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월의 이틀
장정일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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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장소설을 좋아해서 기대를 좀 했다. ‘많이’는 아니고 ‘조금.’ 장정일은 『햄버거에 대한 명상』이후에 나를 크게 만족시킨 적이 없었다. 숱한 책을 섭렵한 박학다식함은 잘 알겠다. 하지만 그것이 때로 잡설이 된다. 나는 그가 어느 정도 자기 세계를 구축한 작가나 사상가라기보다는 아직도 미숙한, 탐색이라는 의미에서의 헤맴이 아니라, 말 그대로 그냥 헤매고 있는 작가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두 주인공, 금과 은. 시인을 꿈꾸다 정치적 우파 청년으로 성장하는 은과 시민운동을 하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문학을 택해 낙향하는 금. 작가는 주인공 은에게 가장 공을 들였다 한다. 은에게는 다른 인물에게는 없는 자기개발의 특성과 사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려는 반성 능력이 있다. 이 작품에서 은은 구 우익과 뉴라이트의 영향 아래 있지만, 그들과의 사상투쟁을 통해 자긍심에 찬, 젊고 순수한 우익으로 단련되어갈 것이다. 작가의 말만 보면 그럴듯한데 내가 보기에는 은이 작가의 기대처럼 성장할 것 같지도 않고 대학 초년생으로서 보낸 그 기간 동안 은에게서 작가가 묘사하는 저런 특성을 발견하지도 못했다.

  금과 은이 입은 옷은 광주태생의 정치외교학과 학생, 부산출생의 사범대 학생, 지극히 도식적인 구도인데 이들에게서 발견되는 남다른 특성이란 자폐성향과 동성애 정도랄까. 아버지나 주변 인물들을 통해 드러나는 노무현, 박정희 정권에 대한 비판도 식상했고 그 정도의 식상한 깨우침으로 인해 금과 은이 커다란 성장이나 의식적 변화를 일으켰을 것 같지도 않다. 우익 청년 탄생기라는 타이틀이 지나치게 과장되었다 싶을 만큼 작가가 추구하는 이상에 비해 전체적인 비약이 너무 심하다는 얘기다.

  우화적 스토리 구조나 하나하나의 문장을 보면 장정일은 글을 잘 다루는 작가임에는 틀림없다. 읽는 맛도 있다. 하지만 그 도구에 담아내는 내용이 나는 영 마뜩치 않다. 내가 좀 더 어릴 때는 내가 세상을 아직 잘 몰라서 그래, 생각하고 그의 글을 읽었다. 그런데 지금은 장정일은 뭘 제대로 알기나 하고 이렇게 쓰고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든다. 좌, 우 성향을 가진 청년 둘이 친구가 되고 애인이 되어 한 사람은 문학으로, 한 사람은 정치로, 나아간다는 결론은 너무 속 편하지 않은가. 설마하니 장정일이 이 정도의 혼자만의 이상을 가지고 좌우 이념을 무색하게 할 근사한 보수 우익 청년의 탄생을 기대했다면 그는 너무 순진한 것 같다.

  우리에게는 『지와 사랑』, 『생도 퇴를레스의 혼란』, 가까이는『젊은 날의 초상』등 재미있고 훌륭한 성장소설이 많이 있다. 소설로 한 사람을 키운다고 해서 모두 성장소설로 읽히는 것은 아니다. 『아담이 눈뜰 때』의 아담이야말로 장정일의 청춘의 자화상, 구월의 이틀이었다. 촉망되는 우익 청년의 모습은 아닐지라도 아담에게는 진정성이 있었다. 금과 은은 마치 이런저런 청춘들을 곁눈질로 살펴가며 만들어낸 인조인간처럼 보인다. 나는 작가 장정일이 자꾸 선생님이 되려 하지 말고 더더욱 그다워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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