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왠만한 거리는 걸어다니는 걸 즐기는 나는 요즘 같은 날씨가 참 난감하다.
출발지와 목적지의 중간 즈음부터 후두둑, 비가 쏟아지기 시작하면 버스를 기다리기도 뭐하고 택시를 타기도 뭐해 그냥 청바지 밑단을 홀딱 적신 채로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비록 면허가 있지만, 나의 앙증맞은 마티즈는 시동이 걸리는 그 순간부터 완전 트랜스포머다.
도로에만 나가면 주변의 모든 차들을 긴장시키며 살상무기로 화하는!
아빠는 내가 모는 차는 절대 함께 타지 않겠다고 선포하시기에 이르렀고,
한 마디로 핸들만 잡으면 겁대가리 없어지는 나를 우려하여 그냥 넌 평생 B&W (Bus and Walk)나 이용하라신다.
나는 운전하는 게 때로 재미있고 고속도로에서 속도를 내는 일은 더 즐겁다.
관광버스와 충돌할 뻔 했을 땐 가슴이 철렁했지만...
나도 주변 차량들과 사이좋게 지내며 운전을 잘하고 싶다.
아무튼 엊그제 학원 갈 무렵,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해서 과감히 우산을 접고 택시를 탔다.
그런데 내가 좌석에 오르자마자 기사 아저씨의 푸념이 속사포로 이어졌다.
우리 아파트 앞에서 어떤 대학생 아가씨를 두 번을 태웠는데,
탈 때마다 하도 빨리 가라고 재촉해대는 바람에 감시카메라에 찍혀 벌금을 14만원이나 물어내셨다는 거였다.
그리고는 절대 빨리 가란 소리 하지 말라고 당부에 당부를 거듭하셨다.
적절히 맞장구를 쳐주며 저는 시간 넉넉하니 천천히 가세요... 해드렸더니 아주 신이 나셨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택시를 타서고, 식당에 가서고, 얼마나 빨리빨리 소리를 해대는지에 대해 함께 수다를 떨었고 드디어 학원 앞에 도착,
택시 안의 미터기는 꺼져 있었고 아저씨는 이거 보라며 손가락으로 미터기를 가리키시더니, 내게 기본요금만 받으셨다.
빨리 가란 말에 긴장해서 카메라도 의식 못하셨던,
이제 그 아가씨 얼굴도 안다고, 다시는 안 태울거라고 다짐하시던,
하소연 하느라 미터기 켜는 것조차 깜빡하셨던,
안쓰럽고도 귀여운 택시 기사 아저씨 덕분에 반짝 해가 든 것처럼, 기분이 밝아졌다.
아마 내가 택시를 몬다면 그 아저씨처럼 일주일 열심히 벌어서 하루만에 벌금으로 날리는, 얼떨떨한 기사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왠지 아저씨가 돈을 많이 벌어서 부자가 되셨으면 좋겠다, 는 초등학생 같은 일기를 쓰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