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루다의 우편배달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4
안토니오 스카르메타 지음, 우석균 옮김 / 민음사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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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애소설>이란 영화가 있었다. 고 이은주, 손예진, 차태현이 주연을 맡은 로맨스 영화였다. 난 이 영화에 대한 기억이 꽤나 강한데, 이 영화가 개봉한 당시 나는 고 2였다. 마침 영화를 보러간 날은 시험이 끝난 토요일이였고, 굳이 혼자 영화를 보러갔다. 괜히 허세를 부리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내 인생에 처음으로 혼자 영화를 본 게 바로 이 연애 소설이었다. 양쪽으로는 커플들이 앉아 있었고, 교복을 입은(우리학교 교복은 한복이었다; 젠장) 나는 뭔가 뻘쭘하면서도 쑥쓰러운 모양새로 영화를 봤다. 영화는 나쁘지 않았다. 그땐 나도 감수성 풍부한 고등학생이었고, 시험이 끝났다는 해방감도 있었으니까. 그런데 아직까지도 잊혀지지 않는 한 장면이 있다. 세 주인공이 함께 영화를 보러가는 장면이 있는데, 그때 나온 대사가 "전 사랑에 빠졌어요. 너무 아파요. 그런데 계속 아프고 싶어요." 였다. 캬아- 내 감수성을 제대로 자극했다. 언젠가 저 영화를 꼭 봐야지!라고 생각 했는데, 그 영화가 바로 <일 포스티노>였고, 이 소설은 그 <일 포스티노>의 원작이다. 그러한 경로로 이 책을 알았기 때문에 그저 가벼운 연애소설인줄만 알았다. 


  이 책의 주인공인 마리오는 어부의 아들이다. 마땅히 삶의 의욕도, 욕심도 없는 그는 일자리를 구하는게 좋을것 같다는 아버지의 채근에 못 이겨 일자리를 구한다. 월급이 많지도 않고, 할 일이라고는 단 한사람에게 우편물을 배달하는 것뿐이지만, 영화를 볼 돈은 있어야 하기에 일을 시작한다. 별로 돈벌이가 되지 않을것 같은 그 일을 구하게 된 것은 우편물을 받는 사람이 네루다이기 때문이었다. 
  마리오는 그의 시집에 사인하나 얻는게 작은 소원이라 시인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왜냐면, 동네 아가씨들을 꼬시기엔 꽤 괜찮은 떡밥이었으니까. 그런 순박한 마리오와 네루다는 제법 가까운 사이가 되었고, 네루다 덕분에 마리오는 사랑하는 베아트리스를 얻게 된다. 극구 결혼을 반대하던 베아트리스의 어머니를 물리쳐??준것도 네루다였다. (물론 네루다도 대하기 쉬운 상대는 아니었다. 왜냐면, 칠레에서 가장 무서운 공공기관인 딸가진 어머니였기 때문이니까.) 노벨문학상을 받고, 대통령 후보로까지 추대된 대 문호 파블로 네루다는 순박한 마리도 덕분에 일순간에 뚜쟁이가 되버린다.
  책이 중, 후반으로 넘어가면서 전체적인 분위기가 무거워 지는데, 그 와중에도 네루다와 마리오의 우정은 아주 멋졌다. 네루다가 대통령 후보가 되어 마을을 떠나게 됐을때도, 프랑스 대사로 임명되어 파리에 가있는 동안에도 네루다와 마리오는 편지를 주고받고, 시인의 요구대로 이슬라 네그라의 소리들을 녹음해 보내주기도 하면서 우정을 이어나간다. 그 후, 피노체트가 일으킨 쿠데타로 아옌데가 목숨을 잃고, 네루다 역시 죽음을 눈앞에 두게 되는데, 그 순간에도 마리오는 시인에게 온 전보를 외워 목숨을 걸고 네루다를 찾아와 시인의 곁을 지키는 모습에 둘의 진한 우정에 감동이 물밀듯 밀려왔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은 건 역시 메타포였다. 순박한 마리오에게 네루다가 메타포를 설명해주는데, 그 장면은 압권이었다. 제법 웃기기도 하면서, 메타포라는게 무엇인지 잘 몰랐던 나도 적절한 예를 잘 새겨 들으며 배웠다. 
 

   
  여기에 인용문을 입'넌 지금 풀잎처럼 촉촉해...강물은 자갈을 휩쓸어 오지만 말은 임신을 몰고 오는 법이야. 지금은 네 미소가 한 마리 나비겠지. 하지만 내일은 네 젖통이 어루만지고 싶은 두 마리 비둘기가 될 거고, 네 젖꼭지는 물오른 머루 두 알, 혀는 신들의 포근한 양탄자, 엉덩짝은 범선 돛, 그리고 지금 네 사타구니사이에서 모락모락 연기를 피우는 고것은 사내들의 잘난 쇠몽둥이를 달구는 흑옥 화로가 될걸! 퍼질러 잠이나 자!' - 사랑에 빠진 베아트리스에게 엄마가...력하세요  
   

   
  '벌거벗은' 당신은 그대 손만큼이나 단아합니다.
보드랍고 대지 같고 자그마하고 동그랗고 투명하고
당신은 초승달이요 사과나무 길입니다.
'벌거벗은' 당신은 밀 이삭처럼 가냘픕니다.
'벌거벗은' 당신은 쿠바의 저녁처럼 푸릅니다.
당신 머릿결에는 메꽃과 별이 빛납니다.
'벌거벗은' 당신은 거대하고 황금빛으로 물들어 있습니다.
여름날의 황금 성전처럼.


마리오가 전하는 이 시를 본 베아트리스의 모친은 네루다에게 이렇게 말한다.
"네루다씨, 즉 우체부 그 작자가 내 딸이 홀딱 벗은 걸 보았다고요."
 
   



  그대로 박장대소. 이 책은 전반적으로 메타포의 향연이다. 모든 대화나 설명속에 메타포가 숨어 있는데, 잘난체하지 않으면서 은근하게 그리고 유머러스하게 메타포들이 깔려 있어 책을 읽는 재미가 더 있다.

 
  아름다운 칠레의 바닷가 이스라 네그라, 잘은 몰랐지만 국민적인 시인으로 추대받는 파블로 네루다, 순박하고 귀여운 마리오, 섹시한 베아트리스, 그리고 무서운 그녀의 어머니와 바다와 사랑, 시, 정치, 사회 등 많은 요소들을 적절하게 잘 버무려 조화를 이룬 이 한편의 소설은 아름답고도 대단했다. 내가 상상한 장면들과 영화에서 그려진 모습이 어떻게 다른지, 어떻게 닮았는지 영화 <일 포스티노>도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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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쇠솥 2009-12-10 1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박장대소...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