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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바꾼 어느 물고기의 역사
마크 쿨란스키 지음, 박광순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1998년 7월
평점 :
절판
하루에도 수십권씩 혹은 수백권씩 쏟아지는 책들.
그 많은 책들 중에 하루에 단 한 권도 읽어내지 못하는 독자인 나.
그리고 하루에 한 권도 읽어내지 못하면서 소설, 여행기 따위에만 치중하는 나에게 생각지도 못한, 그리고 지독히도 싫어했던 역사에 관련된 책을 읽는 건 크나큰 걱정거리였다.
내게 있어서 역사라는 존재는 고등학교 때, 혹은 중학교 때 배워온... 그저 시험을 준비하는데에만 나를 급급하게 만들었던, 외울 것 많고 골치 아픈 “과목科目”으로만 느껴왔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름의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첫 페이지를 펼쳤다. 그래도 그간 마크 쿨란스키의 책 [소금]과 얼마 전 출간된, [음식사변] 때문에 조금 익숙해서 그리고, 올해 초에 대구가 많이 잡혀 가족들과 함께 대구를 먹으러 갔던 기억이 있어 무척이나 관심이 갔다. 내가 먹는 수많은 음식 중 하나였던 대구가 도대체 무엇 때문에, 어째서, 세계를 바꾸게 되었는지 책을 덮고 난 지금.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다.
말린 대구와 소금에 절인 대구. 나는 싱싱하게 살아 있는 대구나 식탁에 올라오는 음식으로만 접해 왔는데 말리다니, 소금에 절이다니. 참 생소했다. 하지만, 냉동장치가 없는 12세기에 어떻게 살아 있는 대구를 육지에서 구경 할 수가 있을까. 현대를 사는 내가 알고 있는 방법보다 독특한 방법으로 보관했기 때문에 더욱더 대구의 “쟁탈전”은 심했다.
바스크인은 대구를 소금에 절였기 때문에 멀리 항해 할 수 있었고 그로 인해 국제적인 무역시장을 형성하기도 했다. 하지만, 풍부한 대구 어장(뱅크)을 발견한 존 캐보트로 인해 바스크인들이 비밀로 여겼던 어장을 알아냈다. 그 대구로 인해 영국과 한자 동맹사이에 전쟁이 일어나기도 했고, 지중해 부근 지역에서는 대구 어장을 둘러싸고 뺏고 빼앗기는 어장전쟁이 계속 되었다. 또, 프랑스 대혁명에서는 소금의 과도한 세금이 하나의 원인이었는데 소금은 대구를 가공하기 위한 아주 중요한 요소였다. 전혀 생각해보지도 못한일인 프랑스 대혁명에도 대구가 영향을 끼쳤고, 그 후 대구로 인해 부자가 되거나 대구 무역으로 인해 도시가 발전하는 일들은 흔히 생겼다. 부자가 되거나 성공하는 이가 있다는 것은 그들에게 짓밟히는 이들도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대구 산업은 사탕수수공장에서 일하는 노예들에게 지중해 지역에서는 인정받지 못하는 하급의 대구를 공급하면서 노예 무역을 부추기기도 했다. 유럽인들 사이에서 행해지던 대구 무역은, 유럽인들의 세계가 확장되면서 자연스레 그것도 확장되었고, 그로 인해 미국의 혁명과 독립전쟁에도 영향을 끼쳤고, 남북 전쟁에서는 소금에 절인 대구가 미국 군대의 주식이 되어서 글로스터는 큰 돈을 벌게 되기도 했다. 또, 현대에 들어서는 1958년에서부터 1975년 사이에 벌어진 아이슬란드와 영국 사이에는 3차에 걸쳐 대구 어장을 둘러싼 그야말로 “대구 전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렇게 대구를 둘러싸고 과거나 현재나 여러 나라들이 쟁탈전을 벌이는 것으로 보아 대구는 분명 중요한 경제적 자원이었다. 과거, 대구를 잡는 것은 낚시였다. 그것이 점점 발전하여 도리선, 저인망어선, 트롤선에 이르기까지 시간이 흐를수록 대구를 잡는 방법과 기술은 발달해갔다. 그로 인해 중요한 경제적 자원인 대구는 19세기부터 남획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었다. 오늘날은 말할 여지도 없이 심각해졌으며, 프롤로그에서 나타나듯이 이제는, 과학자들이 대구에 대해 연구하고, 어부들도 마릿수를 세어가며 잡고, 꼬리표를 붙이고... 결국 인간의 이기심이 천년 동안 흥청거렸던 대구잡이를 거의 몰락에 이르는 수준으로 끌어가게되었다.
A. 뒤마는《만약 돌발적인 사고 없이 알이 그대로 부화하거나 자라면, 단 3년 안에 바다가 대구로 꽉차 발을 바닷물에 적시지 않은 채 그 등을 밟고서 대서양을 건널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이 나왔다.》라는 말을 했다. 물론, 대구가 알을 많이 놓는다고 해서 그 알이 다 부화되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요즘은 대구가 많이 잡히질 않는다. 그건 나의 경험으로도 알고 있다. 올해 초에 대구가 많이 잡혔다는 방송의 보도로 “용원”에 있는 작은 어시장에 부모님과 함께 대구를 사러 갔던 기억이 있다. 책 212p에 있는 대구 크기의 1/4도 채 안 될 만한 크기의 대구가 7만원이었다. 그 걸 사서 회도 뜨고, 정력에 좋다는 숫대구의 내장과 대구 토막으로 끓인 대구탕을 먹기도 했었다. 그때 부모님과 했던 이야기가 대구가 예전엔 정말 많았고, 이렇게 비싸지도 않았는데 환경도 오염되고, 무분별한 남획과 그리고 바다의 수온의 변화로 인해 이렇게 대구가 잡히지 않게 된 것이 아닌가...라는 이야기를 했었다. 양식도 하고, 이제와서 보존한다고들 난리다. 처음부터 남획하지 않고, 대구를 보호하면서, 그 옛날의 방식으로 지켜왔다면 대구를 비싼값에 혹은 비싼값을 치루고 먹고 싶어도 없어서 못먹는 일쯤은 없을텐데 말이다.
이 책은 음식사변의 작가답게, 한 부분의 내용이 끝날 때마다 대구의 요리법이 나온다. 대구스튜라든지, 겨자 소스를 곁들인 생대구 등의 군침이 돌게 하는 서양 요리법이 나와 있어서 내가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대구 요리와 다르게 어떤 맛일까 궁금하긴 했지만, 그래도 대구를 넣고 끓인 대구 매운탕을 먹는것이 한국사람의 입맛과 정서에 맞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소금이나, 설탕이 세계를 뒤흔들만큼 경제적 가치를 지녔다는 것은 자세히는 모르나, 어느 정도 알고는 있었지만, 한낱 물고기가, 이제는 귀하신 몸이 되어버린 대구라는 존재가 세계의 경제와 외교등에 이토록 큰 영향을 주게 되었다는 것은 처음으로 알게 된 사실이다. 물론 세계사 라서, 그리고 내가 흥미 없어 하는 “역사”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책이라서 앞부분에 나오는 바스크인이나, 뉴펀들랜드, 뉴잉글랜드 등의 부분은 ‘이게 누구야? 뭐하는 사람이지?’하는 생각이 계속 들어서 읽어내려 가기가 조금 어려운 편이었다. 북유럽, 대서양, 북아메리카 등의 지도같은 것을 넣어 줬다면 훨씬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을까? 내가 그쪽으로는 문외한이라서... 그래도 역사서치고는 너무 흥미로웠고, 재미있었다. 고등학교때 배우던 역사 교과서도 이처럼 재미있게 쓰여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