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무늬
오정희 지음 / 황금부엉이 / 2006년 1월
평점 :
품절


중학교 시절, 어느 행사에 가서 오정희 선생님을 실제로 뵌 적이 있다.
단아한 체구에 검고 맑은 눈동자가 인상적이었는데 소설가라기보단 엄마 같고, 큰이모 같은 느낌이 났다.
춘천에 살고 계신다 했는데, 재작년인가 들렀던 춘천은 적막하고 쓸쓸한 느낌이었다.
단순한 우연인지 젊은이들이 잘 눈에 띄지 않았고,
일본 교토의 거리에서나 종종 마주칠 법한 자그맣고도 깔끔한 노인들이 알듯말듯한 표정을 한 채 내 곁을 스치고 지나갔다.
닭갈비에는 떡과 함께 우동사리가 곁들여 나왔고,
한여름이라 전력량 초과였는지 때때로 에어컨이 꺼지고 스크린이 꺼지는대도, 다들 무심한 표정들로 일관했다.
아무런 놀라운 일도 없을 법한 인상을 주는 도시, 원하기만 하면 비밀스럽게 은둔하기 좋을 것 같은 도시였다.
그 곳에서 오정희 선생님은 밥 짓고, 글 쓰고, 아이들을 키우고, 남편을 뒷바라지하며 지금껏 살아오고 계신다.

마음이 산란할 때면 내가 무심코 집어드는 책들은 대개 이미 세상에 없거나, 아니면 연로한 작가들의 것이다.
대청마루에 나와 앉아 시원한 수정과 앞에 놓고, 현자들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듯,
아늑하면서도 나를 몽땅 드러내 보이며 기대고 싶은, 편안한 기분을 동시에 느낀다.
이 책 역시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고 한 수 크게 배우고 난 것처럼 뿌듯함을 느꼈다.

그 나이를 이미 지난 사람들은 '희망과 가능성으로 푸르디푸른 아름다움'이라 의심 없이 말하지만 삶의 실체는 잡히지 않는 채로 점차 생활인, 사회인으로서의 책무, 존재 의미를 찾고자 하는 안팎의 요구에 시달리는 20대의 생과 사랑은 얼마나 외로운가. - pp. 36-37
항상 내 나이를 사랑하며 살길 바라지만 너무 가까이 있다보면 그 실체와 소중함을 잘 모르듯 나 또한 나의 이 징글맞은 20대가 어서 지나가기를,
어서 어서 늙어서 야생화처럼 들끓는 열정보단 마음에 한 두 송이의 곰팡이꽃이 피어나기를, 하고 바라곤 한다.
육신을 보면서는 세월이 비껴가기를 원하고 마음은 공자님이 되길 원하니, 엄마 말씀을 빌리자면 '욕심이 땅두께 같다'.

조리대와 나란히 놓인 책상에서 글을 쓰면서 밥짓기와 글쓰기가 결코 생각처럼 별개의 것이 아니라는 것, 문학이라든가 창조적 생활이란 저 멀리서 나부끼는 깃발이 아니라 지금, 여기, 발 딛고 있는 자리를 굳건한 터전 삼아 발아하는 것이라는 나름대로의 깨달음을 얻었던 것이다. - p. 87
내가 항상 겁을 냈던 것 중의 하나는, 한 가지 일이나 한 가지 상황에 내 자신이 매몰되어 버리는 것이었다.
완벽한 몰두, 그렇지 않으면 無를 택하는 외곬 기질이 두려웠다. 
쓰잘데기 없는 고집과 자의식 포화 상태를 오갔던 결과는 항상 '현재상태 불만족'이라는 불온한 경고등이었다.  
칭얼대는 듯 하면서도 이룰 건 다 이룬다고 나보고 괜한 엄살쟁이라고 하는 사람도 보았지만,
인용한 글처럼 저 멀리서 나부끼는 깃발만 쳐다보느라 발 딛고 서 있는 자리에 좀비처럼 떠다니는 기분도 과히 좋지만은 않다.
생활과 실존와 이상이 분리되어 있지 않음을, 그것의 일치와 조화가 곧 생활이고 실존이고 이상임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그 시절, 호감을 갖고 몇 차례 만난 남자가 있었다. 그는 만날 때마다 우유를, 그것도 따끈하게 데운 것으로만 마셨다. 나는 그것이 의아했고 그는 내가 커피만을 고집하는 것에 대해, 왜 몸에 나쁜 커피를 마시는가 하고 못마땅해했다. 결국 그와는 곧 더 이상 만나지 않게 되었다. 그는 커피만 마셔대는 여자의 퇴폐성, 불건강함이 싫었을 것이고 나는 나대로의 고정관념으로 우유만 마시는 남자의 유아성이나 생활성, 동물적인 건강성이 싫었던 것일 게다. - p. 92
이 구절을 읽다가 쿡쿡, 웃음이 났다.
요즘 유리볼이며 도시락이 증정품으로 붙어 있는 인스턴트 봉지 커피를 열렬히 마셔대는 나도 동의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때로 달고, 뜨겁고, 진한 커피는 건강 상의 이유로 우유만 마셔대는 심심한 남자보다 훨씬 더 큰 위안과 기쁨을 준다.
전에 한방차 류의 건강차를 유독 즐겨마시는 사람과 알고 지낸 적이 있었는데, 곁에만 가면 탕약 냄새가 나는 것 같아(실제로 그렇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진지한 표정까지 우스웠던 기억이 있다.
우유 한 컵 하시겠어요? 탕약 한 사발 어떠세요?
아, 완전 깬다.

"엄마, 바람이 불어. 바람이 무서워. 바람은 어디서 살지..."
오정희 선생님은 유치원에 다녔던 아이의 말에서 영감을 얻어 <바람의 넋>을 썼단다.
보이지 않는 것, 잡을 수 없는 것, 하지만 분명히 있는 것.
그러한 것들에 넋을 불어넣는 일.
그럼으로써 미지의 것에 대한 공포를 애정으로 바꾸는 일이 곧 글 쓰는 일, 창조일지도 모르겠다.  

저는 행복한 삶이라는 말보다 충만한 삶이라는 말을 좋아하고 그 충만함이 문학을 통해서 이루어지길 바랐습니다. 제가 가지 않은 어떠한 다른 길에 대한 선망도 동경도 없었고 능력조차도 없었다는 것은 드문 축복인 것 같습니다만 생각해보면 언제나 자신이 가장 큰 적이 아니었던가 싶습니다. 작은 성취에 연연해했으며 오랜 시간을 두고 해나가야 하는 일의 과정에서 있을 수 있고 있어야 하는 작은 실패를 지나치게 두려워하는 소심함이나 문학에 대한 외경심이 너무 큰 데서 오는 상대적인 자신의 왜소함에 너무 예민했던 점 등이 그것이지요. - p. 173
나는 작가도 아니면서, 위의 구절에 완벽하게 공감했다.
오정희 선생님은 원고지에서 줄 바꾸기를 잘 안 하는 작가로 한때 유명했단다.
실제로 작가 본인이 직접 밝히기도 했는데, 원고지의 여백을 보면 성실히 써내지 못했다는 생각에 왠지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고.
비교적 다작은 아니지만 조경란이나 윤성희 등, 젊은 여류작가들이 글쓰기의 모범으로 삼고 있듯 꼼꼼하고도 유려한 문체는 다 저러한 각고의 성실성에서 비롯되는 것인가 보다.

나는 최소한 30센티미터짜리 자를 가지고 다니며 상대방과의 거리를 유지해야 안전하다고 생각할 만큼 사람 사이의 거리 조절에 자신이 없었다. 다정도 병인 것이어서 그렇게 분수없이 사람을 좋아하고 사람 사이의 정을 중히 여기면서 전부가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덤비는 기질 때문에 종종 피차 상처를 입거나 낭패를 겪는 일이 드물지 않았던 것이다. - p. 232
평론가 김병익 선생님을 회상하며 쓴 글의 일부인데 흡사 내 이야길 하는 줄 알았다.
겉으론 그렇게 차돌맹이처럼 당차고 야무져 보이셨는데... 하다가,
나도 겉모습은 남들이 오해하기 딱 좋게 생겼다는 생각에 역시 사람은 겉만 봐선 모른다는 식상한 결론.  
그런데 30센티는 너무 짧지 않은가.

황혼에 접어드는 노작가들의 글을 읽다 보면 역시 인생사 거저 얻는 것이 없다, 란 생각이 든다.
스타일에 살고 스타일에 죽는다는 듯 오로지 포즈 잡기에만 연연하는 요즘 세태를 향해,
낮지만 곧은 목소리로 보다 겸손해질 것을, 세상을 좀더 넓게 볼 것을 타이르는 듯 하다.
책의 힘이 의심스럽다가도 이렇듯 부피감 있는 책을 읽고나면 역시 또 다시 훌륭한 작가, 좋은 책의 위력을 믿게 된다.
변덕스런 계절 속에서 이렇듯 한결같은 목소리를 만나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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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니 2007-08-10 16: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저에게도 필요한 책인 거 같아요.

깐따삐야 2007-08-10 2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치니님, 와닿는 구절이 많은데 모두 옮겨놓을 수가 없어 아쉬웠어요.^^
 

항상 왠만한 거리는 걸어다니는 걸 즐기는 나는 요즘 같은 날씨가 참 난감하다.
출발지와 목적지의 중간 즈음부터 후두둑, 비가 쏟아지기 시작하면 버스를 기다리기도 뭐하고 택시를 타기도 뭐해 그냥 청바지 밑단을 홀딱 적신 채로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비록 면허가 있지만, 나의 앙증맞은 마티즈는 시동이 걸리는 그 순간부터 완전 트랜스포머다.
도로에만 나가면 주변의 모든 차들을 긴장시키며 살상무기로 화하는!
아빠는 내가 모는 차는 절대 함께 타지 않겠다고 선포하시기에 이르렀고,
한 마디로 핸들만 잡으면 겁대가리 없어지는 나를 우려하여 그냥 넌 평생 B&W (Bus and Walk)나 이용하라신다.
나는 운전하는 게 때로 재미있고 고속도로에서 속도를 내는 일은 더 즐겁다.
관광버스와 충돌할 뻔 했을 땐 가슴이 철렁했지만...
나도 주변 차량들과 사이좋게 지내며 운전을 잘하고 싶다.   

아무튼 엊그제 학원 갈 무렵,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해서 과감히 우산을 접고 택시를 탔다.
그런데 내가 좌석에 오르자마자 기사 아저씨의 푸념이 속사포로 이어졌다.
우리 아파트 앞에서 어떤 대학생 아가씨를 두 번을 태웠는데,
탈 때마다 하도 빨리 가라고 재촉해대는 바람에 감시카메라에 찍혀 벌금을 14만원이나 물어내셨다는 거였다.
그리고는 절대 빨리 가란 소리 하지 말라고 당부에 당부를 거듭하셨다.
적절히 맞장구를 쳐주며 저는 시간 넉넉하니 천천히 가세요... 해드렸더니 아주 신이 나셨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택시를 타서고, 식당에 가서고, 얼마나 빨리빨리 소리를 해대는지에 대해 함께 수다를 떨었고 드디어 학원 앞에 도착,
택시 안의 미터기는 꺼져 있었고 아저씨는 이거 보라며 손가락으로 미터기를 가리키시더니, 내게 기본요금만 받으셨다.
빨리 가란 말에 긴장해서 카메라도 의식 못하셨던,
이제 그 아가씨 얼굴도 안다고, 다시는 안 태울거라고 다짐하시던,
하소연 하느라 미터기 켜는 것조차 깜빡하셨던,
안쓰럽고도 귀여운 택시 기사 아저씨 덕분에 반짝 해가 든 것처럼, 기분이 밝아졌다.
아마 내가 택시를 몬다면 그 아저씨처럼 일주일 열심히 벌어서 하루만에 벌금으로 날리는, 얼떨떨한 기사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왠지 아저씨가 돈을 많이 벌어서 부자가 되셨으면 좋겠다, 는 초등학생 같은 일기를 쓰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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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7-08-10 1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 실물경제가 택시기사 아저씨들의 입에서 힘들다 혹은 살 만 하다가 가장 정확한 척도라는 말도 있잖아요. 그나저나 깐따삐야님은 핸들만 잡으시면....야수로 돌변하시는군요..^^ 크르르릉~

비로그인 2007-08-10 1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깐따삐야님 페이퍼는 어쩜 이리 천사표 일기 같은지... :)

라로 2007-08-10 2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좋은 글이에요.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어요

깐따삐야 2007-08-10 2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피스토님, 가끔 택시 타면 기사 아저씨들과 나누는 대화들이 재미나요. 저는 참 이상한 게, 평소엔 소심하다가도 왜 핸들만 잡으면 대범해지는 걸까요. ㅋㅋ

체셔고양이님, 그건 아마 고해성사를 하듯 페이퍼를 쓰기 때문일 거에요. 실생활에선 사악하기 그지없으니까요.^^

nabi님, 반갑습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종종 뵙도록 해요.^^
 

'커피와 담배'라는 영화 외에 몇 편을 더 보았고 권여선의 소설들을 모조리 읽어치웠으나,
담배를 배워보고 싶단 생각, 이렇듯 정공법으로 써나간 소설만 읽어도 될까 싶은 사소한 갈등 뿐.
마음 잡고 리뷰를 쓰진 못하겠다.

요즘의 내 언어들은 여름 날씨와 닮아 있다.
쨍긋하며 해가 반짝 들었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굵다란 집중호우와 천둥번개가 사방을 막아서는가 하면,
거실의 불을 켜고 커피를 끓일 때 즈음이면 다시 차오르는 햇살과 엄습해오는 더위에 슬며시 약이 오른다.
나를 바라보는 누군가의 마음도 그랬겠지 싶다.
그럼에도 나는 기어이 마음대로 오락가락 할 수 있는 날씨가 부럽다고 말한다.
아무런 변명도 필요 없이 사람들은 알아서 적응해 주니까.
나는 미안해 하는 대신,
더욱 자유롭게 횡포를 부리지 못해 이젠 날씨마저 우러러 본다.

모두 접었다.
나를 향한 것이든, 내가 향해가던 것이든.
사실 칼자루는 내게 있었다.
그러나 날카로운 칼날의 방향을 내게로 맞췄다.
이젠 마음의 통각마저 무뎌진걸까.
불필요하다, 는 차가운 결론 앞에서 마냥 담담하다.
 
회화 수업 중에 동갑내기 남자와 본의 아니게 격론을 벌였다.
independent mate와 dependent mate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나는 그가 가진 이기적인 이중잣대를 반박하기 시작했고 그는 같은 클래스의 다른 남성 멤버들의 도움에 힘입어 공박에 나섰다.
마냥 해사한 미소만 짓고 있던 다른 여성 멤버들과 내 눈길이 마주쳤고, 그들은 공격에 나선 남성들 만큼이나 내게 흥미로운 시선을 보냈지만 나는 내가 뭔가 실수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학부 때에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이후로 안드레아라는 영국인 강사는 내게 revolution girl이라는, 내 외양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법한 별명을 지어주었다.
그리고는 생긴 것만 멀끔할 뿐, 수줍음 많고 소심했던 한 남학우와 나를 엮어주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도서관 휴게실에서 내게 안녕~ 하고는 얼굴이 벌개지며 서둘러 사라지던 그를 도무지 좋아할 수가 없었다.
친구들이 저 오빠 귀엽다, 고 말하는 앞에서 나는 낮게 뇌까렸다.
남자가 샤프하면서도 적극적인 구석이 있어야지... 저걸 어따 써...

원어민 강사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그에게 어서 I'm sorry라고 말하라고 했지만 그 남자의 독선도 나만큼이나 질겼고,
나는 속으로 코웃음을 치며 뇌까렸다. 
지 무덤을 지가 파네... 저걸 어따 써... 
수업이 끝나갈 무렵 하염없이 생글거리면서 넌 어쩜... 이라며 거의 체념하다시피 말하는 그에게,
Don't say something in Korean! 이라고 소리쳤다. 

그리고는 생각했다.
나란 인간은 하나도 달라진 게 없구나.
내 무덤을 내가 파네... 이걸 어따 써...

극단과 극단만을 오가는 내 마음의 괘종시계.
늘 한가운데에 멈춰있게끔 배터리라도 제거하든가.
결국 칼자루를 손에 쥐고도 마늘 한쪽 잘라보지 못한 채 스스로를 찌르는 것처럼,
판단유보를 감당하지 못하는 성급한 독단은 희화화되기 밖에 더하겠는가.  

오늘 아껴두었던 장미차의 유통기한이 지나버렸다는 걸 발견했다.
선물받은 이 차를 마시려고 포장도 뜯지 않은 찻잔을 꺼내놓기도 했다는 게 웃음만 난다.
타이밍을 잃고 추억으로 화한 기억처럼,
유리병 안의 장미봉오리들, 이젠 그저 장식품에 지나지 않는다.

자신은 그냥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말하고 있다고 하지만,
다른 사람이 보았을 때,
누군가, 그 사람이 의식하고 있는 상대보다 우위를 점하고픈 의지에서,
교묘한 자기합리화를 반복하는 사람들이 있다.
기는 놈 위에 뛰는 놈 있고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 는 식상한 비유를 굳이 갖다대지 않더라도 알아볼 사람은 다 알아보게 되어있다.
당신의 이야기 뒤에 숨어 있는 의도가 무엇인지. 

때때로 스스로와 상대를 속이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것 또한 인간이라지만 오늘 문득 돌아보고 싶다.
인간의 유치함과 비겁함에 대해.
왜 그것을 위태로운 독선으로 치장할 수 밖에 없는가에 대해.

하늘이 또 다시 꺼져간다...
컴퓨터를 꺼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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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7-08-04 1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레볼루션 걸이 휘두르는 혁명의 칼날....꽤나 날카롭겠죠? ^^

비로그인 2007-08-04 1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슷한 또래의 심성에 신경이 쓰일 때가 좋은 시절이던데요.
젊다는 것이거든요. 하하
깐따삐야님, 좀더 평안하시기를

sretre7 2007-08-05 1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간만에 글을 올리셨군요..^^ 더운 여름 잘 보내세용..가을이 멀지 않았습니다

깐따삐야 2007-08-05 2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피스토님, 그렇게 대단치도 않습니다.ㅋㅋ

한사님, 제 나이에 걸맞는 격을 갖추고 싶어요. 고맙습니다.^^

sretre7님, 오랜만이에요. 가을이 머지 않았다는 말이 조금 위안이 됩니다.^^
 

학원을 나서는데 그가 서 있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바는 아니었지만 그 상황 자체를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막막했다.
비가 마구 쏟아지고 있었고,
빨간 우산을 내미는데 속으로 조금 감동했다.
그는 던킨도너츠에서 산 쵸코렛과 음료수를 주었고,
고마웠지만 바로 쳐다볼 수는 없어 눈을 피했다.

그가 내 마음에 들었다면,
나는 집에 좀더 늦게 오는 대신 어디라도 들어가 그와 이야길 나누었을 것이다.
이야기가 중요한 게 아니라 함께 있기 위해서.
하지만 나는 서둘러 버스에 올랐다.
이 우산 집에 가져가면 곤란한데, 라는 서운한 말만 남긴 채.

그는 참 좋은 사람이다.
나는 그에게 너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대신, 너는 참 좋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는 내게 넌 날 힘들게 하지만, 그래도 네가 좋다고 말한다.
너를 좋아하게 되면서 담배만 늘었어.
그 하소연을 나는 못 들은 척 했다.

항상 더 많이 사랑해 왔다고 믿었던 나는,
누군가 나를 많이 위해주고 아껴주면 행복할 것 같았다.
그 바람이 하늘에 닿았는지 마치 천사라도 된냥, 내게 베풀기만 하면서도 내게서 돌려받는 것은 투정과 신경질 뿐인 남자가 등장했고,
그의 출현이 황송하면서도, 목에 걸린 가시처럼 찝찝하고 불편한 건 왜일까.

나는 메리도 아닌데 그는 내겐 특별한 뭔가가 있다고 말했고,
내 모습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열심히 살아온 것에 비해 마땅한 보상을 받지 못해 땡깡만 부려대는 꼬맹이라면서,
왜 그렇게 스스로를 힘들게 하냐며 오빠처럼 굴었다.
나도 모르고 있던 나를 통찰해 준 것이 고마우면서도,
성실한 애정이 가져다주는 안락함이 어떤 것인지 알면서도,
나는 어째 그를 받아들일 수가 없다.
긴 시간 곁에서 나를 보아온 누군가의 말처럼,
나는 엄살이 심할 뿐, 이상만 더럽게 높은 건지도 모르겠다.

그가 건네는 모든 것들이
그의 마음 같아서,
받아드는 내 폼이 주춤거리고 어색하다.
그런 모습을 보이는 내가 싫고,
그 모습에 서운해 할 그의 눈빛을 피하는 일도 버겁다.
네 마음이니 내 알바 아니라고 말한 적도 있지만,
그는 나란 사람이, 마구 내뱉어대는 독설 이면에 한없이 물렁한 내면을 숨긴 갑각류라는 것 마저도 아는 사람이다.
너는 곧 내게서 도망치게 될거야, 내가 얼마나 시커멓고 우울한 사람인지 안다면.
내쳐도 내쳐지지 않으니 알아서 나가 떨어지게 되리라는 주문이었지만,
저런 말에 좌절하는 인간이 있는가 하면 오히려 탄력을 받아 더욱 최선을 다하는 인간도 있다는 걸,
그가 후자일 확률이 높다는 걸 이제는 알 것 같다.

너는 내 스타일이 아니야.
노력해도 소용 없어.
그 말을 하다가 밀양의 한 장면이 떠올라 속으로 흠칫했다.
하지만 난 전도연이 아니고 그는 송강호도 아니니까.

내가 마음에 둔 남자는,
곧 보러오겠다는 기약 없는 연락 뿐이고
나를 마음에 둔 그 남자는,
허탕을 치더라도 근처에서 서성댄다.
그리고 나는,
늦게 결혼해야 할 것 같다는... 생뚱맞은 결론을 내린다.
수많은 인연을 거치고 또 거친 후에야 '그'를 만날 것 같은 힘겨운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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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7-07-09 2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가 그가 아님이 애석하고 아쉬울 뿐이군요..^^
나머지는 노코멘트..^^

깐따삐야 2007-07-10 2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피스토님, 이럴 땐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 등의 말이 하나도 재수없게 들리지 않습니다.^^
 

장마철이라더니 오는 둥 마는 둥 내리는 빗속을 걸으며 친구를 만나러 갔다.

태우러 오겠다는 친구에게 걷는 게 좋다고 말했는데 이런, 중간에 우산이 고장나 버렸다.

하필 그 시점에서 빗줄기가 굵어지기 시작했고 순간적으로 욕이 튀어나왔다.

올케언니가 쓰라고 선물한 우산인데 무늬며 색깔이 예뻐서 좋아라 했지만 한 일 년이나 썼나.  

인도 한복판에서 우산을 오므렸다 폈다 하는 나를 이상하게 바라보는 사람들 눈길을 피해 최대한 얼굴을 가리고 그 동작을 반복했다.

차츰 머리에서 식은땀이 날 무렵, 시간이 지나도 보이지 않는 친구에게 전화를 했고 내가 건물 정문이 아니라 옆문에서 기다리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타고난 길치이며 방향치인 나에겐 너무나도 비일비재한 일이라 서로 대수롭잖게 여기는 분위기였다.

저 쪽에서 친구의 모습이 보였고 고장난 우산을 접어든 나는 쪼루루 친구에게 달려갔다.

보자마자 나보고 얼굴이 반쪽이란다. 공부하기 힘드냐면서.

화사한 원피스와 꽃장식 샌들을 신은 친구에게선 여성미가 물씬 풍겼다.

둔탱이인 나도 필시 뭔 좋은 일이 있는 것이여, 직감했다.

해물탕을 먹고 친구가 사는 아파트로 갔다.

넓은 평수는 아닌데 혼자 살기엔 대궐 같았다.

그녀에게 생긴 좋은 일이란, 남자친구가 생겼다는 것이었다.

놀라운 것은, 온 집안이 선물의 도가니탕이란 것.

그런데 그녀의 반응이 재미있었다.  

야, 이거 초상화 아냐. 그 분이 직접 그린거야??

아녀, 후배가 내 사진 보고 그린 거라던데.

우아, 좋겠다... 멋지다...

뭘, 나랑 하나도 안 닮았구만.

야, 이건 사진이야, 그림이야? 연필이야, 목탄이야?? 근사하당...

뭘, 사진기가 좋은 게지.

왠 꽃다발이 세 개나 있어? 다 그 분이 준거야? 그럼 꽃병에 꽂아야지.

뭘, 꽃병 같은 게 어딨어. 지가 알아서 마르겄지.

6개월 정도 만났으면 지금이 한참 좋을 때 아냐? 부럽다...

뭘, 삼 년 넘게 만나도 그냥 그런 사람들도 많더만.

대략 위와 같은 패턴이었다.

역시 예상대로 두 사람은 다섯 살이란 터울에도 불구하고 서로 꼬박꼬박 극존칭을 쓰고 있었고, 좁혀지지 않는 거리 때문에 남자 편에서 다소 안달하는 모양이었다.

거기다 그녀는 그 분을 아저씨라 부르고 그 분은 그녀를 00씨라고 부른단다.

건전무쌍하다 못해, 근래 들어 보기 드문 참으로 기묘한 커플이었다.

원래 느긋한 친구였다.

뭔가 하나 일이 생기면 그 일이 끝날 때까지 안달복달하고 주변사람까지 달달 볶아대는 나에 비해, 그녀는 뭔가 중대한 일이 발생해도 잠깐 고민하는 듯 싶다가 어느 새 드르렁드르렁 코를 곯아버리는 식이었다.

배포가 크고 듬직한 그녀와 여리고 소심한 나는 그런데로 궁합이 잘 맞았다.

물론 긴 우정을 쌓아오는 동안 갈등이 없지야 않았지만 인연이 되려는 모양인지, 틀어진 다음에도 서로를 놓지 못했다.

늘 콩닥거리는 가슴을 주체 못하는 나야 크고 작은 연애비화들이 많았지만, 왠만한 남자 정도는 같잖게 여기던 그녀에게 남친이 생겼다는 건 뉴스 중의 뉴스였다.

가만 이야길 들어보니 남자 분이 다정다감하고 애교가 많은 타입인 것 같았다.

아저씨를 만나도 설레지도 않고 이런 건 사랑이 아닌 것 같다고, 그만두자는 식으로 말했더니 남자 분이 크게 웃더란다.

사랑이란 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면서 이후에 더 지극정성으로 잘해주더란다.

왜 그런 거 있지 않은가.

아프면 죽 사서 현관 문고리에 걸어놓고 가고 오로지 최고급 유기농 과일만을 엄선해서 대령하는.

그녀는 이게 꼬시려는 건지, 진심인지가 헷갈린다고 하는데 엄마한테 평소 들어오던 말을 전했다.

야, 우리 아빠도 처음에 엄마 만날 땐 죽으라면 죽는 시늉까지 했대. 어차피 결혼해서 세월 지나면 남자는 열이면 열, 다 변한다는데 기왕 변할거면, 처음에라도 잘해주는 남자가 낫지 않을까?

그녀는 조만간 커플 동반으로 우리집에 방문하기로 했다. 

우리 엄마의 객관적인 평가를 듣고 싶다고.

특출한 관심법으로 딸내미와 엮이는 남자들을 모조리 재단하고 있는 우리 엄마라면, 보나마나 그녀가 아깝다고 할 것이지만.

팔이 심하게 안으로 굽는 나도 그녀가 더더더 좋은 남자를 만났으면 하는 바람이 있지만, 그래도 일생의 첫 연애인데 다정하고 배려심 있는 남자를 만나서 다행이란 생각도 들었다.

돌아와서 엄마께 말씀드렸더니 혼자 객지에 나와 있어서 외로워서 더 흔들릴 수도 있는거다, 결정을 내리기엔 뭔가 아쉬운 게 있으니 마음이 확 동하지 않는 거라면서 역시나... 남자를 보나마나 그녀가 아깝다는 결론을 내리셨다.

바보 소리 듣는 찌질이 같은 연애만 해온 나나 연애경험이 전무후무한 그녀나 우리에게 사랑의 자발성, 연애의 자율성이란 게 과연 있기는 있는 건가 싶다.

우리는 스타일은 다르지만 둘 다 참 겁이 많은 것 같다.

항상 누군가를 만나면서도 마음 한 귀퉁이를 꼭 붙잡은 채, 전부를 내어준 적이 없는 나나 본인의 마음을 잘 몰라서 참고인들의 의견에 경청하고 있는 그녀나, 우리는 올인다운 올인을 해보지도 못하고 그냥 여차저차 하다가 타이밍 맞춰 나타나는 사람과 맺어지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녀는 나처럼 파견으로 대학원에 오고싶다고 했고 담임도 안식년이 필요하다고,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인문계 고등학교의 고3 담임을 맡은 그녀는 이른 출근과 늦은 퇴근으로 체력이 바닥날 지경이란다.

교단에선 젊은 게 죄다, 너도 이제 좀 숨돌릴 때 되었어... 남겨두었던 수험자료를 모두 넘겨주기로 했고 도울 게 있으면 돕겠다고 말했다.

나는 연애하는 그녀를 부러워하며, 그녀는 공부하는 나를 부러워하며, 각자의 일상에 최선을 다하기로 부추겨준 다음 헤어졌다.

선머슴처럼 까칠하게 캠퍼스를 누비던 우리는 어느새 서로의 귓볼에서 반짝이는 귀걸이를 흘끔거리는 숙녀(?)가 되었다.

사는 데엔 나름 열심이어도 여전히 남자, 하면 해저2만리요, 연애, 하면 겁나먼왕국인 숙맥들이지만 이 모든 것이 성숙의 한 과정이라면 우리도 언젠가는 사랑과 연애에서도 건강한 자율성을 획득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고 해도 완벽한 인생, 완전한 성숙이란 없겠지만 어차피 중요한 건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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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6-25 17: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월 지나면 남자는 열이면 열, 다 변한다는데 기왕 변할거면, 처음에라도 잘해주는 남자가 낫지 않을까?"
남자들이 다 그렇지 않답니다. 하하


Mephistopheles 2007-06-25 1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래서 다정하고 배려심 많은 남자가 상처를 의외로 많이 받는다니까요..
(친구분과의 대화에서..그냥 자켄과 셋쇼마루가 연상되버렸습니다.)

깐따삐야 2007-06-25 2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사님, 왜 제 주변엔 그런 남자들만 있어가지구 못된 편견을 갖게 했을까용...ㅜ.ㅜ

메피스토님, 메피스토님 같은 네추럴 본 마당쇠는 다들 어디에 숨어 있는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