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달이를 위한 드라이브 중이었고 아주 사소한 한 마디, 지금은 기억나지도 않는, 그 한 마디로 인해 내 면상이 종잇장처럼 꼬깃꼬깃 구겨졌다. 나는 남편에게 토 달지 말고 인정하라고 소리쳤고 그는 뭐라뭐라 대꾸를 하더니만 리어 뷰 미러 아닌, 여기선 그냥 빽미러로 빽빽거리는 나를 힐끔 쳐다봤다. 당신, 얼굴 좀 봐요. 지금 어떤가.
내 얼굴이 보일 턱이 없었고 물론 보고싶지도 않았고 엄마, 아빠의 투닥거리는 언쟁 틈에 눈치 잽싼 영달이는 전후좌우 고갯짓을 멈추는가 싶더니 까무룩 잠이 들었다. 전날 밤, 천둥과 벼락 소리에 잠을 못 자 눈알은 계속 따끔거렸고 몸둥이는 천근만근. 피로가 극에 달한 탓인지 내 주특기인 온몸으로 화내기를 제대로 실연하고 있었다. 날카롭게 주고받던 말들이 잠잠해질 즈음, 운전 잘하고 있는 남편에게 운전이나 똑바로 하라고 한번 더 소리쳤다.
이번엔 남편도 쉬이 굽히고 들어오지 않을 기세였고 나도 그럼 어디 한번 해보자는 식이었는데 그 사이 집에 도착, 영달이가 잠에서 깨어나고 이래저래 시간이 흐른 후, 그가 너무 진지하다 싶은 사과멘트를 보내서 진정성이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다시 꼬투리 잡기에도 좀 유치한 것 같아 그냥 유야무야 넘어가기로 했다. 그렇다고 곱아진 마음이 당장에 흐물흐물 풀어지거나 한 건 아니었다. 다만, 온몸으로 화내기에 지나치게 열중했던 나머지 더 이상의 마찰이나 긴장은 무리였다.
남편이 이따금, 그러나 꾸준히 지적질하는 것이 바로 이 온몸으로 화내기다. 한방과 양방에서 진단 내린 체질이나 상태로만 보면 속으로 삭이고 또 삭이는 외유내강형의 차분한 여성이어야 맞는 건데 화를 낼 때의 내 모습은 증기기관차가 따로 없다. 일단 꼭지가 홱 돌면 손익이나 뒷일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온몸의 기를 집중하여 화를 불러일으킨 대상을 향해 돌격한다. 상대는 온몸을 찌끄러뜨리다, 폈다, 를 반복하며 기관차로 트랜스폼한 내 모습에 깜짝 놀라지만 내딴엔 그전에 벌써 세 번 정도 참은 거라고 합리화하며 무한 돌진한다.
이처럼 나는 영화 제목이기도 한 anger management가 참 안 되는 사람이다. 나의 이상향은 화가 날수록 차갑게, 분노할수록 고요히, 인데 그것은 죽어도 닿지 못할 겁나먼 이상향 쯤 되는 것이고 그저 화를 내더라도 좀 깔끔하게 냈으면 싶다. 따질 것만 조목조목 따지고 그냥 넘어가도 좋을만한 소소한 것은 눈 감고 귀 닫아버리면 그만인데 내가 죽었냐, 가만히 있게, 를 필두로 해서 영겁회귀의 화를 되풀이, 또 되풀이한다. 이쯤되면 부처님도 돌아앉고 공자님도 쌩깔 수준이다.
그 결과, 아빠로부터 너는 너무 예민해, 엄마로부터 너는 내가 낳은 것 같지 않다, 등등의 말들을 들어야했고 오빠로부터 네 똥고집은 알아줘야 한다, 남편으로부터 또 시작이군... 그밖에 친구들이 지어준 처키라는 별명까지 화에 얽힌 말, 말, 말이 많기도 하다. 한때는 그런 나 자신을 들여다보고 변화하기 위해서 심리학 서적도 열심히 읽고 상담 사례를 묶어놓은 책들도 부지런히 찾아보곤 했는데 환자가 된 기분이었고 또 그건 그때 뿐이었다. 약발이 오래가지 않는 나를 가리켜 책은 읽어 무얼해, 라는 언제 들어도 매번 뜨끔하는, 가슴 아픈 말까지 들어야 했다. 좋은 사람이 되려고 책을 읽는 것도 아니고 책을 읽는다고 좋은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닌데 저 말엔 이상하게 내성이 안 생긴다.
그래도 사회에 나오고 엄마가 되면서 자각할 수 있을만큼 화내는 빈도가 줄긴 줄었는데 그 성질머리 하늘로 솟지도, 땅으로 꺼질 턱도 없으니 이따금 휴화산 폭발하듯 이글부글거린다. 사람이든 기계든 컨트롤이 안 되는 것은 암만 역할과 성능이 탁월하다고 해도 친해지거나 갖다 쓰기 곤란한 법. 울화병을 생각하면 화를 내지 않는 것도 그닥 권장할만한 것은 아니지만 이제 엄마까지 되었는데 온몸으로 화내는 일에 대한 반성이 더욱 절실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