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없던 생각 - 대중을 사로잡은 크리에이터의 창작 비결
양유창 지음 / 더난출판사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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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감독이 되고 싶었던 기자는 어느날 문득 생각한다. 카메라 앞이 아닌 뒤에 선 그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 책은 그런 호기심에서 출발한다. 각각의 인터뷰에는 창조적인 일이 하고 싶었던, 그러나 그 일을 시작해도 될까 망설이던 사람이 답을 구하기 위해 찾은 사람들의 진솔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양유창과 마주한 그들은 영화 감독이기도 하고, 방송사 PD이기도 하며, 때로는 싱어송라이터기도 하고, 일러스트레이터이기도 하다. 제각각의 직업을 가지고 각자만의 영역에서 활동하는 그들의 공통점은 오직 하나,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기자가 한 인터뷰여서일까, 던져진 질문들은 어느 때보다도 정확히 핵심을 파고들어 그들의 목소리를 끌어낸다.

   개인적으로 자기계발서를 좋아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대부분이 '나는 옳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애초에 독자에게 좀 더 나은 사람이 되려면 이렇게 해야 한다고 알려주는 게 목적인 책이니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걸 알면서도 때로는 그 사실이 불편하다. 누군가가 특별한 방법을 이용해서 성공했고, 그 방법을 공유하고 싶어한다는 건 좋은 일이다. 때로는 내가 힘겹게 구르며 얻은 교훈을 남들에게는 그런 고생 없이도 알게 하고픈 마음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이랬어, 그러니까 너도 이래야 해, 라는 전제는 언제나 위험하다. 그것은 때로는 폭력적이고 강압적인 소위 '꼰대'의 언어로 변질되고 말기 때문이다. 

   '세상에 없던 생각'은 그런 측면에서 참 색다른 자기계발서였다. 10명이나 되는 자기 개성 뚜렷한 인물들이 등장해서일까, 이 책에는 왕도가 없다. 10인의 창작자들은 제각기 다른 방식으로 새로운 컨텐츠를 만들어내고 자기만의 노하우로 커리어를 이어간다. 때로는 두 사람의 의견이 서로 대치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들의 생각은 전부 다르다. 모두가 각자 얻은 가장 큰 교훈을 툭툭 던져놓을 뿐이다. 그래서 책을 읽으며 마음이 편해진다. 누구에게도 강요당하지 않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만화가 윤태호는 한번 자리에 앉으면 끝을 보기 전까지 절대 일어나지 않고 버티는 게 작품을 완성하는 힘이라고 말하는 반면 애니메이션 감독 우경민은 하루에 1%씩, 아주 조금만 해내더라도 충분하다고 이야기한다. 한 책에 등장하는 두 거장이 서로에게 굴복하지 않는데 책을 읽는 독자라고 그들의 이야기를 신앙마냥 따를 필요가 있을까. 그 짐에서 홀가분해지는 순간 자기계발서는 열린 마음으로 자유롭게 읽으며 진심으로 와닿는 메시지만 흡수할 수 있는 따뜻한 텃밭으로 변모한다. 어느 정도 바탕에 깔려있던 불편함은 사라지고 나보다 앞서 어떤 길을 걸어간 사람의 이야기에 순수한 동경으로 귀를 기울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지금 갈림길에서, 혹은 꽉 막힌 골목길에서, 또는 빛도 들어오지 않는 긴 터널 속에서 창작 작업을 하나의 옵션으로 두고 고민 중인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어보기를 권한다. 그 갈림길에서 어떤 쪽을 선택해야 하는지, 골목길을 우회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혹은 어떤 방향으로 걸어야 터널의 끝이 나오는지 알려주기 때문이 아니다. 이 책은 아마 어떤 답도 주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잠시 모든 고민을 내려두고 한때 비슷한 고민을 하며 치열하게 지금의 자리까지 이른 10명의 선배가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아마 마음이 조금쯤 가볍고 후련해질 것이다. 어쩌면 그 중 어떤 사람의 인생관이 자신과 하도 비슷해서 내가 이렇게 살아도 성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구나, 하는 위로를 얻을지도 모른다. 반대로 이런 마음가짐으로도 저런 작품을 만드는데 나라고 못할 게 뭐가 있겠나 싶은 오기가 발동할 수도 있다. 뻔한 '꼰대질' 대신 담백하고 때로는 건조하기까지 한 인터뷰를 내세운 이 책을 통해, 나도 간만에 글을 쓰는 일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새로운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이 세상에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글을 남기고 싶다고 혼자 생각하며 카페 창가에서 책을 덮었다.


우리는 모두 한번쯤 크레이티브했다

 

   그 유명한 '무한도전'조차 보지 않는 나도 나영석 PD의 이름은 안다. 웹툰을 직접 보지는 않았지만 '미생'의 윤태호 작가 역시 친숙한 이름이다. 차세정, 이라는 이름에는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에피톤 프로젝트, 하는 소개가 덧붙었을 때는 반가운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우경민의 애니메이션도 친숙했고 장유정이 연출한 뮤지컬도 여러 편 보았다. 유튜버 대도서관의 얼굴이 낯익었고, 김성훈 감독의 '끝까지 간다'도 잘 아는 영화였다. 김찬중이 설계한 한남동 오피스 건물은 내가 지난 몇년간 유일하게 길에서 우연히 보고 궁금해서 스트리트뷰를 뒤져가며 검색해본 건축물이었다. 박웅현 카피라이터는 정말 모르겠다 싶었는데 그가 쓴 카피 몇 개를 보고는 나도 모르게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이미 너무 유명해서 한 개인이 생각해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이 책을 읽는 바로 그 카페에서 판매하는 보틀에 퍼엉의 일러스트가 들어가 있었다. 참 운명적이게도.

   책을 처음 받았을 때만 해도 인터뷰에 참여한 사람 중 모르는 이름이 과반수 이상이라 내가 참 창의적인 것과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는 생각을 하며 자괴감이 들었었는데, 의외로 읽어나가다 보니 양유창이 만난 사람들 모두가 어떤 식으로든 내 일상과 맞닿아 있는 사람이었다. 부모님이 꼬박꼬박 보던 '삼시세끼', 캡쳐된 명대사를 몇번이나 읽었던 '미생', 1학년 시험기간에 반복재생해서 듣던 에피톤 프로젝트의 2집 앨범. 그런 것들을 떠올리니 책장을 넘기는 손길이 더 부지런해졌다. 한장씩 넘길수록 데면데면하게 알던 사람과 더 친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지루할 틈이 없었다.

   누군가에게는 이 책의 첫인상이 내가 받은 것과 똑 닮았을지도 모른다. 참여한 사람 중 겨우 한둘의 이름만 알아보겠는 책을 읽을 필요가 있을까, 싶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아마 당신의 삶과 당신이 모르는 어떤 곳에서 꽤나 긴밀하게 얽혀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는 것은 그 사소한 매듭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그래서 굳이 하던 일을 때려치고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보려는 사람이 아니라 해도, 현실이라는 벽 앞에 꿈을 포기해야 했던 경험이 없다고 해도 즐겁게 읽을 수 있다. 우리 모두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꽤나 창의적인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크리에이터의 메시지

 

좋은 대사는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발견된다. 인물과 상황을 성숙하게 만들다 보면 언어 자체를 꾸미지 않더라도 그 순간에 맞는 적절한 대사가 나온다. 가장 좋은 대사는 의외로 아주 소박한 문장이더라.

- 윤태호, p. 33


음반을 만들 때는 장대높이뛰기 선수 같은 심정이 된다. 더 높은 곳으로, 더 멀리, 원대하게 가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어떤 때는 내가 만든 것들이 장애물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걸 넘어야 하니까 부담스럽고, 조심스럽기도 하다. 그래도 새 앨범을 만들 때마다 의지가 점점 강해진다.

- 차세정, p. 67


어떤 현상을 볼 때 '저건 왜 저러지?'라는 질문을 자주 한다. 나이가 들면 인정하고 넘어가는 것들에 대해 의심한다. 나는 잔 다르크처럼 반항하거나 앞에 나서서 바꾸자고 외치는 스타일은 아니다. '다 이유가 있으니까 그렇겠지'라며 받아들이는 편이다. 다만 '그 이유가 뭘까'라고 의심한다.

- 나영석, p. 86


많은 사람들이 뭔가를 이루려고 할 때 밤을 새워서 열심히 하는 모습을 상상한다. 나는 그런 것보다는 휴식도 취하고 즐길 건 즐기지만 매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조금씩 열심히 하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는 게 더 롱런하는 길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도 그런 방식으로 작업해왔다. 하루에 1%씩만 하면 된다. 조바심을 내거나 쉽게 지치지 않기를 바란다.

- 우경민, p. 120


궁금한 게 많아서 그렇다. '이 정도면 됐잖아'라며 나도 모르게 안주하지 않기 위해 다른 분야에 도전하는 거다. 누구나 나를 보고 "넌 잘 할 거야"라고 생각해주는 건 고맙지만 그렇게 되면 나도 모르게 자만하게 된다. 머물러 있는 것보다는 그곳이 어디든 가보는 게 내 스타일이다.

- 장유정, pp. 133-134


내 나이에는 이미 부모가 된 사람들도 많은데 그들은 아이와 대화를 잘 못하는 경우가 많다. 아이가 뭘 좋아하는지는 알아도 그걸 왜 좋아하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나는 최대한 알려고 노력한다. 아이들이 애니메이션 <터닝메카드>를 좋아한다고 하면 나는 직접 그걸 일일이 다 본다. 장난감도 사본다. 이걸 이래서 좋아하는구나 분석도 해본다. 말을 잘하는 능력은 공감능력에서 시작되는 것 같다. 아이들과 소통하려면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 대도서관, p. 169


예를 들어, 수십 명의 여자를 만나는 바람둥이가 있다고 생각해보자. 우리는 그를 가볍다며 쉽게 비난하지만 실제로 그는 그 순간만큼은 매우 진실하다. 그는 그 많은 여자들을 한 명 한 명 다 설득한다. 너를 사랑한다고 진심을 담아 고백한다. 그렇게 해야만 그 상대가 넘어온다. 그 사랑이 가짜라고 느끼면 여자들은 바로 등을 돌릴 것이다. 글을 쓰고 영화를 만드는 것도 마찬가지다. 가짜를 이야기하면 벌써 말할 때 눈빛이 흔들린다. 한 사람 한 사람 진실하게 설득해야 한다.

- 김성훈, pp. 199-200


내가 하고 싶은 것은 일탈이다. "저건 무슨 건물이지?"하며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건물을 계속 짓고 싶다. ... 무표정한 도시인들이 내가 지은 건물을 보고 잠깐이라도 즐거워했으면 좋겠다. 반려견을 보살펴주듯 쓰다듬어주고 가는 그런 건물을 짓고 싶다.

- 김찬중, p. 229


유레카를 외치는 비등점이 있다고 해보자. 일단 그 근처까지는 어떻게든 올라가야 한다. 물의 비등점은 100도다. 그렇다면 90도까지는 가줘야 한다. 30도에서 아무리 손가락을 튀겨도 유레카의 순간은 찾아오지 않는다. 그걸 90도까지 끌어올리는 힘이 성실함이다.

- 박웅현, p. 244


물론 사랑이 늘 긍정적일 수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나에게 사랑은 이 그림들처럼 일상 속에서 함께 기쁨을 발견하는 것이다. 힘들더라도 그 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나는 것이다. 지금 내게는 그게 사랑이다.

- 퍼엉, p. 269


* 더난프렌즈 활동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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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통찰 - 위대한 석학 21인이 말하는 우주의 기원과 미래, 그리고 남겨진 난제들 베스트 오브 엣지 시리즈 4
앨런 구스 외 지음, 존 브록만 엮음, 이명현 감수, 김성훈 옮김 / 와이즈베리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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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스트 오브 엣지' 시리즈는 엣지 재단 소속의 지식인들이 특정 대주제에 대해 제각기 지니고 있는 지식의 파편을 모아 하나로 엮어내는, 말하자면 종합선물세트 같은 책이다. 지금껏 다뤄진 주제로는 Mind, Culture, Thinking, Life가 있고 이번 책, Universe는 시리즈의 5번째 주자이다.

   나는 우주에 대해 아는 게 없다. 정말로 그렇다. 한국 교육과정에서 가르치는 딱 그 정도, 과장을 조금 보태 지구가 자전하며 태양 주변을 공전하고 있다는 그 정도를 알고 있을 뿐이다. 반 세기가 지나 아인슈타인이 옳았다는 게 증명되었다는 뉴스를 봐도 우와, 대단하다, 그렇게 솔직하게 감탄할 뿐 어떤 깊은 공감을 느끼지 못하는 건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인터스텔라'를 보러 가기 전에는 영화를 이해하지 못하면 어쩌나 겁이 났고 다행히 영화의 큰 줄기를 이해하며 영화관을 나섰을 때에는 역시 순수과학은 나랑은 아니야, 하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야 했다. 이 책에 기꺼이 손을 번쩍 들어본 건 아마 그래서였을 것이다. 우주의 통찰이라니, 나한테 이보다 더 필요한 게 대체 뭐가 있나 싶었다.

   내 선택이 어떤 의미에서는 완벽히 옳았고, 어떤 의미에서는 완벽히 틀렸다는 걸 깨달은 건 책을 받아들고 저자 목록을 훑었을 때였다. 익숙한 이름이 단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엣지 재단에서 글을 집필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특정 분야에서 베스트셀러를 한두개쯤 출판하거나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이론을 펼치거나 유명 대학 강단을 지키는 인물들이다. 즉, 그 분야에 조금만 관심을 가진다면 그 중 적어도 한둘은 아는 게 당연한 수순이다. 실제 같은 시리즈의 '마음의 과학'을 살펴보면 저자 16인 중 절반이 넘는 사람들이 주요 이론을 곧바로 떠올릴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스티븐 핑커, 필립 짐바르도, 빌라야누르 라마찬드란, 마틴 셀리그먼. 심리학 전공서적에서 얼마나 자주 봤던 이름들이던지 반가울 지경이었다. 반대로 말하면, 내가 굳이 '마음의 과학'을 통독하며 그들이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짤막하게 이어나가는 릴레이 같은 글을 다시 읽을 필요는 굳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었다. 그런데 '우주의 통찰'에 이름을 올린 사람들 중 어디서 흘러가듯 들어본 사람이 단 한명도 없다는 건, 내가 정말로 무지한 분야에 대한 훌륭한 입문서를 골랐다는 기쁜 소식인 동시에 이 책을 읽는 게 세상 어떤 일보다 어려울 수도 있다는 암울한 암시이기도 했다.

   다행히 책은 어렵지 않다. 정확히 말하자면 우주에 대한 책 치고는 어렵지 않다고 해야겠다. 사실 읽으며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 고민하다 그냥 에라, 하는 심정으로 넘긴 페이지들도 적지 않았다. 수학에 대한 기본기조차 없는, 이 책에 실린 작가들이 고교 시절 사랑했다는 미적분을 20대 중반이 된 지금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나에게는 애초에 응용수학과 우주과학을 넘나드는 이 책이 무리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제각기 우주와 연관된 자신만의 주특기를 풀어내는 이 책의 공동저자들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 눈높이를 맞춰주기 노력하고, 그래서 고행일 줄만 알았던 이 독서는 예상 외로 즐거웠다.

   책을 덮으며 우주에 대해 더 알게 된 게 있나 생각해 보니, 우주란 역시 내가 다 알기엔 엄청나게 넓고 지나치게 복잡하다는 결론 뿐이었다. 그러나 그러면 좀 어때서? 코넬에서 응용수학을 가르치고 있는 스티븐 스트로가츠 역시 말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여전히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반딧불이부터 미사일 공격까지

 

   목차를 훑으며 가장 흥미있어 보이는 제목을 고른 게 스티븐 스트로가츠의 '반딧물이가 뭐 중요하다고'였다. 이 장은 스티븐 스트로가츠가 자신의 어린시절과 학창시절을 익살스럽게 소개하며 자신이 현재 연구하는 분야에 왜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나아가 그가 그렇게 발견한 '동기화'라는 현상이 어떻게 자연계 곳곳에 적용되며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 무수한 존재들이 어떤 방식으로 자발적 질서를 찾아가는지를 보여준다. 의대전단계 과정을 들으며 힘들었다는 언급을 보고 순간 나와 정반대의 길에 서있는 사람이 아닌가 잠시 뜨끔했지만, 오히려 어떤 학문에 순수한 열정을 불태우는 사람에게 다른 학문은 무척이나 어렵고 지루할 수 있다는 사실을 온 마음으로 이해하는 그를 보니 이 두꺼운 책 속에서 이해받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무엇보다 생물학을 공부해서인지 사람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예시를 통해 동기화를 설명하는 그의 눈높이 설명에 나 역시 쉽게 책장을 넘길 수 있었다. 이라크의 위성유도무기부터 난자를 향해 헤엄쳐 가는 정자, 뇌의 간질발작까지 모든 현상에 통용되는 한가지 설명을 찾아낼 수 있다는 게 놀랍고 흥미로웠다. 무엇보다 책을 덮을 때쯤에는 그가 케임브리지의 서점에서 발견했다는 아서 윈프리의 '생물학적 시간의 기하학'을 읽어보고 싶어졌다. 몇년간 관찰한 자기 어머니의 월경주기를 기하학적으로 분석하는 사람이라니, 그런 사람의 책을 그냥 넘기는 건 말도 안되는 일이다.


작은 우주를 만나보자


   질문을 쪼개서 우리가 접근할 수 있는 수준으로 낮추는 데 도움을 줄 또 다른 힌트는 관찰을 통해 얻을 수 있다. 창밖으로 눈을 돌리면 무엇이 보이는가? 여기서 우리가 정말 놀라워해야 할 것은 바로 우리가 본다는 사실 그 자체다. 이것은 밤하늘이 밝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질문만큼이나 놀랍다. 밤하늘이 밝지 않은 이유라니, 그런 바보 같은 질문이 어디 있나 싶겠지만 깊이 생각해보면 이것은 정말 심오한 질문이다. "왜 우리의 눈길이 닿는 모든 곳에 별이 존재하지 않을까?" 이와 비슷한 질문으로 이런 것이 있다. "우주는 왜 그렇게 클까?" 기초물리학의 관점에서 보면 우주가 그토록 크다는 것은 정말 너무나 놀라운 사실이다. 우주가 믿기 어려울 정도로 작아지지 않기 위해서는 수많은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야 한다.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보자. 우주가 커지기 위해 일어나야 할 일 중 하나는 바로 텅 빈 공간의 에너지가 작아도 아주 작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그저 창문을 열고 몇 킬로미터 밖을 내다보는 행동 자체가 텅 빈 공간의 에너지가 터무니없을 정도로 작아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하나의 실험이라 할 수 있다. 어느 정도로 작은가 하니 0.000 다음에 0이 수십 개나 더 붙은 다음에 1이 나와야 한다. 그냥 창밖을 내다보는 것만으로 이 사실을 알 수 있다.

- p. 393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수백 년 동안, 우리는 그다지 많은 것을 알지 못한 채 지냈다. 그러다 케플러, 코페르니쿠스, 뉴턴이 자신이 본 것을 수학을 통해 설명하고 나서야 위대한 '이해의 시대'가 열렸다. 특정 부류의 수학을 통해 이런 문제들을 풀 수 있었던 것이다. 맥스웰 방정식, 열역학, 양자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물리법칙에 대한 이해를 가능하게 해준 모든 수학에는 완벽하고 철저한 풀이법이 알려진 특정 부류의 수학 문제가 동원된다. 바로 선형적인 문제(linear problem)들이다. 우리가 비선형적인 문제(nonlinear problem)에 부딪히기 시작한 것은 불과 지난 몇십 년 전부터다. 물론 우리는 이런 문제 중에서 겨우 서너 개의 변수를 사용하는 가장 작은 범주의 문제들만 이해하고 있다. 이것이 혼돈이론(chaos theory)이다. 뇌처럼 변수가 수백 개, 수백만 개, 수십억 개로 늘어나면 우리는 이런 문제들을 전혀 이해할 수 없게 된다. 이런 문제들이 바로 복잡계가 다루어야 할 것들인데, 우리가 이런 문제들을 이해하게 되기까지는 아직 해결해야 할 문제가 까마득하게 많이 남아 있다. 이것을 컴퓨터로 시뮬레이션할 수는 있지만, 사실 이것은 그냥 구경만 하는 것과는 별 차이가 없다. 우리는 여전히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 pp. 473-474


북폴리오 2016 서포터즈 활동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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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극히 내성적인 (최정화)

내성적인 모든 사람을 끌어들이는 제목. 그에 비해 실제 표지의 모티브가 된 단편의 제목은 '지극히 내성적인 살인의 경우'로 모든 내향적 성격의 소유자들에게 공감을 얻을 만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내면에 대한 작가의 치밀한 묘사만큼은 모두에게 만족감을 선사하지 않을까 싶다. 그 외에도 매력적인 단편들로 구성된 이 작품은 아마 긴 단편의 향연에 지친 독자에게 신선한 재미가 되어줄 것 같다. 그러면서 어느 하나 평범하지 않은 단편 속에서 내 마음에 꼭 드는 작품을 발견하는, 그런 즐거움이 더해질지도 모르고. 정이현의 말처럼 '온전해 보이는 세계를 냉정한 시선으로 관찰하여 위태로운 불안의 기미를 예민하게 포착'하는 작품집이라면 기대를 저버리지는 않을 것이다.


2. 가타기리 주류점의 부업일지 (도쿠나가 케이)

시골이라 불러도 좋을 지방 소도시의 작은 주류점의 문에는 '무엇이든 배달합니다' 라고 쓰여진 쪽지가 붙어있다. 무엇이든이라니, 취급하는 주종이 다양하다는 의미인가 싶지만 무뚝뚝한 사장이 배달하는 건 정말로 무엇이든, 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무엇이든 진심이라면 배달해준다고 하는 게 맞겠다. 그렇게 배달된 참마음은 보내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그리고 그 배달을 도맡아 하는 사장도 행복하게 만드는 즐거운 부업이 된다. 이 책을 읽는 독자의 마음에도 따뜻하고 어딘가 시큰한 감동이 한가득 배달될지도 모른다. 그것 역시 가타기리 주류점에서 기꺼이 맡는 부업일 것이다.



3. 음의 방정식 (미야베 미유키)

반가운 인물들이 등장하는 이 작품의 중심이 되는 사건은 미야베 미유키가 지금껏 그려온 것들에 비해서는 평범하게만 느껴진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연쇄 살인마에, 묻지마 독살 같은 게 등장해야만 미미여사에 걸맞는 스릴러라는 인식이 있어서일 수도 있다. 그러나 교내에서 교사와 학생의 갈등으로 시작된 이 사건을 통해, 작가는 때로는 사소하게 어긋난 관계가 피냄새를 물씬 풍기는 사건보다 더 섬뜩할 수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후지노 료코와 스기무로 사부로가 다시 등장해 마주하게 된 이 작품은 그러나 미스테리 그 자체보다도 미야베 미유키의 책을 빠짐없이 읽어온 애독자들을 위한 선물로 마련된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4. 타인들 속에서 (조 월튼)

출판사의 소개만 읽어도 참 독특한 소설이네,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던 조 월튼의 작품. 그에게 휴고상과 네뷸러상, 영국판타지문학상까지 한번에 안겨준 작품이기도 하다. 세상에서 제일 사악한 마녀인 어머니를 저지하려다 쌍둥이 자매를 잃고 아버지를 찾으러 나선 소녀가 아버지의 세쌍둥이 누이인 고모들에게 호시탐탐 노림을 당하고, 끝끝내 자신의 카라스를 만나 어머니와 맞서는 이야기는 어찌 보면 밑도 끝도 없는 판타지처럼 보인다. 하지만 옛 민담과 현실 속 갈등을 교묘히 짜넣는 작가의 구성력은 이 작품을 가볍게 볼 수 없게 만든다. 온통 가족들과 부대끼면서도 타인들 속에서 있는 것보다 더 괴로운 주인공을 응원하게 될 것 같은 느낌은 덤이다.



5. 별을 타는 아이 (얀도)

제목부터 어린왕자를 떠올리게 하는 이 책 역시 어른을 위한 동화다. 이 책은 일에 지친 어른들에게 잠시 서류를 내려놓고, 노트북을 덮고, 주변의 사랑하는 사람과 맑게 갠 하늘과 야근 후 돌아오는 길의 고즈넉함을 주목하라고 이야기한다. 우리는 너무 바쁘다. 때로는 아주 중요한 일들을 잊고 살 만큼 말이다. 정말 중요한 것을 잊어버린 성인 남자가 우연한 계기로 한 소년을 만나 삶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는 이야기는 조금은 뻔할지도 모르지만, 때로는 뻔하지만 진실된 이야기가 간절히 필요한 법이다. 생활에서 잠깐 숨을 돌릴 좋은 핑계가 되어주기도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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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
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김승욱 옮김 / 은행나무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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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때로 여성의 인권은 백년 전에 비해 단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중동 어느 나라에서 여전히 여자들이 이혼을 했다는 이유로 친형제에게 맞아 죽는 일이 벌어질 때, 동유럽을 여행하는 여학생들이 납치되어 인신매매를 당할 때, 대한민국에 소라넷이라는 사이트가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될 때. 페미니즘은 여전히 유효하며, 우리는 여전히 암흑 같은 시대에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다 역사를 들춰본다. 그리고 거기에서 암흑보다 더 짙은 어둠을 발견한다.

   '그들'은 1937년부터 시작한다. 모린의 어머니 로레타가 열여섯이던 시절. 디트로이트 외곽의 빈민가에서 가난과 폭력으로 얼룩진 삶 속에서도 낙관적인 미래를 꿈꾸는 한 소녀에게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리고 채 50페이지도 지나지 않아, 그녀의 미래는 부서져 내린다. 로레타는 교육을 받지도 못했고, 돈을 가지지도 않았다. 기분이 상하면 옆에 끼고 걷던 여자의 얼굴을 칼로 아무렇지 않게 그어버리는 남자들이 활보하는 동네에서 그 사실은 그녀를 더없이 약하게 한다. 그녀가 자신의 삶을 위해 거래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남자들에게 그들이 원하는 것을 주는 것이다. 그래서 로레타는 몸을 주고 결혼을 한다. 살아가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이야기는 세대를 건너 그녀의 아이들에게로 이어진다. 모린과 줄스. 그들의 삶이라고 더 나을 이유가 없다. 하나 달라진 게 있다. 모린은 더 나은 삶을 위해 이를 악물고 발버둥친다. 좀 더 사람다운 삶을 위해, 깨끗하고 행복한 사람이 되기 위해. 더 이상 남자들의 손에 모든 걸 잃는 인생을 살지 않기 위해. 그녀의 부단한 노력은 종종 벽에 부딪히고, 가족조차 위로가 되지 않는 날들이 계속되지만 그래도 모린은 벗어나는 데에 성공한다. 그리고 작가를 통해 세상에 이 이야기를 전한다. 너무 멀지 않은 과거에 실재했던 어느 끔찍한 이야기를. 실제 이 세상에 살았던, 혹은 아직도 살아있을 개인들이 살아낸 역사를. 그 이야기는 무섭도록 생생해서 어떤 악의에 찬 범죄소설보다도 진득하게 기억에 달라붙는다. 이건 모두 실제 일어났던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린, 너도 '그 사람들' 중 하나가 아니야?"

   끝끝내 모린을 찾아낸 줄스가 현관에 서서 묻는다. '그들'을 떨쳐내고 새로운 삶을 살고자 하는 모린의 악착같은 노력을 비웃듯이. 결국 너도 그들 중 하나일 뿐이라고, 너의 인생도 다를 게 하나도 없다고 비웃는다. 그 질문에 대해 모린은 입을 다문다. 여동생의 아픈 과거를 들쑤시며 마지막 상처를 남긴 오빠 줄스는 영원히 떠나 그녀를 자유롭게 하지만, 아마 모린에게 지울 수 있는 기억은 없었을 것이다. 먼 훗날 야간학교에서 만난 오츠에게 털어놓게 될 만큼, 그 이야기들은 그녀 안에 똬리를 틀고 지키며 언제나 머물렀을 것이다.

   그녀는 줄스의 말처럼 '그들' 중 하나였을까? 그런데 '그들'이 대체 누구일까? 모린의 어머니, 외삼촌, 베티, 줄스. 그들을 '그들'로 만드는 게 무엇이기에? 1967년의 폭동, 디트로이트. 그 곳에 있던 사람들 모두는 중요한 무언가를 공유한다. 하지만 그들은 서로에게 언제나 '우리'가 아닌 '그들'이 될 뿐이다. 그리고 그들은 영원히 알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모두, 서로 닮은 사람들이었다는걸.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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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인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15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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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신간목록에서 발견했을 때부터 신간평가단과는 상관없이 꼭 읽겠다고 다짐했던 책이었다. 주제 사라마구는 그런 작가다. 그 이름만으로 새로 쓴 소설이 어떤 주제의식을 담고 있고 어떤 소재를 다루고 있으며 분량은 어느 정도고 번역상태는 어떤지 고민할 필요 없이 책을 선택하게 만드는 작가. 200페이지 정도의 얄팍한 두께였던 이 책은 얼핏 가볍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작가의 성향을 생각했을 때, 그리고 인류 최초의 살인자 카인을 통해 구약을 새롭게 조명한다는 소재를 고려했을 때 결코 쉽게 읽힐 종류의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페이지가 빠르게 넘어갔던 것은 구약성서에 기초한 이야기 자체가 흥미로워서였고, 그를 풍자하는 사라마구의 신랄한 어조가 시선을 붙들었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덮는 게 아쉬워지는 종류의 책이었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전국 방방곡곡의 절에 기와를 얹고, 숙모 혼자 꿋꿋이 성당에 예배를 다니며 나머지 가족 모두가 종교적인 성향과는 거리가 멀었던 집에서 엄마는 혼자 기독교 신자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가족끼리 예배에 가는 게 소원이었다는 엄마는 성경을 좋아했다. 틈만 나면 창가에 앉아 돋보기를 콧등에 얹고 낡아서 책장이 반들반들해진 대학 시절의 성경책을 넘겨보곤 했다. 비슷하게 성경 읽기를 좋아하면서도 난해한 디테일과 흐름을 끊는 고어체에 자주 좌절하던 나는 언젠가 엄마에게 뭐가 그리 재밌어서 끈덕지게 읽는거냐고 물은 적이 있었는데, 그 때 엄마가 한 대답은 성경은 역사야, 라는 것이었다. 그것은 특정한 방법으로 쓰여진 한 민족의 역사이고, 그 민족이 자랑스러워하는 조상들의 일화이고, 어떤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기록이라고. 그래서 (돌이켜보면 늘 역사에 매료됐던) 엄마는 성경을 좋아했다. 나는 성경에 나오는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꿰고 있을 딱 그만큼은 읽었어도 격동의 사춘기를 거치며 간혹 언급되는 차별적이고 폭력적인 문장들에 거부감을 느껴 성경을 멀리하게 되었지만, 엄마는 늘 꿋꿋했다.

   사라마구의 '카인'을 읽으며 엄마의 말을 다시 되새겼다. 이 책은 구약의 서사적 측면에서 줄거리를 따온다. 아우 아벨을 살해한 죄로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게 되었다는 아담과 하와의 장남 카인이, 시간과 공간을 넘어 방랑하며 성경 속 사건들을 목격하고, 경험하고, 성찰하는 이야기. 분명 비현실적인 요소가 가미되어 있지만 성경 자체가 신과 천사가 등장하는 판타지 장르라는 걸 생각했을 때에는 더없이 어울리는 설정이다. 카인은 노아를, 아브라함을, 여호수아를, 그리고 욥을 만나고 소돔과 고모라의 몰락, 바벨탑의 혼돈, 노아의 방주와 40일간의 비를 경험한다. 그 만남에서 카인은 자신들을 창조한 신이 결코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렇게 카인의 시선을 통해 사라마구는 구약 속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폭력적이고 이기적인 면모를 꼬집는다.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하기 위해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한 것이 얼마나 경악스러운 명령인지, 충직한 욥을 두고 사탄과 내기를 한 것은 결국 악마와 다를 바 없는 일이 아니었는지, 소돔과 고모라의 죄없는 어린아이들까지 죽일 이유가 대체 무엇이었는지 묻는 카인을 통해, 성경 속 하나님은 지금껏 없었던 논리적인 비판에 직면한다.

   이렇게만 보면 사라마구의 '카인'은 신성모독이다. 실제 그럴지도 모른다. 실제 많은 기독교 단체들은 이 책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다. 세상을 만드신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이 그저 자신의 변덕으로 사람의 목숨을 흔들고 못하는 일이 있어 인간에게 거래를 제안하며 때로는 유치한 고집을 부린다니, 이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그러나 중요한 것은 사라마구가 겨냥하는 신이 '구약성서 속의 하나님'이라는 점이다. 이 책 어디에도 실제 어딘가에서 인류를 지켜보고 있을 하나님에 대한 비판은 등장하지 않는다. '카인'은 철저하게 구약에 산재한 증거들을 토대로 하여 구약이 묘사하는 하나님의 문제점들을 공격한다. 그리고 몇 천 년 전 쓰여졌다는 책 속 하나님의 모습은, 결국은 인간의 손에서 탄생한 것이다.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성경에 영향을 미칠 수 있었던 기득권층의 신념을 투영한 모습인 것이다. 여자를 하찮게 여기는, 동성애를 죽음으로 벌해야 하는 죄악으로 여기는, 전쟁에 열광하고 학살에 환희하는 모습들은, 아마 하나님보다는 당시를 살아가던 사람들과 더 닮아있을 것이다.

   굳이 지금 이 책이 쓰여진 이유는 뭘까? 구약성서에 때로는 읽어내기 어려울 만큼 끔찍한 기록을 남긴 인물들은 지금은 죽고 없는데 말이다. 글쎄, 적어도 21세기 대한민국을 기준으로 생각하자면, 그건 하나님을 자기 입맛에 맞게 형상화하고 자기가 원하는 모습대로 믿으며 그로 인해 권력을 취하려 하는 사람들에 대한 경고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했을 때 결국 욕되는 것은 신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늘 그 자리에 있었던, 어쩌면 단 한번도 악하지 않았을 신을 추악한 존재로 만드는 것은 늘 인간이다. 오직 인간의 탐욕만이, 인간의 이기심만이 그런 힘을 가진다. 사라마구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책에서 남긴 강렬한 비판은, 그런 인간을 향한 것이 아닐까.


신을 위하여

 

   주제 사라마구가 '카인'에 녹여내는 의심은 사실 성경을 열심히 읽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품어봤을 법한 것들이다. 욥은 죄를 짓지 않았는데 왜 재산도, 자식도, 건강도 잃어야 헀던 걸까? 소돔과 고모라에 살던 사람 중 아무 잘못도 없는 어린아이들은 왜 구원받지 못했을까? 신약의 예수님은 늘 용서와 사랑을 말하는데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죄 지은 자들은 왜 늘 잔인하게 죽임당하는가? 아이러니하게도 영원히 죽지 못하는 운명을 얻음으로써 오히려 하나님의 보호를 받게 된 카인은 당당하게 이 모든 일들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하나님에게 고개를 빳빳이 들고 따져 묻는다. 당신이 정말 우리를 사랑한다면 이럴 수 있는 거냐고. 전지전능한 당신이 우리를 사랑하는데 이 세상에는 왜 전쟁이, 가난이, 미움과 악의가 존재하는 거냐고. 왜 당신은 그토록 추악한 것들을 창조하여 당신이 사랑한 피조물들을 괴롭히는 거냐고.

   이 책의 신은 명확한 답을 내리지 않는다. 때로 신도 완벽하지 않다 인정하고, 자신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큰소리치고, 어떨 때에는 슬그머니 논쟁을 피하기도 한다. 그래서 카인이 만난 신이 정말 어떤 존재였는지, 선했는지 악했는지, 누구도 판단을 내릴 수는 없다. 어쩌면 신은 그냥, 관망하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어느 편에도 서지 않은 채 조용히, 모두를 굽어보는 존재. 그 신이 자신에게 계시를 내렸다고, 혹은 자신을 버렸다고, 혹은 자신들만을 선택했다고 말하는 것은 언제나 인간이다. 그 인간이 파를 나누고 나와 다른 이를 미워하며 차별을 조장하고 때로는 피를 보고야 만다. 어쩌면 가장 선한 신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모두에게 공평한 신인지도 모른다. 누구나 때로는 기쁨을 누리고 때로는 어려움을 헤쳐나가도록 가만히 두는 신. 그 어떤 이도 신의 권력에 부당히 기대어 다른 이들을 착취하지 않도록 때로는 가차없이 쳐내는 신. '카인' 속 하나님은 그러지 못했지만 내가 믿는 신은 부디 그러기를 바라며 책을 덮었다.


'카인' 들여다보기

 

   아이가 세상에 나오면 모든 사람이 노아의 자식이라고 생각할 것이고, 처음에는 정당한 의심과 수군거림, 또 그 이상의 것들이 넘쳐나겠지만, 모든 것을 평평하게 다듬는 위대한 존재인 시간이 곧 그것들을 다 쓸어버릴 것이고, 미래의 역사가들은 공을 들여 이 도시의 연대기에서 아벨, 또는 카인, 또는 이름이 뭐든 어떤 진흙 밟는 자에 대한 언급을 지워버릴 터였다. 의심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를 망각으로, 영원한 격리 상태로, 왕조들의 마음의 평화를 위해 이야기되지 않는 것이 좋을 그 사건들의 림보로 보내버리기에 충분한 이유가 될 수 있었다. 우리의 이야기는 역사적이지는 않을지 모르나, 그 역사가들이 얼마나 그릇되었는지, 또 어쩌면 얼마나 악의가 있었는지 보여준다. 카인은 실제로 존재했고, 노아의 부인에게서 자식을 낳았기 때문이다.

- pp. 84-85


   아예 안 오는 것보다는 늦게라도 오는 게 낫다, 천사는 대단한 진리라도 말하는 것처럼 으스대는 표정이었다. 바로 그 점이 틀린 거요, 아예 안 오는 것은 늦게 오는 것의 반대말이 아니오, 늦게 오는 것의 반대말은 너무 늦게 오는 거요, 카인이 반박했다. 천사가 중얼거렸다, 어이구 이런, 합리주의자로군.

- p. 96


   오랜 세월 뒤 사람들은 거기에 운석이 떨어졌다고 말하게 된다. 천체, 우주의 허공을 떠도는 수많은 천체 가운데 하나가 떨어졌다는 것이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이것은 바벨의 탑이었으며, 여호와가 자존심 때문에 완성을 허락하지 않은 탑이었다. 인류의 역사는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오해의 역사이니, 하나님은 우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우리는 하나님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 pp. 105-106


   돌아오는 길에 그들은 우연히 아브라함이 여호와와 이야기를 했던 곳에서 잠깐 발을 멈추었고, 그때 카인이 말했다,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생각이 있습니다. 그게 뭐요, 아브라함이 물었다. 불에 타버린 소돔과 다른 도시들에도 틀림없이 죄 없는 사람이 있었을 겁니다. 그랬다면 여호와가 그들의 목숨을 구해주겠다고 내게 하신 약속을 지켰겠지요. 아이들은 어떻습니까, 카인이 물었다, 아이들은 틀림없이 죄가 없었을 텐데요. 맙소사, 아브라함이 중얼거렸다. 그의 목소리는 신음 같았다. 그래요, 노인장의 하나님일지는 모르나 그 사람들의 하나님은 아닌 거지요.

- p. 117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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