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말씀만 하소서 - 자식 잃은 참척의 고통과 슬픔, 그 절절한 내면일기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04년 12월
구판절판


아무리 좋은 일도 그걸 못이박힌 가슴으로 느껴야 할 때 어떠하다는 걸 네가 알 리가 없지. 또 알아서도 안되고. 그러나 너도 손가락에 가시 같은 게 박혀본 적은 아마 있을 것이다. 가시 박힌 손가락은 건드리지 않는게 수잖니? 이물질이 닿기만 하면 통증이 더해지니까. 에미에게 너무 잘해주려고 애쓰지 말아라.

만약 손가락 끝에 가시라도 박힌 경험이 있다면 그 손가락으로는 아무리 좋은 거라도, 설사 아기의 보드라운 뺨이라도 아픔을 통하지 않고는 결코 만져볼 수 없다는 걸 알 테지. 그런 손가락은 안 다치려고 할수록 더욱 걸치적거린다는 것도. 못박힌 가슴도 마찬가지란다. 오오 제발 무관심해다오. 스스로 견딜 수 있을 때까지. -86쪽

내가 이 나이까지 겪어본 울음에는, 그 울음이 설사 일생의 반려를 잃은 울음이라 할지라도, 지내놓고 보면 약간이나마 감미로움이 섞여 있게 마련이었다. 응석이라 해도 좋았다. 아무리 미량이라 해도 그 감미로움에는 고통을 견딜 만하게 해주는 진통제 같은 게 들어 있었다. 오직 참척의 고통에만 전혀 감미로움이 섞여있지 않았다. 구원의 가망이 없는 극형이었다. 끔찍한 일이었다.-130쪽

이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누구라도 이런 끔찍한 극형에 당해서는 그 영문을 물을 권리가 있다. 신의 권위가 장난질칠 권리가 아닌 바에야 의당 그 극형이 무슨 잘못에서 연유했는지 밝혀줘야 한다. 신, 당신의 존재의 가장 참을 수 없음은 그 대답 없음이다.-130쪽

<법구경>의 한 구절

어리석은 이는 한평생을 두고
어진 이를 가까이 섬길지라도 참다운 진리를 깨닫지 못한다.
마치 숟가락이 국맛을 모르듯이.
지혜로운 사람은 잠깐이라도
어진 이를 가까이 섬기면 곧 진리를 깨닫는다.
혀가 국맛을 알듯이.-131쪽

나에겐 죽음보다 무서운 고통이 타인에겐 단지 흥미나 위안거리밖에 안되는 인간관계가 무서워서 떨고 있었다.-138쪽

그때 계시처럼 떠오른 나의 죄는 이러했다.
나는 남에게 뭘 준 적이 없었다. 물질도 사랑도. 내가 아낌없이 물질과 사랑을 나눈 범위는 가족과 친척 중의 극히 일부와 소수의 친구에 국한돼 있었다. 그 밖에 이웃이라 부를 수 있는 타인에게 나는 철저하게 무관심했다. 위선으로 사랑한 척한 적조차 없었다. 물론 남을 해친적도 없다고 여기고 있었다. 모르고 잘못한 적은 있을지도 모르지만 의식하고 남에게 악을 행한 적이 없다는 자신감이 내가 신에게도 겁먹지 않고 당당하게 대들 수 있는 유일한 도덕적 근거였다. 주지도 않고 받지도 않은, 타인에 대한 철저한 무관심이야말로 크나큰 죄라 하는 것을, 그리하여 그 벌로 나누어도 나누어도 다함이 없는 태산 같은 고통을 받았음을, 나는 명료하게 깨달았다. 하필 변기 앞에 무릎 꿇은 자세로. 나는 그 정답에 머리 숙여 승복했다. 나중에 나의 간지가 또다시 빠져나갈 구멍을 찾게 될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그 순간 만은 그건 꼼짝달싹도 할 수 없는 정답이었다. 그리고 구원이었다. 고통도 나눌 가치가 있는 거라면 나누리라.-142쪽

역설적인 얘기가 될지도 모르지만 나의 홀로서기는 내가 혼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가까이서 멀리서 나를 염려해준 여러 고마운 분들을 비롯해서 착한 딸과 사위들, 사랑스러운 손자들 덕분이다.
나만이 알고 느끼는 크나큰 도움이 또 있다. 먼저 간 남편과 아들과 서로 깊이 사랑하고 믿었던 그 좋은 추억의 도움이 없었다면 내가 설사 홀로 섰다고 해도 그건 허세에 불과했을 것이다. 나는 요즈음 들어 어렴풋하고도 분명하게,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의 이런 도움이야말로 신의 자비하신 숨결이라는 것도 느끼게 되었다.

"주여, 저에게 다시 이 세상을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나 주여 너무 집착하게는 마옵소서."
-174쪽

내 육신이 밥을 먹지 않고는 목숨을 부지할 수 없는 것처럼 내 마음 또한 좋은 추억의 도움 없이는 최소한의 인간다움도 지킬 자신이 없었기에. 가장 어려울 때 신세진 이곳에서 얻어가진 좋은 추억의 힘을 믿을 수 있어서 한결 마음이 가라앉았다.-156쪽

남동생이 어찌나 고약하게 구는지 집안이 편할 날이 없었다고 한다. 왜 하필 내 동생이 저래야 되나? 비관도 되고 원망스럽기도 하다가 어느 날 문득 '세상엔 속썩이는 젊은이가 얼마든지 있다. 내 동생이라고 해서 그래서는 안되란 법이 어디 있나?'
'내가 뭐관대...' 라고 생각을 고쳐먹고 그 사실을 받아들이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지고 동생과의 관계도 호전이 되더라고 했다.-1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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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양장)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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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에 대한 답장을 보냈을 때, 도움이 된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가짐이 열심히 살자 등등인 경우가 많다고 한다. 충고를 받아들일 준비간 된 것이다. 어떻게든 도움이 되도록 해석하고...

 

책읽기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그 날 그날의 내 상태나 처한 환경에 따라 똑같은 책이 재밋을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어제 처음 접했다. 요즘 내 마음 상태 때문인지, 2페이지 정도 읽으니 여지없이 빨려들어가버렸다. 그래서 책을 다 읽고 나서야 잠들 수 있었다.

 

이제껏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은 킬링 타임용으로 재미로만 생각해서 용의자 x의 헌신이나 백야행 이외에는 그렇게 높게 치지 않았는데 이 소설은 추리소설이 아니고 다른 장르인 것 같았다.

 

일본어로 고민(나야미)이라는 이름과 유사한 나미야씨가 운영하는 잡화점에서, 어떻게 하다보니 사람들의 고민을 편지로 받고 상담 답장을 해주는 일을 하게 된다. 그러면서 벌어지는 가슴뭉클한 이야기들로 구성되는데,,, 이래 저래 많은 사람들이 연결이 된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인간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얼마전까지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오랫동안 랭크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어렸을 적 책읽기를 싫어하고 국어성적이 유난히 낮았다고 한다. 그래서 담임선생님께서 어머니를 학교에 불러 만화만 읽히지 말고 책도 읽히는 게 좋겠다고 권고하셨다 한다. 그러자 어머니께서 우리 애는 만화도 안봅니다 라고 했을 정도. 그래서 담임 선생님께서 그럼 만화부터 읽히세요 라고 할 정도였다고 한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어린 시절 책 읽기를 싫어하는 자신을 가상의 독자로 상정하고 글을 쓴다고 하는데 역자의 말처럼 지금 상당부분 그 목표를 달성한 것 같다.

 

이 책은 재미와 감동 두 가지 토끼를 모두 잡은 소설이며, 모든 연령층에게 선물해주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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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실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고 스스로를 정직하게 바라보았을 때 기적이 일어난다.

* 아무리 현실이 답답하더라도 내일은 오늘보다 더 멋진 날이 되리라 믿는다.

* 분명 너무 앞만 보며 달려왔는지 모른다. 이건 천벌이 아니라 그런 급한 발길을 멈추고 잠깐 쉬었다 가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야 할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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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 또 올게 - 아흔여섯 어머니와 일흔둘의 딸이 함께 쓴 콧등 찡한 우리들 어머니 이야기
홍영녀.황안나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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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넘은 할머니의 일기로 거의 이루어져있는데 70 넘어서 겨우 한글 떼신 분이 이렇게 가슴절절하게 글을 잘 쓰시다니.. 정말 놀라웠다.

부모님 마음은 아무리 헤아려도 잘 헤아려지지 않는 것 같다.

이제 부모 마음 1/100 이라도 알 려 하면 그 때 부모님은 이미 연로하셔서 이미 노쇠해지셔서 가슴 아프고, 또 돌아가신 경우도 있고.

 

부모님께 절대 모진 말을 하지말고,

따뜻한 말로 기운을 북돋원 주는게 제일 이라 하니,,, 노력해야겠단 생각이 든다.

그리고 부모님께 휴대폰도 저렴한 걸로 사드리고 했는데,

물건은 무조건 새 것으로 좋은 것으로 사드려야겠단 생각도 들었다.

이 땅의 자식된자 모두 이 책을 읽어보았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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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 깊은 나무 1 : 김영현.박상연 대본집
김영현.박상연 지음 / 북로그컴퍼니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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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물이 아니고 바랑이옵니다. 북방 오랑캐말로 누군가 간절히 필요로 하는 물건을 바랑이라 합니다. 요즘 밤일이 시원찮아 고민하는 분께 북방에서 구한 올눌제(해구신)를 좀 드립사옵고, 겸사복의 어떤 자는 매향정의 기생 소화의 마음을 얻으려 전전 긍긍한다기에 명나라 노리개를 하나 주었을 뿐입니다 -강채윤 첫 등장씬-100쪽

허리도 못펴고 일만 하는데 언제 글자를 배운단 말입니까!
아직 해보지도 않지 않느냐! 할 수 있다!
5만자 중 천자 배우는데도 오래 걸렸습니다. 헌데 전하께서 만드신 글자는 몇 자나 되길래요? 5천자? 3천자? 아니면 천자?
스물여덟자다.
그...게 말이 됩니까? 이 헛간 안에 물건도 그물여덟 개가 넘습니다. 글자는 세상을 다 담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헌데어찌 스물여덟자로 만 가지, 2만 가지의 뜻을 담는단 말입니까?
만 가지, 이 만 가지가 아니다. 십 만가지, 백 만 가지도 담을 수 있다.-200쪽

불과 이틀 사이에 말한 것을 그대로 쓸 수 있고, 쓴 것을 그대로 읽을 수 있다...?-200쪽

무휼아, 칼싸움을 할 때 말이다.. 회심의 일격을 날렸는데 그 일격이 빗나가면 어찌 되느냐?

엄천난 반격이 오겠지요.
그래.. 회심의 일격이 빗나간다는 것은 그것으로 생사가 갈린다는 것이다..-300쪽

글자의 시작이 백성에 대한 좌절이었고, 담이에 대한 분노였다면서요?
개한테 절망하고 좌절하는 거 보셨습니까?
개한테 의욕없다고 분노하는 거 보셨냐구요.

전하께서 절망하고 좌절하고 분노한 건 백성을! 처음으로 인간으로! 우리 담이를! 처음으로 사람으로 생각했다는 겁니다.
사랑한거라구요!!! 진짜로 그걸 모르십니까?-412쪽

모두가 글자를 안다는 것이 유생들이 저리도 분노할 일이냐?
그렇지요. 오직 글자만이 힘인 분들이니.
저에게(가리온) 있어 검안이고, 겸사복 나리에겐 칼이듯이...-4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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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 깊은 나무 1 : 김영현.박상연 대본집
김영현.박상연 지음 / 북로그컴퍼니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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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금과 마의의 작가 김영현과 선덕여왕의 박상연 작가의 합작으로 이루어진 뿌리깊은 나무.

작가에 대한 믿음만으로도 충분히 재밌으리가 예상했고, 이미 드라마로 방영되어 인기가 있었던 작품이라 꼭 읽어보고 싶었다.

서두에 보면 작가들의 관점이 나오는데, 김영현 작가의 말이 꽤 가슴에 와닿았다.

그래서 인용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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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현 작가는 세종에 대해 조사하며 "3, 4시간만 잤다" "책벌레여서 통달하지 않은 분야가 없었다" "하루도 백성을 생각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는 공통적인 내용을 접했다고 한다.

 

그럼 세종대왕은 왜 그리 열심이였고, 왕이 무엇때문에 그리 성실하고 목숨걸고 일했는가? 하는 자연스런 물음이 생겼다고 한다.

 

그 답을 작가는, 위대해지지 않으면 자신은 아무것도 아님을 일개워준 아버지, 천재가 되지 않으면 일을 하지 못하게 할 정도로 강력한 사대부, 그리고 왕의 의무를 이행하는 정도로는 절대 해결되지 않을 욕망을 품는 백성이 목숨 걸고 일하는 이도를 만들었을 거라 생각했다고 한다.

 

그들이 이방원, 정기준, 강채윤, 소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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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부엔 솔직히 그리 재밌는지 알 수 없었으나 중반부 이후 급박하게 돌아가는 스토리라인에 매료되어 중독된 듯 읽었다. 우리글 한글 창제까지 꽤 오랜기간(10년?)이 걸렸고, 그 10년의 세월을 매일 밤 지새우다시피한 집현전학자들의 노고가 느껴졌다.

그리고 허구이겠지만, 몇몇 집현전 학자들의 죽음. 그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글자를 만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한글 반포까지의 고난, 수많은 반대를 무릅쓰고 반포 및 유포를 위해 힘쓴 그들.  반대세력의 저항과 방해에 부딪혀 죽어나간 그 들..

 

한자처럼 천자, 이 천자, 글자를 익혀야 하는 것도 아니고 단 스물여덟 글자로 소시나는 대로 말한 것을 그대로 쓸 수 있고, 쓴 것을 그대로 읽을 수 있는 있는, 위대하고 경이로운 글자 한글.

한글의 위대함을 느끼며,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뿌듯함도 느꼈다.

 

지문에 나오는 글처럼 소양을 갖추지 않은 채 글을 쓰게 되면 독(?)이 될 수 도 있으므로 아름다운 우리 한글을 소유한 국민으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아름다운 글을 쓰도록 해야겠다. 더불어 누군가에게는 인생의 전부였던 한글을 소중히 사용해야겠단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제일 후반부에 극 중 한가놈이 한명회란 사실에 또 한 번 놀랐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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