가볍게 볼 수 없게 만든다. 온통 가족들과 부대끼면서도 타인들 속에서 있는 것보다 더 괴로운 주인공을 응원하게 될 것 같은 느낌은 덤이다.



5. 별을 타는 아이 (얀도)

제목부터 어린왕자를 떠올리게 하는 이 책 역시 어른을 위한 동화다. 이 책은 일에 지친 어른들에게 잠시 서류를 내려놓고, 노트북을 덮고, 주변의 사랑하는 사람과 맑게 갠 하늘과 야근 후 돌아오는 길의 고즈넉함을 주목하라고 이야기한다. 우리는 너무 바쁘다. 때로는 아주 중요한 일들을 잊고 살 만큼 말이다. 정말 중요한 것을 잊어버린 성인 남자가 우연한 계기로 한 소년을 만나 삶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는 이야기는 조금은 뻔할지도 모르지만, 때로는 뻔하지만 진실된 이야기가 간절히 필요한 법이다. 생활에서 잠깐 숨을 돌릴 좋은 핑계가 되어주기도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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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맹인탐정 맥스 캐러도스 (어니스트 브래머)

아서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 시리즈가 대단한 성공을 거두던 무렵, 즉 추리소설의 황금기라 불리던 시절에 여러 탐정이 화려한 데뷔를 한다. 각자 자신의 이름을 내건 시리즈를 하나씩 보유한 그 탐정들 중 당시에도 유난히 돋보였던 게 바로 맥스 캐러도스라고. 그 이유는 그가 눈이 보이지 않는 맹인이었기 때문이다. 눈으로 사건을 볼 수도, 증거를 관찰할 수도 없는 그가 해박한 지식에 의존하여 친구 하인과 함께 사건을 풀어나가는 과정은 아마 다른 탐정소설과는 또다른 색다른 매력을 선사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시각적인 박탈은 미스터리에 늘 오싹한 요소를 선사하곤 하니, 이번에도 기대해도 좋지 않을까. 깔끔한 영국탐정소설은 이렇게 추운 겨울에도 늘 반가운 법이다.



2. 응달 너구리 (이시백)

'보기엔 영 춥구 딱혀두 그 나름으루 의뭉스럽게 살아가는 인생'을 응달 너구리라 한다고 이시백은 소설의 말을 빌어 이야기한다. 그래서일까, 이 소설에 담긴 단편들은 하나같이 우리 사회의 어두운 그늘에 묻힌 사건들을 다룬다. 그렇다고 아주 본격적으로, 격렬하게 사회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는 건 아니다. 연평도와 4대강, 이데올로기 투쟁, 구제역 같은 보통 뉴스나 시사 프로그램에서 다룰 사안들을 자연스럽게 소설 속 인물들의 삶에 녹여낸다. 그리고 그로 인해 필연적으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사회의 그늘 속에서 춥고 딱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응달 너구리'라는 다정한 이름을 붙인다. 분명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따뜻한 볕으로 나오게 될거라고 위로하듯. 지나치게 가볍지도, 또 무겁지도 않은 소설집이다.



3. 뉴욕 미스터리 (메리 히긴스 클라크 외)

미국추리소설협회 소속의 작가들이 각자 뉴욕의 주요 랜드마크를 하나씩 골라 그에 얽힌 미스터리를 풀어내는 방식의 이 책은, 뉴욕에 살았던 적 있는 사람에게는 향수를, 뉴욕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여행에 대한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각자 하나의 랜드마크에 집중해서일까. 각 단편 속에서 유니언 스퀘어는, 그리니치 빌리지는, 또 할렘은 생생하게 살아난다. 무엇보다 각 장소에 생기를 불어넣는 각 작가의 이야기가 그 수만큼 천차만별로 다양해서 읽는 재미를 더한다. 짧은 단편인데도 어떤 이야기는 뒷목에 소름이 돋을 만큼 반전의 매력을 뽐내고 어떤 이야기는 가슴이 시큰하게 아파올 만큼 서글프다. 무엇보다 이야기마다 시대적 배경도, 등장인물의 문화적 배경도 달라 다양한 사람들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멜팅팟'으로서의 뉴욕을 가감없이 보여준다. 미국으로 여행을 떠나는 사람이 비행기에 챙겨가기에 가장 좋을 책.


4. 라플라스의 마녀 (히가시노 게이고)

히가시노 게이고의 데뷔 30주년 기념작이다. 일본  평단에서는 히가시노 문학을 집대성한 책이라는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가장 사랑받는 일본 작가 중 한 명인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세계는 다채롭다. 대체로 미스터리 문학으로 알려져 있지만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등 사람이 죽고 피가 튀지 않아도 충분히 재미있고 마음을 잔잔하게 데워주는 이야기를 쓸 수 있음을 보여주는 시도를 하기도 했다. '라플라스의 마녀'는 그동안 '탐정 갈릴레오'나 '용의자 X의 헌신'에서 간혹 고개를 내밀었던 각종 물리학적 이론 및 공식들과 오즈의 마법사를 연상케 하는 판타지적 요소, 그리고 히가시노 게이고 특유의 스릴러가 결합된 작품이다. 올해 놓쳐서는 안 될 소설 중 하나이다.



5. 감옥에 가기로 한 메르타 할머니 (카타리나 잉엘만 순드버그)

책 표지만 보아도 바로 떠오르는 책이 있으니, 요나스 요나손의 '창문 너머 도망친 100세 노인'이다. 당시 독자들을 들었다 놨다 했던 슈퍼 할아버지에 이어 이번에는 할머니라는 열린책들의 광고 카피가 마음을 동하게 한다. 똑같은 스웨덴 출신 작가인 카타리나 잉엘만 순드버그는 이 책으로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올랐다. 이 책의 주인공은 79세의 메르타 할머니와 그녀의 노인 친구 4명이다. 오롯이 노인의, 노인에 의한, 노인을 위한 범죄를 꾸미는 그들의 이야기가 이토록 즐겁고도 진지한 이야기로 거듭날 수 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반가운 소설이다. 언젠가 우리나라에서도 노인을 '늙음'의 측면에서만 그리지 않고, 노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활기 넘치는 작품이 만들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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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카인 (주제 사라마구)

카인과 아벨의 비극은 굳이 기독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익히 알고 있을 법한 이야기이자 가장 오래된 막장드라마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동생을 시기하여 죽이고 도망친 카인. 그리고 그에게 평생 어느 곳에도 오래 발을 붙일 수 없는 운명을 내려 벌하는 신. 사라마구는 또 하나의 문제작인 이 소설에서 아벨을 죽이고 도망친 카인의 삶에 주목한다. 떠도는 카인이 목도한 구약성서의 여러 사건들, 그 속에서 드러나는 인간들의 삐뚤어진 욕망, 그리고 어딘가 그 인간의 비틀린 모습을 닮아 있는 신까지. 이야기의 끝에서 그가 물으려 했던 것은 아마 선악의 경계와 그것을 정하는 자의 자격이었을지도 모른다. 누가 감히 카인을 죄인이라 하는가. 카인을 벌하는 신은, 우리가 믿고자 하는 만큼 선한가.


2. 화재감시원 (코니 윌리스)

SF계의 거장 코니 윌리스의 가장 뛰어난 작품만을 추려낸 걸작선 중 1권. 기발한 소재와 흥미로운 스토리, 주제를 막론하고 펼쳐지는 수다와 유머의 향연, 이라고 책 소개는 말하고 있다. 코니 윌리스는 타고난 이야기꾼이고, 그의 펜끝에서 모든 이야기는 새로운 색채를 입고 다시 태어난다. 그가 좋아하지 않는 주제라 말하는 외계인과의 전쟁을 제외하고 다양한 SF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유쾌한 단편들은 2016년 새해를 반짝반짝 빛나는 즐거운 세계로 이끌어주지 않을까.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는 너무도 무겁고, 우중충하고, 심각하니까 때로는 코니 윌리스가 보여주는 비현실적이고도 생생한 이야기의 강물에 오롯이 몸을 맡기는 것도 나쁜 생각이 아닐 것 같다. 오늘 하루 소리내어 크게 웃을 수 있도록.



3. 세상의 피 (카트린 클레망)

'테오의 여행'의 후속작으로, 12년 후 환경운동가 의사가 되어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병든 사람들을, 그리고 병든 지구를 만나는 테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수없이 많은 이해관계가 얽히고 섥힌 지구, 그 곳곳에서 다양한 의견과 가치관을 지닌 사람들을 만나 치열하게 소통하며 환경 보고서를 완성해가는 테오. 그 곳에서 그가 맞닥뜨리는 진실은 결국 세상에는 온전히 희생적인 인간도, 온전히 이기적인 인간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때로는 자연을 필요로 하고, 때로는 자연을 이용하며, 때로는 자연을 그리워하며 살아간다. 테오의 이야기가 알려주려는 것은 그렇게 때로는 뜨겁게 끓고, 때로는 조용히 흐르며, 때로는 싸늘하게 식어버리는 세상의 피를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 아닐까. 우리 모두 같은 피를 나누어 뜨겁게 공명하며 살아가고 있으니까 말이다.



4. 골든애플 (마리 유키코)

한 사람의 정신이상 증세가 주변 사람에게도 전염된다는 '감응정신병'. '골든애플'은 기이하게마저 여겨지는 이 소재를 중심으로 언제 어디로 광기가 흐를지 모르는 위태로운 사회를 창조한다. 독자를 더 두렵게 하는 것은 마리 유키코의 소설 속 세상이 결코 낯설지 않다는 사실이다. 온갖 미친 일들이 넘쳐나고, 그 미친 일들에 점차 둔감해지는 사람들이 살아가고, 그들이 살아가다 어느 날 더 미친 짓을 감행할지도 모르는 게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 아닌가. 폭력이 폭력을 부르고, 광기가 광기로 이어지는 그런 사회 말이다. 정신병에 전염성이 있다, 는 기본 명제 자체에 대해서는 마구 반박을 하고 싶었지만 소설이 표현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설득력은 어마어마해서 그만 입을 다물고 말았다.


5. 바느질하는 여자 (김숨)

솔직히 말하자면 이 책을 추천하고 싶어서 1월 신간평가단 소설 추천 기간을 기다렸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한국작가 김숨의 반가운 일곱번째 장편소설. 늘 지나치게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잔잔하게 뽀얀 빛을 내는, 곱고도 맑은 문장으로 글을 쓰는 작가가 바느질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어쩐지 책에 수라도 놓여져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숨의 소설에서 늘 중요한 축을 차지하는 '엄마'가 이번에는 자식들을 먹이고 기르기 위해 끊임없이 어그러진 손으로 바늘을 잡고 한땀 한땀 수를 놓아나가는 바느질 하는 여자로 등장한다. 그리고 그런 어머니의 등에서 딸들은 인생을 배운다. 그 인생 속에서 어느날 어머니의 삶을 이해한다. 그리고 비로소 그 사랑의 의미에 가 닿는다. 김숨의 책을 읽으면 늘 엄마보다도 할머니가 보고싶어진다. 이유는 여전히 알 수 없지만, 늘 그랬고 이번에도 그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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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해질 무렵 (황석영)

개인의 서사와 한 사회가 공유하는 역사가 결코 분리될 수 없음을, 개인이 삶에서 엎어지고 자빠지는 순간들을 시대적 맥락을 제외하고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매 이야기마다 강조해 온 작가 황석영. 그는 3년만의 장편소설에 성공한 인생을 살아왔지만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어 '돌아보니 걸어온 자리마다 폐허'인 박민우와 꿈을 꿀 여유조차 허락되지 않은 아픈 청춘 정우희를 등장시킨다. 폐허는 회한으로 남은 내 젊은 시절의 기억들일 수도, 혹은 오늘 내가 외면하고 못 본 체하며 빠른 걸음으로 지나친 내 이웃의 외로운 일상일 수도 있다. 세대와 세대가, 개인과 개인이, 시대와 시대가 엇갈리는 지점에서 작가의 다른 작품들이 그랬듯 소중한 것에 대해, 그리고 소중했던 것들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주는 작품이 아닐까.



2. 악마도 때론 인간일 뿐이다 (한스 라트)

전작 '그리고 신은 얘기나 좀 하자고 말했다'에서 심리치료사 야콥에게 스스로를 '신'이라 일컫는 사내가 찾아와 심리 상담을 의뢰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유쾌하게 그려낸 독일 작가 한스 라트의 후속작이다. 이번에는 '악마'가 찾아와 특별한 제안을 하면서 안 그래도 바람 잘 날 없는 야콥의 삶은 더욱 꼬이게 된다. 작가는 특유의 문체와 입담으로 야콥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면서도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한번쯤 꼬집어 주는 것 역시 잊지 않는다. 처음 책의 정보를 실제 철학과 문학, 심리학을 전공한 작가가 이 범상치 않은 인물과 야콥의 상담을 어떻게 풀언갈지 무척이나 기대가 되었다. 더불어 원래 영화 시나리오 작업이 전문이었다는 작가가 쓰는 대사들에도 어느 때보다 관심을 갖게 된다.



3. 불안한 낙원 (헨닝 망켈)

헨닝 망켈은 어린시절 화물선의 선원생활과 보헤미안 같은 삶을 살았던 자유로운 영혼이었지만, 작가로 성공한 이후로는 아프리카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며 아프리카의 비극을 알리기 위해 누구보다 노력했다. 실제로 그는 모잠비크에 극단을 세워 운영하기도 했고, 작품을 통해서도 끊임없이 아름다운 낙원인 아프리카의 비참한 현실을 이야기했다. '불안한 낙원'은 1900년대 초 스웨덴에서 아프리카로 건너간 젊은 처녀 한나의 시선을 통해 당시 아프리카의 인종차별과 대립, 증오와 분노, 약자에 대한 핍박을 그린다. 시대적 배경은 현재보다 100년이나 앞서지만 작가가 한나의 삶을 통해 보여주고자 했던 건 아프리카의 지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작품. 헨닝 망켈이 세상을 떠난 올해에 꼭 읽으면 좋을 책이다.



4. 스윗 프랑세즈 (이렌 네미로브스키)

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뒷이야기가 있는 작품. 이렌 네미로브스키는 유대인 소설가로, 1942년 아우슈비츠에서 살해되었다. 부모님이 끌려간 이후, 언제 자신과 동생을 잡으러 올 지 모르는 나치를 피해 황급히 짐을 꾸리면서 이렌의 어린 딸은 엄마가 남긴 공책 한 권을 챙겼다. 도망치고, 숨고, 두려워해야 했던 시간을 지나 전쟁이 끝나고 오랜 세월이 지나기까지, 아이는 돌아오지 않는 엄마를 기다리며 어느새 헤어질 당시의 엄마보다 한참 나이를 먹은 할머니가 되었다. 그렇게 할머니가 된 이렌 네미로브스키의 딸이 62년만에 세상에 공개한 유작이 '스윗 프랑세즈'. 슬프고 그리운, 부끄럽지만 잊어서는 안 될 기억의 서사를 담은 이 작품은, 생존 작가에게만 수여한다는 규칙을 깨고 르노도상이 수여된 첫 사례이며 12월 영화로도 개봉된다.



5. 밧줄 (스테판 아우스 뎀 지펜)

별다른 재미있는 일이 생기지 않는 외진 시골 마을. 마을 사람들은 마을을 에워싼 깊은 숲속에 들어가본 적이 단 한번도 없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숲의 입구에 밧줄이 놓인다. 보이지 않는 숲속으로 이어지는 밧줄이. 마을의 남자들은 그 밧줄이 왜 거기에 생겼는지, 밧줄의 다른 끝은 어디에 있는지가 궁금하다. 단지 궁금할 뿐인데, 그들은 마을의 중요한 추수철을 앞두고 그 답을 찾아 떠난다. 남겨진 여자들은 불안한 마음으로 그들을 기다리고, 추수에 실패하고, 결국 마을을 버리고 떠난다. 그 사실을 알고도 남자들은 밧줄을 따라가는 것을 멈출 수가 없다. 끝이 보이지 않는 밧줄에, 마치 거미줄에 걸린 벌레처럼 달라붙어 있는 것이다. 고작 밧줄일 뿐인데 말이다. 나비효과를 연상케 하는 이 소설에서 작가는 아주 사소한 동기가 불러오는 일련의 되돌릴 수 없는 사건들을 이야기한다. 여러모로 기대가 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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