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근한 한낮이 예상되는 화창한 식목일 아침, 나의 웬디양님을 만나기 위해 버스에 올랐습니다. 첫 만남인데도 마치 오래 알고 지낸 친구를 만나러 가는 것처럼 편안한 기분이었어요. 백화점 회전문을 열고 유유히 걸어나오던 웬디양님은 훤칠한 키에 시원한 미소, 봄볕 아래의 싱그러운 아가씨였습니다. 또랑또랑한 목소리에 검고 큰 눈동자가 인상적이었죠. 이제는 더 이상 명랑만화 이미지의 웬디양님을 떠올리긴 어려울 것 같아요. 우리 사이를 익히 아시는 분들, 제 눈에 안경이라고 해도 좋아요. 웬디양, 그녀는 예쁩니다.
점심을 먹기 위해 명동으로 이동, 주말인데다 식목일이라서 그런지 사람이 정말 많더군요. 낯설고 복잡한 거리에서 자칫 미아가 될까봐 쫄래쫄래 열심히 따라다녔습니다. 일정을 짜고 사람들과 연락하느라 웬디양님은 정신이 없었고, 저는 그저 고맙고 미안한 마음에 살짝 멍한 기분이 되었던 것 같아요. 그때 맞은 편에서 성큼성큼 다가오던 고운 청년, 아프락사스님이었습니다. 사진으로 뵌 적이 있어서 낯설지는 않았는데 실제로 뵈니 눈빛이 참 맑은, 단아한 청년이었어요. 유명 알라디너들과 연이어 마주하니 마치 연예인이라도 만난 것처럼 기분이 묘하더군요.
우리는 점심을 먹기 위해 근처 일식집으로 갔습니다. 웬디양님의 로망인 감우성의 친필 사인을 발견하고 반가워하면서 맛있게 점심을 먹었습니다. 청주는 그렇게 줄을 서서 먹을 정도로 성업 중인 가게가 많지 않은데 명동은 그런 광경이 쉽게 눈에 띄더군요. 눈길을 끄는 음식점들이 곧잘 보여서 명동 맛집 순례 같은 것을 해봐도 좋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어요. 촌스러운 저는 하여간 수많은 간판들과 다양한 사람들 속에서 시선 고정, 정신 집중이 마냥 힘들었어요.
점심을 먹고난 다음엔 '식코'를 보기 위해 대한극장으로 갔습니다. 조금 기다리자 야양청스의 좀비 신도, 살청님이 나타났습니다. 처음엔 수줍어 하시면서 저와 눈도 안 마주치시는 것 같았는데 영화를 보고 나와 담배를 한 대 피우시더니 조금 정신을 차리시는 것 같았어요. 호프집 조명 아래서 찬찬히 바라보니 일전에 혜경님께서 섬세히 묘사하셨던 것처럼, 나이에 비해 소년 같은 순수함이 엿보이더군요. 아무도 메뉴에 관심을 보이지 않자 혼자서 거하게 주문하고 거하게 계산까지 마치시는, 오래도록 회자될만한 자상함을 보여주셨어요. 그리고는 다음엔 간장게장까지 사주시겠다고 약속까지 하시고(이쯤에서 메피님? 하고 한번 불러드러야 할 듯?) 살청님, 되게 멋져용.^^
그리고 저를 깜짝 놀래켰던 한 사람, Lud-S님. 광택이 나는 검정 자켓에 빨간 체크무늬 바지, 특이한 끈매듭이 특징인 흰색 단화를 신고 제트기가 아니라 지하철을 타고 날아오신 우리 형님. 첫눈에도 화끈하고 패셔너블한 우주인이었어요. 오밀조밀한 이목구비에 하얀 손은 미소년 같은데 조금 마음에 안 들면 상대방 뒤통수를 냅다 후려칠 것 같은 오묘한 카리스마를 한몸에 지닌, 에너지가 넘치는 매력적인 분이었어요. 휴대폰 앨범 속에는 미니어처와 함께 찍은 셀카들이 많았고 덕분에 신비주의 S님의 일상을 좀더 가까이서 엿본 것 같아 반가웠지요.
알라디너들을 오프에서 만난 것은 서재를 꾸린 이후 처음이었는데 글과 겹치는 부분도 있었고, 새롭게 발견한 부분도 있었고, 아주 흥미롭고 행복한 만남이었습니다. 제가 지방에서 올라간 탓에 아무 것도 몰라서 일정을 계획한 웬디양님이 너무 많은 수고를 한 점, 형제상봉의 꿈을 이뤘음에도 집에 돌아올 시간을 맞추느라 S님과 더 오랜 시간을 함께 하지 못한 점 등이 미안하고, 아쉽고 그렇습니다. 온화한 미소, 맛있는 점심을 제공해 주신 아프님과 술과 안주와 알라딘 뉴스레터(?)로 흐뭇한 술자리를 만들어 주신 살청님께도 정말 감사드려요. 안 그래도 어리버리한데, 낯선 도시에 가서 어리둥절까지 보탰던 저를 따듯하게 반겨주시고 배려해주셔서 모두모두 고맙습니다. 베풀어주신 포근한 추억에 기대어 앞으로 더욱 열심히 살게요. 언젠가 보답할 날을 기다리며~ 홧팅~♡
Lud-S님이 명동에서 사주신 탁구공 휴대폰줄이에요. 잘 살펴보면 그 날 모인 알라디너 분들을 닮아 있답니다. 이런 독특한 선물 참 좋아요. 감사합니다. 형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