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언제나 무너지기 일보 직전 큐큐퀴어단편선 2
조남주 외 지음 / 큐큐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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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언제나 무너지기 일보 직전, 최진영 외








너무 환하지 않게, 너무 그늘지지 않게

삶을 제자리로 데려가는 아홉 편의 퀴어 소설



새로운 가족의 탄생 

– 조남주 〈이혼의 요정〉



은경은 이혼을 했고 수연은 이혼을 하는 중이다. 수연의 남편은 은경이 수연을 부추겨 이혼을 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은경의 남편은 은경에 묻는다. 아이들이 얼마나 혼란스럽겠냐고. 



“두 사람이야 그렇다 치고 애들은? 애들은 이 상황이 얼마나 혼란스럽겠어? 다인이는 그 여자를 뭐라고 생각해?" 

“엄마라고 생각해. 은경 엄마라고 부르고. 효림이는 나를 수연 엄마라고 불러. 걔들 아무렇지도 않아. 우리 넷 지금 되게 좋은데? 왜 우리가 불행하고 혼란스럽고 우울할 거라고 넘겨짚고 그러지?"  p.35



우리가 정상가족이라 부르는 엄마, 아빠, 아이 둘의 4인가족. 그 안에서도 가장 약자는 아이와 여자. 엄마 둘과 아이 둘이 이혼을 하고 함께 살아가는 모습은 사회가 생각하는 정상가족에서 벗어났겠지만 오히려 자유로운 새로운 가족의 탄생은 아닌지 생각해본다. 



상실한 자들이 품은 단 하나의 문장 

– 김현 〈고스트 듀엣〉



석찬을 순식간에 철들게 한 것이 한 사람의 죽음이 아니라 한 사람의 삶이었다면 어땠을까. p.44



인생은 언제나 무너지기 일보 직전.

그래서 오늘도 무너졌구나.p.45



죽은 연인의 홀로그램과 함께 여행하는 남자의 이야기. 죽은 연인과의 기억을 떠올리며 애도하는 시간을 보낸다. 인생이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어도, 무너졌다 하더라도 우리는 뒤돌아 과거로 갈 수 없다. 앞으로 나아가고 오늘을 살아간다. 누군가를 떠나보내고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작가의 말이 가장 마음아팠다. 사랑은 사랑일 뿐인데 투쟁으로 얻어내야 하고 숨겨야 하고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거나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해야 하는 현실이 서글프다. 작가의 말대로 누구나 사랑한다면 마음껏 손잡고 다니기를.



사랑이나 우정으로 이룩되는 공동체의 마음도 있을테지만, 투재이나 연대로 이룩되는 연인들의 마음도 있을 것이다. 사랑을 사랑이라 말하기 이전에 투쟁이라고 말해야 하는 사람들을, 존재를 존재라 말하기 전에 존재-한다, 라고 말해야 하는 사람들을, 결혼을 결혼이라 말하기 전에 동성 결혼이라고 밝혀 말해야 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는 일이 여전히 문학의 몫임을, 믿고 싶다.

세상의 모든 짝꿍이 자유롭게 손잡을 수 있기를.

#작가의말_김현





내 안의 숨겨진 정원들 

– 윤이형 〈정원사들〉



데브는 달랐다. 내가 진짜 나를 보여준 유일한 사람이었다. 나는 연애가 싫은 게 아니었다. 그저 데브가 원하는 연애와 내 연애가 달랐을 뿐이다. 하지만 그 다름이 그렇게 힘들었다면, 결국 그 애를 밀어내며 선언한 것처럼 있는 그대로의 내가 그토록 소중했다면, 지금 여전히 데브를 떠올리며 미련인지 뭔지 모를 이 텁텁한 감정에 젖어 있는 나는 무엇일까. p.85



저는 기뻤어요. 그 정원이 있다는 게, 자랑스러웠어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가 한 존재로서 온전해졌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로 갈 수도 없고, 유리를 깨거나 문을 만들어 달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지만, 그냥 그게 있다는 게 좋았어요. 이렇게밖에 설명이 안 돼요. p.98



사람에게 인정이란 무엇일까. 왜 혼자서도 괜찮다고 마음을 다잡아도 가끔은 참을 수 없이 누군가에게 자신을 드러내고 싶고, 이야기하고 싶어지는 것일까, 찔리고 피가 나고 붕대를 감을 일이 생길 걸 알면서도. p.100






데브야, 듣고 있니. 나는 여기서 이렇게 소리치고 있고 더 이상 죽고 싶지도 무리해서 행복해지고 싶지도 않아. 나는 그냥저냥 살아갈 거고 가끔은 오늘처럼 웃기고 유치한 영화를 찍을 거고 낯선 사람의 어깨에 기대 속을 털어놓았다가 후회하기도 하면서 조금씩 더 괜찮아질 거야. 너 없이. p.110




효주는 퀴어 퍼레이드에 갔다가 직장 동료인, 무려 팀장님을 만나게 된다. 애인과 헤어지고 지기 싫어서 퀴어 퍼레이드에 왔다는 효주와 결혼했지만 그래서 퀴어 퍼레이드에 오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래영. 둘은 서로에 대해 이야기하며 자신의 마음을 풀어낸다. 래영이 말했던 정원에 대해 생각한다. 사람들 마음 속에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정원이 있다. 래영의 정원은 숨겨진 정원이 있었고 그 정원을 알게 되어 기뻤다고 말한다. 이제서야 자신을 한 존재로서 알아차렸다고. 정원에서 나오지 않고 정원을 꾸미고 그곳에 안주하며 살아갈 수도 있겠다. 누구도 들어오지 못하게. 래영은 정원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뻤으나 남편은 받아들이기 어려웠고 효주는 자신의 정원으로 들어가지 않고 바깥에서 바라보기만 한다.


사람은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어하고 그러면서 그런 자신을 좋아하지 않을까봐 숨기기도 한다. 누가 인정해주지 않아도 나는 나일뿐이고 나 스스로 알아주면 된다고 생각하면서 인정받고 싶고 드러내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존재가치를, 마음을, 정체성을 드러내고 이야기하고 싶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환영받지 못하는, 어쩌면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있는 퀴어의 삶과 사랑이 틀린 것도 잘못된 것도 아님을, 보통의 삶과 다르지 않음을, 평범한 사랑이라고 말하는 세상이 되길 바란다. 덧붙여 윤이형의 작가의 글이 다시 세상에 나오길 간절히 바란다. 



우리는 누구의 인정도 필요 없다고 종종 말하지만 그럴 때조차 말없이 인정받고 싶어 하고, 환영받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때때로 자신을 드러냅니다. 아무도 물어보지 않는 자신의 진정성을 증명하고 싶어 합니다. 어딘가에 기대고 싶어 하고, 자신이 어디에도 들어맞지 않는다고 느끼면 힘들어합니다. 그런 게 인간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작가의말_윤이형




백 년 동안의 퀘스처닝 – 김성중 <에디 혹은 애슐리>



'나'는 스스로 아들이 아니라 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엄마에게 그 사실을 털어놓았을 때 엄마는 그걸 이제 알았냐고 되묻는다. 인간이 태어나 자신의 정체성을 주어진대로 살아가는 것이 맞는 건가. 세상이 멈췄다. 더 이상 인간이 태어나지도 죽지도 않는 세상. 멈춰버린 세상에서 '나'는 여러 젠더를 횡단하며 실험해보기로 한다. '나'는 자신의 몸이 자신과 맞지 않다는 껄끄러움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세상의 시간은 다시 흐르고 '나'는 이제 불면에서 벗어난다. 엔도의 죽음 이후로. 이제 '나'는 죽을 때 나 자신으로 죽을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한다. 성전환이나 젠더에 대해 깊이있게 알지는 못하지만 인간은 누구나 자기 자신을 살아가고 싶어한다. '나'는 에디이거나 애슐리이거나, 둘다이거나 상관없이 그저 나 자신으로 살아가게 된 것처럼. 자신의 존재가치와 정체성, 온전한 나 자신을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판단하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뿐이다.



"엄마는 네가 원하는 삶으로 가봤으면 좋겠다. 잠도 잘 자고, 애인도 생기고, 애인이랑 싸우기도 하는 뭐 그런 삶 말이야." p.121



죽지 않는 세상에서 여전히 시스젠더로 남아 있는 소수의 사람들이 더 신기했다. 어떻게 아무런 의심 없이 주어진 성별대로만 살 수가 있지? 그게 진짜 자신이라는 것을 무엇을 확신하지? 내게 젠더는 하나의 나이테에 불과했다. p.130



만약 엔도가 인간이라면 어떤 젠더였으면 좋겠어?” “저는 사람이 아니라 동물이 되고 싶어요. 몸에 털이 나 있고 꼬리도 있는 육식동물, 이를테면 표범이나 재규어 같은 고양잇과 동물이요.” 인공지능이 인간이 되고 싶어 하리라는 것은 선입견에 불과한 모양이다. 그러나 이 엉뚱한 소망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p.137



“너는 유일하게 혼자다. 하나, 유일, 혼자.”

나를 증명하고 너를 설득하기 위해 – 한유주 <원을 구하기 위하여>



내 안에 자리 잡은 편견 – 최정화 <라디오를 좋아해?>

명주는 라디오 진행자로 라디오를 좋아하고 자신의 일을 사랑한다. 그런 명주에게 라디오작가 우희가 거슬린다. 우희는 라디오를 좋아하지 않는 것이 분명하다. 길에서 우연히 마주쳤던 그 때, 사이비 이단교회의 전단지를 나눠주던 우희를 발견하고 난 후였다. '명주는 그런 우희를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고 라디오를 싫어한다고 믿으며 미워한다. 기어이 우희가 그만뒀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무엇보다 내가 싸워오던 편견을 고스란히 다른 사람에게 뒤집어씌우는 나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다.

내가 우희를 바라보는 시선이 편견이라니. 편견이 아니라 다른 것이라면 차라리 좋겠다. 편견은 나와 나경이 열렬히 싸우던, 싸우고 있던, 싸워야 했던 대상이다. 편견으로 인해 우리가 얼마나 많이 울었고 무너졌고 상처받았는가. 그런데 그게 내 안에 이렇게 격렬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p.206



레즈비언인 명주는 편견으로 인해 울고 무너지고 상처받아놓고 자신이 편견어린 시선으로 우희를 바라봤다는 사실에 당황한다. 게다가 애인인 나경이 자신과 헤어지고 싶어한다는 사실을 알고도 제대로 된 대화없이 자연스레 지내고 있다. 



헤어져야겠다고 생각한다고 해서 그 시간이 덜 소중해지는 것은 아니다. 헤어져야겠다고 생각한다고 해서 진짜로 해어지게 되는 것도 아니다. p.208



누군가를 미워하고 다른 시선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결국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우리는 서로 다를 수 있고 또 같을 수 있다. 누군가를 미워할 수도 사랑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보는 것이 편견으로 바라보는 건 아닌지, 내 시야와 경험만으로 판단하는 것은 아닌지,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이해할 수 없다는 이유로 편견의 늪에 빠진 건 아닌지 고민해봐야할 것이다.


“무언가를 버린다면 그건 다른 무언가를 받아들이기 위해서겠지요”

이상한 나라의 꿀벌들 – 듀나 <바쁜 꿀벌들의 나라>


알콩달콩 중장년 레즈비언 로맨스 – 최진영 〈XOXO〉



나이와 성별을 떠나, 떠나긴 왜 떠나! 누구에게나 사랑은 있다. 사랑은 그냥 아름다운 것이다. 울고불고 싸우고 서운해하고 지지고 볶더라도.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시간가는 줄 모르고 키스하고 안아주고 사랑하는 두 여자의 이야기. 알콜중독이었던 내가 너를 만나 강해지고 싶었다. 나만 너를 사랑하는 것 같다며, 너무 괴롭다고 엉엉 울어버리는 나의 모습이 어린 아이같았다. 마흔 네살의 나이에도 사랑앞에서는 울고 웃고 하는 것이다. 배우자를 동지처럼, 가족까리 그러는거 아니다라는 둥 농담섞인 말을 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 웃으면 받아준다면 나도 웃고 의아하게 바라본다면 나도 의아하게 바라볼거라는 '나'의 말을 빌려 말한다. 이상한 건 이상하게 바라보는 당신이라고.



아주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고 돌아와 심하게 울었다. 나는 친구들의 대화에 참여할 수 없었다. 오랜 친구들이었지만, 우리는 같은 나라에서 같은 언어를 쓰고 있었지만, 나는 외부인이었다. 타인과의 소통을 단념해가면서도 서로를 믿고 사랑하고 손을 잡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소설을 썼다. 나는 정말 사랑과 믿음이 소중한 가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삶에서 그것들은 점점 희박해졌다. 이미 끝난 소풍인데, 다들 집으로 돌아갔는데, 나만 홀로 남아 보물이 적힌 쪽지를 찾아 헤매는 것도 같았다. p.255



그렇게 살면 답답하지 않아?

너를 걱정하고 싶었는데, 네게 화를 내고 말았다.

네가 나를 알잖아. 그거면 돼.

네 말과 너의 시선, 너의 낮은 목소리 모두 나를 아프게 했다.

어쨌든 가족은 중요하니까.

중요하다고 말하는 너의 표정은 어두웠다.

그럼 거짓말하자. 혼자 사는 친구가 많이 아파서 당분간 네가 보살펴줘야 한다고 해. 사실 그건 거짓말도 아닌걸. 너와 같이 살 수 없어서 나는 많이 아프니까.

너는 쓸쓸하게 웃으며 조금만 더 두고 보자고 했다. 그즈음 내 마음에는 아주 작은 생채기가 났다. 금방 나아 흉터가 될 줄 알았는데, 낫지 않고 지속적으로 벌어졌다. 붉은 피와 흰 고름이 흘렀다. 가끔 나쁜 냄새를 풍겼다. 네가 그 냄새를 눈치챌까 봐 두려웠다. p.271



응. 네가 옆에 있으면 좋겠어. 아픈 나를 안아주면 좋겠어.

네가 와달라고 한다면 나는 가는 수밖에. 나는 너의 늙은 부모님을 생각했다. 나를 어떻게 소개해야 할까? 친구라는 말은 도저히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너를 바라보는 내 눈빛을 감출 자신도 없었다. 너와 내가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고 말한다면 너의 부모님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 우리가 말하는 '사랑'과 그들이 듣는 '사랑'은 같은 사랑일까? 여자랑 여자가 어떻게 사랑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웃어버릴 것 같다. 터지는 웃음을 참을 수 없을 것 같다. 우리의 사랑은 할 수 있거나 할 수 없는 게 아니라, 하는 것. 할 수 없거나 하지 않을 때 그것은 거기 없었다. 너의 가족이 나를 보고 미소 짓는다면 나도 미소 지을 것이다.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본다면, 나 역시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볼 것이다. 우리가 이상한가요? 당신들도 이상합니다. p.280



사랑하는 마음은 내가 가진 것 중 가장 빛나고 아름다운 것이다. 아름다운 그것이 있기에 나를 겨우 견디는 순간이 많다.

(...)

봄은 '아름답다'에서 '아름답지만은 않다'로 기울었다. 봄은 아름답지 않아도 된다. 봄과 꽃은 별 상관 없을 수도 있다. 봄이 있고 꽃이 있고, 내가 있고 당신이 있고, 우연히 눈 마주치고 그것이 거기 있음을 알고, 무언가는 무언가를 아름답다 생각할 수도 무심할 수도, 그것이 거기 있기에 아파할 수도, 보았기에 그리워할 수도 있다.

#작가의말_최진영


패배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 – 정지돈 〈포스트 게이 아포칼립스〉



김현시인의 투쟁, 정지돈 작가의 패배자라는 단어가 씁쓸하다. 투쟁하고 패배자가 되지 않기 위해 멈추지 않고 맞서고 싸우고 나아가야 하는 사람들. 그렇게 얻어내야 하는 사랑. 그래서 정지돈의 글이 읽기는 어려웠지만 이 앤솔로지를 관통하는 문장이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서로를 사랑해야 합니다. 아무런 조건 없이, 이해 없이, 서로를 사랑해야 합니다. p.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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