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와 담배'라는 영화 외에 몇 편을 더 보았고 권여선의 소설들을 모조리 읽어치웠으나,
담배를 배워보고 싶단 생각, 이렇듯 정공법으로 써나간 소설만 읽어도 될까 싶은 사소한 갈등 뿐.
마음 잡고 리뷰를 쓰진 못하겠다.
요즘의 내 언어들은 여름 날씨와 닮아 있다.
쨍긋하며 해가 반짝 들었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굵다란 집중호우와 천둥번개가 사방을 막아서는가 하면,
거실의 불을 켜고 커피를 끓일 때 즈음이면 다시 차오르는 햇살과 엄습해오는 더위에 슬며시 약이 오른다.
나를 바라보는 누군가의 마음도 그랬겠지 싶다.
그럼에도 나는 기어이 마음대로 오락가락 할 수 있는 날씨가 부럽다고 말한다.
아무런 변명도 필요 없이 사람들은 알아서 적응해 주니까.
나는 미안해 하는 대신,
더욱 자유롭게 횡포를 부리지 못해 이젠 날씨마저 우러러 본다.
모두 접었다.
나를 향한 것이든, 내가 향해가던 것이든.
사실 칼자루는 내게 있었다.
그러나 날카로운 칼날의 방향을 내게로 맞췄다.
이젠 마음의 통각마저 무뎌진걸까.
불필요하다, 는 차가운 결론 앞에서 마냥 담담하다.
회화 수업 중에 동갑내기 남자와 본의 아니게 격론을 벌였다.
independent mate와 dependent mate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나는 그가 가진 이기적인 이중잣대를 반박하기 시작했고 그는 같은 클래스의 다른 남성 멤버들의 도움에 힘입어 공박에 나섰다.
마냥 해사한 미소만 짓고 있던 다른 여성 멤버들과 내 눈길이 마주쳤고, 그들은 공격에 나선 남성들 만큼이나 내게 흥미로운 시선을 보냈지만 나는 내가 뭔가 실수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학부 때에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이후로 안드레아라는 영국인 강사는 내게 revolution girl이라는, 내 외양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법한 별명을 지어주었다.
그리고는 생긴 것만 멀끔할 뿐, 수줍음 많고 소심했던 한 남학우와 나를 엮어주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도서관 휴게실에서 내게 안녕~ 하고는 얼굴이 벌개지며 서둘러 사라지던 그를 도무지 좋아할 수가 없었다.
친구들이 저 오빠 귀엽다, 고 말하는 앞에서 나는 낮게 뇌까렸다.
남자가 샤프하면서도 적극적인 구석이 있어야지... 저걸 어따 써...
원어민 강사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그에게 어서 I'm sorry라고 말하라고 했지만 그 남자의 독선도 나만큼이나 질겼고,
나는 속으로 코웃음을 치며 뇌까렸다.
지 무덤을 지가 파네... 저걸 어따 써...
수업이 끝나갈 무렵 하염없이 생글거리면서 넌 어쩜... 이라며 거의 체념하다시피 말하는 그에게,
Don't say something in Korean! 이라고 소리쳤다.
그리고는 생각했다.
나란 인간은 하나도 달라진 게 없구나.
내 무덤을 내가 파네... 이걸 어따 써...
극단과 극단만을 오가는 내 마음의 괘종시계.
늘 한가운데에 멈춰있게끔 배터리라도 제거하든가.
결국 칼자루를 손에 쥐고도 마늘 한쪽 잘라보지 못한 채 스스로를 찌르는 것처럼,
판단유보를 감당하지 못하는 성급한 독단은 희화화되기 밖에 더하겠는가.
오늘 아껴두었던 장미차의 유통기한이 지나버렸다는 걸 발견했다.
선물받은 이 차를 마시려고 포장도 뜯지 않은 찻잔을 꺼내놓기도 했다는 게 웃음만 난다.
타이밍을 잃고 추억으로 화한 기억처럼,
유리병 안의 장미봉오리들, 이젠 그저 장식품에 지나지 않는다.
자신은 그냥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말하고 있다고 하지만,
다른 사람이 보았을 때,
누군가, 그 사람이 의식하고 있는 상대보다 우위를 점하고픈 의지에서,
교묘한 자기합리화를 반복하는 사람들이 있다.
기는 놈 위에 뛰는 놈 있고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 는 식상한 비유를 굳이 갖다대지 않더라도 알아볼 사람은 다 알아보게 되어있다.
당신의 이야기 뒤에 숨어 있는 의도가 무엇인지.
때때로 스스로와 상대를 속이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것 또한 인간이라지만 오늘 문득 돌아보고 싶다.
인간의 유치함과 비겁함에 대해.
왜 그것을 위태로운 독선으로 치장할 수 밖에 없는가에 대해.
하늘이 또 다시 꺼져간다...
컴퓨터를 꺼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