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게 되면서 자주 보는 프로그램이 있다. EBS에서 하는 ‘60분 부모’라는 프로그램이다. 아침 먹고 집안일 좀 하고나서 10시쯤 되면 한가해지는데 그때부터 약 한 시간가량 진행된다. 처음엔 개그맨 이혁재가 MC인 것이 의외라고 생각했는데 예상보다 차분하고 재미있게 진행을 잘한다.

  영유아부터 어린이까지, 식이장애부터 학습장애 등등 다루는 소재도 폭넓다. 예비 엄마가 아니라 교사의 입장에서 시청을 해도 건질 것이 많은 방송이다. 그다지 새삼스럽지도 않지만 그렇기에 더욱 귀담아 들어야 할 것은, 아이의 잘못은 대개 부모의 양육태도에서 비롯된다는 것. 어떤 엄마들은 아이한테 너무 미안해서 방송 중에 펑펑 울기도 한다. 얼마 전 방송에서 할머니 손에 키워진 아이가 퇴근한 엄마에게, “엄마, 빨리 가. 집에 오지 마.” 하는 것을 보고 괜히 뜨끔했었다. 하루 종일 안 보이다가 저녁때만 되면 나타나서 이거 하지 마, 저거 하지 마, 하는 엄마를 반길 리가 있겠는가. 머잖아 내 모습인 것 같아 한숨만 나왔다.

  매주 목요일에는 부부심리탐구 코너가 진행된다. SOS에 출연할 정도로 심각한 수위가 아니라 적어도 겉만 봐선 멀쩡한 부부들이 출연한다. 대개 신청자는 아내이고 처음에 남편들은 아내의 고민을 이해 못하겠다는 반응을 보이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 또한 그다지 새삼스럽지도 않지만 그래서 더욱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부부 문제는 서로를 너무 모르는 것에서 비롯된다는 것. 연애기간이 길고 짧고 와는 무관하다. 전문가들은 관찰카메라를 통해 평소 사는 모습을 꼼꼼히 관찰하고 상담을 통해 부부의 어린 시절 내상까지 끄집어낸다.

  상담 과정을 보고 있자면 부부란 것이 참말이지, 배우자의 과거까지 뭉뚱그려서 짊어지고 가야 하는 힘든 인연이구나 싶어진다. 인디언들이 친구를 가리켜 ‘내 슬픔을 자기 등에 지고 가는 자’라고 한다더니 부부도 별반 다르지 않더라는. 출연자들은 그 동안 제대로 이야기를 나눠보지 못하거나 미처 눈치 채지 못했던 배우자의 내밀한 아픔, 극복되지 못한 열등감, 삶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지켜보며 뜨거운 눈물을 흘린다. 그렇듯 같은 인간으로서의 공감과 연민으로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

  올케언니가 오빠에게 연민을 좀 가져봤으면, 할 때가 있었다. 오빠가 남자고, 남편이라고 해서 의지만 할 것이 아니라 크게 품어줄 수 있었으면, 하고 바랄 때가 있었다. 언니의 불만을 이해 못하는 것도 아니었지만 오빠를 지극히 잘 아는 시누이로서의 욕심이었다. 나도 누군가의 올케가 되고부터는 생각이 달라졌을까. 그렇지 않다. 동생으로서 오빠를 안쓰러워하는 시누이의 한 마디 안에 한때 내가 느꼈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삶에 대한 태도를 배우고 아는 것과 실제로 삶을 사는 것은 역시 별개의 문제인 것 같다.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 중에 ‘사사롭지만 도움이 되는 일(a small, good thing)’이라는 단편이 있다. 상심한 부부에게 제과점 주인이 줄 수 있는 것이란 갓 구워낸 따끈한 빵 뿐이지만 부부는 더할 나위 없는 위안을 얻는다. 주인의 말처럼 ‘그렇게 고급스런 빵은 아니지만’ 슬픔으로 축축해진 가슴을 다시 덥힐 수 있는 빵. 학교에서, 책 속에서, 사람들 사이에서, 고급스런 것들을 많이 듣고 배웠지만 그것들이 누군가 꼭 필요할 때 내미는 빵 한 덩어리만 할까 싶다.  

  ‘60분 부모’에서 전문가들이 내리는 처방도 결코 거창하지 않다. 사사건건 말이 많은 부모에게는 불필요한 말을 줄이세요, 정서불안의 아이를 염려하는 부모에게는 주변 환경부터 깨끗이 정돈하세요, 서로에 대해 아쉽고 서운한 점을 토로하는 부부들에게는 알고 보면 각자가 다 힘든 겁니다... TV라는 매체가 시청하는 그 순간만으로 그칠 때가 많긴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프로그램은 자기 몫의 삶과 역할부터 돌아보고 반성하는, 기초적인 삶의 태도를 날마다 되새길 수 있다는 데에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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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9-12-04 15: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의외로 타인의 필터 하나를 거치고 나면, 뿌옇던 것이 명확할 때가 있지요. 저도 종종 즐겨봤더랬습니다.

깐따삐야 2009-12-06 19:44   좋아요 0 | URL
맞아요. 사는 모양은 다들 비슷비슷한데 의외의 힌트를 얻기도 합니다. Jude님도 애청자셨군요.^^

Mephistopheles 2009-12-04 1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흐흐..뭔가 말하고 싶은데 그냥 꼭꼭 참고 있을래요...^^

깐따삐야 2009-12-06 19:46   좋아요 0 | URL
으흐흐...?
이런 걸 보고 달으나마나, 달지 않느니만도 못한 댓글이라고 하던가요.-_-

Mephistopheles 2009-12-06 19:50   좋아요 0 | URL
사실 별거 아니에요. 그냥 우리가 익히 아는 사실도 다른 사람의 시선에선 또 다르고 새롭게 보여지기도 한다잖아요. 그나저나 임신 중 날고기.그러니까 회...말고 간장게장이나 그런 것도 피해야 하는 건가요???

깐따삐야 2009-12-07 10:30   좋아요 0 | URL
아니 머 그 말씀을 그렇게 꼭꼭 참으시기까지 하셨어요. ㅋㅋ
스트레스 받으면 안 된다고 먹고 싶은 건 다 먹는다는 임신부들도 있다던데 저는 안 좋다는 건 그래도 피하는 쪽이에요. 근데 왜요? 간장게장 사주시게요? 헤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