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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지대
헤르타 뮐러 지음, 김인순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4월
평점 :
품절
2009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헤르타 뮐러의 데뷔작을 만났다. [저지대]를 포함한 몇개의 단편들이 수록되어 있다. 책속의 [의견] [잉게][불치만씨]등은 삭제되었던 작품이라고 한다. 그러한 작품들이 모두 실려있다. 글을 읽는 것은 무아지경속으로 빠져드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영혼이 같이 혼합되어있는 듯한 작품이다. 꿈과 예리한 현실을 바라보는 시각이 묘하게 어울러져 있다.
책의 말미에는 노벨문학상 수상 연설문도 포함되어 있다. 작가의 작품에 대한 사랑, 삶에 대한 애뜻한 모습들을 만날수 있다. [저지대]의 쥐를 잡는 장면에서는 예전에 살던 단독 주택이 생각난다. 엄마네가 집을 비우면서 큰 언니네가 살게 되었는데 그곳에 지하실이 있었다. 그 지하실에는 쥐가 들락날락했는데 천장에도 쥐가 달음박질하는 소리, 고양이가 야옹~~야옹~~하는 소리가 들리고 말이다. 어느날인가 쥐를 잡으려고 난리가 났던 적이 있다. 그 때..언니, 작은 오빠는 삽을 들고 열심히 쥐를 때려잡았다. 헉...지금 생각해도 넘 신기하고 놀랍기만 하다. 작은 오빠가 그런일을 했었다는 것이 지금 생각하니....ㅡㅡ;;;;
그런 삶의 리얼한 부분들이 이 책 속에는 담겨져 있다. 아주 날카로운 바늘과 부드러운 마음, 피폐한 상황들을 이리저리 조명해내고 있다. 어린 시절의 시골 풍경을 그리고 가족들의 이야기를 그렇게 담아낼수 있다는 것이 아주 흥미롭다. 어린아이인 나는 온 가족들을 바라본다. 부모님을 그리고 할아버지, 할머니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꺼내고 있다. 일상의 모습들을 단편영화가 거침없이 사실들을 예리하게 비추어내는 듯이 그려내고 있다. 그리고 진솔하면서도 최대한의 격식을 차리고 있는 우아한 글을 만날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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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창에 얼음꽃이 무성하다. 나는 살갗에 오싹 소름이 돋는 걸 느낀다. 어머니가 손톱을 너무 짧게 깎아준 탓에 손가락 끝이 아프다. 손톱을 막 깎고 나면 제대로 걸을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럴 때마다 나는 손으로 걷는다. 그리고 손톱이 짧아서 제대로 말할 수 없고 제대로 생각할 수도 없다고 느낀다.
유리창의 얼음꽃도 제 이파리를 꿀꺽 삼킨다. 얼음꽃에는 앞을 보지 못하는 우윳빛 눈이 달려 있다.
.......................밥 먹자는 소리가 떨어지자마자 내가 달려가지 않으면, 득달같이 식탁 옆에 서 있지 않으면, 내 볼에는 어머니의 매서운 손자국이 남는다.
........................본문 63페이지에서
아래는 [노벨문학상 수상 연설문]중 일부분이다.
"손수건 있니?"
내가 매일 아침 집을 나서기 전, 어머니는 대문에서 꼭 이렇게 물었습니다. 내게는 손수건이 없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나는 다시 방으로 들어가 손수건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매일 아침 나는 어머니의 그 물음을 기다렸고, 그래서 매일 아침 손수건을 챙기지 않았습니다. 손수건은 매일 아침, 어머니가 나를 지켜주고 있다는 증거였습니다. 그 시간 이후로는 무슨 일이든 나 혼자의 힘으로 해결해야 했습니다.
"손수건 있니?"
이 물음은 간접적인 애정 표시였습니다.............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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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음속의 힘찬 장미에 대해 생각했다.
체와 같은 무익한 영혼에 대해
그러나 주인은 물었다.
누가 우위를 차지하느냐고
나는 말했다. 피부의 구원
그는 외쳤다. 피부는
사려분별 없는,
모욕당한 고운 아마포 얼룩일 뿐이라고
나는 날마다, 오늘날까지도 독재 치하에서 품위를 빼앗기는 모든 이들을 위한 문장을 말할 수 있기를 바라왔습니다. 손수건이라는 낱말이 들어가는 문장으로. 혹은 '손수건 있니?' 라는 물음으로.
고래로 손수건에 대한 물음은, 손수건이 아니라 인간의 절박한 외로움을 가리키는 게 아닐까요?
2009년 12월 7일
그리고 [저지대]에 나오는 '독일 개구리'라는 표현은 독일적 오만함에 대해 비판한 것이라고 한다. 독일을 옹호하지 않는 것에 대해 독일은 작가를 "자기 둥지를 더럽히는"."수프에 침을 뱉은" 사람이라고 축출했다. 마을사람들도 역시나 뮐러를 향해, 뮐러의 가족들을 향해 멸시하고 고립시켰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