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한의 최선
문진영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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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의 최선, 문진영





이 소설 안에는 빛과 어둠이 있다. 평범하게 일상을 살아가는 보통의 사람들의 삶 속ㅇ에 깃든 어둠과 그림자. 그리고 빛과 에너지를 뿜어내는 존재. 소설은 서로 대비되는 존재를 토대로 우리의 삶을 자연스레 풀어내고 있었다.


밝은 에너지로 언제나 빛을 내는 수민과 그 옆에 그림자와 같은 '나' 일본에서 만난 미노리와 테츠를 통해 자신을 들여다보게 된다. (#미노리와테츠) '나'는 '우리는 지구의 다른 한쪽을 떠받치고 있는 사람들(p.30)'이라고 하는 것처럼, 빛나는 존재 앞에서 짙어지는 그림자라는 것을, 임계점에 닿기도 전에 쉽게 무너진다(p.31)는 것을 안다. 그러나 어둠 속에 자신을 내버려둘 용기가 필요한 게 사랑이라고 말한다. 친구의 산재를 인정받기 위해 회사와 맞서싸웠지만 결국 소송에서 지고만 민주와 '나' (#변산에서)민주의 남편이기도 하고 '나'의 친구이기도 한 승민의 죽음으로 인해 기나긴 소송이 시작되었고 결국의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너무 어두워서 도무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시간이 바로 지금일 것이다. 그러나 시간을 견디면 결국에는 서서히 시야가 밝아진다. 그렇게 캄캄한 마음을 들여다보는(p.61) 일이 사랑이라고, 그렇게 시간을 견뎌내야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삶의 의미라는 것이 무엇인지, 하고싶은 것은 무엇인지도 모르겠고 그저 흘러가는대로 대학을 졸업하고 적당한 직장에서 꾸역꾸역 일하며 살다보니 어느새 서른 직전이 된 '나' (#너무늦지않은어떤때) 직장을 그만두고 연애도 끝내고 인도로 떠났다. 불편한 인도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시간. 그곳에서 만난 안와. 나이도 많고 부인도 두 명이나 있는 낯선 곳에서 만난 낯선 남자는 불편하지만 어딘가 친근했던 것은 자신과 닮아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는 가끔씩 내 삶이, 필름이 들어 있지 않은 카메라로 셔터를 누르는 것처럼 느껴져. P.147' 그렇게 그곳에서 시간과 안와를 통해 다시 오지 않을 이 순간을, 어떤 오늘도 너무 늦지 않았다(p.150)는 것을 깨닫는다.


오롯이 밝기만 한 것도, 무작정 어둡기만 한 것도 아니다. 우리의 삶은 빛과 어둠이 공존하고 있으며 그것이 어우러져 섞일 때 삶도 자신도 제대로 볼 수 있는 게 아닐까. 작가는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이 캄캄한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일이니 어두운 마음도 시간을 견디면 서서히 보이게 된다고. 지금 이 순간은 영원하고 다시 오지 않을 순간이며 어떤 오늘도 늦지 않았다고. 삶 속으로 끌여당겨지고 싶은 표류하고 방황하는 청춘의 마음도 괜찮다고, 갈대처럼 흔들리며 잠시 누웠다가 천천히 일어나고 그러면서 살아도 되지 않겠느냐고. 


나를 닮은 그림자는 내 몸만한 어둠이 아니라 빛의 잔해처럼 보인다던 엘로이즈의 인터뷰가 오래오래 기억에 남는다. 빛도 어둠도 나와 함께 있으며 어둠이 전부가 아니라 빛의 잔해라는 것.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최은영인데 여성서사가 주를 이루기도 하지만 사회에 뿌리박힌 문제들이나 우리의 삶을 극단적이거나 폭력적이지 않게 표현한다. 또한 누군가를 악한 인물로 몰아가거나 사건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끌어가기보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삶의 면면들을 부드럽게 그러나 단단하게 풀어낸다. 


이후로 좋아하게 된 작가를 보면 김헤진 작가 백수린 작가 김화진 작가 또한 그런 느낌인데, 이제 문진영 작가도 넣어야겠다.



#미노리와테츠

너에게 사과를 빚졌어, 하고 미노리가 말했다. 너를 좋아하지 않았어. 왜냐하면, you and me, 미노리가 말했다. We are like, 음, we are like…… 미노리는 그뒤에 붙일 단어를 고르지 못하고 있었다. 나도 알아. 우리는 지구의 다른 한쪽을 떠받치고 있는 사람들이지. I know, 나는 말했다. 

미노리는 천천히 단어를 고르며 이야기를 계속 했고, 언제부터인가 온전히 일본어로 말하기 시작했다.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몰랐지만, 무슨 말인지 다 알았다. 미노리는 이야기하고 이는 것이다. 빛이 환할수록 더 짙어지는 그림자에 관해. 임계점에 닿기도 전에 쉽게 무너지는 마음에 관해. P. 30-31



#변산에서

누군가를 사랑하기 위해선 어둠 속에 자신을 내버려둘 용기가 필요한 게 아닐까. 너무 어두워서 도무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다가도, 시간을 견디면 결국에는 아주 느린 속도로 시야가 밝아지듯이. 캄캄한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일. P. 61



#오상그리아

커다란 유리병이 다 비어가도록 둘 중 누구 하나 안색이 변하지 않았다. 그 엄마에 그 딸이었다.

내가 삼대째 물려받은 것은 알코올에 대한 내성, 돌아온다는 약속, 어쩌면 사랑. 우리는 알아들을 수 없는 노랫말에 오랫동안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P. 89~90



#내할머니의모든것

다만 후에 내가 알게 된 것은, 그날 할머니는 자신이 가진 최선의 것들을 몸에 걸치고 나왔다는 사실이다. 최선의 것들이자 유일한 것들을. 단 한 벌의 코트, 하나의 모자, 하나의 목도리, 한 켤레의 장갑. 나는 뒤늦게야 그녀가 살아온 삶의 방식을 감히 짐작해볼 수 있었다. 최소한의 최선. 그것이었다. P. 96



#너무늦지않은어떤때

그리고 나는, 천국과 지옥을 믿지 않아.

그는 나를 보지 않은 채 고해성사하듯 허공에 대고 말했다.

방금 신을 믿는다고 했잖아.

안와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하지만 내가 믿는 신은 천국에 살지 않아. 나는 지금, 여기의 아름다움만을 믿어.

나는 상상했다. 지금, 여기의 신. 작은 것들의 신을. 안와가 조용히 한마디를 덧붙였다.

나는 가끔씩 내 삶이, 필름이 들어 있지 않은 카메라로 셔터를 누르는 것처럼 느껴져. P. 146~147





#고래사냥

진공 상태로 떠오를 때가 아니라 붙잡혀 돌아올 때. 지구는 나를 이토록 끌어당기는구나. 놓아버리지 않는구나. 기울어진 채 멀리 수평선에 돋아 있는 낮은 섬들을 바라보노라면, 발 딛고 있는 대지가 얼마나 단단하고 안온한 것인지 깨닫게 되곤 했다고.

언젠가 룸메씨가 내게 해준 그 얘기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쩌면 바로 지금이, 룸메씨가 바이킹을 타야 하는 시점이 아닌가 싶었던 것이다. 어쩌면 나도.


한껏 끌어당겨지고 싶었다. 삶 쪽으로. P. 159



#지나가는바람

우린 아마 평생 이러고 살겠지. 갈대처럼 흔들리면서.

근데 갈대 괜찮지 않나. 지나가는 바람에 한껏 몸을 누이면 되니까. 한참 엎어져 있다가 슬그머니 몸을 일으키고, 또 엎어지고. 누가 누구를 일으켜줄 수는 없지만, 같이 엎어져 있는 건 참 나쁘지 않을 것 같다고, 우림에게 말하고 싶었는데 그냥 속으로 생각만 했다. P. 225



#한낮의빛

검고 두꺼운 암막 커튼을 쳤는데도 이 방안은 왜 이렇게 어둡지 않을까. 눈을 감고 안대를 썼는데도 왜 어떤 잔상이 망막에 매달려 떨어지지 않는 걸까. 묻고 싶었다. 우리가 잠들 수 없는 것은 그래서일까. 우리가 우리에게서 빛의 기미를 완전히 떼어놓을 수 없기 때문에.

자리에 누운 채 어슴푸레한 사물의 윤곽을 눈으로 더듬는 동안, 어디선가 읽었던 니체의 말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한낮의 빛이 어둠의 깊이를 어찌 알겠는가.’

그러나 밤의 어둠도 한낮의 빛을 알지 못한다. P. 253~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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