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무늬
오정희 지음 / 황금부엉이 / 2006년 1월
평점 :
품절


중학교 시절, 어느 행사에 가서 오정희 선생님을 실제로 뵌 적이 있다.
단아한 체구에 검고 맑은 눈동자가 인상적이었는데 소설가라기보단 엄마 같고, 큰이모 같은 느낌이 났다.
춘천에 살고 계신다 했는데, 재작년인가 들렀던 춘천은 적막하고 쓸쓸한 느낌이었다.
단순한 우연인지 젊은이들이 잘 눈에 띄지 않았고,
일본 교토의 거리에서나 종종 마주칠 법한 자그맣고도 깔끔한 노인들이 알듯말듯한 표정을 한 채 내 곁을 스치고 지나갔다.
닭갈비에는 떡과 함께 우동사리가 곁들여 나왔고,
한여름이라 전력량 초과였는지 때때로 에어컨이 꺼지고 스크린이 꺼지는대도, 다들 무심한 표정들로 일관했다.
아무런 놀라운 일도 없을 법한 인상을 주는 도시, 원하기만 하면 비밀스럽게 은둔하기 좋을 것 같은 도시였다.
그 곳에서 오정희 선생님은 밥 짓고, 글 쓰고, 아이들을 키우고, 남편을 뒷바라지하며 지금껏 살아오고 계신다.

마음이 산란할 때면 내가 무심코 집어드는 책들은 대개 이미 세상에 없거나, 아니면 연로한 작가들의 것이다.
대청마루에 나와 앉아 시원한 수정과 앞에 놓고, 현자들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듯,
아늑하면서도 나를 몽땅 드러내 보이며 기대고 싶은, 편안한 기분을 동시에 느낀다.
이 책 역시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고 한 수 크게 배우고 난 것처럼 뿌듯함을 느꼈다.

그 나이를 이미 지난 사람들은 '희망과 가능성으로 푸르디푸른 아름다움'이라 의심 없이 말하지만 삶의 실체는 잡히지 않는 채로 점차 생활인, 사회인으로서의 책무, 존재 의미를 찾고자 하는 안팎의 요구에 시달리는 20대의 생과 사랑은 얼마나 외로운가. - pp. 36-37
항상 내 나이를 사랑하며 살길 바라지만 너무 가까이 있다보면 그 실체와 소중함을 잘 모르듯 나 또한 나의 이 징글맞은 20대가 어서 지나가기를,
어서 어서 늙어서 야생화처럼 들끓는 열정보단 마음에 한 두 송이의 곰팡이꽃이 피어나기를, 하고 바라곤 한다.
육신을 보면서는 세월이 비껴가기를 원하고 마음은 공자님이 되길 원하니, 엄마 말씀을 빌리자면 '욕심이 땅두께 같다'.

조리대와 나란히 놓인 책상에서 글을 쓰면서 밥짓기와 글쓰기가 결코 생각처럼 별개의 것이 아니라는 것, 문학이라든가 창조적 생활이란 저 멀리서 나부끼는 깃발이 아니라 지금, 여기, 발 딛고 있는 자리를 굳건한 터전 삼아 발아하는 것이라는 나름대로의 깨달음을 얻었던 것이다. - p. 87
내가 항상 겁을 냈던 것 중의 하나는, 한 가지 일이나 한 가지 상황에 내 자신이 매몰되어 버리는 것이었다.
완벽한 몰두, 그렇지 않으면 無를 택하는 외곬 기질이 두려웠다. 
쓰잘데기 없는 고집과 자의식 포화 상태를 오갔던 결과는 항상 '현재상태 불만족'이라는 불온한 경고등이었다.  
칭얼대는 듯 하면서도 이룰 건 다 이룬다고 나보고 괜한 엄살쟁이라고 하는 사람도 보았지만,
인용한 글처럼 저 멀리서 나부끼는 깃발만 쳐다보느라 발 딛고 서 있는 자리에 좀비처럼 떠다니는 기분도 과히 좋지만은 않다.
생활과 실존와 이상이 분리되어 있지 않음을, 그것의 일치와 조화가 곧 생활이고 실존이고 이상임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그 시절, 호감을 갖고 몇 차례 만난 남자가 있었다. 그는 만날 때마다 우유를, 그것도 따끈하게 데운 것으로만 마셨다. 나는 그것이 의아했고 그는 내가 커피만을 고집하는 것에 대해, 왜 몸에 나쁜 커피를 마시는가 하고 못마땅해했다. 결국 그와는 곧 더 이상 만나지 않게 되었다. 그는 커피만 마셔대는 여자의 퇴폐성, 불건강함이 싫었을 것이고 나는 나대로의 고정관념으로 우유만 마시는 남자의 유아성이나 생활성, 동물적인 건강성이 싫었던 것일 게다. - p. 92
이 구절을 읽다가 쿡쿡, 웃음이 났다.
요즘 유리볼이며 도시락이 증정품으로 붙어 있는 인스턴트 봉지 커피를 열렬히 마셔대는 나도 동의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때로 달고, 뜨겁고, 진한 커피는 건강 상의 이유로 우유만 마셔대는 심심한 남자보다 훨씬 더 큰 위안과 기쁨을 준다.
전에 한방차 류의 건강차를 유독 즐겨마시는 사람과 알고 지낸 적이 있었는데, 곁에만 가면 탕약 냄새가 나는 것 같아(실제로 그렇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진지한 표정까지 우스웠던 기억이 있다.
우유 한 컵 하시겠어요? 탕약 한 사발 어떠세요?
아, 완전 깬다.

"엄마, 바람이 불어. 바람이 무서워. 바람은 어디서 살지..."
오정희 선생님은 유치원에 다녔던 아이의 말에서 영감을 얻어 <바람의 넋>을 썼단다.
보이지 않는 것, 잡을 수 없는 것, 하지만 분명히 있는 것.
그러한 것들에 넋을 불어넣는 일.
그럼으로써 미지의 것에 대한 공포를 애정으로 바꾸는 일이 곧 글 쓰는 일, 창조일지도 모르겠다.  

저는 행복한 삶이라는 말보다 충만한 삶이라는 말을 좋아하고 그 충만함이 문학을 통해서 이루어지길 바랐습니다. 제가 가지 않은 어떠한 다른 길에 대한 선망도 동경도 없었고 능력조차도 없었다는 것은 드문 축복인 것 같습니다만 생각해보면 언제나 자신이 가장 큰 적이 아니었던가 싶습니다. 작은 성취에 연연해했으며 오랜 시간을 두고 해나가야 하는 일의 과정에서 있을 수 있고 있어야 하는 작은 실패를 지나치게 두려워하는 소심함이나 문학에 대한 외경심이 너무 큰 데서 오는 상대적인 자신의 왜소함에 너무 예민했던 점 등이 그것이지요. - p. 173
나는 작가도 아니면서, 위의 구절에 완벽하게 공감했다.
오정희 선생님은 원고지에서 줄 바꾸기를 잘 안 하는 작가로 한때 유명했단다.
실제로 작가 본인이 직접 밝히기도 했는데, 원고지의 여백을 보면 성실히 써내지 못했다는 생각에 왠지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고.
비교적 다작은 아니지만 조경란이나 윤성희 등, 젊은 여류작가들이 글쓰기의 모범으로 삼고 있듯 꼼꼼하고도 유려한 문체는 다 저러한 각고의 성실성에서 비롯되는 것인가 보다.

나는 최소한 30센티미터짜리 자를 가지고 다니며 상대방과의 거리를 유지해야 안전하다고 생각할 만큼 사람 사이의 거리 조절에 자신이 없었다. 다정도 병인 것이어서 그렇게 분수없이 사람을 좋아하고 사람 사이의 정을 중히 여기면서 전부가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덤비는 기질 때문에 종종 피차 상처를 입거나 낭패를 겪는 일이 드물지 않았던 것이다. - p. 232
평론가 김병익 선생님을 회상하며 쓴 글의 일부인데 흡사 내 이야길 하는 줄 알았다.
겉으론 그렇게 차돌맹이처럼 당차고 야무져 보이셨는데... 하다가,
나도 겉모습은 남들이 오해하기 딱 좋게 생겼다는 생각에 역시 사람은 겉만 봐선 모른다는 식상한 결론.  
그런데 30센티는 너무 짧지 않은가.

황혼에 접어드는 노작가들의 글을 읽다 보면 역시 인생사 거저 얻는 것이 없다, 란 생각이 든다.
스타일에 살고 스타일에 죽는다는 듯 오로지 포즈 잡기에만 연연하는 요즘 세태를 향해,
낮지만 곧은 목소리로 보다 겸손해질 것을, 세상을 좀더 넓게 볼 것을 타이르는 듯 하다.
책의 힘이 의심스럽다가도 이렇듯 부피감 있는 책을 읽고나면 역시 또 다시 훌륭한 작가, 좋은 책의 위력을 믿게 된다.
변덕스런 계절 속에서 이렇듯 한결같은 목소리를 만나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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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니 2007-08-10 16: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저에게도 필요한 책인 거 같아요.

깐따삐야 2007-08-10 2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치니님, 와닿는 구절이 많은데 모두 옮겨놓을 수가 없어 아쉬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