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 그랜트는 바람둥이일 수는 있어도 결코 악인은 될 수 없는, 한 대 쥐어박아주고 싶을 때는 있어도 절대로 미워할 수는 없는, 고의라면 상당히 단수 높은, 고의가 아니라면 그저 어떤 면에서 행운이랄 수밖에 없는, 그만의 고유한 이미지로 성공한 케이스들 중 하나일 것이다. 이 영화 <어바웃 어 보이>는 더도 덜도 말고 딱 휴 그랜트를 위한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려받은 재산으로 널널한 삶을 구가하는 백수, 정착하기 두려워하는 연애술사, 나이를 먹을만큼 먹었음에도 곤란한 문제가 닥칠 때마다 멍한 표정으로 갸웃거리기만 하는 미성숙한 이기주의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노, 라고 말하지 못할 것만 같은, 노, 라고 말했다 하더라도 결국 찜찜한 마음을 못 이기고 다시 돌아와 줄것만 같은 주인공 '윌'이 바로 휴 그랜트가 열연하고 있는 이 영화의 주인공이다.

물려받은 재산으로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무엇에도 구속받지 않은 채 솔로 생활을 즐기고 있는 윌은 사랑하다가도 귀찮지 않은 결말로 쿨하게 헤어질 수 있는 상대를 찾던 중, 혼자 아이를 키우는 미혼모들이 적임자라 생각하고 미혼모 클럽에 가입한다. 드디어 마음에 드는 상대와 데이트 약속을 하게 된 윌은 상대가 데이트에 데리고 나온 '마커스(니콜라스 호울트 분)'라는 아이와 만나게 되고 공교롭게도 마커스의 집을 방문했을 때 마커스의 엄마가 자살 시도를 한 현장과 맞닥뜨린다. 그 후로 마커스는 학교가 끝날 때마다 윌의 집을 방문해서 그와 함께 시간을 보내려 하고, 윌은 학교에서는 왕따에 시달리고 집에서는 자신의 속내를 알아주지 않는 엄마로부터 외로움을 느끼고 있는 마커스를 내치지 못한 채 점점 함께 하는 시간 속에 익숙해진다. 윌은 마커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최신 나이키 신발을 사주고, 랩 음악을 들려주는 등 좋은 친구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새로 만난 연인, 레이첼(레이첼 웨이즈 분)과 이별하고 상처를 입은 윌은 다른 사람의 인생에 도움이 되어주고, 상대에게 진정으로 마음을 주는 과정에 대해 절망감을 느끼게 된다. 윌은 결국 눈물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엄마를 도와달라는 마커스의 부탁을 냉정하게 거절하고, 다시 예전처럼 고독하지만 안정된 섬으로의 생활로 돌아가려 하지만 진심으로 행복했던 순간은 마커스와 함께 보냈던 시간임을 깨닫고 마커스와 그 동안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에게로 돌아간다. 

내가 이 영화에서 눈여겨 보았던 것은, 휴 그랜트의 여전히 미워할 수 없는 느끼함이나 '미이라'에서부터 '콘스탄트 가드너'까지 어느 영화에서건 빛을 발하는 레이첼 웨이즈의 스마트함, 마커스로 출연하는 아역배우, 니콜라스 호울트의 발칙함보다도, 영화의 흐름 내내 전혀 이상하거나 어색하게 보이지 않는 다양한 삶의 방식, 가족의 형태였다. 결국 이 영화가 스스로를 고립시킨 채 적당히 이기적인 삶을 즐기는 솔로들을 질타하고 가족이란 연대에 동참하는 삶을 부추긴다 하더라도, 영화에서 지향하는 가족의 형태가 피로 맺어진 혈연관계, 마치 그 이상의 범주를 벗어나는 것이 곧 노멀함의 범주를 비껴나기라도 하는 것처럼 바라보는 폭력적인 시선을 끊임없이 지양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커스의 엄마는 크리스마스에 헤어진 남편과 남편의 애인, 애인의 어머니까지 초대해서 파티를 열고, 마커스는 친구인 윌을 초대해서 이 모든 사람들이 따듯하고 즐거운 식사를 즐긴다. 레이첼은 마커스를 윌의 아들로 오해했고 윌은 나중에 마커스는 자신이 낳은 아이가 아니지만 그래도 자신은 윌의 아빠라고 말한다. 그 애매모호하고 똑 떨어지지 않는 설명에 대해 레이첼은 결국 한 쪽의 오해와 한 쪽의 거짓말이었다,는 그 이상의 해석을 하지 못하고 윌을 받아들이지 못하지만 학교에서 락 축제가 열리던 날, 조롱과 망신을 당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엄마를 위해 준비한 곡, Killing me softly를 부르는 마커스를 위해 기타를 치며 함께 노래를 불러주는 윌을 보고 활짝 웃음을 보인다.

피는 물보다 진하지만 사랑은 피보다 진하다는 말처럼, 피가 아니라 사랑으로 맺어진 관계야말로 가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드라마는 곧 그 사회의 반영이라는 말이 있다. 유전자 감식, 친자 확인에 열을 올리며 위기감을 조성시키곤 하는 우리나라 드라마들을 보면 우리 사회의 시선이 얼마나 폭력적이며 가족의 범위에 대해 닫혀 있고 보수적인지 실감하곤 한다. 마커스를 낳지도 않았고 마커스의 엄마와 연인 사이도 아니지만 자신이 마커스의 아빠라고 말하는 윌의 입장은 옳다. 언제나 쿨한 인생을 지향하며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누구와도 깊은 관계를 맺지 않는 윌이었지만, 친아들이 아니어도 기꺼이 아빠가 되어줄 수 있는 그런 선택이야말로 진정으로 쿨한 인생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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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6-08-07 15: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의 캐릭터를 보면 얄밉긴 하지만, 미워할수만은 없는 모습이더라구요..
개인적으로는 네번의 결혼식.한번의 장례식이 제일 좋았습니다..^^

깐따삐야 2006-08-07 15: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피스토님, 저는 휴 그랜트가 노년이 되면 과연 어떤 연기를 할 수 있을까, 궁금해지곤 합니다. ^^

Mephistopheles 2006-08-07 15: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래도 숀코너리 와는 다른 모습이겠죠..^^

비로그인 2006-08-07 1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는 휴 그랜트의 캐릭터가 얄밉지도 않고 사랑스럽고 부럽기만 했으니 이를 어쩝니까..

깐따삐야 2006-08-07 2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Jude님, 남자 입장에선 모르겠지만 대개의 여자들은 어쩐지 휴 그랜트와 그의 케릭터를 미워할 수가 없는 것 같아요. 영화는 결국 연대의 중요성을 설득하고 있었지만, 저 또한 Jude님처럼 무엇에도 구애받지 않은 채로 자유를 구가하는 윌의 생활방식이 부러웠답니다. 그의 거짓됨은 싫었지만 그의 고독은 좋았어요. ^^
 
월든
헨리 데이빗 소로우 지음, 강승영 옮김 / 이레 / 200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바쁜 일상을 꾸려가다 보면 불현듯 이게 아닌데, 라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간헐적으로 피어오르는 무료함이나 우울함과는 다른, 좀더 근본적인 낙담 내지 환멸같은 것.

이후 한동안은 온 심신이 물먹은 스펀지처럼 축축하고 무거운 상태로 지속된다.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가보고 싶었던 곳에 가보며 실컷 마음의 호사를 누린다 해도, 그것들로 인해 잠시잠깐 까슬까슬하고 말랑말랑한 심신 상태를 되찾는다 해도, 언젠가 또 다시 엄습해 올 그 느낌에 대해서 마음을 놓지 못하곤 한다.

<키리쿠, 키리쿠>라는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갓 열살을 넘긴 외사촌 동생은 우리도 저렇게 살면 참 좋겠지? 라고 물어왔다.

주인공 키리쿠는 아프리카 소수 부족의 어린이다.

키리쿠네 마을 사람들은 손수 파종을 해서 먹거리를 마련하고, 흙을 빚어 만든 그릇을 읍내에 내다팔아 돈을 버는 등, 육체노동을 통한 단순하고 원시적인 삶의 형태를 보여주고 있었다.

집에는 문이 없으며 한 집의 아기를 이 사람이 돌보아 주기도 하고 저 사람이 돌보아 주기도 한다.

그들은 하루를 무사히 보내고 나면 기쁨과 감사의 의미로 모닥불을 피워놓고 춤을 추며 축제를 연다.

<월든>을 다시 읽으며 마치 고갱의 움직이는 그림을 보는 것처럼 화면 가득히 열기와 생명력을 느낄 수 있었던 <키리쿠, 키리쿠>를 떠올렸고 어쩌면 내가 원하고 있는 삶도 이런 것이 아니었느냐, 고 조심스럽게 반문해 보는 것이다.

학부시절에 강독했던 <월든>은 <더블린 사람들>이나 <폭풍의 언덕>등 그 시절 청춘의 낮밤을 야금야금 갉아먹었던 다른 책들과 더불어 졸업과 동시에 내 시야에서 멀어져 버렸다.

시험은 코앞인데 굳이 캠퍼스 근처의 산을 오르게 하셨던 어떤 교수님은, 늘상 책상머리에만 앉아 있다보니 급격한 체력저하를 겪으며 헥헥거리고 있던 우리에게 던킨도너츠를 쥐어주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자아... 여러분, 산에 오르면서 무얼 보았나요?"

나야 물론 입가에 허연 설탕가루를 묻힌 채 교수님 시선을 피하기에 바빴고 눈만 껌뻑이며 묵묵부답이긴 다른 학우들도 매한가지였다.  

산길을 내려오면서 교수님은 허둥거리며 내려가는 우리를 멈춰서게 하신 다음 다양한 나무 이름을 알려주셨고 산을 오르는 목적 그 자체보다 과정을 즐길 줄 알아야 한다는 교수님다운 말씀을 해주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에 와서는 나무 이름은 물론이고 올랐던 산 이름조차 가물가물하고 기억나는 것은 오로지 유인물, 이라는 교수님 별명과 교수님이 우리에게 던졌던 저 질문 뿐이지만, 대놓고 지루해하던 수강생들의 상태는 아랑곳하지 않고 <월든>의 문장에 심취해서 창 밖으로 아련한 눈빛을 보내시던 교수님은 분명 이 책을 사랑하셨고 우리를 지도하느라 참 외로우셨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졸업 이후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다음 다시 만난 <월든>은 나로 하여금 Simplicity, simplicity, simplicity! 라는 책 속의 외침을 상기시키며 나의 삶을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계기가 되어 주었다.

월든 호숫가에 통나무집을 짓고 2년간 자연과 더불어 동고동락하는 삶을 몸소 보여준 소로우는 누구든 한 번쯤 꿈꾸게 되는 무소유의 삶을 직접 실천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 기록을 아름다운 한 권의 책으로 남겼다는 점에서, 두 번 훌륭하다.

당대의 엘리트였다는 조건이 그가 선택한 소박한 삶을 더욱 미화시키는 계기로 작용한 점이 없지 않지만, 혹자는 언제고 다시 사회로 편입하면 어떤 좋은 자리든 주어질만한 상황이 아니었냐며 비판할 때도 있지만,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당장 코앞에 주어진 부와 명예, 세속적 성공을 포기하고 숲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니다.  

어떤 것에 대해 말하고 쓰는 일에 비하면 어떤 것을 직접 사는 일은 훨씬 더 어렵고도 모험을 요하는 일이다.

물질과 자본으로 움직이는 현대에도 <월든>이나 헬렌 니어링의 <조화로운 삶>과 같은 책이 주목받는 것을 보면, 대개 사람들의 진심 속에는 이 갑갑하고 기계적인 일상에서 벗어나 맨손과 맨발이 허용되는 자연으로 돌아가고픈 욕구가 내재해 있는가 보다.

나 역시 내 뿌리가 농촌에 있기 때문인지, 아니면 인간의 근원적인 욕망이란 게 본래 그런 것인지, 밭이랑에 한가득 캐서 모으던 감자라든가, 고추 모종에 주전자로 물을 주던 풍경들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누군가를 속이는 일이 될까봐,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게 될까봐, 노심초사하는 일 없이 내가 흘린 땀방울만큼 먹거리를 얻고 흘린 땀에 비해 수확량이 적더라도 쓰임새를 줄이면 그만이라고 일갈하며 다음해를 기약하는, 정직하고 엄격한 삶 속에 나를 내맡기고 싶을 때가 있다.

실상 가진 것도 별로 없으면서 그만큼의 가진 것도 버리기가 아깝고도 두려워서 늘 공상만으로 그치는 일이 허다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모른다.

누군가 단 한 사람이라도 발 벗고 동조해주고 이해해준다면 정말 일을 저질러 버릴지도.

논리나 이성보다는 여전히 직관과 감성에 의해 움직이고 있는 나이기에 전혀 불가능한 일만도 아니다.

어쩌면 나란 인간은 그때부터 비로소 신나게 살지도 모른다.

<월든>. 오로지 축적하는 데에만 몰두해 있는 현대인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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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런스 2006-08-03 0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깐따삐야님 제가 그 동조자해드리면 안되겠니(요)? 꾸벅~ 초면에 넘 쌨죠? ㅎㅎ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저너머 행복을 쟁취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마음먹은대로 실행하지 않아서가 아닐까요? 그만큼 얻고자 하는 것이 절박하지 않아서 일지도 모르죠...좋은 글 잘 봤어요.^^

Mephistopheles 2006-08-03 0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조까지는 아니더라도 응원은 해드릴 수 있습니다...^^

깐따삐야 2006-08-03 1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싸이런스님, 반갑습니다. 절박하지 않아서, 용기가 없어서, 그냥 이러고 살고 있습니다. 흐흐.

메피스토님, 고맙습니다. ^^

개츠비 2006-08-05 2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월든, 다시 읽으셨군요. 반갑네요.. 깐따삐야님 글로 만나보는 월든...실은 지루한면이 없잖지만, 대게 고전은 그러면서도 가장 기억속에 오래남는 책이니까요..^^

깐따삐야 2006-08-07 15: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retre7님, 고전에 대한 느낌, 진심으로 동감해요. 읽을 땐 지루한 면이 있지만 이상하게도 나중까지 기억에 남는 것은 역시 고전 뿐인 것 같습니다. 날씨가 무척 덥지요? 건강 조심하세요. ^^

비로그인 2006-09-08 1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버드대 총장이 졸업생들에게 권하는 책이라고 하던데, 이 책을 다 읽어내지 못한 게 아주 민망합니다만 다시 읽어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리뷰.

깐따삐야 2006-10-30 1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Jude님, 좋은 책이긴 한데 다시 읽어봐도 역시 지루한 부분이 없지 않은 게 사실이에요. 그럼에도, 생활이 너무 뻑뻑하게 돌아간다 싶을때 펼쳐보면 찰랑찰랑 파문이 일기도 하더라구요.
 

방학 시작 즈음해서 공교롭게도 경상남도 쪽을 두 차례나 다녀왔다. 한 번은 교사 동호회에서 남해군 일대를 여행했고 그 다음은 교직원 공동연수로 진주에 다녀왔다. 오랜만에 짭조름한 바닷내음을 맡으며 아나고와 회를 실컷 먹고 온 넉넉한 나들이였다. 고교 시절에 한국지리를 배울 때는 당최 물리적으로는 파악이 되지 않은 채 그 땅에서 나는 광물이나 특산작물을 기억하고 지형에 따른 기후와 토질의 차이까지 비교 암기해야 하는 곤욕이 따랐기에, 지리라면 된통 지리멸렬하기 짝이 없었다. 그런데 이처럼 실제로 움직이며 보고 듣고 걷고 먹으니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한반도의 지형과 특색이 눈앞에 환하게 드러나는 느낌이다. 경상도는 나에겐 미지의 땅이나 마찬가지였다. 학창시절 수학여행 때 잠시 훑고 오긴 했지만 그야말로 훑었을 뿐, 멋쩍은 표정의 단체사진 배경에서나 내가 이런 곳에도 가긴 갔었구나, 어림짐작할 뿐이었다. 대개 감수성 예민한 청소년기 시절의 기억은 추억으로 저장되기 마련인데, 어찌 된 영문인지 나의 중고등학교 시절의 수학여행은 빈 괄호처럼 허하고 막막하다. 어쨌든 방학이 다 가기 전에 한 차례 더 국내여행을 떠나려고 한다. 장마가 지나고 날이 점점 뜨거워지고 있지만 여름은 원래가 더운 법. 떠날 것이다.

운동을 시작했다. 동네에 있는 헬스장에 찾아가 일단 등록부터 해놓고 보니 안 나갈 수가 없다. 돈이 아까워서라기 보다는 이제 하루 한 시간 유산소 운동을 하지 않으면 마음 한 구석이 찜찜하고 조마조마하다. 고작 며칠 했다고 운동에 중독이 되었을까마는, 땀을 쫘악 흘리고 난 후 시원하게 샤워를 하고 난 다음의 상쾌함에 도취되었다는 편이 맞을 것이다. 평소보다 조금만 무리하면 늘상 찌뿌드드했던 몸도 살짝 가벼워진 느낌이다. 물론 아직까지 몸무게의 변화는 거의 없는데다 가끔 헬스장 아래로 내다뵈는 낭창낭창한 내 또래 아가씨들을 보면 런닝머신 위에서 육수를 흘리며 쿵쾅거리고 있는 내 자신이 참 아니올시다, 라는 느낌도 들지만 뭐, 나는 나인 것이고 내 건강을 위해서 열심히 운동하면 되는 것이다. 시작이 어려웠지, 일단 시작하고 보니 진작에 왜 운동을 안했을까 싶다. 앞으로 꾸준히 해야겠다. 

이 동네에서 약 2년 반을 살았는데 조만간 이사를 갈 것 같다. 근처에 명산과 국립공원이 있는 청정마을이었는데 이제 좀더 사람들로 북적이는 근방의 도시로 가서 살게 되었다. 내가 처음 발령을 받고나서 그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이런저런 희비가 엇갈리고 별에별 시행착오를 겪었던 곳인만큼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무엇이든지 결코 서두르는 법이 없는 느긋한 인간성과 아이들의 순진하고 솔직한 눈매 또한 그럴 것이다. 사는 곳은 조금 멀어지지만 아직은 이 곳의 학교에 몸담고 있으니 영영 떠나는 것은 아닐진데, 그래도 왠일인지 마음이 헛헛하고 쓸쓸해오는 것은 감정의 오버라 해도 어쩔 수가 없다. 언제든 하나를 잃으면 하나를 얻는 법, 도시에서의 생활은 나에게 다른 좋은 것을 선사할 것이다. 아마도 좀더 긴장되고 역동적인 그런 삶.

얼마전 학교로 배달되어 온 백송이 장미를 받으신 동료 여선생님 한 분이 결혼 날짜를 잡으셨다. 만난지 백일째, 지켜보는 사람들 편에선 너무 성급한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올 수도 있지만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선 이것도 너무 늦은 거라구, 라는 말이 나올성 싶은 깨소금 쏟아지는 인연. 이제 새학기가 시작되면 머잖아 곧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란다. 쌍춘년이라 그런가, 올해 상반기엔 결혼식을 참 여러 군데 다녔더랬다. 그런데 하필이면 우리 학교 여인네들은 어찌 된 것인지 나보다 나이도 어린데(하긴, 그게 무슨 상관이겠냐만은) 두 분이나 결혼을 했고, 하게 되었다. 요즘 세태로 보면 이르다 싶은 나이인데도 만났다던 게 엊그제인 것 같은데 결혼한다는 게 오늘이 되버리곤 한다. 서로 얼마나 좋았으면! 그리고는 당사자를 마구 띄워주고 축하해주는 분위기가 가라앉으면 뜬금없이 화살이 나에게 꽂힌다. 그런데 김샘은? 김샘도 결혼해야지. 남자 없어? 슬슬 찾아봐야지 않겠어. 요즘 애들 말로 대략난감이다. 난 어떤 상대를 좋아할 때도 결혼, 이라는 말 앞에선 확 쪼그라들곤 했었다. 진짜 인연을 못 만나서 그렇다고, 진짜 인연을 만나면 작은 키도 커 보이고 작은 눈도 커 보인다는 말이 있다고들 하지만 그 말이 사실이라고 치자.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과 결혼을 해야만 하는 것일까. 결혼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과 실제로 결혼을 해서 결혼생활을 영위한다는 것은 많이 다르지 않을까. 사랑할 준비는 되어 있어도 결혼할 준비는 아직 되어 있지 않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이율배반일까. 행여나 내게 어떤 희망 내지 기대감을 품고 있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을까. 물론 나는 연애지상주의자나 독신주의자는 아니다. 아예 어떤 ~주의라는 것 자체를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저 지금은 결혼에 대해서 막연한 공포감을 가지고 있을 뿐. 다른 사람들 사는 것을 보면 참 좋아 보일 때도 많은데, 좋아 보여도 두려운 건 두렵다.

방학이라서 책을 한꺼번에 여러 권 주문했다. 장르별로 다양한 책들을 읽으면서 느끼는 점은 역시 책은 일단 '재미있어야 한다'는 점. 재미 이외의 매력으로 독자의 시선과 집중력을 모으는 책은 정말이지 드물다. 두툼한 성경이나 국어사전조차 호기심과 흥미를 끄는 부분은 빠르게 찾고 술술 읽게 마련이다. 언젠가 파워인터뷰란 프로그램에서 영화감독 박찬욱이 류승완, 류승범 형제를 가리켜 진지함과 유쾌함을 동시에 지닌 보기드문 청년들이라고 극찬한 바가 있는데, 좋은 책을 대하는 내 느낌도 크게 다를 바 없다. 좋은 책은 진지함과 유쾌함을 동시에 아우르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그 두 가지가 한 권의 책 속에 보이지 않게 녹아들어 끝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고 교합과 길항을 함께 하는 책. 이를테면 내가 요즘 읽고 있는 이왕주의 <철학, 영화를 캐스팅하다>라는 책과 같은. 지루한 여름, 그런 책을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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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6-08-01 08: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확실히 운동은 고달프지만 숨이 턱에 달릴만큼 운동을 한 후
그 나른하고 요상한 기분이 좋긴 좋지요..^^
(이미 중독 되신 듯 합니다만....=3=3=3=3)

개츠비 2006-08-01 0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름 멋진 여름이네요. 장마로 여름의 반을 보내버리니 이제 반의 반밖에 남지 않은 무더위가 남았습니다. 입춘넘어 좀 지나면 아침저녁 찬바람 나잖아요..^^

2006-08-01 10: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깐따삐야 2006-08-01 1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피스토님, 진심으로 중독이 되버리고 싶습니다만 문득 귀찮으면 그만둬버릴까봐 이젠 그게 걱정입니다. 운동은 꾸준히 하는 게 중요하잖아요. ^^

sretre7님, 무더위를 지나 곧 가을이 오리라 생각하니 왠지 설레입니다. 늘 바다를 보며 지낼 수 있어서 참 좋으시겠어요. ^^

속삭이신 님, 그렇군요! 언젠가 기회가 닿는다면 꼭 한 번 다시 가고 싶네요. 님도 건강 조심하시고 즐거운 여름 보내세요~ ^^
 
내 안의 자유 ㅣ 사계절 1318 문고 11
채지민 지음 / 사계절 / 2000년 12월
평점 :
절판


집에 돌아와서도 오빠의 편지를 몇 번이나 반복해서 읽어 보았다. 내겐 오빠의 흔적이 아무것도 없었다. 다만 오빠가 사용했던 붓 하나를 하영이 몰래 내 방으로 가지고 온 게 전부였다. 결과적으로 훔친 것이지만, 하느님은 나를 용서해 주실거라 믿었다. 어쩌면 내가 내 호흡에 겨워 힘들어하지 않도록 착한 악마를 보내시어 내가 그렇게 하도록 이끌어 주셨는지도 모를 일이다.  - p. 141

주인공 수빈이를 보면서 학창시절의 나를 떠올렸다.

아마 찾아보면 그 시절 일기장 어딘가에 남겨놓았을, 이제는 누군가의 글을 통해서나 영상을 통해서가 아니면 속속들이 떠올리기 힘들어진, 미세하고 불투명한 청소년기의 감성을 다시 되짚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내가 만약 지금 당장 책을 쓴다면 어쩌면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했다.

물론 내 글의 주인공은 침착하고 조숙한 수빈이에 비하면, 도스토옙스키의 <지하생활자의 수기>의 주인공처럼 훨씬 더 수다스럽고 산만하면서도 불안정할 것이긴 하다.

학창시절의 나는 어떤 생각에 골몰했다가도 후다닥 그 생각을 바꿔버리고, 끝없는 자신감에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큰 소리를 치다가도 금세 사소한 이유로 풀이 죽은 채 심각하게 자살을 떠올려 보기도 하는, 도통 종잡을 수 없는 변덕스런 아이였으니까.

책 속에서 수빈이는, 사업에만 헌신하느라 다정한 모습을 잃어버린 아버지, 생활고로 희노애락의 표현이 사라져버린 어머니, 말을 더듬는 언니, 당최 속을 내비치지 않는 오빠, 앞으로 태어날 동생까지, 가장 가까운 관계지만 사실은 애증과 몰이해의 틀을 벗어나기 힘든 가족이란 테두리 안에서, 스스로를 조숙이 아니라 조로(早老)라 평하며 숙녀로 성장해간다.

개인차야 있겠지만 남달리 감성의 촉수가 발달한 청춘이 으레 그러하듯, 수빈 역시 군중 속의 외로움을 느끼는 동시에 전인격적인 존재로 소통할 소울메이트를 강렬히 원하게 된다.  

그리고 여고생이 된 그녀 앞에 선물처럼 등장한 세 사람. 친구 하영, 세계사 선생님, 그리고 하영의 오빠.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세계 이곳저곳에서 머물다 온 하영은 세련된 사고방식과 여유 넘치는 따듯함으로 수빈에게 다가오고 수빈은 아무에게도 열어보이지 않았던 마음의 문을 연다.

단순히 지식만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반복되는 역사와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 나의 위치를 가늠해 보게 함으로써, 학생들로 하여금 자아의 본질에 눈뜨고 자기 자신을 소중히 하는 법에 대해 일러주는 세계사 선생님 또한 훌륭한 멘토로서 수빈을 이끈다.

그리고 수빈의 첫사랑의 대상이 되는 하영의 오빠. 고백 한 번 제대로 못한 짝사랑으로 그친 후 곧 이별해야 했지만 처음이자 마지막일 수 밖에 없는 어설픈 첫사랑은 수빈이 어른으로 자라는 데 빠져서는 안될, 반드시 거치고 가야 할 소중한 성장통인 것이다.

수빈에게 어둠만을 드리우는 것처럼 보였던 가족들이 저마다 자신에게 주어진 몫을 성실히 해내는 모습을 보며 고마움을 느끼고, 결국 멀게만 느껴졌던 돌아가신 아버지마저 이해하게 되었을 때, 수빈은 대학생으로서의 새로운 출발을 목전에 둔 어엿한 스무살로 성숙해 있었다.

그리고는 지금 네가 살며 지내는 그 시간의 기억을 잊어버리지 말라고. 어린 시절을 잃어버리거나 추억을 간직하지 못한 채로 성장하게 된다면, 정말 오랫동안 마음이 아플 거라고...... - p. 171 낯선 독자에게 조곤조곤 이야기하고 있었다.  

나에게는 스무살인 수빈보다 좀더 많은 과거가 있다.

이사를 함께 다닌 일기장들과 편지들 속에, 누군가로부터 선물받은 잉크가 다 떨어진 만년필이라든가 날짜와 서점 이름이 적힌 낡은 책의 속지, 좋아하던 유행가와 팝송을 녹음한 공테입 속에, 조각난 기억들이 소리 없이 잠자고 있다.

언젠가 서랍 속의 그들을 불러내서 기록되거나 증거로 남지 않은 내 머릿속의 영상들과 조합하여 새롭게 생명을 불어넣고 싶은 소망이 있다.

과거의 가난, 어린 시절 내가 느꼈던 심신의 공허감은 서정주 시인이 읊은 것처럼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저 한낱 남루에 지나지 않는다.

여름 무등산 같은 우리들의 타고난 살결, 타고난 마음씨는 가릴 수 없는 것이다.

그 시절의 살결까진 되찾지 못하더라도 그 시절의 마음씨로 돌아가 나의 과거에게 말걸어 보고 싶은 바람, 언젠가는 꼭 그 바람을 이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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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7-27 11: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깐따삐야 2006-07-27 1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님, 오랜만이네요. 좋은 책 많이 읽으면서 건강하고 즐거운 여름 보내자구요. ^^
 

좀더 어릴적의 나는 세상의 모든 것은 반드시 환하고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람은 모름지기 밝고 눈부신 햇볕 아래서 당당하고 떳떳하게 모든 걸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고. 그럴 수도 있다, 가 아니라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 고 믿었다. 엄청난 비약을 감수하고라도 당시의 나는 무엇인가를 감추는 것은 비겁함을 넘어서 곧 악의라고까지 생각했다. 당시의 내가 상대를 불문하고 자주 들이대던 말 중 하나가, 너 왜 말을 못해, 였으니까. 상대가 드러내는 머뭇거림이나 곤혹스러움을 비겁함의 징표로 해석하며 한껏 우월감을 느꼈던 나는 솔직함을 무기로 다분히 악랄했다. 그런데 요즘은 그처럼 견고하던 의지에 조금씩 틈을 보이며 진행되는 균열을, 몹시도 선명하게 느끼고 있다. 이젠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 고 비약하기는 커녕 반드시 그래서는 안된다, 고 거꾸로 비약할 지경이다. 삶이 그렇듯 반듯하고 투명한 한 가지 루트로만 통하는 게 아니라는 어딘지 꺼림칙하면서도 부정하기 힘든 깨달음에 지배되고 있다. 어찌된 영문인지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사회적 공의에 관해 어린 시절보다 더욱 더 의심스러워하고 절망스러워 하는 지금의 나는, 공개와 진실보다도 비밀과 거짓말이야말로 물과 산소처럼 삶을 유지하기 위해 꼭 필요한 인간적 영역은 아닐까, 하고 조심스럽게 나 스스로의 동의를 구해보는 것이다.  

머리 꼭대기의 고상함부터 발뒤꿈치의 누추함까지 모조리 드러낸다는 것은 타고난 솔직성과 용기라고도 볼 수 있겠지만, 한편으론 빈약한 마인드를 드러내는 정신적 노출증이자 전부 아니면 무를 원하는 극단적 이기심이라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말해도 괜찮을까? 그렇다면 말하지 않는 편이 좋다. 반드시 말해야겠어. 세 번 쯤 생각해 보는 게 좋다. 곤란한 느낌이 드는 내용물은 성급히 쏟아내 보았자 악취 섞인 냉기로 주변을 얼리기밖에 더하겠는가. 더군다나 솔직했기에 나는 무죄가 되고 상대는 그 결과에 대해 뭐라고 할 수 조차 없다. 자백한 자는 진실의 속박에서 벗어나 구원받았으므로 쌔근쌔근 발을 뻗고 자겠지만 자백을 감당해야 하는 입장에선 손발을 오므린 채로 조용히 사면 절차를 밟아야 하는 것이다. 혹은 그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서 그 반대의 경우가 될 수도 있다. 이해받으려 했든 그저 털어놓는 것에 위안을 받았든, 이해하고 싶었든 그저 진실을 알았다는 것에 안도를 했든, 결국 어떤 의미에서 지나친 솔직함은 양끝에 날이 선 곡괭이처럼 상대와 나를 향해 동시에 휘두르는 잔인한 폭력인 셈이다. 말하지 말지 그랬어. 듣지 말지 그랬어. 그것만큼 무용한 말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그래서 지금은 백퍼센트 솔직한 상대를 사랑하는 일보다 오십퍼센트 알듯말듯한 베일에 싸인 상대를 이해하는 일이, 가끔은 더 편한 일일지도 모른다는, 전에 없던 생뚱맞은 생각을 하는 중이다. 개인적인 영역에 있어선 무엇이 더 공정한가, 보다 무엇이 나를 더 편히 숨쉬게 하는가, 가 더 중요한 것일 수도 있다는 그런 생각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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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6-07-26 1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든 걸 공개하는 사람은 없겠지요. 저도 나름 솔직하게 글을 쓰려고 하는데요, 다른 사람이 볼 가능성이란 저로 하여금 어느 정도의 검열을 하게 만들지요. 제가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자 하는 욕구란... 글구 사랑은 솔직한 사람이랑 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요???베일에 싸인 게 첨엔 신비해 보이겠지만, 예측이 안되서 말입니다 그냥 제 생각.

깐따삐야 2006-07-26 14: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 물론 저도 솔직한 사람이 좋은데 가끔 하지 않아도 될 말, 하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말까지 해서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하거나 상처를 입히는 사람들도 있는지라 솔직함도 어느 정도껏이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었답니다. 상대에 대한 배려 내지 존중으로 입을 다무는 사람이 있고, 오직 내 마음 편하자는 식으로 솔직함을 추구하는 사람이 있다면 전자가 좀더 낫지 않은가, 그런 생각이요. 사실은 저란 사람이 후자에 속하는데 조용히 있다가도 급작스런 직설화법으로 상대를 곤혹스럽게 하는 경향이 있어서 고쳐나가야지,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만 그런지는 모르지만, 솔직한 사람은 솔직한 말에 상처도 잘 받는답니다. 항상 부메랑을 던지고 있는 셈인데 참 아이러니지요. ^^

마태우스 2006-07-26 1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솔직한 것과 말을 막하는 건 다르다고 생각해요. 음, 님한테 그런 경향이 있으시단 말이죠. 자신의 실수를 공개하는 건 솔직, 다른 사람의 실수를 꼬집는 건 배려가 없는 것, 이렇게 정리하면 어떨까요

깐따삐야 2006-07-26 2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신의 실수를 공개하는 것을 곧 면죄부로 생각하는 뻔뻔함만 없다면, 그런 자기 본위의 솔직함만 아니라면, 솔직하다는 것은 여전히 미덕이에요. 그나저나 마태우스님이 정리해 주신 내용을 보니 저는 솔직하지도 못한데다, 배려도 없는 사람이네요. 이쿠!

blowup 2006-07-27 0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번쯤 저도 쓰고 싶었던 글이에요.
서재 어딘가에 저 제목으로 글을 쓰다 만 것도 있구요.^-^
깐따삐야 님의 글쓰기는 가벼운 놀림 속에 묵직한 펀치를 숨기고 있어요.
글, 참 잘쓰세요. 늘 생각하는 거지만.

깐따삐야 2006-07-27 0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namu님, 제가 두서 없이 써내려가느라 미처 표현하지 못했던 부분까지도 헤아려 읽어주시는 것이라 생각이 되요.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