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필요한 시간 - 나를 다시 살게 하는 사랑 인문학
사이토 다카시 지음, 이자영 옮김 / 와이즈베리 / 2016년 11월
평점 :
절판



"사랑이 어렵다면, 당신의 마음을 환하게 비춰줄 구세주 같은 책!" 그게 카피였다. 샛노란 예쁜 표지까지 겹쳐져, 연애에 관한 조언이 가득한 달달한 책이 아닐까 하는 선입견이 앞섰다. 그럼에도 '사랑인문학'이라는 단어가 눈길을 끌었다. 인문학이라니, 그렇다면 언제 밀고 언제 당겨야 하는지 콕 집어서 알려주는 연애입문서와는 다르지 않을까. 그런 기대감을 안고 책을 펼쳤다.


책은 사랑이라는 큰 범주 안에서 소소한 주제들에 대한, 어찌 보면 무작위적인 이야기들로 이루어져 있다. 하나 하나의 글들은 서로 관련이 있는 것 같으면서도 다른 사랑을 이야기하고, 그러다 보니 술술 넘어가는 페이지를 훑다 보면 어느 순간 이야기가 언제 이렇게 진행되었나 싶어 당황스럽기도 하다. 인기가 없는 남자에 관한 얘기를 하다가 아가페적인 사랑 이야기가 나오기도 하고, 사랑의 기원을 좇아 소크라테스와 에도 시대를 논하다가도 현대의 연애 풍습을 꼬집어 말하기도 한다. 책 소개에 나온 그대로 '그래도 사랑'이기는 한데 조금쯤 정신이 없는 건 아쉬움으로 남는다.


저자는 스스로를 '옛날 사람'으로 규정하는데 그래서인지 여러 에세이의 근간에 '사랑의 종착점은 결혼'이라는 전제가 깔려있다는 것도 하나의 아쉬움으로 남는다. 물론 결혼도 사랑의 성숙한 형태가 될 수 있고, 사랑 이야기를 쓰면서 결혼이라는 주제를 무조건 배제할 수는 없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많은 일본 젊은이들이 결혼할 상대를 찾는 것에 대해 주저하는 현실 앞에서 그 이유를 파고드는 것도 충분히 의미있는 작업이다. 그러나 글을 읽다 어느 순간 결혼을 선택하지 않는 사랑은 잘못된 것이라는 뉘앙스가 느껴질 때면 불편한 건 어쩔 수가 없다.


"'운명이기 때문에 헤어질 수 없다'는 결속감이 생겼을 때 자기중심적 욕구에서 멀어질 수 있다. 운명은 일종의 체념을 낳는다. 다른 사람이 이 사람보다 나을지도 모른다는 선택지를 없애면 마음이 오히려 편해진다."


위와 같은 조언들이 장난스러웠으면 재미있었을텐데, 진지하게 느껴져서 조금은 무서웠다. 운명이니까 헤어질 수 없다니, 그건 얼마나 폭력적인 사고인가. '다른 사람이 이 사람보다 나을지도 모른다는 선택지를 없애면' 성립하는 사랑은 대체 어떤 사랑이란 말인가.


그러나 앞서 말했듯 이 책에 실린 글들은 그야말로 총천연색이어서 한 꼭지가 불편하다가도 다른 부분에 가서는 금새 흥미로워지고 편안해진다. 가령 작가는 결혼에 대해서는 꽤나 보수적인 입장을 보이는 반면 동성애에 대해서는 놀랄 만큼 개방적인 자세를 보인다. 역사적으로 동성애는 자연스럽게 수용되었으며 일본에서는 메이지 시대에 생산성이 강조되면서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동성애를 금기시했다는 깔끔한 설명은 동성애를 감정적으로 다루지 않겠다는 저자의 입장을 담백하게 보여준다. 그러다 보니 잠깐 불편했던 마음도 이내 안정을 찾는다.


위트 있는 부분들도 있다. 이를테면 '잡담력'을 길러야 한다는 조언이나, 스스로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편애 지도'를 작성하게 하는 과제가 그렇다. '잡담력'은 사랑을 남녀관계를 좀 더 쉽게 풀어나가기 위한 충고이기도 하지만, 또한 고령화가 진행되는 사회 구조 속에서 고독을 타파하기 위한 대안으로 제시되기도 한다. '편애 지도'는 타인과의 사랑이 아닌 스스로를 사랑하기 위한 하나의 방식으로 주어진다. 내가 사랑하는 것들, 좋아하는 것들을 꼽아보다 보면 스스로를 좀 더 잘 이해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책은 사랑이라는 테마의 뷔페 같다는 인상을 준다. 어떤 음식은 입에 맞는 반면, 어떤 건 영 별로일 수도 있다. 다양한 음식이 있으니 그 모두에 하나의 통일성을 기대할 수도 없다. 그래도 골라먹는 재미가 있고, 그 중 어떤 것은 너무 맛있어서 계속 생각나기도 한다. '사랑이 필요한 시간'은 사랑에 관한 정답을 던져주지 않는다. 아주 많은 시선을 알려줄 뿐이다. 그 속에서 내 마음에 꼭 맞는 단 하나의 시선을 찾아내는 것은 독자의 몫인지도 모른다.


"두 사람이 마주보고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러니 당신도 나를 사랑해주세요'라는 식의 사랑은 때로 사람을 지치게 한다. 하지만 '우리 둘 다 이것을 좋아하니 이것에 대해 이야기합시다'라는 식의 사랑은 싫증도 나지 않고 재미있다."


내가 찾아낸 단 하나의 시선이다. 이런 사랑이라면 언제든지 환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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