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 건너기 소설의 첫 만남 30
천선란 지음, 리툰 그림 / 창비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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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 건너기, 천선란


천선란(지은이)의 말

모두가 각자 품고 있는 그 노을을,

무사히 건너 어른이 되기를 바랍니다.






천선란 작가의 북토크를 갔다가 팬이 되었다. 주변에서 천선란 작가를 좋아하고 적극 추천하는 일이 많았지만 쉽게 손이 가지 않았다. SF라는 장르가 자꾸만 나를 머뭇거리게 했기 때문이다.

작가는 익숙한 감정을 낯설게 표현 할 수 있어서 SF소설을 쓴다고 했다. 외로움이나 그리움 같은 감정을 낯설게 그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작가의 이야기를 듣고 읽게 된 책들은 다르게 다가왔다. 작가가 그리는 미래 속에도 우리의 현재가 있다. 작가가 그리는 인물들이 내 옆에 있다. 그들과 함께 느끼고 외로워하고 그리워하면서. 외로움을 가장 잘 표현하는 작가가 아닐까 감히 생각해본다.


가장 외로웠던 나를 만나러 간다.


이 말에 이 책을 사지 않을 수 없었다. 우주비행사인 공효는 자아 안정 훈련을 위해 무의식으로 들어가 어린 날의 자신을 만나게 된다.


노을이 침범해 붉게 변한 집에 홀로 있는 것을, 어린 공효는 참 싫어했다. 아득히 멀어진 기억이지만 그 감정을 완전히 잊은 것은 아니었다. p.09


노을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어린 시절, 어린 왕자가 노을을 마흔 네 번이나 보았던 일을 말해주었던 그 순간을 좋아한다. 노을을 보고 있으면 오롯이 혼자였고 아름다웠고 쓸쓸했으며 외로웠다. 공효에게도 노을이 지는 시간은 홀로 견뎌야 했던 외로운 시간이었다.

누구에게나 지난 날들을 떠올려보면 외롭고 힘들었던 시간이 있을 것이다. 그 시간을 극복하고 이겨낼 수도 있고, 숨겨두거나 회피하기도 했을 것이다. 공효역시 매달려 그것을 딛고 나아가는 길보다 포기하는 길을 택했다. 시간이 흐르고나면 나아지리란 생각으로. 그러나 어린 공효와 마주하고 공포의 대상이었던 타란튤라를 다시 마주하면서 깨닫게 된다. 그것은 사라지지 않았고 맞서 싸워야 한다는 것을.


노력해도 되지 않는 것들은 매달리기보다 포기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말하는 노력해도 되지 않는 것들이란, 기록이나 시험 통과가 아니라 엄마의 기일이 오면 찾아오는 무기력함, 예고도 없이 밀어닥치는 자기혐오, 앞으로는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거라는 확신 따위였다. 그런 기분이 들 때마다 공효는 도망쳤다. 무엇이 문제인지, 무엇을 직면해야 하는지, 무엇을 감싸야 하는지 생각하지 않았다. 천천히 짚기에는 삶이 너무 바빴다. 공효는 해야 할 게 많았다. 당장 눈앞의 것들을 잘 해 내면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리라 믿었다.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이 알아서 사라질 거라고. 하지만 그런 믿음은 틀렸다. 외면한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정말로 죽여야 할 때가 온 것이다. p.47


어린 날의 나는 온전히 행복했던 기억만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 어떤 기억은 상처이고 아픔이며 슬픔이다. 그 외로운 시간 속에 어린 날의 내가 웅크리고 있다. 나는 나를 좋아하지 못했다. 꾸준히 미워하고 싫어하는 내가 싫어서 또 그렇게 가장 먼저 나를 상처주는 사람이었다. 


“응. 나는 네가 보는 시선의 처음이고, 네가 느끼는 감정의 중심이고, 네가 선택하는 모든 순간의 기준이야. 내가 없으면 너는 안이 텅 빌 거야.” p.62


그 때의 나를 빼고는 내가 될 수 없다. 그래서 아키나는 공효에게 말했던 것이다. '그곳에서 우리를 가장 괴롭히는 건 외로운 자기 자신이야! 네가 달래주지 않은 너라고! p.30' 그러니 잘 만나고 오라고, 한 번은 꼭 끌어안아 주(p.59)라고, 말이다.


이십대 청춘도 아닌데 여전히 나는 나약하고 예민하며 이리저리 흔들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너를 좋아한다고, 그 어린 날의 나도 나라고, 괜찮다고 오래오래 안아주고 싶다. 울면서 소리치는 내가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겠지만, 살아가는 동안 내내 그렇게 내가 먼저 나를 안아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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