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승의 성 스토리콜렉터 51
혼다 테쓰야 지음, 김윤수 옮김 / 북로드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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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솔직해지자면 이 책이 정말 읽고 싶지 않았다.

대학교 3학년 때인가, 학관 서점에서 신간 코너를 둘러보다가 책 한 권을 들고 자리에 앉았다. 등받이도 없는 간이의자에 앉아 그 소설을 다 읽고 일어나면서 헛구역질을 했다. 그게 혼다 테쓰야의 '스트로베리 나이츠'였다. 집에 와서 그 얘기를 하니 엄마가 그런 책을 왜 읽었냐고 타박했다. 나도 그게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마 이건 다 꿈이라거나, 실제로는 누구도 죽지 않았다는 비현실적이지만 희망적인 결론을 기대하고 끝까지 읽어냈는지도 모른다.

그 이후로 혼다 테쓰야의 책은 단 한번도 읽지 않았다. 추리나 미스터리, 공포라고 분류할 수 없는 장르였다. 이건 정말 잔인했다. 신체적으로도 그랬고 정신적으로도 그랬다. 범행을 건조하고도 세밀하게 묘사하는 그 문체에는 속을 뒤집는 힘이 있었다. 사람을 그냥 죽여도 충분히 나쁜 일인데 혼다 테쓰야의 소설에는 언제나 고문이 뒤따랐다. 읽어가면서도 차라리 저 사람을 죽여주었으면, 하게 되는 행위들이었다. 그건 정말이지 내 취향이 아니었다.

떨떠름한 마음으로 집어든 '짐승의 성'은 '스트로베리 나이츠'보다 심했다. 처참한 몰골로 길거리에서 경찰에 구조 요청을 한 여고생, 마야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된 사건은 처음에는 여고생을 감금하여 학대한 것으로만 보인다. 그런데 마야가 이야기한 감금 장소를 찾아가니 그 곳에 있는 여성의 몰골은 마야보다 더하면 더했지 나아보이지는 않는다. 그렇게 경찰에 구류되어 심문을 받는 마야와 아쓰코, 두 여자의 입에서 나온 고백은 단숨에 이 사건을 아동학대에서 살인으로 뒤바꾼다. 사라진 마야의 아버지, 그가 죽기 얼마 전 보였던 이상한 행동, 두 여자가 일관되게 이야기하는 범죄의 정점에 있는 한 남자. 그렇게 수사는 시작되고 증거가 점점 모여갈 무렵, 범죄현장으로 생각되는 선코트마치다 맨션 403호의 욕실에서 DNA가 다섯 명이나 발견된다. 그리고 그 중 네 명은 혈연관계로 추정된다.

아동학대로부터 출발하여 파고들기 시작한 이 사건은 상상 이상의 끔찍한 전말을 드러낸다. '요시오'라고 불리운 남자는 처음 '아쓰코'를 꾀어내었고, 신체적 학대와 정신적 지배를 통해 완전히 자기 마음대로 다루게 된다. 그리고 그런 요시오의 지배 아래 아쓰코(후에 본명은 유키에로 밝혀진다)는 새로운 피해자를 물색하고, 그 피해자의 학대와 고문에 앞장서게 된다. 상상 이상의 고문을 통해 그들은 차츰 피해자들 역시 완전한 지배 상태에 두어 착취하고, 학대하며, 끝내 죽음에 이르게 한다. 그렇게 선코트마치다에서 5명이 죽는다. 아니, 어쩌면 6명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중 4명은 아쓰코의 친가족이다. 그녀가 자기 손으로 이 일에 끌어들인, 그녀의 가족들인 것이다.

심문을 받는 아쓰코의 입을 통해 알려진 상세한 고문내용은 역겨웠다. 몇 번이나 내가 이걸 왜 읽고 있나, 하는 회의가 들 정도였다. 이런 건 알고 싶지 않았고, 상상 같은 건 더더욱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읽어낸 건 리뷰 때문이기도 했지만 분명 이런 일이 어디선가는 실제로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었다. '짐승의 성'은 실화에 바탕을 둔 소설이다. 키타큐슈 감금 살인사건, 1996년에서 1998년 사이 7명이 잔인하게 살해당한 일본 역사상 가장 끔찍한 사건이다. 누군가는 실제로 사람이 겪어서는 안 될 것 같은 일을 겪고 있다면, 그렇다면 누군가는 그에 대해 글을 써야 하고, 누군가는 그걸 읽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마음으로 이 책을 읽었다. 즐겁고 흥미진진해서라기보다는, 그 낯을 보지 못한 어떤 어둠에 대한 부채를 나눠가진다는 기분이었다.

책을 읽는 내내 반복적으로 스쳤던 의문은 왜, 하는 거였다. 왜 이 사람들은 도망치지 않는가. 아니, 애초에 실질적 가해자는 1명에 피해자는 이토록 많은데다 피해자들은 모두 한 가족인데 왜 맞서지 못하는가. 어떤 선택을 해도 저것보다는 나을텐데, 저들이 당하는 저 짐승만도 못한 고문보다는 나아질텐데. 실제 사건이 세간에 알려졌을 때도 그것이 많은 사람들이 보인 반응이었다 한다. 왜 이들은 그 오랜 시간 복종하며 서로를 죽음으로 몰고 갔는가. '짐승의 성'에서 사건을 수사하는 형사들은 이에 대해 '학습된 무기력 이론'을 제시하기도 한다. 어떤 행동을 해도 끊임없이 신체적 고통과 좌절에 부딪힌 개체는 결국 모든 의미 있는 행동을 포기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수사 과정에서 드러나는, 이 사건의 심리적 본질은 조금 더 복잡하다. '요시오'는 전형적인 사이코패스였다. 그에게는 타인의 아픔에 대한 공감도, 일말의 사회적 양심도 없었다. 그는 타인의 고통을 즐겼고 그를 위해 기꺼이 약점을 파고들며 쥐고 흔들었다. 그리고 피해자들은 속절없이 흔들렸다. 사소한 약점을 잡혀 당황했고 당황한 상태에서 '요시오'의 요구대로 각서를 쓰고 돈을 냈다. 그걸 빌미로 더 약점을 잡혀 나중에는 고문마저 받아들였다. 자신에게서 그치지 않고 가족을 끌어들였다. 가족이 엮인 순간 '요시오'는 이간질을 시작했다. 가족 내에 서열을 만들고 가장 아래 서열의 사람이 가장 심한 고문을 당하도록 함으로써 가족끼리 어떻게든 서로를 밟고 올라가게 만들었다. 아쓰코의 언니는 자기 딸을 지키기 위해 거리낌 없이 부모에게 전기 고문을 가했다. '요시오'는 그런 마음을 이용했다.

책을 덮고 오래 마음에 남았던 생각 두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수사 중간에 형사 두 명이 가졌던 불길한 의문이었다. 과연 마야가 도움을 청한 게 이번이 처음이었을까. 이전에도 수상한 장면을 목격한 이웃의 신고가 있었다면, 피해자 중 누군가가 탈출하여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었다면, 그런데 경찰이 어떤 이유로든 그걸 묵살했다면. 이 끔찍한 사건을 막을 수 있었던 소위 '골든타임'을 경찰이 놓친 게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그들을 감쌀 때 나 역시 서늘한 한기에 어깨를 떨었다. 선코트마치다 403호에서 5명이 죽는 동안, 그리고 그보다 많은 사람이 고문당하는 동안 이웃의 누구도 그걸 알아채지 못했다. 이상한 점이 분명 있었을텐데, 엘리베이터를 탄 여자의 짓무른 손, 수상한 비닐봉지, 한밤중의 쿵 소리. 누군가 한 명만이라도 관심을 가졌다면, 이상하게 여겼더라면, 조금만 오지랖을 부려 경찰을 불렀다면. 나는 그게 소설 속 이야기만은 아닌 것 같아서 괜시리 울고 싶었다. 내 주변의 누군가를 나는 구할 수 있을까, 하는 참담한 불안감이었다. 두번째는 소설 속에서 사부로가 고백하는, '사람으로 둔갑했을 뿐' '속은 짐승'인 범죄자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소설 속 '요시오'는 실존인물이었다. 실제로 그렇게 주변 사람을 같은 인간으로서 취급하지 않고 고문하며 학대하는 걸 즐긴 사람이 있었다. 그리고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역사는 수많은 잔인한 범죄들에 대해 증언한다. 그 뒤에도, 인간의 탈을 쓴 짐승들이 있다. 그들은 지금도 우리 사이에 섞여 살아간다. 약한 인간을 노리면서. 파고들 공간을 가늠하면서.

키타큐슈 감금 살인사건의 주범, 즉 이 소설의 '요시오'에 해당하는 마츠나가 후토시는 사형을 구형받고 수감되어 있다고 한다. 그렇게 사회는 한 마리의 짐승을 가두는 데에 성공했다. 말간 햇살 아래에서 여전히 거리를 활보하는 나머지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그들로부터 우리를 지킬 방법은 무얼까. 결국 서로가 서로를 지켜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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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사회 - 타인의 공간에서 통제되는 행동과 언어들
김민섭 지음 / 와이즈베리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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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회는 거대한 타인의 운전석'이라는 카피에 책을 펼치기 전부터 가슴이 시렸다. 대리기사로 직접 일해본 작가가 쓴 그 표현에는 부풀려 꾸며낸 기색이 전혀 없었다. 그저 그 세계를 경험해본 이에게는 어느 밤 앉았던 술 취한 타인의 운전석이 그렇게 낯설지 않았구나, 그 전까지 살아가던 매일의 연장선에 불과했겠구나, 싶어서 서글펐다.


김민섭은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의 저자로 유명하다. 저자는 오랜 시간 몸 담았던 대학을 나오며 그 곳의 현실에 대해 진솔한 이야기를 털어놓았고, 대중은 공감으로 화답했다. 대학교 시간강사의 열악한 환경이 시간강사만의 문제가 아님을, 그 깊은 공명이 증명했다. '학문의 요람'이라는 대학에서보다 막노동을 한 맥도널드에서 노동자로서 더 나은 대우를 받았다던, 맥도널드에서 식자재를 나르며 처음 4대 보험이라는 걸 보장받고 당연한 노동조건을 약속받았으며 그게 너무 낯설어 매니저에게 '나에게 왜 이렇게 잘해주냐'고 물었다던(그리고 매니저에게 '법대로 하는 것 뿐'이라는 대답을 들었다던) 저자의 고백은 한 개인의 층위에 머무는 것이 아닌 셈이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노동자들은 겹겹이 쌓인 부조리에 부딪히고, 나만 이렇게 사는 게 아니라는 사실에 위로 아닌 위로를 받으며 근근히 하루하루를 살아낸다. 불공평하지만 생계와 직결되는 그 노동에 몸을 맡기며 정의와 양심이 사치가 될 수 있음을 온몸으로 체득한다. 그리고, 마침내 그 틀을 깨고 나온 한 사람에게 말없는 응원을 보내준다. 그렇게 김민섭은 '지방시'를 썼고, '대리사회'로 돌아왔다.


대학과 맥도널드를 동시에 그만두고 한동안 글 쓰는 일에 매진하려던 그가 선택한 일은 대리운전이다. 모르는 사람의 운전석에 앉는 일, 그저 거나하게 취한 어느 장소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그 짧은 거리만큼 그 사람의 자리를 대신하는 일, 운전대를 잡은 그 순간 차 안 그 어디에도 '나'의 것은 없어서 없는 것처럼 스스로의 자취를 지워야 하는 일. 그 자리에 앉아 저자는 비로소 낯설어야 했던 그 곳이 전혀 생소하지 않음을 알게 된다. 대리기사가 되고 나서야, 그동안의 삶이 대리인간이었음을 알게 된 것이다. 그 새로운 시선으로 저자는 사회 곳곳을 훑는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말한다. 타인의 공간에서, 누군가를 대신하는 삶을 살지 말라고.


저자의 글은 잘 읽힌다. 표현이 어렵지 않고 가독성이 높다. 위트도 있고 계속 읽고 싶은 매력이 있다. 그런데도 쉽게 읽히지는 않는다. 주제가 무겁기 때문이다. 이런 이야기를 인스턴트처럼 쉽게 해치울 수는 없는 일이다. 비록 글 자체가 인스턴트를, 편의점 도시락을 먹으며 쌓은 경험들로 빚어낸 것이라고 해도 말이다.


매일 실습하던 학교 건물 화장실에는 비정규직 학생 조교의 실태를 고발하는 긴 글이 붙어 있었다. 당장 오늘 사회관계망의 우리 학교 '대나무숲' 페이지에는 평소 존경하는 교수님에게 학자가 되어보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아 너무도 기뻤지만, 지금의 전공도 공부도 정말 사랑하지만 집안 사정을 생각하면 그 길을 당연히 저버릴 수밖에 없다는 누군가의 담담한 글이 실렸다. 저자는 대학을 나왔지만 대학에서는 같은 일이 반복된다. 저자가 비운 자리는 지금쯤 누군가가 채워넣어 같은 고민에 쪼들리며 비슷한 업무를 하고 있을 것이다. 운전대를 잡은 대리운전사처럼.


현실은 여전히 그렇다. 변화의 촛불 앞에서 읽는 현실은, 그래서 더 착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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렛 잇 스노우
존 그린.로렌 미라클.모린 존슨 지음, 정윤희 옮김 / 북폴리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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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책의 제목은 무척이나 역설적인데, 주인공 중 누구도 눈이 오기를 간절히 바라지 않았기 때문이다. '렛 잇 스노우'는 되려 갑작스레 쏟아진 폭설 때문에 1년 중 가장 설레야 마땅한 크리스마스에 엄청난 곤경에 처한 사람들의 사연 집합체라고 봐도 무방하다. 기록적인 폭설 속에 기차는 멈추고, 자동차는 언덕에서 굴러 떨어지고, 허리까지 오는 눈을 헤치며 걸어가다 보면 어느새 스타킹까지 흠뻑 젖고 만다. 그런 크리스마스, 누구도 원한 적 없는 게 당연하다.

신기한 건 그렇게 다사다난한 와중에도 어김없이 누군가는 운명의 상대를 만나 눈이 맞는다는 사실이다! 눈에 쫄딱 젖은 몰골로도 주인공들은 그 날 처음 만난 사람과, 오랜 소꿉친구와, 그리고 갈등으로 틀어졌던 옛 연인과 따끈따끈한 로맨스를 피워낸다. 이쯤 되면 이 책의 교훈은 '될 놈은 된다'가 아닌가 싶을 정도이다.

눈이 쏟아지는 크리스마스의 로맨스를 그려낸 연작소설 세 편이 그렇게 낯간지러우면서도 밉지 않은 건, 각각의 이야기를 그려내는 작가들의 재치 덕분일 것이다. 이야기꾼으로 소문난 세 작가가 각각 다른 인물에 초점을 두어 쓴 단편들은 서로 절묘하게 맞물리며 로맨스보다 진한 유머를 빚어낸다. 한 소설에서 스치듯 지나갔던 인물이 다음 소설에서 주인공으로 활약하고, 그렇게 무대 뒤로 퇴장하는 듯 했던 첫 소설의 커플이 마지막 소설의 클라이막스에 절묘하게 등장할 때 서로 다른 작가가 어떻게 이렇게 유기적인 이야기를 꾸렸을까 신기해지고 마는 것이다.

이 소설이 그리는 로맨스는 십대들의 사랑 이야기다. 서툴고, 때로는 이기적이며, 꽤 자주 오글오글하다. 물러설 곳 없이 이십대 후반이 되어가는 요즘, 고등학생들이 내일은 없는 것처럼 사랑에 몸을 던지는 걸 보고 있자니 기분이 묘하기도 하다. 그렇지만 드디어 마음을 확인한 토빈과 듀크가 스타벅스에서 나란히 잠든 모습에 '엄마 미소'가 지어지는 걸 보면 나이 드는 게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다.

그럼에도 '렛 잇 스노우'가 가벼운 사랑놀음으로만 끝나는 건 아니다. 십대 아이들이 서로 부딪히고 깨지며 때로는 울고 소리를 지르는 그 모든 갈등은 인생의 중요한 교훈들을 곳곳에 뿌려놓는다. 무엇보다 마지막 이야기에서 에디에게 '너는 늘 너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따끔하게 충고하는 도리의 말을 따라가고 있으면 어쩐지 나까지 열심히 혼나는 기분이 든다. 그렇게 책의 마지막에서, 로맨스의 중심에는 이제 막 사랑이 싹트는 커플이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둘러싼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가 결코 무시되어서는 안된다는 사실이 한번 더 부각된다.

'크리스마스에 꼭 이 책을 읽으시라'는 뻔한 제안은 낯부끄러워서 하지 못하겠다. 하지만 올해 크리스마스에 역사상 유래없는 폭설이 내린다면, 나는 어쩔 수 없이 이 책을 떠올릴 것 같다.

춤추는 것과 비슷했다. 일할 때만큼은 나를 잊을 수 있었다. 이런 시간에는 내 안의 어두운 골짜기가 입을 쩍 벌리고 있어도 '미안, 지금은 시간이 없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여러분은 얼어붙은 시냇물에 빠져 본 적이 없을 것이다. 경험자로서 그 기분이 어떤지 자세히 소개해 보겠다.
첫째. 정말 차갑다. 얼마나 차가운지 뇌에 있는 온도측정기관이 이렇게 말할 정도다. "너무 추워서 도저히 못해 먹겠네. 그만둬야겠어." 그리고는 '외출 중'이라는 간판을 걸고 모든 책임을 뒤로한 채 나가 버린다.
둘째. 통증을 관장하는 기관이 온도측정기관의 어이없는 행동을 보며 말한다. "우리도 잘 모르는데 어쩌라는 거야." 그리고는 되는대로 아무 버튼이나 눌러서 기묘하고 불쾌한 기분이 온몸에 퍼지게 한다. 그리고.......
셋째. 혼란과 공포를 관장하는 기관에서는 신호가 오면 즉시 이를 감지한다. 적어도 사태를 해결하려고 노력은 한다는 뜻이다. 게다가 통증을 관장하는 기관에서 버튼을 눌러 주는 걸 무척이나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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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 비가 오면
현현 지음 / 북폴리오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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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북폴리오에서 표지 투표를 진행할 때만 해도 여행 에세이인가 싶었는데, 막상 책을 받아서 펼쳐보니 지나간 사랑에 대한 그리움이 듬뿍 담긴 감성 에세이였다. 이런 건 내 감성이 아닌데, 하며 몇 장을 팔락팔락 넘기고 친구에게도 보여주었다. 친구 역시 우리는 이런 거 아니지, 했다.


책을 다 본 지금까지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애틋함과 후회를 버무린 사랑 이야기는 내 취향이 아니다. 어떤 묘사에서는 으악, 하고 서둘러 페이지를 넘기기도 했다. 내 손발, 하고 혼자 중얼거리며. 그러다 보니 글보다는 그림 위주로 보게 되는 경우도 많았다. 일러스트는 섬세했고 컬러링이 감각적이었다. 그림 좋다, 생각하며 책을 읽어나갔다.



그러나 읽어갈수록 강하게 들었던 느낌은 이거 실화 같네, 혹은 이거 작가님이 겪은 일 같네, 하는 거였다. 책에 써 있는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허구라는 걸 이미 충분히 배운 후라고 생각했는데 짤막한 글마다 담긴 마음은 어쩐지 되게 진심 같았다. 내 감성은 아니었지만 엄청나게 일관적이고 진솔하고 담백했다. 그냥 그림에 맞춰 적당히 꾸며낸 '감성글'로 느껴졌다면 더 빨리 책을 덮었을 텐데, 그 진심이 눈에 밟혀서 한 자 한 자 열심히 봤다.


작가 후기에 이르러서 내 느낌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었는데, 실제로 작가님이 그림을 시작하도록 응원해주고 따뜻한 힘을 전해주었던 그 시절의 여자친구가 지금 그리는 그림들의 모티프가 되었다고 한다.


그림을 그리는 것은 저지만

아직도 그것을 아름답게 해주는 건 그 친구가 아닐까 해요.

그러니 그림마다 일관되게 녹아있던 가난하고 힘든 시절 곁을 지켜주던 사람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 사라지지 않은 그리움, 어디서 무얼 할까 궁금하면서도 무엇이 됐든 그저 행복하기만을 빌어주는 따뜻한 마음은 정말 진심이었던 셈이다. 그 마음만큼은 나도 공감할 수 있는 것이어서 책을 덮는 순간에서야 그 글들과 진심으로 통한 느낌이 들었다. 이전과 같은 사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세상 누구보다도 행복하기를 바라는 사람이, 누구에게나 하나쯤은 있는 법이니까.


이 책은 그리운 사람을 돌아오게 하는 매뉴얼도,

혹은 그를 빨리 잊게 해주는 치료제도 아닙니다.

다만 그 시절 미처 전하지 못한 미안함과

당연한 듯 지나쳤던 고마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저는 이별 후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마음에 가득한 그 사람을

한순간도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너무 오래되어서 그 미소도 목소리도 다 잊어 가지만

회상할 때마다 마음에 차오르는 설렘과 따듯한 감사는

아직도 변함이 없네요.

어쩐지 어떤 감성적인 표현보다도 마음에 와닿았던, 담백하게 적힌 작가의 말이 나로 하여금 이 책을 좋아하게 만들었다.



그라폴리오 연재를 하며 가장 큰 인기를 끌었던 게 책과 같은 제목의 일러스트, '파리에 비가 오면'이라고 한다. 사실 파리에 가본 적은 한번도 없다고 살짝 고백하는 작가의 말을 읽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러스트가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고 사랑을 받았던 건 파리가 갖는 어떤 공통된 이미지 때문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파리가 뭐길래, 하다가도 에펠탑을 담은 일러스트를 가만히 쓸어보게 되는 내 마음이 그 반증이었다.



이 책에는 유독 동물, 그 중에서도 고양이가 많이 등장한다. 그 또한 파리와 마찬가지로 많은 이들이 공유하는 어떤 이미지가 아니었을까 한다. 홀로 어딘가를 응시하는 고양이의 뒷모습. 고양이의 마음을 알 리 없으면서도, 어쩐지 쓸쓸함을 야기하는 풍경. 나는 이 책에 등장하는 고양이들이 참 예쁘고 좋았다.


  

그럼에도 내가 가장 좋아했던 일러스트나 글들은 담백하게 읽히는 것들이었다. 겨울의 문턱에 서서 사슴에게 야무지게 '집에 데려다 줄게'라고 말하는 꼬마 여자애를 상상하며 괜시리 마음이 간지러웠다. 물론 그건 남녀 이야기였겠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여자친구를 집에 데려다주는 남자친구의 순애보였겠지만, 내게는 그게 아이의 순수한 마음으로 좀 더 와닿았다. 그런 게 그림 에세이의 매력 아닐까. 작가가 답을 정해두고 그림을 그렸다 해도 독자에게 얼마든지 상상의 영역이 남아 있다는 것, 짧은 글과 예쁜 그림에 제각기 이야기를 붙여 마음 속에서 곱씹을 수 있다는 것.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을 읽는 건 즐거운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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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눈을 뜨면 바람이 부는 대로
사노 요코 지음, 권남희 옮김 / 북폴리오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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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꿈이 뭘까 생각하면 멋진 할머니가 되는 것, 이라는 답이 튀어나왔다. 나이를 먹어서도 여전히 자기가 잘하는 일을 열심히 하고, 좋아하는 것들을 손에서 놓지 않고, 세월의 무게만큼 타인에게 너그러워지고, 편협한 경험에 갇히지 않은 채 변화하는 사회에 마음을 열어줄 수 있는 노인이 되어야지. 손자 손녀가 친구들에게 우리 할머니 진짜 멋있어, 자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지. 그런 꿈을 떠올리다 보면 자연스레 함께 생각나는 사람이 사노 요코였다.

그러나 이 에세이집은 사노 요코가 아직 할머니가 되기 전, 중년의 나이에 썼던 글들을 모은 것이다. 그러니 '아침에 눈을 뜨면 바람이 부는대로'에서 만날 수 있는 사노 요코는 멋진 할머니가 아닌 멋진 아줌마, 라고 할 수 있겠다. 어린시절을, 가난하고 외로웠던 유학시절을, 그리고 아들을 낳고 엄마가 된 순간을 돌아보며 특유의 재치와 진솔함을 버무려 써내려간 글을 나는 한 편 한 편 소중하게 읽었다.

에세이를 읽었으면 글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마땅한데 어쩐지 사노 요코의 에세이를 읽은 후에는 늘 작가 그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고 만다. 어쩌면 글 한 편 한 편이 작가 그 자체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사노 요코의 글에는 자기 마음을 깊이 들여다보다 가장 중요한 감정들만 끄집어내어 투박하게 빚은 뒤 부끄러움 없이 내놓은 듯한 티 없는 솔직함이 있다. 작가가 베를린에서의, 또는 밀라노에서의 유학 생활을 회상할 때면 어느새 나도 그 공간에 머물러 작가와 더불어 외로워하고 아파하고 있음을 느낀다. 오직 사노 요코만이 발견하는 일상 속의 작은 해학에 나도 열중하여 같이 소리 죽여 웃게 되고, 내가 아직 알지 못하는 중년의 마음을 가늠하며 내 남은 세월을 생각한다. 그리고 점점 줄어가는 페이지가 아쉬워진다. 조금 더 오래, 조금 더 많이 이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그런 생각 속에서 책을 덮는다.

사노 요코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다. 그녀의 글도, 일러스트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녀는 부족함을 당당하게 내보일 줄 아는 사람이고, 또한 당당하지 못한 순간에는 그 부끄러움조차 가감없이 보여주는 사람이다. 스스로에 대한 평가에 자비가 없는 만큼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주변 사람들의 작은 말과 행동에도 쉽사리 놀라고 상처받는 만큼 섬세한 마음으로 그들의 모습을 아우른다. 그래서일까, 사노 요코의 글을 읽고 나면 위안이 된다.

'사는 게 뭐라고', '죽는 게 뭐라고', '열심히 하지 않습니다' 등 사노 요코의 에세이를 좋아했던 사람이라면 꼭 읽어보았으면 하는, 그 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중년의 모습을 한 글들이다. 그만큼 다르고, 또 여전히 사노 요코답다.

친구들의 위로와 격려에서 수험이라는 일상으로 돌아와 이젤 앞에 앉아, 올해야말로 합격해야지, 하고 다짐했다. 비어 있는 옆 의자에 평소 얘기를 나눈 적이 별로 없지만, 얼굴을 마주치면 짧게 인사도 하고, 역까지 함께 가는 정도인 친구가 앉았다. 그는 잠시 침묵하고 있다가, ˝많이 힘들었지˝ 하고 한마디 건넸다. 나는 그 한마디가 진심으로 고마웠다.

정말로 건강한 아이가 태어났다. 43킬로그램이었던 내가 63킬로그램이 되고, 가슴은 1미터 4센티미터나 되어, 으앙 하는 아기 소리를 듣는 순간부터 나는 모성애의 화신이 되었다. 내 젖을 빠는 원숭이 같은 생물은 빛나는 천사였다. 필사적으로 젖을 빠는 아들이 여든 살이 되었을 때, 그 고독을 어떻게 견딜지 생각하니 벌써 눈물이 났다.

내가 여자라는 사실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도, 태어날 때부터 줄곧 여자로 살아왔으니 남자는 어떤지 모른다.
어떤지 모르기 때문에 나는 남자를 좋아한다. 좋아하니 좋아한다고 말하지만, 이 나이에 뭘 어떻게 할 건 아니고, 남몰래 세로로 보고 대각선으로 보고 뒤집어 보고 하는 것이 무한한 즐거움이다. 그 정도는 신도 허락해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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