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가 착 가라앉은 것이 많이 피곤해 보였다. 통화 중에 오늘 당장 만나자고 했고 그러자고 했다. 뭔가 갑갑한 모양이었다. 지하주차장에 삐딱하게 주차를 해놓고 무얼 먹을까, 고민하다가 근처 고기 집으로 향했다. 사람들 왁자지껄한 식당도 오랜만이었다. 옆에는 통신회사 직원들이 단체회식을 하고 있었고 칸막이 하나로 그들을 방음한 채 주문을 했다. 갈매기살이 지방이 적대. 그래? 그거 시키자. 아가씨나 임신부나 먹으면서 몸매 걱정하는 건 매한가지다.
올해로 2년차 교사, 대학 동기이자 십년지기 친구인 E는 대학 새내기 시절부터 그런 얼굴을 하고 있었다. 성숙한 분위기를 하고 있어서 처음엔 선배인 줄 알고 인사까지 할 뻔 했는데 알고 보니 나보다 생일도 늦은 동갑내기였다는. 친구가 될 인연이었는지 흡사 은하철도 999의 철이 같던 나와 통하는 데가 많았다. 지난 십년 동안 우리에게도 사소한 오해와 공백기가 있었지만 오래 갈 인연이었는지 지금껏 이런저런 속내를 많이 털어놓는 사이다.
고기를 먹고 나서 근처 도넛 가게로 자리를 이동했다. 나는 망고주스, E는 카페라떼. 고기에 밥까지 먹고 도넛까지 먹었다. 그녀는 스트레스성 폭식으로 고민하면서도 노란봉지 인스턴트커피와 종종 시켜먹는 피자를 끊기가 힘들다고 했다. 커피는 정말 그렇다. 수업 마치고 나와서 목이 아플 때, 스트레스와 공복감을 해소시키는 데에는 뜨겁고 진한 인스턴트커피만한 게 없다.
늘 하는 고민이지만 직장생활에서는 역시 인간관계가 가장 속을 썩인다. E는 올해 담임이 없다보니 아이들과의 관계는 오히려 더 좋아졌단다. 그런데 소위 말하는 ‘요즘 젊은 사람’ 축에 끼어버려 마음고생을 하는 것 같았다. 더욱이 또래 동료 중에 남달리 싹싹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매번 비교되기 십상이다. 어느 날, 옆자리 선생님이 E에게 그러더란다. 일 년 넘게 생활해도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모르겠다고, 나도 선생님처럼 다른 사람 신경 안 쓰고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E 자신은 그저 말수가 적고 자기 일 이외의 일에 참견하는 것을 원하지 않을 뿐인데 동료나 선배가 보기에는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나도 학기 초에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새 학교로 와서 적응하기도 바쁜데 일거리까지 많다보니 내심 스트레스를 받고 있던 중이었다. 그때 문을 열고 먼저 들어오려고 했다는 이유로 고령의 선생님께 호되게 야단을 맞은 적이 있었다. 어르신이 나가시는데 양보는커녕 먼저 문을 밀고 들어왔다는 이유였다. 처음에 잠깐 보자고 하실 때는 왜 그런지 영문을 몰랐는데 이유를 듣고 보니 맥이 빠졌다. 컨디션이 엉망이었고 이래저래 분주한 아침부터 그런 일로 훈계를 듣는 일이 마뜩치 않았다. 결국 공손히 듣고 있지를 못하고 반발을 했다.
저는 바쁜 아침에 문 맞은편에 누가 서 있는지 미리 예상하거나 신경 쓸 겨를이 없습니다. 선생님이 양보해 주실 수도 있는 거 아닌가요? 결국 간단한 잔소리 몇 마디로 그칠 수도 있는 일을 크게 벌인 셈이었다. 갑자기 흥분한 선생님은 몇 호봉이냐, 몇 살이냐 부터 시작해서 우리 부모님까지 욕 먹일 셈이었다. 아이들을 지도할 때도 누구한테 그렇게 배웠느냐, 집에서 그렇게 가르쳤느냐, 는 말은 반드시 피하곤 하는데 그런 말을 내가 듣고 있자니 팽- 돌더라는. 여러 가지 대꾸를 했지만 내 말의 핵심은, 나이를 허투루 먹었냐는 반응이었고 선생님은 거의 이성을 잃은 상태였다.
이런 일은 항상 뒷수습이 문제인데 사태를 아신 교장 선생님은 그냥 웃어 넘기셨지만 그 선생님과 비슷한 또래의 선생님들이 나를 좋게 볼 리 만무했다. 급식실에 내려갔더니 벌써 대놓고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라는. 그러던 말던 밥을 푹푹 퍼 넣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일과를 마쳤다. 그래도 어르신한테 그런 식으로 반응한 것은 분명 내 잘못이었다. 학년부장 선생님이 나를 부르셔서 젊은 사람이니 먼저 사과드리는 게 좋겠다고 하셨고 당일에는 차마 내키지 않았지만 다음 날 아침, 학교에 가자마자 죄송하다고 말씀드렸다.
이후 선생님은 웬일인지 눈에 띌 정도로 나와 우리 반 아이들을 잘 챙겨주셨다. 나 역시 전보다 더욱 공손하게 행동했다. 나중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선생님께 혼이 난 젊은 선생님들이 한 둘이 아니었던 모양인데 나처럼 눈에 뵈는 거 없이 행동한 경우는 없었는가 보다. 선생님으로서는 아마도 일생의 봉변이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날, 나도 사고 칠 컨디션이었고 선생님도 망신살 뻗친 날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우리가 친구인지는 몰라도 E도 감정 처리가 영 서툴다. 해도 해도 끝이 없는 공문처리를 하다보면 인상이 저절로 일그러지고 쌍욕이 마구 튀어나온다고. 자기는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일하는데 한가하게 관찰만 하다가 한 마디씩 하는 사람들 보면 울화가 치민단다. 회식자리에서라도 마음 편하게 밥도 먹고 술도 마시고 싶은데 그조차도 허락이 안 될 때는 정말 참기 힘들단다. 원래 피로에 장사 없는 법이다. 심신이 극도의 스트레스로 예민해지다보면 사소한 말 한 마디도 귀에 걸리기 마련이다. 더욱이 나나 E처럼 남의 일에 무심한 타입들은 더욱 그렇다.
이럴 때 연애라도 하면 좋으련만 어째 남자를 만나도 별 느낌이 없단다. 소개팅도 지겹고 만나러 가는 일도 귀찮다고. 남들은 뭐든지 잘하는 것 같은데 나는 왜 이렇게 뭐든지 잘 못하고 느린 건지 모르겠어. 주차할 때부터 툴툴거리더니 어느 새 열패감 덩어리다. 남보다 좀 더 일찍 이룬다고 마냥 좋을 것 같으냐. 그 사람들은 더, 더, 더 하고 있을 거다. 주변에서 그런 모습을 많이 보았다. 부족할 게 없어 보이는데 행복하지는 않다. 부족한 것 천지인데 자족하며 즐거워한다. 언젠가부터 그렇듯 소박한 마음가짐보다 위대한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도 그러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동갑인데도 불구하고 벌써 능글능글해진 친구도 있는데 E는 새내기 시절이나 지금이나 참 그대로다. 나는 좀 어정쩡한 상태여서 무엇이 더 낫다고 말할 수도 없는 처지. 별로 노련하지도, 세련되지도 못한 것으로 치자면 E 쪽에 가까울 것이다. 그래서인지 우리의 대화는 뚜렷한 결론 없이 맺을 때가 많다. 누구 한쪽에서 단호하게 이렇게 해봐, 하면 좋을 텐데 스스로에게도 확신이 없다보니 나도 그래! 라는 공감에서 그칠 때가 더 많다.
E를 보내고 집에 들어오니 남편이 앉아 있다 반짝 일어난다. 아직도 이런 풍경이 낯설다. 웬 남자? 아주 잠깐, 그런 느낌이 들 정도이니. 인생을 늘 소풍 온 것처럼 사는 그에 비하면 나는 인생을 늘 부담스럽게 사는 것 같다. 어차피 이렇게 사나 저렇게 사나 마찬가지인 것을. 어깨에 힘만 주면 대수냐고. 당장 절실해 보이는 고민이나 문제들도 시간이 흐르고 나면 대수롭지 않게 여겨지는 경험을 많이 했다. E가 자신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시간 또한 나중에 웃기 위한 당연한 과정일 지도 모른다. 다만 스스로에 대해 낙관하는 자세는 필요한 것 같다. 그것이 지나쳐 게으름이나 뻔뻔함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주의하기만 한다면 무엇이든 조금 늦게, 더디 깨친다고 해서 자학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아직 때 묻지 않아 서투른 E, 어여 자신감을 되찾기를. 우리는 서로의 능수능란하지 못함 때문에 불편하기도 하지만 그래서 서로를 좋아하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