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이벤트를 진작에 알았어야 하는데 아무래도 공연히 뒷북을 치는 것 같아요. 그러나! 밤참에 호의적인 페이퍼들을 보니 용솟음치는 식욕을 참을 수가 없기에, 내 컴퓨터에 저장되어 있는 먹거리 사진들을 모아 모아서 상차림을 한번 해주셔야겠어요. 보시기에 좋은 것은 비단, 훈남 뿐만은 아니겠지요. (그나저나 기말페이퍼 두 줄 쓰고 마이페이퍼 오십줄 쓰고 앉았는 폼이라니. 대체 그 많던 영감들은 다 노인정으루 가셨나염.-_-)
깐따삐야의 다단계 밤참 스토리 : 그 겨울의 밤참 ★

저는 정말 가뿐한 바나나우유 하나로 밤참을 대신하고 싶었어요. 밤바람 한 모금으로도 영 아쉬울 땐, 부득이하게 냉장고 문을 열고 우유 한 팩 정도로 출출한 허기를 달래곤 했답니다.

하지만 사람 뱃속이 그렇게 만만하면 우리가 왜 배고픔에 굴복하는 것이겠습니까. 삶은 계란은 심심한 야밤, 오붓한 기차 안의 소중한 먹거리죠.

이쯤되면 그냥 처음부터 만두나 쪄먹을걸, 왜 바나나우유는 마시고 계란을 한 개도 아니고 세 개씩이나 삶았나, 하는 후회가 밀려옵니다.

만두 찌느라 달그락대는 소리에 잠에서 깨신 엄마는 밤새 레포트 쓴다고 퀭한 딸내미를 그냥 지나치실 수 없는지 결국 잡채를 데워주시기에 이르렀지요. 만두가 더 살찐다, 그냥 잡채 먹어라. 그러나 눈 앞의 음식이 깨끗이 비워지기 전에는 그 어떤 일에도 집중할 수 없는 건 저만 그런 건가요? 눼. 저만 그렇군요.-_- 엄마들은 자식들 입으로 맛있는 음식이 들어가는 모습이 가장 예쁘다고 하죠. 저는 엄마를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서라도 필사적으로 먹습니다. 정말 타고난 효녀가 아닐 수 없어요.

이제는 먹은 게 무서워서라도 밤을 새울 결심을 하는 타이밍이죠. 결국 후라이팬을 꺼내 밥을 볶습니다. 김치도 쫑쫑 썰어넣고 콩나물 무침도 팍팍 섞어주신 후, 고소한 참기름 몇 방울 떨궈주시면 이보다 더 보람차기 힘든 밤참이 완성됩니다. 여기에 저녁에 먹던 콩나물국이 남아있으면 금상첨화, 지상낙원이겠죠.

볶음밥이 별로일 땐, 떡볶이도 좋아요. 사실 여럿이 먹기엔 떡볶이가 더 낫지요. 저는 그래서 항상 떡과 어묵을 냉장고에 상비해 두곤 합니다. 남들은 상비약을 준비해 둔다던데 평소에 잘 먹으면 아플 일도 없다는 게 제 지론이거든요. (저를 비타민에 출연시켜 주심이) 예전에 자취할 때 친구들이 찾아오면 떡과 어묵, 라면사리나 당면을 넣고 떡볶이를 해줬더랬죠. 맛은 보장할 수 없지만 그래도 열렬히 먹입니다. 저는 뭔가를 먹고, 먹이는데 남다른 재능이 있는 것도 같아요.-_-;

이 알흠다운 사진은 뭐냐구요. 사천만의 술안주, 골뱅이무침 아니겠습니까. 참만 먹다보면 밤이 넘흐 길어요. 이미 잠들 타이밍을 놓친 우리에겐 곧 시원한 보리음료와 이슬 한 모금이 당기는 순간이 도래합니다. 이 때 누군가 나서서 소면을 삶아 또아리를 틀어주시고, 아삭한 오이와 부추 속에 쫄깃한 골뱅이들을 몰아넣고 솔솔 비벼주신다면, 우리는 곧이어 새큼달큼+아삭쫄깃한 야밤의 영락을 누리게 됩니다. 세상엔 그깟 칼로리보다 더 소중한 게 많으니까요.

생뚱맞져. 원래의 제 마음을 표현해 보았습니다. 저는 그냥 과일이나 조금 먹으려고 했어요. 딸기 한 개, 키위 반 쪽이면 저의 콩알만한 위장도 자족할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식욕은 인생 같은 거에요. 어느 방향으로 흘러갈 지 누구도 예상할 수 없죠. 우리는 그저 부표처럼 격랑에 휩쓸리며 이거 먹었다, 저거 먹었다, 할 수 밖에요. 때론 햄버거나 후라이드치킨 등, 더 편리하고 윤택해 보이는 메뉴에 한눈을 팔기도 하지만 그래도 구관이 명관이라는 수수한 깨달음과 함께 떡볶이로, 볶음밥으로 귀환하곤 합니다. 밤참은 이렇듯 우리에게 뜻깊은 교훈을 주는 셈이지요. 그리고 푸짐하게 먹었다고 절대 좌절할 필요는 없어요. 인생은 길고, 세상엔 그깟 칼로리보다 소중한 게 많으니까요.
마치며...
저 사진들은 제가 예전부터 손수 찍어온 실물사진들이에요. 물론 삶은 계란 껍질을 깐 것 이외에 제가 한 것이라곤 없어요. 아, 과일을 잘라 이쑤시개를 꼽아놓은 건 제 솜씨군요. 바나나우유를 들고 있는 것도 저랍니다.-_- 모든 정황을 살펴볼 때, 제가 그럭저럭 정상체중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스스로도 놀랍고 대견합니다. 하지만 살이 찔 것이 두려워 맛있는 음식 앞에서 주저하는 비겁함을 보이진 않겠어요. 세상엔 그깟 칼로리보다 소중한 게 더 많으니까요.♡

뽀우너스 사진입니다. 역시 낮밤을 불문하고 시공을 초월하여 우리를 가장 설레이게 하는 간식은 어머니가 꼭꼭 말아 싸주시는 김밥 아니겠습니까. 저는 얼마나 더 내공이 쌓여야 사랑하는 사람에게 저렇듯 예쁜 김밥 도시락을 싸 줄 수 있을까요. 혼자 깨어 글을 쓰는 이 시간, 저는 이제 냉장고로 내달립니다. 집나간 영감님이 돌아오셨고 기말페이퍼를 쓰기 위해 새로운 에너지를 끌어모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