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를 잡자 - 제4회 푸른문학상 수상작 푸른도서관 18
임태희 지음 / 푸른책들 / 2007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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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도 음침하지만 내용도 음침하다.

뱃 속에 아이를 쥐로 표현한 것도 음침하다.

뱃 속의 아이가 축복이 아니라 쥐가 된 것은

주홍이의 나이 때문이겠지.

원하지 않는 임신과 마음을 닫아버린 아이.

주홍이는 누구에게도 의지할 수 없고

말할 수도 없는 외로운 아이였다.

미혼모였던 엄마는 주홍이의 임신에도 모른 척 해버린다.

두려움과 불안 앞에 엄마에게 다가가려 해도

그 간격은 좁혀지지 않는다.

엄마는 과거에 붙잡혀 있는 것만 같다.

자신의 과오를 스스로가 용납하지 못하는 것만 같았다.

 

사물함의 쥐, 냉장고의 쥐, 주홍이 뱃 속의 쥐.

징그럽고 무섭고 혐오스러운 외면해버리고 싶은 현실,

그 현실이 쥐와도 같은 건 아닌지.

 

담임 선생님은 아이들을 놓아버리는 자신의 모습과

적당히 해야할 본분만 하자는 자기 합리화 안에서 스스로를 괴롭힌다.

주홍이에게 다가가려 해놓고 돌아올 현실이 두려워 피하고 만다.

제대로 마주할 자신도 없지만 무시하고 외면할 자신도 없다.

담임은 그저 지켜보는 자일 뿐이었다.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하는.

 

 

주홍이의 엄마는 심한 결벽증을 갖고 있다.

스무 살에 미혼모가 되어 주홍이 낳았다.

조소과 강사인 엄마는 늘 작업실에서 무언가를 만든다.

작업실 안에 숨어 속죄의 시간을 보내는 것일까.

주홍이에게 문제가 생긴 것을 알고

그 문제가 무엇인지도 알면서

모른 척 해버리는 엄마.

자신의 겪었던 과거이기에 두렵고 무서웠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자기 자신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하기 때문에

주홍이의 상처와 두려움을 보듬어줄 수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가장 어리고 연약하고 상처입은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주홍이가 말했다.

 

`제 잘못이 아니었어요.`

 

두려움, 혼란스러움, 불안, 수치심...

자신이 처한 상황에 어찌할 바 모르는 여린 학생일 뿐이다.

그런 주홍이가 할 수 있는 것은 결국 낙태뿐.

주홍이가 낙태를 하게 되면서

엄마와 담임 선생님이 조금씩 변화하는 모습을 보인다.

엄마는 후회하며 강해지려고 한다.

담임을 아이들에게 다가서려 한다.

작은 노력이 시작되지만 주홍이는 피폐해져만 간다.

그리고 생명을 져버렸다는 죄책감이 시달리다가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하고 세상을 포기하고 만다.

얼마나 두려웠을까....

얼마나 무서웠을까....

 

 

주홍이와 같은 아이들이 너무나도 많고 그 아이들은 학교에서도 세상에서도 내쳐진다.

누구도 한 인간을 용서하고 벌할 수는 없는데 세상은 미혼모라는 낙인을 쉽게 찍고 가둬버린다.

청소년문제가 점점 심각해지고 있는 요즘, 성교육의 문제뿐만 아니라 관계와 소통의 문제 역시 되돌아봐야 한다.

아이들이 어른들을 믿지 않지만 결국 도움을 줄 수 있는 건 어른임을 안다.

그럼에도 어른들은 그들을 방치하고 외면한다.

청춘이니 소통이니 힐링이니 요즘 대세라며 많이 관심을 갖고 있다.

먼저 청소년과의 소통을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주홍이의 죽음이 슬픈 것은 아무도 도움이 되지 못했고

마음을 닫아버릴 수 밖에 없었던, 쓸쓸하고 외로웠을 그 모습 때문이다.

혼자서 괴로워하고 스스로를 더럽다며 용서하지 못하는 그 모습이

자꾸만 떠올라 머리가 어지럽다.

선생님도, 엄마도, 그리고 세상의 모든 어른들도,

누구라도 희망을 줄 수 있었을 것이다.

 

 

인상 깊은 구절

 

다가오지마. 내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안고 있는 거라면 다가오지마. _ p. 37

 

 

쓸고 닦고 털어 내고 지우고.... 아무리 해도 깨끗해지지 않았다.

왜?왜?

이제야 알았다. 내가 쥐였기 때문이다.

스무 살을 감당할 수 없게 한 나의 열아홉, 열여덟, 열일곱....이 쥐였다.

아니, 이 세상이 쥐로 득시글거리기 때문이었다.

결혼하지 않은 여자가 아이를 낳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깜빡한 세상이 바로 쥐였다.

 

선생이 옳았다. 확실히 쥐는 있다.

땅, 땅, 땅,

돌가루가 부스러진다.

아파, 아파, 아파...... _ p.75

 

 

부탁하건데, 그저 걷다가 우연히 만나는 길을 무작정 걷지는 말거라.

같은 길을 걷게 되더라도 네가 고른 길을 당당하게 걸으렴. _ p.80

 

 

너무나 쉽게 아이들을 버리는 학교. 아이들은 가시밭길을 걷는다.

여린 속살을 긁히고 찔리며 위태위태하게 걷는다.

피가 나고 상처가 곪아도 학교는 한 쪽 눈을 감고 아이들을 방치해 둔다.

아이들은 `알아서 잘` 크는 수밖에 없다. _ p.86

 

 

마음이 놓이는 한편 일이 엇나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왠지 가슴이 허전했다. 내가 잘못 살아 온 걸까?

지난 17년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갔다. 마치 모래알갱이처럼.

나는 빈손을 가만히 내려다본다.

딸아이는 나에게서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를 보호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나는 다 알면서도 받기만 했다. 나쁜 엄마다. _ p.90

 

 

우리는 마침내 냉장고 문을 열었다. 쥐는 없었다. 그걸 확인하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

좀더 일찍 함께 문을 열어 보았더라면...... 그랬다면 지금 뭔가 달라졌을까? 모르겠다. p.102

 

 

혼자서 물 속으로 걸어간다. 물결이 얼음을 깎아 만든 비수처럼 차갑게 내 살갗을 훑는다.

발목에서 허벅지로, 허리에서 가슴으로, 어깨에서 머리끝으로 물이 차오른다.

무섭도록 차갑다가 차츰 몽롱해진다. 잠이 쏟아진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신은 나를 버렸다.
나는 신마저도 구원하기로 했다. _ p.128

 

낳아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사실 고맙다는 말은 부족하기만 합니다.

제 맘 속에 가득한 이 터질 듯한 감동을 표현할 더 적절한 말을 찾지 못해

비루하기 짝이 없는 표현을 빌려 씁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어머니가 살린 작은 사람
진주홍 올림 _ p.141

 

 

생명을 낳고 기르는 일이

한 사람의 희생이 아닌

온 우주의 축복일 수 있기를.... _ p.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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