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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작가의 일기 - 버지니아 울프의 삶과 문학
버지니아 울프 지음, 박희진 옮김 / 이후 / 2009년 10월
평점 :
품절
버지니아 울프의 이름을 처음 안 것은 중학생 무렵 즈음,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라는 시에서였다. 학교 도서관에는 그녀의 책이 몇 권씩 있었지만 당시에는 헤세나 디킨즈의 소설을 즐겨 읽을 때라 어둡고 난해해 보이는 그녀의 작품을 가까이 하지 못했다. 어느 날, 다른 도시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던 오빠가 두툼한 책 한권을 집에 가지고 와서 읽는 것을 보게 되었다.『항해』였다. 나는 재미있냐고 물었고 오빠는 독특했던 그녀의 삶을 이야기해주며 재미있다, 그녀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서는 잘 읽힌다고 했다. 주로 추리소설이나 역사소설을 좋아했던 오빠가 그 책을 읽던 모습은 이상할 만큼 아주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나중에는 오빠가 그때 사춘기였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던 시기였나, 막연하게 짐작해 볼 뿐이었다.
전공시간과 그 외 틈틈이, 그녀의 작품이나 비평들을 읽으면서 작가노트나 일기에 대한 호기심이 항상 있었다. 울프 스스로도 밝히고 있듯 그녀는 영국에서 자기가 쓰고 싶은 것을 쓸 수 있는 유일한 여자였다. 그만큼 재능이 있었지만 재능 있는 여성들은, 어쩌면 그 재능이 눈에 띄면 띌수록, 그만큼 감수해야 할 것도 많은 시대였다. 이렇듯 불합리한 시대와 시대를 앞지르는 자의식 사이에서 갈등했던 여성이라면 대외적인 작품 이외에 자기만의 비밀 노트 한권 가지고 있을 법 했다. 그리고 기다림 끝에 마침내 버지니아 울프의 일기가 번역되어 국내에 공개되었다.
『어느 작가의 일기』는 버지니아 울프가 27년(1915~1941)에 걸쳐 쓴 일기를 남편인 레너드가 편집한 것이다. 울프에게 레너드가 없었다면?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실제로 유서에서도 고백하고 있듯, 울프는 레너드에게 많은 빚을 졌다. 하지만 남편의 사랑과 헌신에도 불구하고 극심한 우울증은 그녀를 자살로 몰고 갔다. 그렇다면 그녀는 불행했을까. 분명 그런 날도 없지 않았지만 일기장 곳곳에는 여성으로서, 작가로서, 주어진 삶을 사는 평범한 사람으로서, 울프의 정열과 의지가 엿보인다. 어제가 내 생일이었다. 그래서 이제 서른여덟이 되었다. 그렇다. 스물여덟 때보다 훨씬 더 행복하다. 그리고 오늘이 어제보다 더 행복하다. 새 소설의 새로운 형식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기 때문에. -1920년 1월 26일. 그녀는 오직 잘 쓰고 싶다는 욕망과 결의만으로도 어제보다 더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어찌하여 인생의 모든 호사와 사치는 남성인 줄리언이나 프랜시스에게만 주어지고, 여성인 페어나 토마스에게는 주어지지 않는 것인가? -1928년 10월 27일. 여성에게도 자기만의 방과 연 500파운드의 수입만 있다면 셰익스피어나 워즈워드 같은 작가가 나왔을 거라는 유명한 메시지처럼 울프는 과거, 동시대 여성들이 겪는 불평등을 주목했다. 그런 면에서 일찍이 아버지로부터 양질의 문학수업을 받고 오로지 글만 쓸 수 있는 환경을 제공받았던 그녀는 행운아라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혜택의 이면에는 여타의 여성들과 다르다는 것. 다르게 살게끔 남다른 재능과 교육과 자의식을 부여받았다는 것. 그것은 그 값을 톡톡히 치를 수밖에 없는 운명일 수도 있다.
가끔 나는 자문해 본다. 어린애가 은빛 공에 홀리듯 나는 인생에 의해 최면에 걸린 것은 아닐까 하고. 그리고 이것이 산다는 것이냐고. 이것은 매우 빠르고, 반짝거리고, 자극적이다. 그러나 어쩌면 천박할지도 모른다. 나는 인생이라는 공을 두 손에 들고, 그 둥글고, 매끄럽고, 무거운 감촉을 조용히 느끼면서, 그렇게 며칠이고 가지고 있고 싶다. -1928년 11월 28일. 이런 부분에서는 이례적으로, 매우 낭만적이면서도 삶에 대한 강한 애착을 가진 울프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성추행으로 얼룩진 어린 시절의 기억, 세간의 혹평, 시시각각 쳐들어오는 우울과 싸워야 했지만 그녀는 삶과 글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사랑으로 그 모든 것을 극복해 갔다. 나는 사람들을 “즐겁게 하기 위해”, 또 남의 생각을 바꾸기 위해 글을 쓰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지금, 그리고 영원히 나 자신의 주인이다. -1937년 8월 6일. 어쩌면 자살은 그것이 바람직한 것인가, 아닌가를 떠나서 그런 그녀에게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 죽음의 방식이란 생각이 들었다.
한편, 이 책은 울프 고유의 서평록이라고도 볼 수 있을 만큼 짧지만, 의미 있는 비평들이 가득하다. 그녀는 특히 바이런, 밀턴, 셰익스피어 등의 천재성에 관해 구체적인 찬사를 보내고 있다. 언젠가 세미나 시간에 울프의 비평문을 다루면서 그녀가 지향했던 '양성적(androgynous) 글쓰기'에 대해 토론한 적이 있다. 알 듯 말 듯 개념이 잘 잡히지 않았는데 문득 박경리의『토지』가 떠올랐다. 강한 여성성을 그리면서도 남성적이고 기백 있는 문체가 돋보이는 작품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울프는 아마도 남성적, 여성적이라는 이분법을 넘어 창조적인 통합을 뜻하는 의미로 그런 말을 쓰지 않았는가 싶은데 이러한 면은 울프의 소설보다 비평에서 더 두드러진다고 생각한다. 대외적인 글이 아니기에 다소 산만한 감이 있지만 그러한 비평의 씨앗들이 일기 곳곳에 드러나 있다.
마루야마 겐지의 『소설가의 각오』를 읽고 나서 그 고집스런 은둔과 집중에 놀라워한 적이 있는데 버지니아 울프 역시 작가로서, 더욱이 여성으로서, 많은 것을 무릅쓴 작가였다. 결혼했지만 아이를 갖지 않았고 불필요한 사교를 자제하며 오로지 글쓰기에 몰입했다. 그리고 이 소박한 타이틀의 두툼한 일기장은 그처럼 울프 자신이 여성으로서 갖은 편견과 몰이해 속에서도 자아를 지켰던 분투기이자, 위대한 작품들의 영감과 근간을 품고 있는 작가노트로서 중요한 의의를 지녔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