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는 주야장천 술자리가 많다. 내일까지 마시고 나면 반가운 토요휴무구나. 직원 회식에 과별 모임에 동료샘 집들이까지 어쩌다보니 한 주에 빡빡하게 몰리게 되었다. 마시게 되는 술 종류도 다양해서 소주부터 막걸리, 구기자술에 이르기까지 술에 쪄든 일주일(溢酒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싶다. 아침마다 누룩내 풀풀 풍기면서 속이 쓰리다는 딸내미 때문에 엄마는 아침마다 술국을 끓이신다. 지 애비랑 어쩜 저리 똑같냐는 말도 이젠 지겹고나.

나는 술을 잘 못 마신다. 사람들은 나의 의욕적인 식성을 보고 술도 잘 마실거라고 지레 짐작하곤 하지만 술은 밥처럼 술술 넘기질 못하겠다. 신입생 환영회 때 과 선배들이 따라준 레몬소주 한 잔을 놓고 장장 세 시간이 넘도록 반 잔을 채 비우지 못했었다. 맛도 없는데다 맛도 몰랐고 누군가 술을 따라주면 얼른 그 잔을 비우고 그 사람에게 다시 술잔을 건네는 게 기본 주도(酒道)라는 것을 전혀 몰랐을 시기였다. 결국 다들 취해서 헤롱헤롱 쓰러져 가는 모습을 눈을 말똥말똥 뜬 채로 지켜보다가 누군가 입을 틀어막고 밖으로 나가면 등이나 툭툭 두드려 주는 것이 내 맡은 바 소관이었다. 술발이 안되면 안주발로, 안주발이 눈치 보이면 말발로 버티다가 이도저도 안되겠다 싶으면 삐삐 음성 들으러 가는 척 하거나 화장실 가는 척 하고 영영 돌아오지 않는 재수 없는 인간이 바로 나였다. 그러나 동아리에 들어가자 사정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동아리 선배들과 동기들은 학과 내의 그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동아리 괴물들은 열변을 토하고 난 이후엔 꼭 술을 토했다. 그것도 얌전하게 토하지 않고 소주병을 깨고 고성방가도 서슴지 않으면서 무슨 퍼포먼스 치르듯 토하곤 했다. 쐬주와 쌩라면만 있으면 캠퍼스가 불타고 문단이 박살나고 교육계가 아작나고 정치계가 파토나고 술자리가 끝나갈 무렵 즈음이면 더러운 세상 따위는 군데군데 신발 자국이 찍힌 채로 시궁창에 빠져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나는 딱딱해진 간을 씹고 입천장을 긁는 생라면을 오도독거리면서 술잔을 비우듯 머리를 비우고 마음을 비운 선배들을 멍하니 바라볼 때가 많았다. 청춘을 괴롭히는 이 세상이란 너무나 고달프고 고단한 곳이라는 멋모르는 결론을 내리면서. 선배들은 내게 술을 권하다가 결국 포기했지만 나도 사실은 그들을 보면 왠지 함께 취하고 싶을 때가 많았다. 넌 안 마셔도 마신 것 같아 다행이다, 라는 알쏭달쏭한 말로 위안을 받긴 했지만.

그처럼 술과 나의 관계는 본숭만숭하고 떨떠름했지만 술과 맞장 뜨다가 딱 한 번 필름이 끊겨본 적이 있다. 아마도 몹시 속상한 일이 있었던가 보다. 수업이 끝나고 자취방으로 돌아오면서 근처 마트에서 맥주 한 병과 소주 한 병, 새우X을 샀다. 맥주와 소주, 양주 등을 섞어서 폭탄주를 만드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고 가난한 대학생이었던 나는 양주까진 차마 못 사고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그냥 마시자는 생각에 맥주와 소주만을 샀다. 그리고는 술을 마시기 위해(?) 이불을 털고 방청소를 하고 빨래를 돌렸다. 세탁기에선 돌돌돌 빨래 돌아가는 소리가 들려오고 맥주 한 병과 소주 한 병을 양손에 들고 번갈아가면서 마시기 시작했다. 소주가 너무 써서 소주 한 모금 마시고 얼른 맥주 세 모금 마시고 하는 식으로 무슨 괴로운 신고식 치르듯이 두 병을 모두 마셨다. 그리고나서 세탁기에서 들리는 삐, 소리를 듣고서 비틀거리며 일어났던 것까지 기억을 하는데 그 이후의 기억은 없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참으로 신기하게도 맥주병과 소주병은 얌전하게 자취방 현관 앞에 놓여져 있었다. 다만 세탁기 안의 빨래는 쭈글쭈글 말라 있었고 나는 양말을 한 쪽만 벗고 있었다. 그 날의 맥주 한 병과 소주 한 병이 내 생애 최대의 음주량이었고 필름이 끊겨 본 단 한 번의 어설프고 시시한 에피소드로 남아있다.

졸업을 하고 사회에 나와서는 술을 잘 마실 것 같은데 의외다, 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원체 밥을 잘 먹어서 술도 잘 마실거라고 지레 짐작하는 건지, 술 잘 먹게 생긴 관상이라는 게 따로 있는 건지, 아님 그도저도 아니고 괜히 술 먹이려고 설득하는 기술의 하나인지 술자리에서 빼면 꼭 저런 말을 듣곤 했다. 거기다가 아직 가정도 없는 처녀인데다 장롱면허만을 소지하고 있는 처지이다 보니 베테랑 주객들의 마수에 걸려들 확률이 높아지는 건 어쩌면 당연했다. 한편, 어디서 그런 그럴싸한 근거들을 주섬주섬 주워 모아오는지 내가 꼭 이 술잔을 받아서 원샷을 해야 하는 당위성을 세뇌 당하는 일이 간혹 발생하곤 했다. 게다가 대개 술 권하는 분들은 아버지뻘이나 어머니뻘 혹은 이모뻘이라도 되시는 어른들이 아닌가. 물론 옛날의 선배들이나 지금의 어른들이나 내게 하는 말은 똑같다. 대개는 허물없애고 솔직해지기 위해서 마시는데 난 그럴 필요가 없다고. 칭찬같기도 하고 욕 같기도 하다. 어쨌든 소주 한 잔 놓고도 술 취한 사람보다 더 많이 웃고 더 많이 떠드니 더 먹이면 집에 들어가지 말고 계속 놀자고 할까봐 그러는 건지 나랑 조금 지내본 사람들은 술을 줄기차게 권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요 며칠은 너무 과음을 했다. 구기자술의 경우는 맛도 좋고 뒤끝도 깔끔하다 해서 어지간히 마셨고 어제 마신 소주가 사실은 가장 치명적이었는데 능이니 싸리니 목이니 송이니 온갖 버섯이 교자상을 장식하고 있어서 뿌듯함이 샘솟는 찰나, 권해오는 술을 사양하며 실랑이를 벌이며 먹기엔 너무 시간을 빼앗기는 것 같아서 그 술잔을 홀짝홀짝 받아마시면서 먹다보니 배 부른데다 술까지 취해서 혼미하고 알딸딸한 상태로 집에 돌아왔다. 교자상 두 개를 싹쓸이하고도 모자라서 원래 버섯이나 산나물은 막걸리와 먹어야 제격인데, 라고 웅얼거리면서.

결국 오늘은 하도 머리가 띵하고 몸이 늘어져서 정보실 쇼파에 앉았다 눕다 하면서 휴식을 청했다. 매일 아이들 앞에 서야 하는 선생이 되어가지고 참 잘하는 짓이다. 물론 교실에서는 해사하고 말짱한 얼굴로 잘난 척을 하다 나오지만 아이들의 눈은 정확한 법이고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 앞으로는 좀 자중해야겠다. 엄마는 요즘 날 보면서 지 애비를 쏘옥 빼닮았다고 하시지만 난 아빠와 같은 술의 프로이자 명주객이 되기엔 아직 턱 없이 부족하다. 안주 없이도 술잔을 기울일 줄 알고 술 마신 다음날 다시 술로 해장을 하는 의연함 앞에서 나는 무릎을 꿇으리라. 술과 나와의 거리는 딱 이 정도였으면 좋겠다. 가끔만 만나고 기분 좋을만큼 같이 있고 언젠가 또 만나겠지만 안 만나도 아쉽지 않은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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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6-05-11 2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맥주 한 병과 소주 한 병을 양손에 들고 번갈아가면서 마시기 시작했다.-
이것이야말로 양주가 아니고 뭐겠습니까..??

마늘빵 2006-05-11 2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전 병맥주 셋, 소주 네 잔이면 끝납니다.

마늘빵 2006-05-11 2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글고 저건 AND 가 아니고 OR 랍니다. 약하죠.

마태우스 2006-05-12 1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술을 권하는 걸 넘어서 강요하는 사람, 정말 싫어요. 전요, 절대로 술 안권해요. 그냥 저 혼자 마셔요. 다른 사람 잔이 비면 잽싸게 따라주긴 하지만요. 술을 못마시는 사람의 자유도 인정해주는 그런 술자리가 확산되면 좋겠어요

깐따삐야 2006-05-13 0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피스토님, 님이 구사하시는 pun은 늘 할 말을 잃게 만듭니다. ㅋㅋ

아프락사스님, 저마냥 의외로(?) 술에 약하시네요. 음악을 하시는 분이라서 술을 잘 드시겠거니 했어요.

마태우스님, 그러게나 말이죠. 먹고 죽자는 식의 술문화는 사라졌음 좋겠어요. 술자리가 즐거워야지 부담스러워선 안되잖아요. ^^
 



늦은 점심으로 엄마와 함께 칼국수를 먹었다. 멸치와 전복내장으로 국물을 낸 다음 부추와 버섯을 넣고 끓인 칼국수. 들깨를 넣은 다대기도 별미였고 적당히 익은 열무김치도 맛있었다. 엄마가 국수를 끓이는 동안 나는 엄마와 함께 들을 CD를 구웠다. 엄마와 내가 함께 좋아하는 흘러간 옛노래들로 선곡했다. 송골매의 희나리, 양수경의 그대는, 어니언스의 편지... 등등. 노래를 들으며 칼국수를 먹는 시간. 편안한 휴일 오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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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5-05 1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맛있고 좋은 시간 보내셨네요^^

마태우스 2006-05-05 2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니는 국수를, 따님은 씨디를 각각 굽는 오후라, 생각만으로도 다정하고 멋져 보입니다

히피드림~ 2006-05-06 0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나중에 제 아들과 같이 좋아할 수 있는 노래를 함께 들을 수 있을까 문득 궁금해 지네요.^^

깐따삐야 2006-05-06 0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만두님, 들러주셔서 감사합니다. 편안한 주말 보내세요. ^^

마태우스님, 저렇듯 다정하다가도 때론 서로 안 볼 것처럼 싸우기도 한답니다. 모녀 관계는 끈끈하고도 오묘한 애증관계인 것 같아요.

punk님, 제 감성 코드가 좀 복고풍이라서요. punk님께도 꼭 그런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
 

- 금낭화






- 매발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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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5-01 15: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넘 이뻐요^^

치유 2006-05-02 1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게 매발톱이에요??듣긴 들었는데 이렇게 보긴 첨 보는듯 하네요..
너무 이쁘네요..언제봐도 금낭환 너무 이쁘구요..

Mephistopheles 2006-05-02 14: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꽃이름은 매섭기 그지 없지만.. 꽃만큼은 너무 아름답네요..^^

2006-05-03 12: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깐따삐야 2006-05-03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님,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방금 참가하고 왔어요. ^^

실비 2006-05-03 2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사진 잘 찍으셨네요.. 첫번째 사진이 무지 맘에 드는걸요^^

깐따삐야 2006-05-04 0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비님, 8강에 오르신 거 축하드립니다. 꼭 우승하시길 빌게요~!
 

요며칠 두통에 시달렸다. 엊그제 저녁엔 두통약을 먹고 겨우 잠이 들었고 어제 아침에도 두통약을 먹고 출근을 했건만 머리가 아프다 못해 급기야는 눈두덩이가지 욱씬거리기 시작했다. 눈동자를 손으로 만져보니 뻐근한 감이 왔다. 감기로 고열에 시달릴 때나 느껴지는 증상인데 이마를 짚어보면 약간의 미열만 있을 뿐. 게다가 콧물도 나지 않고 목도 아프지 않으니 감기 초기 증상도 아니었다. 그렇게 온종일 아팠다가 퇴근 무렵 즈음해서는 조금 괜찮아지는가 싶더니 저녁이 다가오자 다시 고통이 엄습하기 시작했다. 다른 데는 모두 말짱한데 오직 머리만이 욱씬욱씬, 뜨끈뜨끈. 요즘 신경 쓰는 일 있니? 아니, 그런 거 없는데. 너무 사소한 거에 신경쓰지 마. 너 아니어도 세상은 다 굴러가게 되어 있어. 그치, 아마 내가 없으면 더 잘 굴러갈지도 몰라. 흐흐. 엄마는 내가 요즘 많이 피로한 모양이라며 귤껍질과 대추 닳인 물에 꿀을 넣은 차를 준비해 주셨다. 엄마는 잘 알고 계신다. 나란 사람이 나이만 남부럽잖게 먹었을 뿐 여전히 어린 애고 여린 애라는 것을. 나도 엄마를 조금은 알고 있다. 엄마란 사람이 연세만 남부럽잖게 드셨을 뿐 여전히 나와 같은 여성이고 누구보다 매력적인 분이라는 것을.

엄마는 그간 내가 보아온 사람 중에 가장 현명하고 근사한 사람이지만 사실은 내가 알고 있는 사람 중에 가장 슬픈 사람이기도 하다. 나는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엄마 눈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겠다. 내가 쉽게 센치해지는 사람이라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엄마의 깊고 짙은 눈동자를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콧등이 시큰해질 때가 있다. 엄마는 당신의 운명에 능동적으로 순응해 오신 분이다. 눈앞에 벽이 보인다고 해서 그 운명을 바꾸려고 하지 않았고 그 운명 내에서 어떻게든 끝장을 보려고 하셨다. 사방이 온통 막막한 벽 뿐일 때, 그 벽을 피하려고 들면 실패나 죽음 뿐이지만 그 벽을 피하지 않으면 사람은 더 강한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는 거야. 엄마보고 다시 살라고 하면 힘들어서 못 살겠지. 그렇지만 인생이 다행히 한 번 뿐이잖니. 내가 한창 뒤늦은 사춘기를 겪으며 힘들어하고 방황할 때 엄마는 저처럼 무슨 위인전기에나 나올법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셨다. 다른 사람이 그런 말을 했다면 그다지 와닿지 않았겠지만 곁에서 엄마의 삶을 익히 보아온 나는 엄마가 그 짙은 눈동자에 눈물이 아니라 웃음을 띄우며 낭랑하게 말씀하시는 것을 보고 감동을 받았었다. 그리고는 약해질 때마다 내가 엄마 딸이라는 것을 떠올리곤 했다. 엄마 딸인데 엄마의 반의 반의 반이라도 닮았겠지. 그렇다면 이렇게 주저앉으면 안되는 거지. 아빠를 닮아 선천적으로 부드럽고 유약한 성품은 내가 뭔가를 이루려고 하는 찰나에 늘 우유부단하게 내 의지를 흔들어 버리곤 했지만 너희 엄마는 잠도 안 자고 너희를 키웠다는 주위 지인들의 이야기처럼, 밤낮에 걸쳐 엄마로부터 받은 후천적 교육 덕분에 나는 목표만 하나 정해지면 비교적 끈기 있게 밀고 나가는 근성을 심신에 익힐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엄마에게 잘해드리는 방법을 잘 모른다. 늘상 받기만 했던 사람은 주는 것이 어색해지고, 늘상 주기만 했던 사람은 받는 것이 또한 불편한 법이다. 전에 놀러왔던 후배가 집으로 돌아가던 중에 엄마와 통화하는 내용을 듣고 깜짝 놀랐다. 엄마가 뭐라셔? 우리집에서 자고 가니깐 걱정되셨나 보다. 아니요, 집에 오는 길에 백화점 들러서 H화장품 사오라고 하시네요. 화장품 사오라고 전화를 하셨어? 네, 저희 엄마는 꼭 그 화장품만 쓰세요. 피부에 잘 맞거든요. 나는 이 날 이 때까지 우리 엄마 피부에 무슨 화장품이 잘 맞는지 신경을 쓴 적도 없고 화장품을 사드린 적은 더더군다나 없다. 시집온 언니가 그 동안 선물한 것들이 꽤 있을텐데도 그것들의 자취는 온데간데 없고 엄마의 화장대는 늘 예전과 똑같이 휑하다. 내가 맛있는 것을 먹으러 가자고 하면 엄마는 시장을 봐다가 그 음식을 식탁에 올리시고 영화를 보러 가자고 하면 명절 연휴 때 텔레비전에서 할테니 기다렸다가 그 때 보신단다. 집안에도 꼭 필요한 것 이외엔 당최 들여놓질 않으신다. 물론 그럼에도, 내가 친구들을 마음대로 집안으로 불러들이고 사람들을 초대해서 먹여주고 재워주고 하는 것은 백퍼센트 엄마를 믿고 그러는 것이긴 하다. 사람들은 우리집이 무척 수수한데다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하다는 것에 놀라고 엄마의 맛깔스런 음식솜씨에 반하고 엄마가 연세에 비해 젊고 재미있으시다는 것에 즐거워한다. 그래서 손님 치르는 일이 쉽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뻔뻔하고 철 모르는 딸내미는 엄마만 철썩같이 믿고 "우리집에 놀러오세요~"란 말을 서슴없이 하는 것이다. 예전에 남자친구가 있을 적에 엄마를 시켜서 도시락까지 싸게 했던 나는 혼 빠지고 정신 나간 년임에 틀림없다. 마음에 안 드는 것을 꾹꾹 눌러참으며 그래도 딸을 생각해서 아침 일찍 정성껏 도시락을 준비해서 챙겨주셨던 엄마를 떠올리면 아, 난 지금 옆에 있는 머그잔에 코를 쑤셔박고 죽어버리고 싶을 지경이다.

엄마를 떠올리며 더욱 고맙게 생각하게 되는 것은 내가 교사가 되고 난 이후에 더 그런 것 같다. 아이들을 대하면서, 그리고 그 아이들의 부모님들을 대하면서 순간순간 느끼곤 한다. 오빠와 내가 얼마나 만만찮은 아이들이었는지. 아빠와 엄마가 우리를 키우는 일이 얼마나 고단했을지. 엄마는 물론 지금도 고무줄 바지에 싸구려 슬리퍼만 신고 다녔어도 오빠와 나 덕분에 기가 살고 기쁜 일도 많았다고 예의 그 환한 웃음을 지으며 말씀하시지만 오빠와 나는 남보기에 참해 보이는 모범생이라는 것을 빌미 삼아 부모님의 등골을 있는대로 빼먹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 남매는 못 말리는 고집쟁이에 오직 저 밖에 모르는 이기주의자들이었다. 그래도 오빠는 맏이라서 그런지 의젓하고 참을성이 많기는 했다. 문제는 막내라고 막나가는 것 밖엔 몰랐던 나였다. 아직 초짜 교사이지만 내가 가르쳤고 가르치는 아이들은 대개는 내 어린시절보다는 착한 것 같다. 나처럼 그렇게 발악발악 죽자사자 대들고 손톱 밑 발톱 밑까지 새카맣게 이기적인 아이는 여직껏 못 봤다. 어린 시절의 나를 돌아보면서 아이들에게 한없이 관대해질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아이들은 너나 없이 어른이 어디까지 나를 참아줄 수 있는가를 이따금씩 시험해 보곤 하는 법이다. 엄마는 남에게 해코지를 한다든지, 거짓말을 한다든지, 인격의 큰 줄기에 해당하는 부분만 어기지 않으면 그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는 무한정 관대하셨다. 반면에 내가 만난 부모님들은 지나치게 관대하거나 혹은 지나치게 엄격하신 분들이 많았다. 아이의 고집에 번번히 져놓고는 아이의 의견을 존중한다는 식으로 어설프게 자존심을 지키려드는 부모님, 타인과 사회가 정해놓은 일정한 수준에 오르지 못한다고 아이를 무조건 닦달하며 본인의 허영심을 만족시키려는 부모님, 또는 하루에도 수십에서 수백명의 아이들을 상대하는 교사에게 우리 아이를 위임했으니 책임을 지라는 식으로 방관하는 부모님 등등. 별별 독특하신 분들을 많이 보아왔다. 나 자신 평소에 '자기 자식은 제 부모가 제일 잘 안다.', '자식에게 문제가 있을 경우 부모가 자기 자신을 돌아보면 된다.'는 엄마 말씀을 많은 부분 신봉하고 있기에 부모님들이 아이들 문제로 힘들어하시는 모습을  보면서도 그닥 크게 공감하는 편은 아니다. 대부분의 부모님들은 원래는 착한 아인데 친구를 잘못 사귀어서, 현존 교육 시스템과 맞지 않는 성향의 아이라서, 등등 대개 문제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고 싶어하신다. 솔직히 말하면, 담임인 나를 만나러 와서 상담을 하거나 모임에 나가서 집안 이야기로 수다를 떨 것이 아니라 학원 가기 전에 천원짜리 토스트로 배를 채우는 아이에게 집에서 만든 김치볶음밥과 콩나물국이라도 먹여서 보낼 수 있는 엄마라면 아이들도 가슴 속에서 뭔가 뜨뜻한 것을 느끼지 않을까. 아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고만 할 것이 아니라 밥상머리에 마주 앉는 시간을 늘려보려는 노력부터 필요한 것이 아닌가 싶다. 일견 물질적으로는 풍요를 누리고 있지만 외로움과 공허함에 시달리고 그것을 다시 물질적인 무언가로 채우려들지만 마치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것처럼 여기저기 숭숭 뚫린 마음의 구멍에 힘겨워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 엄마가 아무리 우아하고 화려한 맵시로 인사를 건네고 지적이고 교양 있는 말투로 대화를 이끌어도 아이와 엄마가 다같이 안되 보이고 마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그리고 그런 순간마다 "힘들었지만 행복하다."라고 웃으며 말씀하시는 엄마에게 더욱 고맙고 미안해지는 것이다.

나는 이런 면에서 보면 지극히 보수적인 사람인지도 모른다. 지극히 이기적인 사람일 수도 있다. 엄마는 아름답고 재능있는 여성이었지만 자식들을 키우다 보니 미모와 재능을 지킬 여력이 없었고 나는 엄마의 그런 변화를 외면한 채 마치 기생충처럼 엄마의 심신에 찰싹 들러붙어 살과 피를 쪽쪽 빨아먹고 살아왔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래서 자신을 가꾸는 일에는 열성이면서도 자식에게 소홀한 부모님들과 마주하면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나오고, 반면에 거칠고 버릇 없는 아이들을 보면 무진장으로 너그러워지는가 보다. 결국 나 유리하고 나 편한대로 머리가 돌아가고 생각이 따라가는 것이다. 하지만 언제나 강철처럼 씩씩하던 엄마도 이젠 많이 늙고 지쳤다는 걸 나도 안다. 고마움을 알고 소중함을 아는데 왜 그것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보답하려 들지 않을까. 부모가 백을 할 때 자식은 그 중 하나만 해도 다행이란 말이 있는데 나는 부모님이 백을 하면 백 하나를 해내라고 땡깡만 부렸던 듯 싶다. 엄마는 자식이 제 앞가림하며 살 수 있도록 열심히 뒷바라지 하고 그래서 남에게 욕 듣지 않고 제 앞가림 하며 살 수 있게 되면 그 이상 부모가 바랄 게 뭐가 있냐고 하시지만 이제는 그런 말들이 가슴 속에 아프고 안타깝게 와서 박힌다. 그런데도 나는 여전히 부족한 사람이고 부족한 딸이라서 요즘도 가끔 엄마가 싫어하는 짓을 할 때가 있다. 엄마를 생각하며 눈물을 글썽이다가도 제 기분이 좋으면 희희낙락 나 몰라라 만사를 다 잊어버린다. 내가 다 알아서 하겠다고 큰 소리만 칠 뿐 실제로 스스로 알아서 하는 건 별로 많지 않다. 엄마의 눈은 어딘가 슬프고 그런 엄마 눈을 볼 때마다 나는 내 자신이 싫어진다. 엄마를 위해 사는 것은 아니지만 엄마를 위해서 나도 뭔가를 하고 싶다. 까마귀 고기 삶아 먹은듯 또 금방 잊어버리고 언제 그랬냐는듯 까불지 말고 정신 좀 차리고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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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리 2006-04-30 1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슴 뭉클한 글이네요... 깐따삐야님, 님만큼 이기적인 분을 보지 못했다고 하시는데요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님은 효녀십니다. 세상은 넓고 불효자는 많습니다. 10% 안에 드는 효녀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다면 나머지 90은 다 죽어야 하나요^^

깐따삐야 2006-05-01 0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리님, 저는 늘 생각만으로 그치는 게 문제인 것 같습니다. 생각만 효녀에요, 생각만. 에혀~

개츠비 2006-05-01 0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저도 엄마에게 아무일도 아닌것으로 화를 내버렸는데, 어찌나 후회도고 미안하던지.....엄마가 마음아팠을걸 생각하면 제 자신이 너무 밉더군요. 모든 어머니는 자식들에게 진짜 사랑을 가르쳐요. 사랑이 무엇인지...말이죠. 사람은 그런 사랑을 갈망하며 삽니다. 우리들의 어머니는 사랑의 교과서입니다. 오즈님, 다가오는 어버이날에 효도하세요 ^^

깐따삐야 2006-05-01 1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기서 댓글로 뵙게 될 줄은 몰랐어요. 반갑습니다! 진짜 사랑, 이란 말에 공감해요. 마음은 늘 어버이날인데 행동이 따라주질 않으니 반성 좀 해야겠습니다. ^^

Mephistopheles 2006-05-02 1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깐따삐야님은 어머님의 눈을 보면서 센치해지면서 콧등이 찡해지셨을진 몰라도.
전 이글을 보고 찡해지는군요..^^
D-6이네요...^^ 어버이 날이요..

깐따삐야 2006-05-02 15: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설마하니 머슴 노릇 하시느라 효자 노릇 하실 새는 없는 거 아니시겠죠? =3=3=3

Mephistopheles 2006-05-02 17: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머슴 노릇도 요즘 제대로 못하는 걸요...^^

마태우스 2006-05-04 0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6강에서 탈락하신 거, 안타깝네요....

깐따삐야 2006-05-04 0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 괜찮아요. 재밌었어요.^^ 나중에 마태우스님께서 혹, 이벤트를 하시면 저한테 꼭 알려주시기 바래요!
 

아침부터 하늘이 잔뜩 흐렸는데도 상하의 모두 검은 옷을 입고 출근을 했다. 원래 구름이 많이 끼거나 비가 올듯 싶은 날은 일부러라도 밝은 옷을 입곤 하는데 오늘은 그냥 내키는대로 골라든 옷이 모두 검정색이었다. 창 밖을 보니 온통 잿빛이었지만 그냥 처음 고른 옷들을 그대로 입고 출근을 했다. 바깥 날씨는 생각했던 것보다 아직 쌀쌀했고 외투를 가지러 다시 돌아갈까 생각하다가 귀찮은 마음에 그만두었다. 출근길, 동편으로 보이는 나지막한 산등성이와 그 아래 다소곳이 자리잡은 학교를 번갈아 바라보며 걸을 때, 빛나는 햇살 때문에 눈을 감은 듯 만 듯 한 채, 이마부터 손 언저리까지 따듯하고 상쾌한 아침 기운이 나를 어루만진다는 느낌으로 한껏 나른함을 즐길 때. 시작부터 좋은 날이 바로 그런 날이다. 조금 여유 있게 일어난 덕분에 아침밥을 든든히 먹은 다음 밝은 색 옷을 단정히 차려 입고 집을 나선 뒤 온몸으로 햇살을 받으며 다리를 건너고 타박타박 내 걸음 소리를 즐기며 교문으로 들어서는 그런 아침. 한껏 따스하고 여유로운. 오늘은 그런 아침이 미치도록 그리운 안 그런 아침이었다. 검은 옷은 어둡다 못해 왠지 무겁게까지 느껴졌고 걸을 때마다 살짝살짝 보이는 구두코는 오늘따라 왜 이렇게 윤기를 잃고 창백해 보이는지 참으로 생기 없는 출근길이었다.

커피를 끓인 후 와타나베 준이치의 '마뜨레스 애인'이란 책을 들고 자습 감독에 들어갔다. 이제는 하나도 특별할 것이 없는 싱글 여성의 이야기. 드라마에서 재탕 삼탕 우려먹고 있는 뻔한 이야기. 그래도 어쨌든 이 책은 92년도에 나왔고 그 당시라면 아마 신선하다는 평을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학교 도서관 진열장 맨 구석에 노랗게 바랜 채로 꽂혀 있던 책이었는데 장정일의 '그것은 아무도 모른다' 이후 두번째 쇼킹한 발견이었다. 누가 주문해서 들여놓은 책들일까. 아이들용은 아닌데. 궁금증을 자아내는. 내가 교실에 들어서면 반 아이들은 꼬박꼬박 한 두가지 정도의 농담을 건넨다. 대개는 유치하기 짝이 없고 시시껄렁한 것들이지만 오늘같은 아침엔 아이들이 없었다면 어쨌을까, 싶을만큼 그런 농담과 애교들이 다행스럽고 고맙기까지 했다. 엊저녁에 문자를 보냈는데 왜 답장을 안해주시냐는 K. 귀찮게 하는 남자들이 많아서 밤엔 핸폰 꺼놔. 샘, 중간고사 잘 보면 뭐해 주실 거에요? 음, 당근 선물을 줘야지. 뭔데욤?? 졸업할 때까지...... 일요일엔 학교 나오지 마라. 이쯤 되면 아이들은 마구 야유를 보내며 보던 책 덮은 채로 드러눕고 책상을 엎는 시늉을 하고 의자를 들었다 놓았다 하는 등 교실이 순식간에 난장판이 된다. 아이들은 매사 그런 식으로 웃고 떠든다. 유치하고 하나마나한 농담들. 너나 나나 다같이 실없어지고 유치해지는 과정. 그러나 서로 아무런 적의도 없이 입꼬리가 올라가며 웃음이 터지는 그 순간은,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이따금씩 꺼내먹는 땅콩과도 같은 것이다. 없으면 허전하고 떨어지면 아쉬운 바삭함과 고소함. 아침은 그렇게 웃으며 넘겼다.

오전과 오후 내내 임정희와 김연우 노래를 틀어놓았다. 날씨마냥 비를 부르는 음색이었다. 커피를 두 잔이나 더 마시며 다음주 연구수업에 사용할 플래쉬 카드를 만들고 이런저런 상념에 빠졌다. 몸이 좀 피곤한 탓일까. 생각해보면 해야 할 것도 있고 미리 해두면 좋은 것들도 눈에 보이는데 어쩐지 제대로 손에 잡히지가 않았다. 이런 날도 오랜만이었다. 할 것이 있으면 얼른 해버리고 가능한 한 많은 여유 시간을 확보하는 게 내 스타일인데 오늘은 하릴없이 온종일 느러져서는 뭘 했다고 말하기도 힘든, 그렇다고 한껏 여유를 부렸다고 말할 수도 없는, 이상한 하루를 보냈다. 퇴근 무렵, 우체국이 어딨냐고 물어오는 원어민 샘에게 어디인지 확실히 모르기도 했지만 사실은 너무나도 설명하기 귀찮아서 종이에 Woo Che Guk 이라고 써줬더랬다. 그는 우~체~국~이라고 크게 한 번 읽더니 대단히 감사하다고 말하며 2m의 몸을 흔들거리며 사라졌더랬다. 뭣이 대단히 감사하다는 건지 원. 일주일의 절반은 그와 함께 수업에 들어가고 같은 학교에서 지낸지 이제 곧 일 년째인데도 나는 그를 좀처럼 좋아할 수가 없다. 우리나라를 두려워하고 우리나라 사람을 완전히 믿지 못하는 그는 어쩌면 순진하고 좋은 사람일지 모른다. 그리고 그럴수록 나는 사명감을 갖고 그에게 우리에 대한 좋은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 잘대해줘야 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는 그가 뭔가에 대해 안절부절하고 의심하고 미심쩍어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한 마디 밖엔 떠오르지 않는다. GO HOME. 그것도 냉정하고 싸가지 없는 톤으로. 

집에 돌아와서 저녁을 먹고 쉬다가 누군가의 홈페이지에서 어떤 글을 읽고 나도 모르게 울컥하고 말았다. 출근길에 울뻔 했다는 이야기였다. 그럴 수도 있지. 힘든 일이 있으면. 닥쳐오는 하루가 버겁다면. 나는 현재 힘든 일도 없고 닥쳐오는 하루는 버겁다고 말하면 그건 오버다. 그런데도 그 사람의 출근길 정경과 이따르는 심정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솟았다. 우는 건 남도 싫지만 우는 건 나 자신도 싫다. 왠 빌어먹을 신파란 말이냣. 그런데도 오늘은 그런 기분이 든다. 김구라나 남궁연 같은 남자 어른, 또는 이금희나 오미희 같은 여자 어른과 오래도록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은 그런 기분. 엄마도 일찍 잠이 들고 주변은 한없이 조용한데 내 마음만이 끈질기게 심란하다. 살다보면 이런 날도 있는거지. 두 시간 즈음 남았다. 잿빛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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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6-04-26 2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침부터 하늘이 잔뜩 흐렸는데도 상하의 모두 검은 옷을 입고 출근을 했다.-
프란체스카를 생각했다면 조금은 유쾌하지 않았을까.....잠시 잡생각을 하고 갑니다.

깐따삐야 2006-04-27 0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그래도 학교에서 제 별명이 '여자 노홍철'과 '프란체스카'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