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작가의 일기 - 버지니아 울프의 삶과 문학
버지니아 울프 지음, 박희진 옮김 / 이후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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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지니아 울프의 이름을 처음 안 것은 중학생 무렵 즈음,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라는 시에서였다. 학교 도서관에는 그녀의 책이 몇 권씩 있었지만 당시에는 헤세나 디킨즈의 소설을 즐겨 읽을 때라 어둡고 난해해 보이는 그녀의 작품을 가까이 하지 못했다. 어느 날, 다른 도시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던 오빠가 두툼한 책 한권을 집에 가지고 와서 읽는 것을 보게 되었다.『항해』였다. 나는 재미있냐고 물었고 오빠는 독특했던 그녀의 삶을 이야기해주며 재미있다, 그녀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서는 잘 읽힌다고 했다. 주로 추리소설이나 역사소설을 좋아했던 오빠가 그 책을 읽던 모습은 이상할 만큼 아주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나중에는 오빠가 그때 사춘기였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던 시기였나, 막연하게 짐작해 볼 뿐이었다.

  전공시간과 그 외 틈틈이, 그녀의 작품이나 비평들을 읽으면서 작가노트나 일기에 대한 호기심이 항상 있었다. 울프 스스로도 밝히고 있듯 그녀는 영국에서 자기가 쓰고 싶은 것을 쓸 수 있는 유일한 여자였다. 그만큼 재능이 있었지만 재능 있는 여성들은, 어쩌면 그 재능이 눈에 띄면 띌수록, 그만큼 감수해야 할 것도 많은 시대였다. 이렇듯 불합리한 시대와 시대를 앞지르는 자의식 사이에서 갈등했던 여성이라면 대외적인 작품 이외에 자기만의 비밀 노트 한권 가지고 있을 법 했다. 그리고 기다림 끝에 마침내 버지니아 울프의 일기가 번역되어 국내에 공개되었다.

『어느 작가의 일기』는 버지니아 울프가 27년(1915~1941)에 걸쳐 쓴 일기를 남편인 레너드가 편집한 것이다. 울프에게 레너드가 없었다면?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실제로 유서에서도 고백하고 있듯, 울프는 레너드에게 많은 빚을 졌다. 하지만 남편의 사랑과 헌신에도 불구하고 극심한 우울증은 그녀를 자살로 몰고 갔다. 그렇다면 그녀는 불행했을까. 분명 그런 날도 없지 않았지만 일기장 곳곳에는 여성으로서, 작가로서, 주어진 삶을 사는 평범한 사람으로서, 울프의 정열과 의지가 엿보인다. 어제가 내 생일이었다. 그래서 이제 서른여덟이 되었다. 그렇다. 스물여덟 때보다 훨씬 더 행복하다. 그리고 오늘이 어제보다 더 행복하다. 새 소설의 새로운 형식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기 때문에. -1920년 1월 26일. 그녀는 오직 잘 쓰고 싶다는 욕망과 결의만으로도 어제보다 더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어찌하여 인생의 모든 호사와 사치는 남성인 줄리언이나 프랜시스에게만 주어지고, 여성인 페어나 토마스에게는 주어지지 않는 것인가? -1928년 10월 27일. 여성에게도 자기만의 방과 연 500파운드의 수입만 있다면 셰익스피어나 워즈워드 같은 작가가 나왔을 거라는 유명한 메시지처럼 울프는 과거, 동시대 여성들이 겪는 불평등을 주목했다. 그런 면에서 일찍이 아버지로부터 양질의 문학수업을 받고 오로지 글만 쓸 수 있는 환경을 제공받았던 그녀는 행운아라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혜택의 이면에는 여타의 여성들과 다르다는 것. 다르게 살게끔 남다른 재능과 교육과 자의식을 부여받았다는 것. 그것은 그 값을 톡톡히 치를 수밖에 없는 운명일 수도 있다.

  가끔 나는 자문해 본다. 어린애가 은빛 공에 홀리듯 나는 인생에 의해 최면에 걸린 것은 아닐까 하고. 그리고 이것이 산다는 것이냐고. 이것은 매우 빠르고, 반짝거리고, 자극적이다. 그러나 어쩌면 천박할지도 모른다. 나는 인생이라는 공을 두 손에 들고, 그 둥글고, 매끄럽고, 무거운 감촉을 조용히 느끼면서, 그렇게 며칠이고 가지고 있고 싶다. -1928년 11월 28일. 이런 부분에서는 이례적으로, 매우 낭만적이면서도 삶에 대한 강한 애착을 가진 울프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성추행으로 얼룩진 어린 시절의 기억, 세간의 혹평, 시시각각 쳐들어오는 우울과 싸워야 했지만 그녀는 삶과 글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사랑으로 그 모든 것을 극복해 갔다. 나는 사람들을 “즐겁게 하기 위해”, 또 남의 생각을 바꾸기 위해 글을 쓰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지금, 그리고 영원히 나 자신의 주인이다. -1937년 8월 6일. 어쩌면 자살은 그것이 바람직한 것인가, 아닌가를 떠나서 그런 그녀에게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 죽음의 방식이란 생각이 들었다.

  한편, 이 책은 울프 고유의 서평록이라고도 볼 수 있을 만큼 짧지만, 의미 있는 비평들이 가득하다. 그녀는 특히 바이런, 밀턴, 셰익스피어 등의 천재성에 관해 구체적인 찬사를 보내고 있다. 언젠가 세미나 시간에 울프의 비평문을 다루면서 그녀가 지향했던 '양성적(androgynous) 글쓰기'에 대해 토론한 적이 있다. 알 듯 말 듯 개념이 잘 잡히지 않았는데 문득 박경리의『토지』가 떠올랐다. 강한 여성성을 그리면서도 남성적이고 기백 있는 문체가 돋보이는 작품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울프는 아마도 남성적, 여성적이라는 이분법을 넘어 창조적인 통합을 뜻하는 의미로 그런 말을 쓰지 않았는가 싶은데 이러한 면은 울프의 소설보다 비평에서 더 두드러진다고 생각한다. 대외적인 글이 아니기에 다소 산만한 감이 있지만 그러한 비평의 씨앗들이 일기 곳곳에 드러나 있다.

  마루야마 겐지의 『소설가의 각오』를 읽고 나서 그 고집스런 은둔과 집중에 놀라워한 적이 있는데 버지니아 울프 역시 작가로서, 더욱이 여성으로서, 많은 것을 무릅쓴 작가였다. 결혼했지만 아이를 갖지 않았고 불필요한 사교를 자제하며 오로지 글쓰기에 몰입했다. 그리고 이 소박한 타이틀의 두툼한 일기장은 그처럼 울프 자신이 여성으로서 갖은 편견과 몰이해 속에서도 자아를 지켰던 분투기이자, 위대한 작품들의 영감과 근간을 품고 있는 작가노트로서 중요한 의의를 지녔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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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인 2009-12-11 1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뵙네요.
이 책 챙겨놨다가 꼭 한번 읽어야 겠는 데요.
쌩유 ^*^

깐따삐야 2009-12-12 19:15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참 오랜만이죠? ^^
다른 사람 일기장 읽는 것은 언제나 재밌는 것 같아요.ㅋ

L.SHIN 2009-12-11 1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깐따님 서재에 글을 다는군요.
시간상 글은 못 읽고 인사차 다녀갑니다.^^

깐따삐야 2009-12-12 19:17   좋아요 0 | URL
앞으로는 더 자주 뵈요. 저도 놀러갈게요.^^
 
구월의 이틀
장정일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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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장소설을 좋아해서 기대를 좀 했다. ‘많이’는 아니고 ‘조금.’ 장정일은 『햄버거에 대한 명상』이후에 나를 크게 만족시킨 적이 없었다. 숱한 책을 섭렵한 박학다식함은 잘 알겠다. 하지만 그것이 때로 잡설이 된다. 나는 그가 어느 정도 자기 세계를 구축한 작가나 사상가라기보다는 아직도 미숙한, 탐색이라는 의미에서의 헤맴이 아니라, 말 그대로 그냥 헤매고 있는 작가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두 주인공, 금과 은. 시인을 꿈꾸다 정치적 우파 청년으로 성장하는 은과 시민운동을 하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문학을 택해 낙향하는 금. 작가는 주인공 은에게 가장 공을 들였다 한다. 은에게는 다른 인물에게는 없는 자기개발의 특성과 사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려는 반성 능력이 있다. 이 작품에서 은은 구 우익과 뉴라이트의 영향 아래 있지만, 그들과의 사상투쟁을 통해 자긍심에 찬, 젊고 순수한 우익으로 단련되어갈 것이다. 작가의 말만 보면 그럴듯한데 내가 보기에는 은이 작가의 기대처럼 성장할 것 같지도 않고 대학 초년생으로서 보낸 그 기간 동안 은에게서 작가가 묘사하는 저런 특성을 발견하지도 못했다.

  금과 은이 입은 옷은 광주태생의 정치외교학과 학생, 부산출생의 사범대 학생, 지극히 도식적인 구도인데 이들에게서 발견되는 남다른 특성이란 자폐성향과 동성애 정도랄까. 아버지나 주변 인물들을 통해 드러나는 노무현, 박정희 정권에 대한 비판도 식상했고 그 정도의 식상한 깨우침으로 인해 금과 은이 커다란 성장이나 의식적 변화를 일으켰을 것 같지도 않다. 우익 청년 탄생기라는 타이틀이 지나치게 과장되었다 싶을 만큼 작가가 추구하는 이상에 비해 전체적인 비약이 너무 심하다는 얘기다.

  우화적 스토리 구조나 하나하나의 문장을 보면 장정일은 글을 잘 다루는 작가임에는 틀림없다. 읽는 맛도 있다. 하지만 그 도구에 담아내는 내용이 나는 영 마뜩치 않다. 내가 좀 더 어릴 때는 내가 세상을 아직 잘 몰라서 그래, 생각하고 그의 글을 읽었다. 그런데 지금은 장정일은 뭘 제대로 알기나 하고 이렇게 쓰고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든다. 좌, 우 성향을 가진 청년 둘이 친구가 되고 애인이 되어 한 사람은 문학으로, 한 사람은 정치로, 나아간다는 결론은 너무 속 편하지 않은가. 설마하니 장정일이 이 정도의 혼자만의 이상을 가지고 좌우 이념을 무색하게 할 근사한 보수 우익 청년의 탄생을 기대했다면 그는 너무 순진한 것 같다.

  우리에게는 『지와 사랑』, 『생도 퇴를레스의 혼란』, 가까이는『젊은 날의 초상』등 재미있고 훌륭한 성장소설이 많이 있다. 소설로 한 사람을 키운다고 해서 모두 성장소설로 읽히는 것은 아니다. 『아담이 눈뜰 때』의 아담이야말로 장정일의 청춘의 자화상, 구월의 이틀이었다. 촉망되는 우익 청년의 모습은 아닐지라도 아담에게는 진정성이 있었다. 금과 은은 마치 이런저런 청춘들을 곁눈질로 살펴가며 만들어낸 인조인간처럼 보인다. 나는 작가 장정일이 자꾸 선생님이 되려 하지 말고 더더욱 그다워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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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소리가 착 가라앉은 것이 많이 피곤해 보였다. 통화 중에 오늘 당장 만나자고 했고 그러자고 했다. 뭔가 갑갑한 모양이었다. 지하주차장에 삐딱하게 주차를 해놓고 무얼 먹을까, 고민하다가 근처 고기 집으로 향했다. 사람들 왁자지껄한 식당도 오랜만이었다. 옆에는 통신회사 직원들이 단체회식을 하고 있었고 칸막이 하나로 그들을 방음한 채 주문을 했다. 갈매기살이 지방이 적대. 그래? 그거 시키자. 아가씨나 임신부나 먹으면서 몸매 걱정하는 건 매한가지다.

  올해로 2년차 교사, 대학 동기이자 십년지기 친구인 E는 대학 새내기 시절부터 그런 얼굴을 하고 있었다. 성숙한 분위기를 하고 있어서 처음엔 선배인 줄 알고 인사까지 할 뻔 했는데 알고 보니 나보다 생일도 늦은 동갑내기였다는. 친구가 될 인연이었는지 흡사 은하철도 999의 철이 같던 나와 통하는 데가 많았다. 지난 십년 동안 우리에게도 사소한 오해와 공백기가 있었지만 오래 갈 인연이었는지 지금껏 이런저런 속내를 많이 털어놓는 사이다. 

  고기를 먹고 나서 근처 도넛 가게로 자리를 이동했다. 나는 망고주스, E는 카페라떼. 고기에 밥까지 먹고 도넛까지 먹었다. 그녀는 스트레스성 폭식으로 고민하면서도 노란봉지 인스턴트커피와 종종 시켜먹는 피자를 끊기가 힘들다고 했다. 커피는 정말 그렇다. 수업 마치고 나와서 목이 아플 때, 스트레스와 공복감을 해소시키는 데에는 뜨겁고 진한 인스턴트커피만한 게 없다.

  늘 하는 고민이지만 직장생활에서는 역시 인간관계가 가장 속을 썩인다. E는 올해 담임이 없다보니 아이들과의 관계는 오히려 더 좋아졌단다. 그런데 소위 말하는 ‘요즘 젊은 사람’ 축에 끼어버려 마음고생을 하는 것 같았다. 더욱이 또래 동료 중에 남달리 싹싹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매번 비교되기 십상이다. 어느 날, 옆자리 선생님이 E에게 그러더란다. 일 년 넘게 생활해도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모르겠다고, 나도 선생님처럼 다른 사람 신경 안 쓰고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E 자신은 그저 말수가 적고 자기 일 이외의 일에 참견하는 것을 원하지 않을 뿐인데 동료나 선배가 보기에는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나도 학기 초에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새 학교로 와서 적응하기도 바쁜데 일거리까지 많다보니 내심 스트레스를 받고 있던 중이었다. 그때 문을 열고 먼저 들어오려고 했다는 이유로 고령의 선생님께 호되게 야단을 맞은 적이 있었다. 어르신이 나가시는데 양보는커녕 먼저 문을 밀고 들어왔다는 이유였다. 처음에 잠깐 보자고 하실 때는 왜 그런지 영문을 몰랐는데 이유를 듣고 보니 맥이 빠졌다. 컨디션이 엉망이었고 이래저래 분주한 아침부터 그런 일로 훈계를 듣는 일이 마뜩치 않았다. 결국 공손히 듣고 있지를 못하고 반발을 했다.

  저는 바쁜 아침에 문 맞은편에 누가 서 있는지 미리 예상하거나 신경 쓸 겨를이 없습니다. 선생님이 양보해 주실 수도 있는 거 아닌가요? 결국 간단한 잔소리 몇 마디로 그칠 수도 있는 일을 크게 벌인 셈이었다. 갑자기 흥분한 선생님은 몇 호봉이냐, 몇 살이냐 부터 시작해서 우리 부모님까지 욕 먹일 셈이었다. 아이들을 지도할 때도 누구한테 그렇게 배웠느냐, 집에서 그렇게 가르쳤느냐, 는 말은 반드시 피하곤 하는데 그런 말을 내가 듣고 있자니 팽- 돌더라는. 여러 가지 대꾸를 했지만 내 말의 핵심은, 나이를 허투루 먹었냐는 반응이었고 선생님은 거의 이성을 잃은 상태였다.

  이런 일은 항상 뒷수습이 문제인데 사태를 아신 교장 선생님은 그냥 웃어 넘기셨지만 그 선생님과 비슷한 또래의 선생님들이 나를 좋게 볼 리 만무했다. 급식실에 내려갔더니 벌써 대놓고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라는. 그러던 말던 밥을 푹푹 퍼 넣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일과를 마쳤다. 그래도 어르신한테 그런 식으로 반응한 것은 분명 내 잘못이었다. 학년부장 선생님이 나를 부르셔서 젊은 사람이니 먼저 사과드리는 게 좋겠다고 하셨고 당일에는 차마 내키지 않았지만 다음 날 아침, 학교에 가자마자 죄송하다고 말씀드렸다.

  이후 선생님은 웬일인지 눈에 띌 정도로 나와 우리 반 아이들을 잘 챙겨주셨다. 나 역시 전보다 더욱 공손하게 행동했다. 나중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선생님께 혼이 난 젊은 선생님들이 한 둘이 아니었던 모양인데 나처럼 눈에 뵈는 거 없이 행동한 경우는 없었는가 보다. 선생님으로서는 아마도 일생의 봉변이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날, 나도 사고 칠 컨디션이었고 선생님도 망신살 뻗친 날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우리가 친구인지는 몰라도 E도 감정 처리가 영 서툴다. 해도 해도 끝이 없는 공문처리를 하다보면 인상이 저절로 일그러지고 쌍욕이 마구 튀어나온다고. 자기는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일하는데 한가하게 관찰만 하다가 한 마디씩 하는 사람들 보면 울화가 치민단다. 회식자리에서라도 마음 편하게 밥도 먹고 술도 마시고 싶은데 그조차도 허락이 안 될 때는 정말 참기 힘들단다. 원래 피로에 장사 없는 법이다. 심신이 극도의 스트레스로 예민해지다보면 사소한 말 한 마디도 귀에 걸리기 마련이다. 더욱이 나나 E처럼 남의 일에 무심한 타입들은 더욱 그렇다.

  이럴 때 연애라도 하면 좋으련만 어째 남자를 만나도 별 느낌이 없단다. 소개팅도 지겹고 만나러 가는 일도 귀찮다고. 남들은 뭐든지 잘하는 것 같은데 나는 왜 이렇게 뭐든지 잘 못하고 느린 건지 모르겠어. 주차할 때부터 툴툴거리더니 어느 새 열패감 덩어리다. 남보다 좀 더 일찍 이룬다고 마냥 좋을 것 같으냐. 그 사람들은 더, 더, 더 하고 있을 거다. 주변에서 그런 모습을 많이 보았다. 부족할 게 없어 보이는데 행복하지는 않다. 부족한 것 천지인데 자족하며 즐거워한다. 언젠가부터 그렇듯 소박한 마음가짐보다 위대한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도 그러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동갑인데도 불구하고 벌써 능글능글해진 친구도 있는데 E는 새내기 시절이나 지금이나 참 그대로다. 나는 좀 어정쩡한 상태여서 무엇이 더 낫다고 말할 수도 없는 처지. 별로 노련하지도, 세련되지도 못한 것으로 치자면 E 쪽에 가까울 것이다. 그래서인지 우리의 대화는 뚜렷한 결론 없이 맺을 때가 많다. 누구 한쪽에서 단호하게 이렇게 해봐, 하면 좋을 텐데 스스로에게도 확신이 없다보니 나도 그래! 라는 공감에서 그칠 때가 더 많다.

  E를 보내고 집에 들어오니 남편이 앉아 있다 반짝 일어난다. 아직도 이런 풍경이 낯설다. 웬 남자? 아주 잠깐, 그런 느낌이 들 정도이니. 인생을 늘 소풍 온 것처럼 사는 그에 비하면 나는 인생을 늘 부담스럽게 사는 것 같다. 어차피 이렇게 사나 저렇게 사나 마찬가지인 것을. 어깨에 힘만 주면 대수냐고. 당장 절실해 보이는 고민이나 문제들도 시간이 흐르고 나면 대수롭지 않게 여겨지는 경험을 많이 했다. E가 자신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시간 또한 나중에 웃기 위한 당연한 과정일 지도 모른다. 다만 스스로에 대해 낙관하는 자세는 필요한 것 같다. 그것이 지나쳐 게으름이나 뻔뻔함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주의하기만 한다면 무엇이든 조금 늦게, 더디 깨친다고 해서 자학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아직 때 묻지 않아 서투른 E, 어여 자신감을 되찾기를. 우리는 서로의 능수능란하지 못함 때문에 불편하기도 하지만 그래서 서로를 좋아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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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9-12-06 2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E라는 분은 답답한 심정을 들어 줄 임신이라 불편한 몸을 이끌고 같이 얼굴보고 대화를 해줄 수 있는 깐따삐야님 같은 분이 곁에 있어 행복할꺼에요..

웽스북스 2009-12-06 21:30   좋아요 0 | URL
메피님 댓글에 추천을 날리고 싶은 웬디씨 ㅋㅋ

깐따삐야 2009-12-07 10:21   좋아요 0 | URL
E한테도 그렇게 말해줄래요. 넌 내가 있어 행복한 거냐(?) ㅋㅋ

웽스북스 2009-12-06 2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깐따삐야님. 요즘 깐따삐야님 글이 많아서 괜시리 좋아요. 헤헷. 글로 태교를?
E랑 저랑 비슷한 점이 좀 있는 것 같아요. 저도, 무슨 생각 하면서 사는지 모르겠다는 말 주변 사람들한테 좀 듣는 스타일이라서 말이죠.

참, 예정일은 언제에요?

깐따삐야 2009-12-07 10:27   좋아요 0 | URL
여기 와서 좋은 글 읽고, 웬디양님 사진도 보고, 나도 뭔가 끄적이고. 이만한 태교도 없죠.^^
E나 웬디양님이나 제가 보기에는 오히려 생각이 너무 많은 타입인 것 같은데 혼자 생각이 많다보면 남들 눈에는 그렇게 보일 수도 있는가 봐요.

예정일은 확실치 않다고들 하던데 내년 4월 초순 쯤이에요.

레와 2009-12-07 1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요즘 깐따삐야님 글이 많아서 좋아요!^^


얼굴에 그때그때의 감정이 바로 들어나는 저 같은 사람은 때론 무심함이 필요한데
타고난 성격은 참.. 안 변해요.
딴엔 노력했는데 '넌 하나도 안변했어!' 이런말 들으면 또 좌절하고..^^;

살면 살 수록 어려워요. 으흐~

깐따삐야 2009-12-08 12:15   좋아요 0 | URL
저도 그래요. 감정 덩어리죠.ㅋ 그저 주변에 무심한 편일 뿐. 제 일에는 도끼눈 뜨고 아우성입니다.
정말 살면 살수록 어렵죠? ^^
 

  쉬게 되면서 자주 보는 프로그램이 있다. EBS에서 하는 ‘60분 부모’라는 프로그램이다. 아침 먹고 집안일 좀 하고나서 10시쯤 되면 한가해지는데 그때부터 약 한 시간가량 진행된다. 처음엔 개그맨 이혁재가 MC인 것이 의외라고 생각했는데 예상보다 차분하고 재미있게 진행을 잘한다.

  영유아부터 어린이까지, 식이장애부터 학습장애 등등 다루는 소재도 폭넓다. 예비 엄마가 아니라 교사의 입장에서 시청을 해도 건질 것이 많은 방송이다. 그다지 새삼스럽지도 않지만 그렇기에 더욱 귀담아 들어야 할 것은, 아이의 잘못은 대개 부모의 양육태도에서 비롯된다는 것. 어떤 엄마들은 아이한테 너무 미안해서 방송 중에 펑펑 울기도 한다. 얼마 전 방송에서 할머니 손에 키워진 아이가 퇴근한 엄마에게, “엄마, 빨리 가. 집에 오지 마.” 하는 것을 보고 괜히 뜨끔했었다. 하루 종일 안 보이다가 저녁때만 되면 나타나서 이거 하지 마, 저거 하지 마, 하는 엄마를 반길 리가 있겠는가. 머잖아 내 모습인 것 같아 한숨만 나왔다.

  매주 목요일에는 부부심리탐구 코너가 진행된다. SOS에 출연할 정도로 심각한 수위가 아니라 적어도 겉만 봐선 멀쩡한 부부들이 출연한다. 대개 신청자는 아내이고 처음에 남편들은 아내의 고민을 이해 못하겠다는 반응을 보이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 또한 그다지 새삼스럽지도 않지만 그래서 더욱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부부 문제는 서로를 너무 모르는 것에서 비롯된다는 것. 연애기간이 길고 짧고 와는 무관하다. 전문가들은 관찰카메라를 통해 평소 사는 모습을 꼼꼼히 관찰하고 상담을 통해 부부의 어린 시절 내상까지 끄집어낸다.

  상담 과정을 보고 있자면 부부란 것이 참말이지, 배우자의 과거까지 뭉뚱그려서 짊어지고 가야 하는 힘든 인연이구나 싶어진다. 인디언들이 친구를 가리켜 ‘내 슬픔을 자기 등에 지고 가는 자’라고 한다더니 부부도 별반 다르지 않더라는. 출연자들은 그 동안 제대로 이야기를 나눠보지 못하거나 미처 눈치 채지 못했던 배우자의 내밀한 아픔, 극복되지 못한 열등감, 삶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지켜보며 뜨거운 눈물을 흘린다. 그렇듯 같은 인간으로서의 공감과 연민으로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

  올케언니가 오빠에게 연민을 좀 가져봤으면, 할 때가 있었다. 오빠가 남자고, 남편이라고 해서 의지만 할 것이 아니라 크게 품어줄 수 있었으면, 하고 바랄 때가 있었다. 언니의 불만을 이해 못하는 것도 아니었지만 오빠를 지극히 잘 아는 시누이로서의 욕심이었다. 나도 누군가의 올케가 되고부터는 생각이 달라졌을까. 그렇지 않다. 동생으로서 오빠를 안쓰러워하는 시누이의 한 마디 안에 한때 내가 느꼈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삶에 대한 태도를 배우고 아는 것과 실제로 삶을 사는 것은 역시 별개의 문제인 것 같다.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 중에 ‘사사롭지만 도움이 되는 일(a small, good thing)’이라는 단편이 있다. 상심한 부부에게 제과점 주인이 줄 수 있는 것이란 갓 구워낸 따끈한 빵 뿐이지만 부부는 더할 나위 없는 위안을 얻는다. 주인의 말처럼 ‘그렇게 고급스런 빵은 아니지만’ 슬픔으로 축축해진 가슴을 다시 덥힐 수 있는 빵. 학교에서, 책 속에서, 사람들 사이에서, 고급스런 것들을 많이 듣고 배웠지만 그것들이 누군가 꼭 필요할 때 내미는 빵 한 덩어리만 할까 싶다.  

  ‘60분 부모’에서 전문가들이 내리는 처방도 결코 거창하지 않다. 사사건건 말이 많은 부모에게는 불필요한 말을 줄이세요, 정서불안의 아이를 염려하는 부모에게는 주변 환경부터 깨끗이 정돈하세요, 서로에 대해 아쉽고 서운한 점을 토로하는 부부들에게는 알고 보면 각자가 다 힘든 겁니다... TV라는 매체가 시청하는 그 순간만으로 그칠 때가 많긴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프로그램은 자기 몫의 삶과 역할부터 돌아보고 반성하는, 기초적인 삶의 태도를 날마다 되새길 수 있다는 데에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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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9-12-04 15: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의외로 타인의 필터 하나를 거치고 나면, 뿌옇던 것이 명확할 때가 있지요. 저도 종종 즐겨봤더랬습니다.

깐따삐야 2009-12-06 19:44   좋아요 0 | URL
맞아요. 사는 모양은 다들 비슷비슷한데 의외의 힌트를 얻기도 합니다. Jude님도 애청자셨군요.^^

Mephistopheles 2009-12-04 1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흐흐..뭔가 말하고 싶은데 그냥 꼭꼭 참고 있을래요...^^

깐따삐야 2009-12-06 19:46   좋아요 0 | URL
으흐흐...?
이런 걸 보고 달으나마나, 달지 않느니만도 못한 댓글이라고 하던가요.-_-

Mephistopheles 2009-12-06 19:50   좋아요 0 | URL
사실 별거 아니에요. 그냥 우리가 익히 아는 사실도 다른 사람의 시선에선 또 다르고 새롭게 보여지기도 한다잖아요. 그나저나 임신 중 날고기.그러니까 회...말고 간장게장이나 그런 것도 피해야 하는 건가요???

깐따삐야 2009-12-07 10:30   좋아요 0 | URL
아니 머 그 말씀을 그렇게 꼭꼭 참으시기까지 하셨어요. ㅋㅋ
스트레스 받으면 안 된다고 먹고 싶은 건 다 먹는다는 임신부들도 있다던데 저는 안 좋다는 건 그래도 피하는 쪽이에요. 근데 왜요? 간장게장 사주시게요? 헤헤~
 

  초임 발령지에서 함께 근무했던 Y선생님이 결혼소식을 전해왔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여서 배우자도 같은 종교를 가진 남자면 좋겠다고 했었는데 신랑감이 기독교 신자인데다 치과의사라고. 나는 엄친아(엄마 친구 아줌마)처럼 호들갑을 떨며 참 잘됐다고 축하해주었다. 결혼을 코앞에 앞둔 예비신부의 마음이 다 그렇듯 그녀는 이것저것 물어왔다. 나는 너무 큰 환상이나 기대만 갖지 않으면 괜찮다고 세상 다 산 아줌마처럼 말했다. 결혼식 치르는 일도 체력이 중요하니 건강 잘 챙기라는 말과 함께. Y선생님은 내가 결혼을 해서 그런 말을 하고, 아기를 갖고,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Y선생님은 내가 발령을 받은 이듬해에 초임 발령을 받았다. 첫인상은 밝고, 영리해 보였다. 같은 학년을 맡은 적은 없는데 비슷한 또래인데다 규모가 작은 학교이다 보니 함께 어울릴 일이 많았다. 가까이서 보니 직선적으로 할 말은 다 하면서도 애교가 있어 나이와 직책을 불문하고 융화가 잘 되는 편이었다. 직선적으로 할 말은 다 하면서도 뒷수습이 안 되어서 엉망진창이던 나와는 영 대조적이었다. 그런데도 젊은 선생님들끼리 모이면 Y선생님과 나는 이야기를 참 많이 했다. 둘 다 호오가 뚜렷한 성격답게 면전에서 각자의 흉을 보기도 했다. 방송용어 같은 말만 주고받으며 심심한 거리에 머무는 관계가 있는 반면, 서로가 서로를 날카롭게 간파해가며 가까워지는 관계도 있다. 그녀는 특히 우리 엄마를 좋아했다. 우리 집에서 하룻밤 묵어간 후로는 수학여행 가서 엄마를 드린다고 미역도 사오고, 싹싹한 사람이었다.

  그때 그녀는 항상 내게 K선생님은 결혼도 안 할 것 같고, 혼자서도 얼마든지 재미있게 잘 살 것 같다고 말했었다. 발령 후 3년 즈음 슬럼프를 겪다가 대학원으로 내뺐을 때도 내가 거기서 뼈를 묻을 줄 알았는가 보다. 너도 여기 와봐라, 되게 좋다고 했더니 어느새 박차를 가해 내가 졸업하던 해에 그녀가 입학을 했다. 이야기 도중에 내게 공부를 더 하고 싶지 않느냐고 물어오는데 문득 힘이 빠져, 이제 곧 애 엄마가 될 텐데, 여기서 더 하면 허영심이 생겨서 안 된다고,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참 고루한 대답을 했다. 그녀는 다시 한 번 이렇게 변하다니, 탄식으로 응대했다.

  나는 변했을까. 지금 돌아보면 Y선생님과 함께 근무하던 당시의 내 모습은, 용감했다기보다 뭘 잘 모르니까 겁도 없었던 것 같다. 인생 초반에 큰 실패란 것을 겪어보지 않은 범생이들의 행로가 대개 그러하듯 마음먹으면 다 될 것 같고 잘 안 될 것 같은 일도 일단 저지르면 어떻게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막가다보면 맛 가는 수가 있는 정신상태. 그만큼 주변과의 충돌이 잦았고 나 자신과의 불화 또한 그에 못지않았다. 위험한 연애, 어려운 책, 까칠한 인간 등등에 매혹되던 시절이었으니 뒤늦은 사춘기를 사회에 나와 치르고 있는 셈이었다. 당시 동료들은 뒤에서는 욕을 했을지언정 앞에서는 독특하고 유쾌한 사람이라고 즐거워했다. 다시 돌아봐도 너무 솔직해서 어이가 없을 정도였으니 좀 피곤하기는 해도 신기했을 수는 있겠다.

  세월이 흐른다고 근본이 바뀔까. 별로 그렇지는 않다. 그 모습 그대로 갖고 가는 부분이 더 많고 이따금 죽지 않은 열정이 슬근슬근 가슴을 간질일 때도 있다. 하지만 사회 초년생 시절, 여기저기 부딪치고 신혼 초에 싸움과 화해를 반복하며 깨달았다. 나와 상대의 바닥을 보았다 싶을 만큼 치열하게 다투면서 건진 한 가지. 사람이 다 가질 수는 없는 거구나. 기껏해야 자장면과 짬뽕, 순대국밥과 곱창전골 사이에서 고민하며 사람이 다 먹을 수는 없는 거야, 아쉬워하던 나였는데 장족의 발전이라면 발전이었다. 특히 남편과 나는 연애 때부터 지금껏 서로에게 허용적인 편인데도, 그런데도, 깨달음은 꽤 징하다.

  Y선생님의 결혼식은 교회에서 치러질 예정이란다. 아줌마가 다 된 것 같은 말투에 놀라워했는데 배부른 모습까지 보면 앉아있다 벌떡 일어서지 않을까 모르겠다. 내내 논문 주제 걱정을 하는 그녀에게 인생의 중대사인 결혼에 더 신경 쓰라고, 논문은 열 달 채우면 다 나오게 되어 있다고 정말 임신부다운 조언을 했다. 생각해보니, 작년에 대학원 선배가 내게 했던 조언이었다. 살면서 가끔 인생의 언니, 오빠들로부터 주워들었던 말들이 떠오를 때가 있다. 그때는 와 닿지 않아 흘려들었던 것들도 어느 순간 과연 그렇구나, 싶어질 때가 온다. 진즉에 말 좀 잘 들어가며 살걸, 하다가도 진즉에 그렇게 살았으면 내가 내가 아닌 게 되어버리니. 역시 사람이 다 가질 수는 없는가 보다. 그래도 어찌어찌 버티어 스스로 망가지거나 자폭하지 않고 이만큼 온 것도 다행이라는 위안. 지난날의 나를 떠올리면 언제나 화끈화끈. -_- 내가 기억하는 Y선생님은 인생 늦둥이인 나보다 더 의연하고 똑똑한 사람이다. 그녀의 행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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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9-12-02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노래가
'내겐 더 많은 꿈이 있어 어떤 꿈일까??" 일까요..
아니면 브라보 브라보 마이 라이프 나의 인생아~~ 일까요..
아니면 '슬퍼도 울지 않을꺼야 난 웃으며 달릴 꺼야~~ 일까요..

그나저나 깐따삐야님도 이제 내 누님같은 꽃이 다 되었습니다 그려....^^

깐따삐야 2009-12-03 12:08   좋아요 0 | URL
뭐든 봄여름가을겨울 노래면 다 좋아요! 김종진 목소리를 부르는 날씨가 계속되고 있어요.

늙었다는 말씀? 아주 순간이더라구요.ㅠ

레와 2009-12-02 14: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브라보~ 브라보~ 마이 라이프 나의 인생아~♪


과거에 비추어 미래의 내 모습.. 상상이 안되요.
그 과거에 지금 내 모습이 이럴꺼란 상상을 못했거든요..^^;

깐따삐야 2009-12-03 12:10   좋아요 0 | URL
그 노래가 라디오에서 한창 흘러나오던 때가 있었죠.^^

레와님은 구체적인 나이가 가늠되지 않을 정도로 항상 소녀 같으셔요. 저도 제 나이 서른에 이러고(?)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